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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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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악셀로드 신부님과 박민서 신부님 지난 달 25일 청각장애와 시각장애의 3중고를 가지고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찾아오신 키릴 악셀로드 신부님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그런 장애를 가지신 분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고, 또 그런 분이 있었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3중고(三重苦)의 헬렌켈러 얘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고, 또 그의 스승이었던 설리번 여사에 대해서 감동을 받아 그런 교육자가 되기를 소망한 적이 있었지만 키릴 악셀로드 신부님과 같이 3중고를 가지신 사제를 KBS방송을 통해서 처음 뵈웠기 때문에 그 감동이 더 강하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청각장애자 박민서 신부님의 이야기는 그분이 사제로 서품될 때 알게 되었고, 박민서 신부님이 미국에서 좌절을 겪을 때 키릴 악셀로드 신부님으로부터 용기를 얻고 사제품에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습니다. 안일한 생활에 빠져 게으르게 살고 있는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장애인 신부 두 분의 행복한 ‘무언 대화’라는 주제의 신문 보도는 청각장애인 박민서 신부가 헬렌 켈러처럼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3중 장애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를 만나서 서로 손을 맞잡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얼굴에 퍼진 환한 미소, 그리고 박민서 신부의 눈에 비친 눈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그날 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육신이 멀쩡해도 죽겠다고 아우성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들을 수도, 말할 수도, 거기다 볼 수도 없다면 어떨까. 절망 외엔 그 어떤 것도 상상하기 어려워 보인다.
악셀로드에 비하면 박 신부의 처지는 사뭇 나아 보인다. 하지만 그가 겪는 장애의 고통조차 정상인들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2년 전 여름 장마철에 박 신부가 사는 사제관의 변압기가 터져 화재가 발생했다. 경보음이 울려 모두 피신했지만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잠자고 있었다. 119 소방대가 온 뒤에야 박 신부의 부재를 확인한 신부들이 그의 방 초인종을 애타게 눌렀지만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 구조됐지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하느님은 왜 이들에게 이런 장애를 주었을까. 장애인 자신들과 그 가족들은 이미 수 천 수 만 번 되뇌었을 물음이다. 이에 악셀로드 신부가 답한다.
“세상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이 있으니 고통이 있다. 만약 고통이 없다면 하느님도 필요 없을 것이다. 하느님이 보낸 예수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갔고, 그들과 고통을 함께했다.” 사소한 고통마저 회피하려고만 드는 정상인들과 달리 이미 고통을 삶으로, 하느님으로, 예수님으로 받아들인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제게 장애를 주신 뜻을 생각했지요.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도우라는 것임을 알았지요.”
그는 8개 언어로 수화를 하며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애인들도 세상에 할 일이 있다며 용기와 꿈을 심어주고 있다. 어린 시절 급우들의 놀림과 왕따로 고통을 겪은 박 신부도 1997년 미국 유학길에서 악셀로드 신부를 만나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장애는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란 예수의 말은 그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는 “고통을 회피해 내 한 몸 편할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는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했다.
이런 소통의 장애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어느 쪽일까. 아무런 장애가 없는 정상인이 아니었다. 유대인 부모의 외아들로 태어나 3살 때 선천성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아들의 장애를 인정할 수 없었던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결국 수화를 배우고 언어훈련을 해 아버지와 소통 장애를 없앤 쪽은 그였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유대인 랍비(성직자)의 꿈이 좌절된 그가 가톨릭 세례를 받아 사제가 되려 할 때 3년간이나 대화조차 거부한 어머니와도 불통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매주 한 번씩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보내며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이 유대교를 버린 것이 아님을 호소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축복 가운데 사제복을 입었다.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지금도 용서와 화해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악셀로드 신부는 “지금도 부모님 제삿날엔 유대교식으로 모자를 쓰고 히브리(유대)어로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그는 “하느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는 갈등을 치유하고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며 “신자만이 아니라 무신자도 도와주어야 그리스도교”라고 했다.
그는 청각뿐 아니라 시각까지 잃는 어셔증후군으로 인해 2000년 시각을 완전히 잃어버기고 큰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대화와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더욱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고통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을 돕게 한다.”고 했다.
암흑 속에서 빛을 여는 이들이 말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악셀로드 신부는 “사람들이 친교하며 그 안에서 평화를 나누는 것”이란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박 신부는 “관심”이라고 했다. 그는 “사제관 화재 뒤 동료 신부들이 초인종을 누르면 불빛이 반짝이는 조명을 달아주었다”며 “관심은 숨고 싶고 닫히는 마음을 열어줘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힘을 준다.”고 했다. 이상 한겨레 신문보도 인용
세상에는 많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도 눈도 나쁘고, 심장도 나쁘고, 팔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으니 장애자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애를 가진 분들은 그 장애가 불편하지만 행복과는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암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하느님께서는 그런 장애 속에서도 무엇인가 쓰실 것이 있어서 찾으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암울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 소명에서 사명감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감 때문에 순종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추수할 일꾼을 찾으시는 주님께 장애까지도 봉헌하는 키릴 악셀로드 신부님과 박민서 신부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느낍니다.
[詩:최민순신부/曲:김베드로/音:하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