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람의 말이나 태도, 그리고 행위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면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반면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 사람은 거짓된 사람이요,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 거짓을 말하니 그는 또한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의 혼에 정직한 성품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에도 '정직한 영'의 성품이 있다.
정직한 영은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영’을 뜻한다.
어떤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환경과, 경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A라는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B라는 말씀을 주신다. 아버지께서는 그를 의롭고 거룩케 하시어 자신의 가까이에 이끄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때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에 순종 할 수도 있고 불순종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순종과 불순종의 결정은 오직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그 살고자하는 마음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A를 원해도 B라는 말씀을 마음에 받아 순종한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환경과, 경험에 비추어보면 순종하기는커녕 받거나 듣기도 힘든 말씀이다. 하지만 순종하는 그는 정직한 영의 소유자이다. 자신의 마음이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여자는 입을 열지 말라하셨다. 그러므로 여자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왔을 때 잠잠해야하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배워야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의 불순종하는 현실을 보면 그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려면 얼마나 큰 아픔과 저항이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 후 아버지와 아들께로 정직한 영을 구했다. 왜냐하면 욕심을 품고 죄를 지은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주시는 말씀은 반드시 회개와 책망일 텐데 그 채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정직한 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이것을 깨달아야한다. 다윗이 회개를 통해 아버지와 그 기쁨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즉 아버지께서 그의 안에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해주신 이유는 그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정직한 영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은혜를 다윗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요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모든 말씀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씩 하나씩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사람은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하기 전에 그 거룩하게 창조된 시점으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다.
또한 그 정직한 영의 성품을 유지하므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거룩한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정직한 그가 썩어질 육에서 벗어났을 때 그가 맺은 거룩한 열매에 맞는 거룩한 육체를 입혀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