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에서 장애인부모로 살아가는 건 어떤 모습일까? 장애가 있는 자녀의 성장과 함께 변해가는 부모의 삶에 초점을 맞춰 그 속살을 들여다봤습니다. 비마이너는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 네 분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9월 23일 영등포에 있는 엄해경 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해경 씨는 중증중복뇌병변장애가 있는 16살 현운 군의 어머니로, 현재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흔히 중증복합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몸과 마음이 지쳐 몹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해경 씨의 얼굴은 굉장히 밝았다. 또래의 여느 어머니들의 얼굴보다도 훨씬 밝고 화사했다. 표정이 무척 밝다고 말하니 “원래 뇌병변장애인 엄마들 표정이 다 밝아요. 제일 힘들 것 같은데, 표정들은 제일 밝지요.”라고 답한다.
조금 알 듯도 하다. 예전에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 중증의 신경외과 환자들이 누워있는 병동의 간호사와 보호자들의 표정이 가장 밝고 화사했던 기억이 난다. 여느 병동에나 있는 사소한 불평과 다툼 따위는 없었다. 마치 천상의 공동체인 양 웃음과 격려가 흘러넘쳤다. 처음엔 참 의아했지만, 차차 알 것 같았다. 이들은 환자가 최악의 나락에 떨어졌다가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죽은 줄 알았는데 목숨은 건졌고, 영영 의식이 못 깨어나는 줄 알았는데 깨어났고, 전혀 사람을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몇 주 만에 ‘어...’ 한마디를 떼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기적을 보는 듯 환호하고 축하했다. 완벽한 절망을 경험한 상태에서, 맨바닥에서 움트는 조그만 희망의 싹을 보고 있기에, 그들은 마치 성령이 임재하신 것 같은 기쁨에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뇌병변장애인 부모의 표정이 유독 밝은 것도 그런 이치일까.
# ‘아일랜드 드레싱 빠’인 현운이?
현운이의 집은 다가구 주택의 1.5층으로, 20평쯤 돼 보였다. 현운이가 문을 닫으면 답답해해서,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 놓은 상태였고, 현관문도 조금 열어 놓았다. 겨울에도 현관문을 닫지 못하고 열어놓는다고 한다. 거실이자 부엌으로 쓰이는 좁은 공간엔 바닥에 얇은 이불이 깔려 있다. 현운이가 집에서 바닥을 기어 다니기 때문에 다치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집에 방문했을 때 현운이는 신문지 찢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현운이 표정도 상당히 밝았다. 혼자 재미있는지 이따금 해맑게 웃었다. 집안에 들어온 낯선 이를 보고 잠시 경계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이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뀌었다.
현운이는 16살이지만 체구가 작아서 12살 정도로 보였다. 현운이는 지체, 지적, 언어, 섭식, 수면, 자폐, 간질 등의 장애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기거나 앉을 수 있지만, 척추측만증이 심해서 보조기 없이 똑바로 앉는 것은 어렵다. 밖에선 주로 휠체어로 이동하지만 일으켜서 부축하면 몇 발짝 걸을 수 있다. 왼쪽청력이 없고, 지적장애와 언어장애가 심해서 학습이나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어머니와는 눈 맞춤이 되고 감정교류가 가능했다. 음식을 씹지 못하기 때문에 이유식을 막 끝낸 유아처럼 음식을 잘게 잘라서 주어야 하며, 자폐성 장애로 정해진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수면주기가 일정치 않아서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쪽잠을 자고 일어나 밤을 새며 놀고 새벽에 다시 잠이 들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다. 간질발작을 예방하는 약을 함께 복용하고 있다. 배변과 배뇨는 기저귀로 해결하고 있었다.
“현관 앞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힘들어서 아파트로 이사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현운이가 이 집에서 태어났고, 한 번도 이사하지 않아서 이 집을 익숙해해요. 현운이는 이 집이랑 영월의 외가에서만 집 안에서 잠을 자고, 그 외에는 엄마랑 차에서 잠을 자고 여행을 가도 숙소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에 휠체어를 놓고 잤어요. 식당에 가도 현운이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안에 있고, 현운이가 낯선 곳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이 동네는 현운이를 알기 때문에 내가 잠깐 집을 비울 때도 잠깐씩 봐달라고 할 수 있지만, 새로 이사를 하면 그런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이사를 못 가고 있어요.”
