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사단 앞에서 석창우 화백Ⓒ 황문현
하얀 화선지 위에 순식간에 김연아의 더블 악셀이 그려졌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두 팔 없는 화가’ 석창우 화백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실사단 앞에서 선보인 퍼포먼스의 힘이었다. 지난 2월 16일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김연아 선수의 더블 악셀은 석창우 화백의 갈고리 끝에서 하얀 화선지 위에 검은 먹으로 물들었다. 실사단들에게 감동을 줬던 석창우화백은 개인전 29회, 그룹전 210여회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능, 다큐멘터리, 교양 등 방송활동도 활발했다. 따뜻한 봄 날, 석창우 화백과 함께 하루를 보내며 그의 최근 일상을 취재했다.
a.m 06:27 바쁜 하루의 시작
석화백은 아침이 다가오자 그의 두 팔을 추스르고 하루를 시작하려한다. 왼팔이 잘 펴지지 않는다. 그의 의수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교체한지 7년 가까이 된 의수를 새것으로 다시 교체할 때가 됐나 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의수에 정이 들었는지 교체할 생각을 하니 괜히 섭섭하다. 결국 석화백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야 만다. 석창우씨의 왼쪽 귀에는 언제나 핸즈프리가 꽂혀 있다.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각계에서 섭외요청이 잦기 때문에 직접통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필수품이 됐다. 의수, 핸즈프리와 늘 함께 지내야 하게 된 사연은 두 팔을 잃은 그 날부터 시작된다.
1984년 10월 24일. 공고와 공전, 공대의 길을 걸으며 전형적인 전기 기술자의 삶을 살던 그에게 그날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한 기업의 전기 책임자였던 석창우 화백은 점심시간 기계 점검 중에 기계고장으로 인해 22900볼트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다. “그 전압에 감전되면 두 팔다리를 잃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리가 남아있다는 것에 다행이다 싶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하는 석창우 화백. 의사는 며칠 동안 살아날 것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아 온 가족이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고. 낚시를 좋아했던 석화백은 “물고기들이 신에게 기도해 신이 그 민원을 들어주는 바람에 팔을 잃은 것 같다”며 농담의 여유도 부렸다.
a.m 08:52 작품을 돌아보는 시간
▶ 아들에게 그려줬던 첫 작품. 이 그림을 통해 미술계에 입문하게 됐다.
얼마 전 석창우 화백은 미대를 나온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기 위해 자신의 작업실을 포기했다. 집안 가득 그의 작품이 어지러이 쌓여있는 이유는 화실에 있던 수많은 작품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오전 내내 작품 정리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석창우 화백의 수많은 작품들은 1988년 5살 된 아들에게 새 그림을 그려줬던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두 팔이 없어 안아주지도, 업어주지도 못했던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그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미적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처형이었다. 처형의 강력한 권유로 아내의 식당개업도 뒤로 미룬 채 미술공부를 시작한 것. 그 이후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팔았지만 그의 장애를 받아주는 교육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여태명 교수(원광대)를 만나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고, 지금은 서예크로키라는 새로운 기법을 탄생시킨 장본인이 됐다. 그는 “남들이 다 하는 분야에 따라가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며 서예크로키라는 기법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무대 바닥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화선지 위에 한 손에는 붓을, 다른 손에는 붓통을 걸고 자신의 의수를 다 드러낸 석화백. 모델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여 석화백도 검은 먹을 하얀 화선지 위에 춤을 추듯 움직이며 물들인다. “그림을 그릴 땐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깊은 몰입에서 빠져 나온 뒤엔 석화백은 탈진하고 만다.
▲ 가운데 붉은 색들은 생명력과 열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검은 먹끼리 합쳐지는 현상도 방지한다고 한다.
발가락을 잃은 붉은 발도장을 낙관으로 쓰고 있다. 마치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낙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황문현
a.m 11:40 즐거운 점심시간
석창우 화백의 점심시간은 절대 외로운 법이 없다. “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그날 저의 오른 팔이 됩니다”며 “그 대신 밥 먹을 땐 까탈스럽게 굴면 안돼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석창우 화백은 의수의 끝을 붓을 잡기 편리하도록 각도를 고정시켜뒀기 때문에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없다. 주로 그의 오른팔이 되어 주는 사람은 그의 부인 곽혜숙씨다. 석창우 화백이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 곽혜숙씨의 전적인 지원이 있었다. 석창우 화백은 “사고 후 눈을 떴을 때 부인이 비관하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자신을 위로했다”며 사고당시 25살이었던 부인의 의연함을 기억했다. 그리고 부인의 도움으로 사고 이후에 단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었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그림 그리기라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며 “모든 활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얼마나 재밌었겠어요?”라며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석창우 화백은 “전기 기술자였던 당시에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지만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돼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p.m 15:02 가야금을 연주하는 시간
▲ 가야금을 연주하는 석창우 화백. 연주를 하며 장애의 벽을 발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재미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석창우 화백은 최근 또 다른 도전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부인이 가야금을 배우는 길을 따라 나서 석화백도 갈고리로 가야금 연주를 시작한 것. 농현까지 눌러주며 감칠 맛 나는 아리랑을 연주해 보인 석화백은 “각 지역의 아리랑을 모두 연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금은 갈고리에 테이프를 감고 현을 누르지만 골무를 대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뜯고 눌러주고 풀어주며, 손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가야금 연주는 그에게 벽이 아닌 매력 그 자체였다. 12개의 현을 뜯고 누르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고 오히려 어려운 동작들 때문에 더 재밌다”라고 답했다. 집 배란다에는 석화백이 직접키운 화분이 가득하다. 장애로 포기했을 법한 많은 일들을 석창우 화백은 재미로 되살리고 있었다.
