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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업보를 받을 때
그 과보를 다르게 받는 두 번째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똑같은 업을 짓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는데요,
다르게 나타나는 두 번째 경우는
행위의 대상에 따라서
업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밥 한 끼를 공양합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에게 밥 한 끼를 사 주었느냐에 따라
과보가 달라집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일반인에게 올리는 공양은
당연히 그 과보가 다르게 익어가겠지요.
같은 공양이지만,
그 대상에 따라 다르게 과보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하늘의 천신이나 제석천 등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경전에는
‘악한 사람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평범한 사람 한 명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고,
평범한 사람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착한 사람 한 명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고,
착한 사람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수행자 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고,
수행자 1,000명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깨달은 자 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복을 지을지라도
‘누구’에게 그 복을 짓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적 두목에게 밥과 돈을 보시하였습니다.
도적은 그 돈을 도적질하는데 쓰고
나쁜 짓하는데 쓸 것입니다.
반대로 그 돈으로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게 되면
널리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전하는데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절의 보시함을 복전함이라 하는 이유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
복의 밭이 되기에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 같은 절이라 해도
수행과 전법을 잘 하는 도량, 스님에게 복을 짓는 것이
더 큰 복전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신도님들께서 절에 보시하실 때도
이처럼 잘 사유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한 절에 가면 대중공양이 있는데요,
청정하게 수행하는 대중들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것이
그만큼 큰 공덕이 되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찰에서는
대중공양의 공덕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차원입니다.
이처럼 좋은 업을 지을 대상을 만나려면
먼저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하겠지요.
좋은 스승, 좋은 도반이 있다면
행위의 대상도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절에서는
‘좋은 도반과 함께하라,
좋은 스승을 모셔라’ 하고 말합니다.
수많은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 『숫타니파타』에도
‘될 수 있으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벗을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더라도
매일 아파트 값이며, 투자이야기,
아이들 성적이야기만 매일 하는 친구보다도,
함께 마음공부를 하며 수행이야기를 나눌 도반,
성적에 과도한 욕심을 가지기보다
즐겁게 아이들과 놀아주고 따뜻한 심성을 길러주는 친구,
자녀에게 일류대학과 대기업을 요구하기보다
진정한 꿈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
그런 벗과의 만남이 잦아진다면
우리의 삶 또한 더욱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열등감을 키우는 모임이 아닌
진리의 모임, 수행하는 모임,
기도하는 모임에 참여하면
저절로 자신의 마음공부도 익어 가겠지요.
말 그대로 도반이 대신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지요.
나아가 아내와 남편이 이런 좋은 도반이 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이 되겠지요.
이처럼 같은 업이라도
다르게 익어가는 사실을 알아,
지혜롭게 잘 대상을 선택해 복을 짓고,
좋은 도반들로 주변을 가득 채워나간다면
삶 또한 더욱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 이미 지은 업을 받을 때
다르게 받게 되는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로,
과보는 받는 시간에 따라서 다르게 익습니다.
예를 들어 나쁜 업을 지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업이라는 것은
오래될수록 이자가 붙습니다.
악업을 지었으면 그 업을 빨리 받는 것이 좋습니다.
나쁜 업 일수록 빨리 받는 게 좋습니다.
지금 받으면 감기 한 번 오고 끝날 업인데,
10~20년 후에 받으면
고혈압이 오고, 암에 걸린다는 말입니다.
악업은 늦게 받으면 늦게 받을수록
눈덩이처럼 더욱 커집니다.
따라서 과보는 우주법계의 계산이
맞아 떨어졌을 때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주법계는
항상 우리를 돕는 관점에서
사랑과 자비로 모든 일을 벌입니다.
업에는 수미산을 넘을 만큼 악업도 있고 선업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법계는
우리가 과보를 언제 받을 것인지를
어떤 기준으로 정할까요?
우주법계는 사랑과 자비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업을 ‘이때 받아야지 가장 빨리 녹는다’ 싶을 때
과보를 보내줍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업을 받을 때가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 과보를 받아 조금 괴로울지 몰라도
그 업을 지금 받는 것이
가장 좋을 때인 것입니다.
몇 십 년 후, 다음 생애에 받으면 더욱 괴롭습니다.
악업에 대한 과보는
받으려고 해야지 자꾸 거부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삽니다.
로또 사는 게 뭡니까?
내가 그나마 지어놓은 복을
로또로 한방에 받겠다는 것입니다.
한방에 받으면 거기서 복은 모두 끝납니다.
로또 당첨이 된 후, 남들에게 베푸는 사람 빼고는
거의 망하기 쉽습니다.
복을 미리 당겨 받으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과보는
받는 시기에 따라서 다르게 익는데,
좋은 업일수록 천천히 받고
나쁜 업일수록 빨리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오늘 나에게 괴로운 일이 생겼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업을 녹이기에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것을 거부할 필요 없이 받아야 됩니다.
감기에 걸렸습니다.
충분히 앓고 나면 나을 수 있습니다.
약을 굳이 안 먹고 이겨낼 수 있다면
이겨내는 것이 좋습니다.
병이라는 과보를 그대로 받는 것이 좋다는 말이지요.
우리 몸에는 자연치유능력이 구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약으로 자꾸 톡톡 털어 먹음으로써 약화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
자연치유력은 더욱 약화되고
스스로가 이겨내기가 힘드니까
또 약을 찾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겨울에도 밖에서 잘도 뛰어 놀았고,
집도 외풍이 세서 아주 추웠지만
어지간해서는 감기가 잘 안 결렸습니다.
감기가 걸려도 금방 나았지요.
어지간한 병쯤은 약을 먹지 않아도
그저 받아들이고 나면 금방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게 병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병을 안 받아들이고,
대신에 손쉽게 약이나 병원을 통해서만 이겨내려 하니,
오히려 자연치유력은 약화되고,
더 약한 몸이 되어갑니다.
모든 괴로운 경계가 온다면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세요.
다음에 오면 더 크게 올 것이
지금 그나마 이 정도 크기로 온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법계의 결정을 신뢰하세요.
내가 나서서 나쁜 업에 대한 과보가 오면
막으려고 애쓰고,
좋은 업에 대한 과보가 오면
더 집착해서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때 그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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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좋은글 고맙고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