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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35 에 기록된 넉달의 힌트와 예비됨의 원리
A 넉달의 놀라운 힌트
지난 번 올린 <추수절기와 오순절 VS 나팔절>에 여러 좋은 반응이 있었는데, 특히 <김베드로 외침> 카페의 <불꽃>님이 놀라운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제 글을 읽기 하루전의 주일날 예배를 드리던 중 요한복음 4장 35절의 말씀이 들어 왔고, 순간 드는 생각이 모두 나팔절이 추수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넉달 앞에 있는 오순절의 이른 추수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날 제 글을 읽게 되어 우연일까? 라고 쓴 것이었습니다. 저는 답글을 통해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썼고, 그렇지 않아도 글을 올렸던 날의 이른 아침에 자고 있었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딴 방문에 녹크소리가 나 후닥닥 깨어 일어난 저는 전에도 몇차례 그런 적이 있었음으로, 어서 속히 글을 올리라는 재촉임을 즉각 알아 챘고, 서둘러 글을 올렸노라고 답했습니다. 얼마나 각 성도의 삶속에서 자상히 운행하시며 인도하시고 서로 합력하게 하시면서 조율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님이신지요?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한복음 4: 35)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교훈이 아니요 주시는 정확한 힌트일 수 있음을 잘 아는 저로서는 이 말씀을 놓고 더 깊이 묵상하던 중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씀 드렸듯이, 추수절기는 단 3 절기뿐으로서, 초실절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으로, 남은 추수절기는 오순절과 장막절뿐이고, 위의 말씀이 추수에 관한 내용임으로 나팔절에서 넉달전이 아니라, 추수절기인 장막절에서 넉달전을 의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오는 장막절이 테트라드의 마지막 Blood Moon 이 뜨는 9월 28일이고, 9월 28일의 넉달전이면 5월 28일이 됨을 알게 되었으며, <YeshuaisourLord>님이 올린 <다가오는 2015년 5월 28일 주목되는 행성 직렬 현상>의 경고와 일치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 글에 들어가 올려진 동영상들을 보면서 신빙성이 있고 충격적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리고 9월 28일로부터 유대력의 방식으로 넉달전이면, 5월 31일이 되는데, 이 날은 올바른 부활절(초실절)로부터 50일 Omer Counting 하여 산출되는 오순절인 것입니다. 과연 이 일련의 전개가 우연의 일치일까요?
<다가오는 2015년 5월 28일 주목되는 행성 직렬 현상>
http://cafe.daum.net/aspire7/9zAJ/7535
물론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앞일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과연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증거들이 나타날 때는 일단은 가장 진실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예비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겠지 하면서 무시하고 경히 여기어 예비되지 않는 미련한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됨의 원리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도움이 되도록 여기 소개해 드리기 원합니다.
B 예비됨의 원리
1) 성전의 원리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의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흔히 공생애를 시작하기전 으례히 통과해야 했던 의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 의식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고 메시아닉 랍비에 의해 전해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에게 성막을 짓도록 모세를 통해 명하시고 그 성막을 통해 백성을 만나 주셨으며, 그후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세워진 이래로는 성전을 통해 백성을 인도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에서 성전으로 이어져 오는 동안 하나님은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BC170 경부터 이 명을 어기고 제비를 뽑아 아무 지파나 제사장직을 수행했고, 로마의 지배하에서 제사장들은 더욱 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시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부터 돌로 지어진 성전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게 되었고, 제사장직분제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예수님께로 그 바톤이 넘겨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지켜지지 않고 있었고 타락했음으로 하나님은 아론의 제사장직분제를 우선 정통성 있게 회복하실 필요가 있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모두 아론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아들을 주시었고, 이름을 요한으로 하도록 명하셨으며,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출생케 하였습니다. 