신문지 찢기 놀이를 하던 현운이는 조금 지나서 약간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배가 고프다는 뜻이다. 해경 씨는 밥과 계란 프라이, 김치와 김을 잘게 자른 것에 아일랜드 드레싱을 묻혀서 먹여주었다. 갓 이유식에서 벗어난 유아용 식단이다.
“우연히 발견한 건데, 반찬(김치, 계란프라이)에 아일랜드 드레싱을 묻혀주면 잘 먹더라구요. 그래서 매번 이렇게 먹여요. 이게 없었으면 어떻게 밥을 먹였을까 싶어요. 현운이가 씹지도 못하고 편식이 심한데도 많이 자랐어요. 지금 35kg인데, 중증장애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많이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아요. 돌보기가 점점 힘들어지니까요. 사실은 먹는 것보다 배변이 더 문제에요. 골고루 먹지 못하니까 변비가 심해서 1주일에 한 번씩 관장을 하거나 손가락으로 파내거나 해야 돼요. 가끔은 항문이 찢어져서 피가 나기도 하지요.”
# 생후 8개월에 경기가 심했는데,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이라고…
현운이는 외아들이다. 엄해경 씨 부부는 둘 다 지방출신으로 집안의 도움 없이 결혼해 풍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해경 씨는 현운이가 장애를 지녔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장애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난산이 아니었고 정상 분만이었어요. 발육이 조금 늦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크게 문제가 있는 줄 몰랐어요. 생후 8개월 때 강원도에 있는 외가에 가 있을 때 심한 경련이 일어났어요. 하필 지방이어서 병원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지체되었죠. 그 사이에 몇 분간 뇌에 산소공급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서울삼성병원 응급실로 옮겼는데, 그때 뇌를 둘러싸고 있는 막이 수축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후로도 계속 무섭게 경련이 일어났어요. 서울삼성병원 이문향 교수님이 현운이가 난치성 간질환이라면서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알려줬어요. 300여 가지의 희귀질환 중 산정 특례로 분류된 80개 질병 중 하나여서, 본인진료비는 10%만 들죠.”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은 소아기에 나타나는 간질성 뇌병변의 가장 심한 형태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 발달 기형일 것으로 짐작되고, 유아기 때부터 심한 간질을 보이며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이다.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은 최석윤 씨가 쓴 책 <시간을 삼킨 아이>를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단, 현운이는 최석윤 씨 아들 한빛이보다 지적장애와 지체장애가 더 심한 상태이다.)
해경 씨는 그 후로 현운이에게 매달렸다. 둘째를 낳을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현운이는 돌 이전 단계의 인지발달능력을 지녔다고 해요. 현운이가 엄마와만 눈을 맞추고 아빠와는 눈을 잘 안 맞추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아빠는 아이 키우는 재미를 좀 못 느끼죠. 그래도 크면서 조금씩 좋아져서 아빠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아빠가 전에는 현운이랑 둘이 있거나 함께하는 것을 잘 못해주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자 사이가 좋아졌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생기면 1년에 한두 번씩은 주말을 둘이서 보내기도 하고, 둘이서 지낸 다음 날 보면 현운이가 아빠와 친해진 느낌이 표정이 보이고, 크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답니다. 아빠가 현운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현운이를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해경 씨는 현운이를 전적으로 보살피면서, 짬짬이 밥이며 청소며 살림을 하고,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 회장이자 한국장애인부모회 뇌병변, 지체분과 임원의 일도 한다. 무척 일이 많다. 아빠는 7시에 출근을 해서 8시 반쯤 퇴근한다. 현운이의 불규칙한 수면 때문에 항상 둘이 잠든 모습을 보며 출근하고, 가끔 또는 자주 둘이 자는 모습으로 아빠의 퇴근을 맞기도 한다. 엄마가 24시간 현운이의 패턴을 함께하다 보니 부부 사이에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진 못한 듯했다. 해경 씨와 현운이의 절대적인 애착 관계로 아빠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경 씨는 “요즘은 제가 좀 우울증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계속되어,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가족과 터놓고 대화하며 위로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우울해지지 않겠는가? “장애아 부모들이 다 우울증이 있어요.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 엄마들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서로 위로해주고 상담해주고 그래요.”하며 웃는다. 그나마 다행이다.