p.m 17:00 ON AIR
▲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석창우 화백.
석창우 화백이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일까. 국악방송 일요일 6시 방송되는 <일요초대석> 녹음이 예정돼 있었다. 진행자 정유희 DJ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실사단 앞에서 펼쳐졌던 퍼포먼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석창우 화백은 올림픽 실사단이 자리를 옮기는 이동경로에서 15분 동안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트리플 악셀을 그려냈다. 실사단은 예정에 없었던 일이지만 이 경이로운 퍼포먼스에 매료돼 예정됐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석창우 화백 주위에서 흘려보냈다. 실사단과 관계자들은 이날 석화백의 퍼포먼스에 감동받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언론은 “한국적인 것과 역동적인 스포츠를 한 곳에 녹여낸 결과물이라며 이날의 주제에 딱 맞았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석창우 화백의 지난날을 향해갔다. 사고 당시의 생생한 회고와 미술의 입문계기, 부인의 헌신 등이 뒤를 이었다. 그의 환상통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청중의 안타까움을 샀다. 환절기인 4월과 사고를 당했던 10월이 다가오면 이미 없어진 손가락 끝마디가 아파온다고 말했다. 없어져버렸기에 부여잡을 수도 없는 고통을 석창우 화백은 오늘날까지 이겨내고 있었다. 이날 방송출연 일정에 동행하지 못했던 부인 곽혜숙 씨는 협심증 비상약 봉투를 건네며 석화백이 아파할 때 처치방안을 당부하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수술당시 수혈로 인해 C형 간염도 앓아 인터페론이라는 독한 약을 투약해야했던 적도 있었다.
p.m 18:59 멈추지 않는 도전, 희망의 하루
방송을 마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석창우 화백은 막걸리를 주문했다. 애주가인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막걸리의 건더기를 걸러내고 매운 아구찜을 안주로 삼았다. 술만큼 사람을 좋아하는 그는 “과거는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가 지금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라”라며 집으로 향했다. 정말로 인생을 즐기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며 바쁜 하루를 마쳤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선규 제2차관이 쓴 <선생님, 당신이 희망입니다>를 읽고 있던 석창우 화백. 장애를 이겨내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석창우 화백이야말로 장애인의 희망이자 예술인의 희망이었다. 두 팔을 모두 잃은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좌절해 본적이 없다는 그의 인생은 긍정의 힘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림에 이어 가야금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석창우 화백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지 기대된다.
첫댓글 참 대단 ㅎ 인간의 힘 의지 ㅎ " 안되는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ㅋ
아이고 제가 왜 부끄럽죠. ㅎㅎ
ㅎㅎ ㅋ 더 열심히 ㅋㅋㅋ
대단한분 세상엔 너무 많음 ㅋㅋㅋ
인간승리 ㅎ
정은님은 더 대단할듯 ㅎㅎㅎ 멋진분 ㅋ
신은 한쪽을 닫으면 한쪽을 연다.
승일님 가족분 힘내요.
늘 중보합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ㅎ존경 ㅎ
정말요. 저도 부끄 부끄...^^
석창우화백을 만난 적이 있는데 붓을 들고 계신 모습에는 카리스마가..
홀로이 계신 모습은 인간미가..
우린 누구든 세상을 극복할 멋진 힘든이 내재되어 있는것같은데...
모두들 화이팅!!
ㅎㅎ 세상어떤 환란도 이길수있는것이 인간이죠 ㅎ
저도 마찬가지 ㅎ
삶도 죽음도 장애도 다 넘을 힘이 인간에겐 있죠..............정신력. ㅎ
힘과 기 여백의 미 ㅎㅎ 고통을 예술적 승화로
과거는 참고사항일뿐 절대사항은 아니다.
자기가 지금 진짜 하고싶은일에 최선을 다해라~~
긍정의 힘, 감동입니다.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