사가랴 집안에 요한이라는 이름이 사용된 적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그렇게 명하신 것은,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마지막으로 지켜진 당시의 대제사장 이름이 요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하여 세례요한을 통해 아론의 제사장직분제를 정통성 있게 회복하신 하나님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해 아론의 제사장직분제가 정식으로, 공식적으로 예수님께 이전되도록 의식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단강에서의 세례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성전이 거룩하게 유지되도록 요구하시는 것이며, 성전이 더럽혀질 때 결코 용납하지 않으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제1 성전과 예수님의 초림 당시 세워져 있던 제2 성전도 제사장과 백성이 타락하여 더럽혀지고,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며 돌아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몸된 성전일지라도 원수에게 내어주어 파괴되도록 허용하셨던 것이며, 그래서 그 거룩한 장소에 이슬람의 우상이 오늘날까지 버젓히 서있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성전된 예수님이 초림 때 오시어 사역을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신 이래로는 성도들 자신이 성전이 되었는데,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은 매우 심각한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말씀에서 <그 사람을 멸하리라> 하신 것은 제1 성전과 제2 성전과 같이 원수에게 내어 주겠다는 의미로서, 환란기의 적그리스도 치하에 남기겠다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은 바깥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이 육과 혼과 영으로 형성되어 있는 동일한 구조입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겠다는 성도치고 여전히 육으로 죄를 범하고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혼은 여전히 부정한 상태로 남아 있는 성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시기, 질투, 증오, 분냄, 탐욕, 편견, 아집, 열등의식, 우월의식, 우울증 등등 모든 감정으로 인한 부정함과 안목의 정욕 및 생각의 정욕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부정함이 이 혼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은 지성소에 해당하는 영역인데, 하나님 외에 그 어떠한 우상도 세워져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자아의 우상이 가장 허물기 어려운 우상인데, 자기가 온전히 죽어 존재하지 않는 경지까지 내려감으로써 자아의 우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는 목회나 사역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음으로 극히 조심하고 자신을 항상 냉철히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보혈로 매일 매일 성전을 정결케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거룩케 하며,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풍성한 열매가 항상 채워져서 예수님의 사랑과 빛으로 가득한 성전이 되도록 할 때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하시는 성전으로 예비되는 것입니다.
더럽혀졌던 성전이 성결케 복원되어 재봉헌되었던 절기가 수전절(Hanukkah)인데, 작년 수전절 중 근 2천년만에 성전시대 이래로 성전에서 사용되던 성결한 감람유가 최초로 생산되었고, 제3 성전에 사용하기 위한 비축식을 가질 때 그 감람유로 메노라에 점등식을 가졌는 바, 역사적인 기적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성도들이 자신의 몸된 성전을 성결하게 가꾸고, 성령의 기름으로 성전의 등불을 밝히는가 하면,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 수전절로 부터 4월 4일의 유월절, 2주 연속해 지킨 제2의 유월절, 그리고 오순절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몸된 성전이 성결하고도 빛나는 성전으로 예비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로 나아가시기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단하셨던 겟세마네는 <Oil Press>라는 의미로서, 실제로 감람유를 생산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이는 성도의 자아가 으깨지고, 갈아지고, 짜져서 순수하고도 성결한 감람유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오순절 때도 밀을 고운가루로 빻아 굽고 그 떡 두개를 하나님께 열납했는데, 고운가루로 빻아지는 것이 자아가 완전히 부서져 고운상태로 예비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2) 천국복음의 원리
예수님께서 초림 때 오시어 전한 복음은 천국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중에는 천국의 현상을 시범으로 보인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랬고, 물 위를 걸으신 기적도 그 좋은 예였습니다. 그러나 택한백성은 천국복음을 거부했고 배척했습니다. 교회는 천국복음을 받았으나 변질 시켰습니다. 예수 믿고 잘 되어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복을 누리다가 죽어서 천국가면 그만이다 라고 천국복음을 변질 시킨 것입니다. 그럼 천국복음은 무엇입니까?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과 연결되어, 천국에 상급을 쌓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천국복음입니다. 동방박사가 세 예물을 드린 것은 예수님이 행하실 세 임무를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선지자와 대제사장과 왕의 임무입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오시어 선지자의 임무를 완수하시었고, 현재 천국에서 대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계시며, 다시 오실 때는 왕으로 오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이래로 오늘날까지 대제사장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계십니다. 대제사장되시는 예수님은 성도들이 다 자고 있을 때에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각 성도들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내려다 보시며 중보하신다고 합니다. 성도는 제사장의 신분임으로, 당연히 천상에 계시는 대제사장을 섬기며,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대제사장을 보좌하고 그 지시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지시는 성령님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민감하게 깨어 있어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를 깨닫고 순종하며 따라가면서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휴거자의 예표는 에녹인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자였습니다. 에녹은 오순절에 출생했고, 오순절에 하늘로 들리워졌습니다. 따라서 신부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자라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능히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동행하는 신앙생활의 대표적인 예는 빌라델비아교회로서, 적은 능력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이기는 자(Overcomer)인 것입니다. 늘 민감하게 깨어 있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 8)