# 해경 씨는 연예인 로드 매니저?
현운 군은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역 근처에 있는 국립 우진학교에 다닌다. 해경 씨는 매일 현운이를 안아서 씻기고, 밥을 먹이고, 부축해 계단을 내려가 차에 태워서 학교에 데리고 간다. 갈수록 근력이 모자람을 느낀다. 요즘은 팔이나 어깨 통증이 심하다. 등교 시간은 1시간가량 걸린다. 휠체어에 앉혀 교실에 데려다 주고, 낮 시간 대부분을 학부모 대기실에서 보낸다. 기저귀를 갈거나 일반 식사를 하지 않는 현운이에게 현운이 식 식사를 마련해 먹이는 일을 해경 씨가 해야 한다.
“중증장애 학생의 부모는 특수학교를 아이와 함께 다니는 셈이에요. 학부모 대기실에서 만나는 학부모들 사이에선 정보교류가 활발하지요. 치료와 교육, 복지제도 등에 대해 누구도 종합적인 지식을 알려주지 않아요. 전부 엄마들끼리 서로 상담해가며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특수한 지식을 알아가는 거예요.”
교실에서 수업이 끝나면 1주일에 2번씩 우진학교 수영장에서 수영레슨을 받는다.
“현운이가 수영하는 걸 좋아해요. 재활운동으로도 좋다고 권하고. 저는 현운이가 뭔가 좋아하는 걸 한 가지라도 알고 그런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수영을 시키고 싶은데, 다른 수영장은 탈의실이 다 남녀 구분이 되어 있잖아요. 현운이와 나는 같은 탈의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다행히 우진학교 수영장은 같이 들어갈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우진학교 교장 선생님의 방침으로 매일 오후 1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남자탈의실이 모자탈의실로 바뀌어 엄마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다.)
수영뿐이 아니다. 현운이는 요일별로 삼육재활센터에 물리·작업치료, 사설 시설에 언어치료, 여의도성모병원에 운동치료 등을 받으러 다닌다. 그 외에 척추측만증과 간질 진료 등을 위해 고대구로병원, 삼성병원 등에 주기적으로 내원한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자세가 고정되지 않는 현운이에게 척추측만증은 꽤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해경 씨는 척추측만이 시작되기 전인 7~8세부터 자세교정보조기구에 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척추측만증이 더 심해지면 심폐기관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의사의 말이 걱정이다. 운동치료는 담당 물리치료사가 현운이를 열심히 봐주시고 좋아진 것이 눈에 띄니 빠지지 않고 받는다.
운동과 치료 등으로 가야 할 곳이 많다 보니, 현운이는 단 5분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정이 빡빡하다. 해경 씨는 연예인 로드매니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현운이를 ‘모시고’ 기민하게 다음 장소로 가야 한다. 이때 현운이의 요구에 절대적으로 맞추기 위한 근력과 섬세한 테크닉이 필요하다. 엄청난 업무 강도이지만, 해경 씨는 온전히 그 일을 해내고 있다.
“장애아동의 특수교육도 일반아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얼마나 아이에게 공을 들이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요. 요즘은 놀이치료니 언어치료 등이 사교육화 된 시장도 있답니다.”
어쩌면 해경 씨는 사교육에 극성인 강남학부모와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강남학부모들이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반면, 해경 씨는 현운이의 장애와 소외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해경 씨의 운전 실력은 수준급이다.
“현운이 덕분에 능력이 많아졌죠. 닥치니까 다 하게 되더라구요. 운전도 전혀 못했어요. 길도 많이 알고, 그밖에 아는 것이 엄청나게 많아졌죠. 그런 지식뿐만 아니라 현운이를 통해 저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현운이의 장애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점점 더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저는 현운이를 낳아서 불행해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누구나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저 말이 그저 빈말이 아님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것이다. 맞다. 힘들지만 깨달음이 있다. 물론 현운이처럼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 노릇은 그 힘듦과 깨달음이 몇백 배의 강도일 것이다. (2회 기사에 계속됩니다.)
*글쓴이 황진미 님은 원래는 의사, 진단검사의학 전문의로 2002년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해 현재 <한겨레><한겨레21><시사저널><영남일보> 등 여러 매체에 영화, 대중문화, 시사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겨레 훅>에 법정르포를 싣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은 정택용 님은 6년간의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펴낸 사진가로, <진보정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을 다룬 <사람을 보라>를 동료와 함께 펴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