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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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알파고(AlphaGo)
>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의
파고(波高)는
가히 경천동지(驚天動地)하고,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을 혼비백산(魂飛魄散)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과학의 물결은 해일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저
간단한 공장의 자동로봇이나 로봇수술쯤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던,
공상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현실로 바짝 다가온다.
미래를
점 쳐보면 등골이 오싹하고 으스스해진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적 대결을 한 인간지능 이세돌 9단의
변해가는 표정과 심정이 바로 우리의 미래의 모습 예고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직도
아날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디지털 옷조차 입기가 버거운 나에게 마치 알파고와 같은 우주전쟁의 전사들이 나에게 달려들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영국산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는
아마 ‘(Alpha+Go)’의
합성어 같다.
직역(直譯)하면
‘첫번째로
시작한다’
쯤
되려나?
알파((Alpha
. A)는
그리스 자모의 첫 글자인 ‘A'다.
또
끝 글자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오메가(Omega
. Ω)'이다.
천주교
부활성야 미사 때,
불
축복과 부활초에 불을 붙일 때,
사제는
“그리스도께서는/
시작이요
마침이요/
알파(A)요/
오메가(Ω)이시며~//”
라는
기도를 하며 부활초에다 ‘A'자와
’Ω)‘자를
붙인다.
‘과연
인공지능 알파고가 시작이라면 그 끝은 무엇일까?’
라고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과학의 산물이다.
그래서
인간이 다스릴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진화는 예측을 불허한다.
이번
세기적인 바둑 대결에서 보듯이…….
인공지능의
모든 수의 조합과 실행은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개벽(天地開闢)할
정도로…….
이미
바둑돌은 포석(布石)하기
시작했다.
구글의
행마(行馬)는
요리조리 재보고 이세돌을 맞상대로 선택했다.
이건
3차원의
세계를 넘어 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하는 4차원의
세계다.
이젠
호모사피엔스와 로보사피엔스의 동거시대에 접어든다.
신인류는
두 가지 지능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지능(HI)과
인공지능(AI)이다.
마치
컴퓨터의 메모리칩처럼…….
아주
간단한 인공지능인 스마트 폰에서 조차 남녀노소,
장소불문,
시간불문에
다들 빠져들고 매어 사는 데 말이다.
나는
애초에 그른 것 같다.
가장
복잡하고 경우의 수가 많다는 바둑을 못 두기 때문이다.
한때는
바둑을 배워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집을 못 짓는 것이다.
바둑은
적어도 두 집은 지어야 시작하는데 말이다.
바둑은
마치 수학의 입체기하(立體幾何)
같다고
생각을 한다.
바둑은
입체기하처럼 1,
2차원의
세계를 넘어 3
,4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하는 딸은 입체기하를 못하는 나보고 하는 말이 입체기하 제일 쉽다면서 은근히 깔본다.
하기야
나는 수학은 인수분해(因數分解)나
하는 대수(代數)나
좀 했지 젬병 수준이긴 하다.
문학으로
비유하면 아마 가장 함축적(含蓄的)이고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야 하는 시(詩)일
것 같다.
인간이
알파고 같은 고도의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일자리의
생성,
진화,
소멸일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기존의 많은 일자리가 대체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 한다.
병의
진단과 처방과 수술은 로봇이,
심지어
그림까지도…….
지금의
유망하던 직업들이 별 볼 일이 없는 직업이 된다고 한다.
미래의
유망한 직업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굴뚝청소부,
배관공
등이라 한다.
아마
목욕탕의 목욕관리사나 세신사(洗身士)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앞으로
전망 있는 일은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디테일(detail)하고
감성의 세밀한 직업이 아닐까?
의사로는
신경정신과 같은…….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에 인간이 예속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은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디지털
영역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아날로그적 일에 파고들어야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한다.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는 인간지능은 디테일한 감성,
감정의
세계일 것이다.