3) 회복사역의 원리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는 회복사역으로서, 죄가 들오기전의 에덴동산으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성도는 죄가 들어오기전의 하와의 상태로 회복되어 주님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a. 이제 곧 우리는 주님과 1:1 의 관계로 만나 얼굴을 마주 할 때가 오게 됩니다. 제가 양띠이고, 성도가 양이며, 예수님도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으로, 오래전부터 대관령의 양떼목장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는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이 소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4월 하순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양들을 방목하기에는 이른 때여서 목가적인 정경을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양들의 털을 깍는 날 마침 방문하게 되어 진귀한 장면을 목격 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긴 했지만, 일단 잡혀서 벌렁 뒤집혀지면 털이 다 깍이는 동안 일체 저항하지 않았는데,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기록한 이사야의 말씀이 상기되었습니다. 또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다 온순할 줄만 알았던 양들 중에도 제법 거친 녀석들이 있어서, 온순하게 풀을 받아 먹는 양들과는 달리 대들며 풀이 든 바구니를 나꿔채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양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다 성품이 달라 보였고, 그중에는 염소의 눈을 가진 포악한 녀석들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온유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양 한마리와 눈빛이 마주쳤고, 우리는 마치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교류를 나누면서 애정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때 저는 우리 각자가 주님과 1:1 의 얼굴로 서로 대면하게 되면서 주님과 눈을 마주보게 되는 때가 곧 오게 됨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은 그럴 수 있는 상태로 예비되셨는지요? 그렇게 예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얼굴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 18)
b.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을 나누기 원하심이었고, 에덴동산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관계는 그만 깨어졌고 파괴되었습니다. 따라서 죄가 들어오기전의 하와의 상태로 회복됨은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결합 할 때 사랑없이 학벌, 직업, 집안 등등 조건만 따져서 혼인한다면 결국 그 결혼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회개와 거룩함은 기본조건이며, 그 위에 사랑의 교제를 통해 깊은 사랑의 관계속으로 들어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날이었던 5월 1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춘천을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공지천유원지로 부터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까지 이어지는 긴긴 자전거 길을 걸었는데, 호반의 물가에서 자전거 길의 둑 위까지 3-4 미터의 경사진 기슭에 흰색, 붉은색, 핑크색 등의 온갖 철쭉꽃들이 뒤덮혀 장장 2킬로 이상 길게 이어진 꽃밭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동안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곤 했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의 절경이었습니다. 결국 주님이 감동을 주어 전혀 예기치 못한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저의 다큐작품들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꽃을 유난히 좋아해, 꽃의 장면을 많이 삽입하곤 합니다. 주님도 저의 취향을 아시고 그 절경을 감상하게 인도하신 것이었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c. 하나님의 회복사역이 완성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택한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주님이 오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신랑이 하는 일과 뜻을 잘 알아 함께 이루어 드리기 위해 내조하고 보필해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는 주님이 이루시는 회복사역 특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내조 보필해 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 현 상황에서 최소한 중보기도라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룻과 보아스의 스토리라고 할 때 단지 그들의 결합 때문만이 아니고, 그들이 혼인하게 됨으로써 기업을 무르게 되고, 룻이 나오미의 은혜를 갚아 모두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스토리이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상징인 에스더도 <네가 왕후의 위를 받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닐지 누가 아느냐> 