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ony, 예수에게는 '고뇌' 우리에게는 '고민'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기 전에, '겟세마네'라는 그닥 높지 않는 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예수의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다가 그 땀이 피처럼 되었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시각에 '고뇌'하는 예수의 인성(人性)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고뇌를 영어로는 agony라고 한다.

여기서 고뇌의 깊은 의미와 그 어원을 생각하는 것도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운동이나 연극 따위에서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혹은 '정상'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아게인 (agein)'이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신약성경에 보면, "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어..(누가복음 4:1)"라고 할 때 '아고우'라는 동사를 썼다. 같은 어족(語族)의 '아고운'이란 명사는, "우리 앞에 당한 경주(競走)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2:1)"에 쓰여졌다.
'다투어 달린다'는 말로 사용된 것이다.
한 군데 더 소개하겠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누가복음 22:44)"에서 '애쓰다(아고니아)'라는 단어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의 고뇌(agony)의 원어다.
그렇게 언어의 뿌리를 추적하다 보니, '고뇌 (agony)'는 경주한다는 동사와 노력 또는 '애쓴다는 말이 한 뿌리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고뇌 가운데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어려서부터 소위 '조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하면서 삶을 시작하고 있다. 시험을 치루고, 점수로 인간을 평가한다.
학교에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생존경쟁을 계속해야 하며, 시험이나 경쟁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트레스가 곧 고뇌가 아니겠는가.
고뇌란 그리스어의 원어에서 보았듯이, 누구를 인도하는 것이나 경쟁하는 일 모두가 '애쓰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는 물론 중년에 이르기까지 경쟁으로 인한 고뇌가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물론 그 경쟁의 결과가 행복으로
연결되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과연 몇이나 그러한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또 그들이 승리의 정점(頂点)에 섰다 해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적인 '고뇌의 생활'을 해야 한다."
"세계 1위가 되는 것이 나의 최고 목표였다. 그런데 요즘 나는 2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있다." 이 말은 세계적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마이클 죤슨(Michael Johnson)'이 한 말이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고뇌를 초월해서 사는 길은, 경쟁이라는 살벌한 전쟁을 무시(ignore)하며 사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생활을 우리들의 젊은이들에게 가르치자. 그리고 먹고살기 위한 생존경쟁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삶의 보람을 찾기 위해 명상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 agony, 예수의 그것에 비하면
인간의 '고민'은 새발의 피도 되지 못하지만 ...
들리는 음악은 "Vino astazi Doamne!"
BenedictuS 남성 합창단
Via Doloro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