비밀의 문
이용헌
나무 위에도 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한 사내가 제 몸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하늘로 떠났다
주머니에선 하늘로 가는 차표 대신 한 장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쪽지에는 그가 사랑했던 이름들과 뜻 모를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몸만 남겨 두고 영혼은 사라진 문의 비밀번호가 궁금했다
날이 밝기 전 사내는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섰을 것이다
일생을 열고 닫았던 문과 문마다 그의 지문이 파문을 그렸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택시 문을 닫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지상의 마지막 문을 닫았다는 걸 안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왜 소리마저 다 걸어 잠그고 하늘로 갔을까
날개를 잃은 새는 하늘을 날 수 없어도
몸뚱이를 잃은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법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돈과 사랑을 선택했듯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절망과 배신 앞에 생을 접기로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열리지 않는 미명의 문 앞에서
스르르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남기며 나뭇잎처럼 몸을 떨었을 것이다
말을 걸어 잠근 하늘마다 소문들이 매달려 있다
문설주 없는 문을 지나 어둠의 저쪽을 건너가면
별빛 푸른 그곳에서도 나무들은 자랄 테고
뿌리에서 둥치를 거쳐 우듬지에 이르기까지
나무엔 한 사내의 비밀이 손금처럼 환히 요약되어 있을 것이다
—《문예바다》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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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헌 / 광주 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