라는 모르드개의 호소를 들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믿음으로 나아가 멸절의 위기에 놓였던 택한백성을 구해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은 택한백성이 수천년의 그 긴긴 세월동안 말씀을 결코 변개하지 않고 충실히 보존해 주었기 때문이며, 유대인 크리스찬들이 복음을 이방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 은혜를 갚는 차원에 앞서 빚을 갚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남은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를 쌓음으로써 신랑되시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휴거를 사모하는 교회의 종들 가운데, 올라가서 신분이 신부나 들러리로 갈라지게 되더라도 일단은 휴거되어 올라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로서는 이런 가르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말씀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저 자신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가지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는, 자신이 감히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어 미리 포기해 버리는 성도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주님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며 신부로 택함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다고 여겨 미리 포기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도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쫒지 아니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듯이, 방주안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자격이 없다고 발길로 뻥 차서 방주 밖으로 내어쫒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철저히 회개하여 성결한 상태로 예비되고, 세상과 자기에 속한 모든 것을 다 버리며 주님께 올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방주이심으로 그것이 방주안으로 들어간 상태인 것입니다. 지난 번 글에서 도자기의 예를 들었지만, 도자기에는 청자, 백자, 분청사기, 골화자기 등등 종류와 격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흠만 없으면 버려지지 않고 나름대로 다 귀히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핵심은 철저한 회개한 성결함으로 예비되어 방주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일단 방주안으로 들어가면 들리워지는 것이고, 올라가서 신분이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부가 되면 더 좋겠지만, 천국에서는 영광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다 만족하고 기쁨과 행복으로 넘치며 결코 시기나 질투나 경쟁심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대한 성숙한 신부로 예비되되, 자격이 부족하다고 여겨 미리 포기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부족하더라도 성결한 상태로 예비되어 일단 방주안으로 들어가시도록 권유합니다. 얼마의 기간이 남아 있을지 우리 인간은 알 수 없지만, 철저히 회개하고 성결한 상태로 예비되어 방주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짧은시간은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절대 지체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잘 예비되시어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추수절기의 원리와 오순절 VS 나팔절
http://cafe.daum.net/aspire7/9zAJ/7536
첫댓글 귀하신 말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예비하게 하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홍선교사님 끝까지 사명 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길 기도드리며.... 샬롬~~~~^^
홍의봉님. 신부란 거듭난 사람들이 주님의 몸 안으로 들어간 지체된 상태를 말합니다.
님이 거듭나지 않았다면 신부는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신부됨을 양보한다는 말은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나는 구원 못 받은 마귀의 자녀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나쁜 사람들과의 교제를 지속하면 계속 행위 구원의 누룩을 퍼뜨릴 뿐입니다. 신부 운동은 비성경적입니다. 거듭났으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맞습니다. 교회는 아울러 지는 곳이지 나누어 지는 곳이 아닙니다. 나누어졌던 것도 아울러 지는 곳입니다. (가지의 젖붙힘, 머리와 몸된 지체) 믿음과 회개로 말미암는 사랑과 용서 안에서 아울러 지는 곳입니다. 영원이 시작될 때 그 나라는 어느 정도 나누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영원에서 영원으로 나아 갈 때 점점 더 아울러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상상도 해봅니다. 새예루살렘의 문은 열려 있는 문이지 굳게 닫힌 문이 아닙니다. 문화적으로도 나누고 쪼개는 것 보다 아우르는 것이 더 고등합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도 부어주는 것이 은혜인데 은혜가 완성되는 그 날에는 더 큰 사랑을 위해 영원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KJV흠정역] 레위기
23:22 ¶ 너희가 너희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는 네 밭모퉁이를 수확하면서 깨끗이 거두지 말며 네 수확물의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하여 그것들을 남겨 둘지니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out님은 거듭난 사람들이 모두 신부되어 휴거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좀 더 연구와 간구해 보시면
거듭난 사람중에 거룩한 신부들만 구름재림=휴거 됩니다.
휴거 못된 남은 성도들은 7년대환란을 당하지요. 거룩한 신부단장은 POM 잡고 휴거됩니다. 샬롬! 마라나타! 아멘!
