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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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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이제는 진솔해져야 한다.
우리가 역사를 잘 배우고 역사적 사실을 거울로 삼는 이유는 역사를 통해서 후세의 판단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꾸미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사정과 조건들에 비추어 자신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처신하고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역사 앞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관(史官)들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면서 정직하게 모든 것을 기술하고, 그 판단은 후세에 남겨 두었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잔혹한 군주라고 하여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에게는 예외를 두어 진솔한 기록에 힘을 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모두 겸손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조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논어의 위정편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말씀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잘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옛사람들의 학문을 잘 익히면 그로부터 새로운 뜻이나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스승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먼저 연구한 학문을 잘 익혀서 새로운 이치나 학문을 후세 사람들에게 가르쳐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옛사람의 학문이 고리타분하다고 외면한다면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古典)이 필요하고 옛 스승들의 가르침이 존중되는 것입니다. 요즘 일본 사람들의 역사인식과 망언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역사인식은 완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사무라이 정신과 기사도 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철면피한 소인배에 불과합니다. 잘못된 역사와 잘못했던 과거를 승복하지 못한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울타리 안에서 맴돌다가 그 울타리 안에서 죽을 뿐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침략의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침략한 사실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고, 말을 바꾸어서 주장한다고 해서 역사가 증명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옛것을 통해서 새로운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이 논어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기들의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부모들이 어떻게 역사 앞에서 정직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배반하면서도 그 역사적 사실을 계속 부인하며 잘못 살고 있는 유다인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십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마지막으로 세례자 요한을 보냈던 사실까지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외아들인 당신이 파견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이제는 그런 과오의 삶에서 벗어나 진실을 찾기를 호소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습니다. 비유로써 말씀하셨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그 진의가 무엇이며, 그 역사적 사실의 실체가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면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행동이나 처신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고, 그 가치만을 참 가치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로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또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이 어둠 속에 감춰진다면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것으로 되돌아갑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의 무릎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을 역사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 사람들은 그 역사적 사실에 고개 숙이고, 겸손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위정자들이 이제 역사적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성장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실을 가르치며 새로운 평화를 창조해 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런 진솔한 모습을 거울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이 세계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이 많습니다. 인터넷에 댓글을 함부로 다는 사람들도 역사적 사실에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법원의 판결도 자꾸 뒤집히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질 것입니다. 역사적 진실 앞에서 우리는 진솔해져야 합니다. 잘못된 판단과 주장은 곧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서 역사적 진실과 자신의 앞날을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니 어김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어머니 당신 이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