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사물들
서안나
3분에서 5분 동안 당신은 고장 날 것이다
썩은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다
커피를 마시면 3분 뒤에 나는 커피 마신 사람이 된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설탕이 없었다면 노예가 없었을 것이다 결핍은 결핍을 이해한다
식은 감정에 물을 주면 얼굴이 고장 났다 헬멧을 쓰면 우주에 온 것 같다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개인은 비범해진다
누군가 내게 멋진 갈색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검은 말들이 뛰어온다고 적었다 강물 속에서 누군가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어머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후였다
감정이란 감정 따위를 손톱으로 눌러 죽이는 것 그가 말했을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까 나는 여러 개이므로 여러 번 부끄러워진다 오늘 저녁은 내 얼굴에서 달아날 것이다 이,별에도 봄이 온다라고 누군가 문자를 보내왔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손가락이 끈적거렸다
—《현대시학》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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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1990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플롯 속의 그녀들』『립스틱 발달사』. 평론집『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