홍님의 귀한 말씀 처럼 이번 오순절에 오시면 넘 기쁘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해야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곡과 이스라엘 전쟁(겔38-39장, 시편83편)이 7년대환란의 서곡이고 휴거의 서곡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님이 항상 말씀했듯이 연구지 예언이 아니라는 말씀에 감사를 드리며 이것이 신부단장의 아름다운 모습임을 님을 통해 느낍니다. 모든 분들이 님과 같다면 참 좋을텐데요. 더 좋은 글 부탁하면서 샬롬! 마라나타! 아멘!
할 말은 많으나....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많은 글을 쓰긴 했지만...
다 못한 말들은 가슴속에 남겨둡니다.
모든 것을 가리울 수 있는 카페에는...
모든 계층이 다 뫃여있으니....
조심스럽습니다.
적은 수이지만 교회에서는 10-23년동안
대면하여 말해왔습니다...
삶을 보고 앏니다.
그래도 현 재적의 1/2 정도 입니다.
하물며...
자신의 탈란트를 다 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늘 깨어 준비하며 기다리는 모습은 주님 보시기에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역할은 달라도
주님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탄생"입니다.
비워지고 비워진 마음
낮아지고 낮아진 마음
가난하고 가난한 마음
참을 그리는 마음 하나 있어
진리로 기뻐하여
주님 한분으로 행복한 사람
주님 한분
그 은혜와 사랑으로 행복한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는 자이며
영원히 행복한 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기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벧전1:22-25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요14:16-19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렇게 드려 기뻐 받으신 주님 심장 부은 피로 탄생된
주님의 몸된 지체들은 주님의 심장을 공유하게 됩니다.
한 심장안에 흐르는 사랑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안에 있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요한1서 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이 것이
한 생명으로 탄생되어
그리스도 몸의 지체가 된 신부의 모습입니다.
주님 심장, 주님 생명, 주님 은혜, 주님 사랑을 공유하는 새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창세전에 아버지 가슴에 품었든 꿈은
주님을 머리로한 한 몸
어린양의 아내였습니다.
이제
그 신부를 탄생시키는
은혜가 말씀으로 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 만큼의 날들이 주어질지는 아버지의 권한이지만
지금은 말씀으로 인한 생명의 말씀이 결실되어지는 때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교회에 나타나고있는 팩트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흔들고 간 모습은 보입니다.
말씀 곧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께서 말씀으로 인쳐주시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있습니다.
받고 이루어진 사실을 간증합니다.
변화된 모습으로 간증합니다.
이기는 모습으로 간증합니다.
사랑하는 모습으로 간증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아멘!
귀한 말씀 감사드리며 항상 회개하며 자신을 정결케하며 주님만을 바라겠습니다
끝까지 충성스러운 선교사님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주안에서 힘을 내봅니다
미국쪽에서 심히 임박한 메시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카페에는 일일히 소개해 드리지 못하는데, 아래의 유투브 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의 응원 참 감사하였습니다. 곧 주님 앞에서 뵙겠습니다. 샬롬!
http://durl.me/8ubjp5
PLAY
너무나 소망이 되는 말씀이요 교제요
주님 안에서 지금은 육을 가졌기에 뵌적도없으나
속사람 영이 서로를 알아보고 기쁨의 춤을 예수님 안에서 추는것만같습니다
언제오시든 예수님이 내안의 주인이시니 그저 기쁘고 기쁠 따름이지요 ....
그주님 한마음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영원한 기쁨의 동반자요 친구이겠지요
네, 다윗왕이 허벅지가 다 보이도록 덩실 덩실 춤을 추었듯이, 이제 곧 주님 앞에서 그렇게 기쁨의 춤을 출 때가 되었습니다. 곧 뵙겠습니다. 샬롬!
아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도 사사로이 보내면 안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귀한 소식 감사합니다. 우리모두가 회개와 거룩함으로 거듭나며 주께로 걸어가는 오늘 오늘들이 모여 주님앞에 모이길 기원합니다. 선교사님의 인내와 귀한글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끝까지 힘내시고 승리하십시요
주님 사랑합니다. 흐흐흐
그러므로 주님오실날만 기대합니다.