문학은
후자에 속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기야
인공지능의 모든 문학의 수를 조합하면 불후의 명작이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이 다스린다.
그러나
급기야는 인공지능 내비게이션 없이는 우리는 꼼짝달싹 못하는 지금의 경우의 수처럼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젠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어 신(神)의
영역까지 넘볼 것이라 한다.
식물의
광합성 작용까지 녹색알갱이,
물,
햇빛,
이산화탄소만으로
탄수화물을 줄줄이 쏟아낼지도 모른다.
가장
무서운 것을 인공지능을 매개로 하여 뒤에서 엄청난 악(惡)을
저지르는 도덕감정(道德感情)을
잃어버린 기계적인 인간들이 문제이다.
인공지능은
선악(善惡)을
판단하지 못하기 않은가.
혹시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인공지능신(人工知能神)
출현이
올지도 모르겠다.
결국
호모사피엔스와 로보사피엔스가 공존(共存)하고,
공생(共生)하는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에 적응을 해야 한다.
또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도덕적,
윤리적
문제의 가이드 라인도 문제다.
그나저나
바둑의 집도 못 짓고,
디지털
문명의 주변인(周邊人)으로
서성거리는 나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결국
결정적 장애를 갖고 햄릿형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간지능이냐,
인공지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주변인(周邊人)이고,
경계인(境界人)이고,
회색인(灰色人)으로
그 언저리에 서성거리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인공지능과 공생(共生)·공존(共存)해야
한다.
내가
아날로그적 인간임을 지키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디지털시계보다 아날로그시계가 좋고,
디지털적
문화보다 아날로그적 문화를 더 좋아 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글도
디지털적 글보다 아날로그적 글을 좋아한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라는
말을 썼다.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얻지만 낡은 현재는 파괴된다는 것이다.
보다
발전된 문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민행복지수(GNH)가
높은 나라가 부탄이듯이…….
아마존의
숲 문명은 새로운 문명 때문에 파괴된다.
우리기
그냥 마셔도 되던 물도 이젠 새로운 문명 덕에 정수기로 걸러 먹어야 한다.
마치
수명(壽命)
연장이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일 수도 있듯이 말이다.
모든
문명은 언제나 이해득실(利害得失)의
양면성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새로운 문명에 의한 창조적 파괴의 끝은 어디일까?
아마
인류의 멸망일 것이다.
그
멸망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길은 아날로그적 문명으로의 회귀(回歸)가
아닐까.
새로운
것만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인공지능은
인간 문명에 양면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인간생활를
바꾸오 놓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얻는 것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잊지 말자.
그러나
너무 겁 먹지 말고 호들갑을 떨지 말자.
그저
오늘도 어제와 같이 일상생활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도 떴고,
내일도
틀림없이 뜨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모든 경우의 수를 입력시킨 알파고들에게 국회의원으로 시키는 것은 어떨까?
이쯤에
인공지능을 당수(黨首)로
하는 알파고당(-黨)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첫댓글 감사합니다^^
@@@ 7080 세대의 두려움 @@@
7080 세대인 나는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손 안의 인공지능인 스마트 폰 조차 제 기능대로 못 쓰는데,
그렇지만 그 바람에 '알파고 키즈'들이 생겨 소프트 웨어쪽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생기는군요.
ㅎㅎ 걱정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GO 는 바둑 기 (棋 ) 자의 일본어 표기이지요.
혹여 노래방기기 때문에 가사 외우는 실력이 잃어 버렸다
네비 때문에 길을 기억하는 재주가 줄었다 라고 하는데..
"알파고 때문에" 라는 말이 탄생 될까봐 걱정입니다.
@@@ 'GO'가 '기' 이군오 @@@
무식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터인데 말입니다.
못 먹어도 'GO)'처럼 말입니다.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 안에 잇게 마련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2016년 버전 '나의 노래 부르기'는
고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입니다. 이젠 노래방 가서
실력 겨룰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