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교사위로회 『크로싱(Crossing)』을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후로 영화 보고 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주인공 차인표가 눈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이 사실임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크로싱』은 2002년 북한 탈북자들의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에서 비롯된 탈북민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몽골 3개국의 로케이션 이동을 통해 만들어졌고, 탈북자들의 검증을 통해 리얼리티에 접근할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가능한 한 정치색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탈북자들의 현실을 그리고자 노력했다고 김태균 감독은 고백합니다.
김 감독은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아마 이 영화에서는 10분의 1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가 그들이 겪어 온 현실을 비교적 가장 가깝게 그린 영화라고 증언합니다. 제가 볼 때 아마 이 영화의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파장은 계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스토리는 지금 우리의 목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현실은 아마도 한국의 절반의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어했던 바로 그 현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외면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영화의 한 대목에서 주인공의 말이 제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예수는 남조선에서만 기도를 듣고 계시냐?” 주인공의 이 말이 자꾸만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매우 난해한 신정론(神正論)에 해당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왜 하나님은 북한땅에서 몰래 예배드리는 자들을 죽게 내버려두시는가? 왜 자유를 찾아 탈북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사실 탈북자의 현실을 우리는 우리의 현실로 수용하기를 주저해 온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장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가 나치 독일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의 현실을 새롭게 인류의 가슴에 각인했던 것처럼 저는 이 영화 『크로싱』이 한국 분단의 비극에서 빚어진 또 하나의 인간 리얼리티를 이 시대의 인류에게 심게 되기를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만은 영화 예술가의 시각이 아닌 한 시대 유대인의 도덕적인 의무로 제작했다고 한 것처럼, 이 영화도 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도덕적인 의무로 우리는 이 영화를 접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내가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선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도덕적인 직무 유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더 나아가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이 영화를 소개하지 않는 신앙적 양심의 유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제 바램 같아서는 온 교우들이 시간을 내어서 단체관람을 하고 이어서 교회에서 영화토론이나 영화워크숍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교육부서의 교사들, 또 전후 세대들 모두가 이 영화를 보고서 민족의 아픔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너무 안타깝고 너무 너무 슬픈 그들의 현실 아니 우리의 현실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