아멘 입니다.
질문이 있는데요. 에녹이 오순절에 휴거되었다니 사실이 어디에 있나요?
google.com 에 들어가셔서 <Enoch and Shavout> 을 치시면, 수많은 사이트들이 뜹니다. 그중 골라서 읽으시면 됩니다. 샬롬!
에녹이 휴거되던 시대에는 오순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에녹이 오순절에 휴거되었다라는 힌트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녹이 오순절에 휴거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 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너무 지나친 호기심과 탐욕은 때론 죄의 통로가 되기도 하던데,
우리는 늘 깨어서 말씀에 착념하여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crystal sea google.com 에 들어가셔서 <Enoch and Pentecost(Shavout)>를 치시면, 179,000 article 들이 뜨는데, 다 그렇게 소개하고 있지요. Enoch 이 출생하고 들리워진 유대력의 날자가 후의 Shavout 과 들어 맞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디자인하셨다고 여겨집니다.
@euibhong 지난 대선 때 어느 한 사람이 트윗이나 댓글을 올리면,
나머지 공작원들이 그 튀윗을 리트윗하거나 댓글을 그대로 올려 댓글 확대 재생산했던 내용이 다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시끄러울까요?
불법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을 입맛에 맞게 조작해 올리면,
성경에 없는 환란전 휴거론에 꿰맞춰 이용하는 것은 악한 일, 불법이죠!
에녹이 오순절에 태어나고 들림받았다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거 없는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 성도가 할 일이 아니잖아요!
@crystal sea 직접 google 에 들어가셔서 Study 하시기를 바랍니다. 랍비들에 의해 오랜 세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며,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쓸 때 믿을만한 참고자료들을 사용하는 것은 상식이며, 제 글이 성경공부의 글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알지요. 성경공부의 글이면, 성경연구방에 올려야 하겠지요. 그렇게 179,000 의 아티클들이 다 동의하는 내용이면, 충분히 소개 할 근거가 된다고 봅니다. 마음의 문을 좀 여시지요.
@euibhong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것이 진리는 아닐 것인데, 성경적 권위 이상을 부여하면 안될 것입니다.
근거 없는 말, 확대 재생산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crystal sea 누가 성경적 권위 이상을 부여한다고 했나요? 단지 참조자료로 인용했다는 것이지요.
휴거를 사모하는 것이 주님의 뜻 입니다.. 사모하는 자는 정결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오늘 주님이 오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논쟁은 필요 없습니다.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세요..지금이 말세가 아니고,아직 주님 오실 때가 아니라는 자 들은
잠자는 자들 아닌가요??
휴거를 사모하는 것이야 성도로서 당연한 것이지요!
부활 휴거야 말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하셨던 최고의 복음이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그 부활휴거가 환란 전에 비밀리에 이루어진다는 것과,
환란 후에 모두가 다 알게 오는 것과는 천지차이가 있습니다.
환란 전에 있다면 좋을 일이지만,
환란 후에 있다면 환란기를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환란 후 휴거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는데
환란전 휴거를 전파하며 성경과 다른 말을 한다면 진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crystal sea 저는 환난전 휴거를 지지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 하시는 자녀들을 환란 가운데 두시지 않으실거라는
믿음 입니다.공의의 하나님, 하나님의 광대하심과,하나님의 오묘 하심에,우리 인간들은 흙덩이에 불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훗날 천국에서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실 하나님의 사랑을 고대 합니다.
@대추야자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이 독생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셔서 그리하셨겠어요?
님은 예수의 본을 따라 작은 예수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24:9)."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신부들을 원수된 적그리스도의 치하로 몰아 넣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위의 본문에서도 썼지만, 오직 하나님이 열납 받을만한 성결한 성전으로 예비되지 못한 성도들을 제1 성전이나 제2 성전과 같이 원수에게 내어 주는 것이지요. 그것도 환란 가운데서라도 성결케 예비되어 천국의 영광을 누리라는 사랑 때문이지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