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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감상
결정적 순간/나희덕
일찍이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법이나 빛줄기에 소리를 내는 법, 그리고 가을 햇빛에 아름답게 물드는 법에 대해 배워왔다 하지만 이파리의 일생이 어떻게 완성되는가는 낙법에 달려 있다 어디에 떨어지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잎이 아닌 것은 아니다 바람에 불려 다니는 것처럼 보여도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어도 수십 마일 이상 날아가 고요히 내려앉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려면 우선 바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람이 몸을 들어 올리는 순간 바람의 용적과 회전속도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팔랑팔랑 허공을 떠돌다 강물위에 내려앉는 낙엽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마지막 한 마디를 위해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한 방울의 피가 물 위에 희미한 파문을 일으키거나 별똥별이 하늘에 성호를 긋고 사라지는 것도 다르지 않다 죽음이 입을 열어 하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순간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빛이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듯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게 있다 잎맥을 따라 흐르던 물기가 한 꼭짓점에서 일제히 끊어지는 순간,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제 발목을 내리쳐야 한다 그러면 짧으면서도 아주 긴 순간 한 생애가 눈앞을 스쳐갈 것이다 벌써 절반이 넘는 이파리들이 나무를 떠났다 그들은 떨어진 게 아니라 날아간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처럼 보여도 이파리에게는 오직 한순간이 주어질 뿐이다 허공에 묘비명을 쓰며 날아오르는 한순간이 ..... <김임자님 제공> |
첫댓글 시인의 통찰력은 초월적입니다.
무심한 범인의 무지를 자극합니다.
글들을 통찰하는 임자님이 동창인 덕에
깊은 뜻을 담은 시를 접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평범한듯하면서 비범한 시인들의 마음은
어떤 색일까..
고요한 명상에서 얻어내는 파동인듯합니다.
떨어진 게 아니라 날아간 것이다.
객체에서 주체로 결정적인 순간을 션택해야 그렇게 되는건가 ---
안녕하셔요?
반갑습니다.
혹시 '죽이는 수녀 이야기' 연극을 보셨나요?
저는 지난23일 대학로에 있는 공연장에서 보았습니다.
재미있고,가슴 찡~했습니다. <시즌3>으로 앵콜공연이 11월 부터 있을 예정.(새우아트홀)
결정적 순간을 맞는사람들, 또 그들을 돕는 수녀들의 이야기를 웃으며 풀어가는,,,,
서점에 책도 있다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김수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등을 수상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책 앞날개에서)
시인의 말
,,,하지만 "이제 더이상 과거가 미래를 만들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는 들뢰즈의 말처럼,기억의 되새김질보다는
생성의 순간에 몸을 맡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