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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 상권
오(吳) 천축삼장(天竺三藏) 강승회(康僧會) 한역
1
수없는 과거 세상에 어떤 상인이 있었는데 이름을 살박(薩薄)이라 하였다.
그는 마침 다른 나라로 가서 물건을 팔아 재물을 얻어 가지고 부처님의 제자 집 근처에 머물렀다.
그 때 부처님의 제자 집에서는 큰 복을 짓기 위해 높은 자리를 만들고 여러 스님들이 설법하여 죄와 복을 강론하되 선과 악은 모두 몸과 말과 뜻의 행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라 하며, 또 4제(諦)와 덧없음과 괴로움과 공의 법을 설명하였다.
그 때 멀리서 온 그 상인도 거기 가서 기거하며 설법을 듣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믿고 즐거워하여 곧 5계를 받고, 윗자리의 우바새에게 아뢰어 법으로써 권하는 말을 청하였다.
윗자리의 우바새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몸과 말과 뜻을 단속하여 열 가지 선을 갖추어야 한다. 한 계율에는 다섯 신(神)이 있으므로 5계에는 스물다섯 신이 있어서, 현세에서는 그를 호위하여 횡액(橫厄)이 없고 후세에서는 스스로 하염없는 큰 도를 이루게 할 것이다.”
상인은 이 법을 듣고 거듭 한량없이 기뻐하였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나라에는 불법이 전연 없었으므로, 곧 교화를 펴고자 하였으나 그것을 받아들일 이가 없을까 걱정하여, 먼저 받은 법으로써 부모·형제·처자와 안팎 사람들을 교화하여 그들은 모두 그를 받들었다.
그 상인 사는 데서 천 리가 떨어진 곳에 나라가 있었다. 백성들은 많아 풍성하고 즐거우며, 좋은 보물도 풍족하였다.
그 두 나라는 서로 막히어 백 년 동안 통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나라들 중간 길에 야차가 있어서 사람만 보면 잡아먹으므로 지금까지 사람이 수없이 죽었다. 그래서 두 나라 사이는 끊어져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다.
상인은 생각하였다.
'나는 부처님 계율을 받는다. 경전의 말씀대로 한다면 스물다섯 신이 있다니 틀림없이 나를 도와줄 것이요, 또 들으니 저 귀신은 하나뿐이라 한다. 내가 가면 반드시 항복 받고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동료 상인 5백 인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내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능히 저 귀신을 항복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거기 가기만 한다면 가기도 전에 큰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상인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두 나라가 통하지 못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만일 저기까지 가기만 한다면 소득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옳다 하고 길을 따라 나아갔다. 도중에 이르러 그 귀신이 사람을 잡아먹은 자리를 보니 사람의 해골과 머리털이 땅에 가득히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살박은 생각하였다.
'귀신이 지금까지 사람을 잡아먹은 것을 지금 실지로 보겠구나. 내가 죽음으로써 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면하게 하여야 하겠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여기 계십시오. 나는 혼자 가겠소. 만일 내가 귀신에게 이기면 돌아와서 서로 만나겠지마는, 오지 않거든 해를 당한 줄로 아시오. 모두 물러나고 더 나아가지 마시오.”
그리하여 그는 혼자서 앞으로 몇 리를 나아가다가 귀신이 오는 것을 보고, 바른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뜻을 정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귀신은 와서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인가?”
살박은 대답하였다.
“나는 이 길을 지나가는 길잡이다.”
귀신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내 이름을 듣고도 이 길을 지나가려 하는가?”
“네가 여기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너와 싸우려고 온 것이다. 만일 네가 이기면 나를 잡아먹을 것이요, 내가 이기면 이 길로 모든 사람을 통과시켜 천하를 이익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먼저 손을 쓰겠는가?”
“내가 와서 청한 것이니 먼저 손을 써야 하리라.”
귀신은 좋다고 허락하였다.
살박이 먼저 오른손으로 그 배를 찔렀다. 손은 귀신의 배에 들어가 끄덕도 않고 빠지지 않았다.
왼손으로 다시 쳤다. 왼손도 들어갔다. 이리하여 두 다리와 머리가 모두 귀신 뱃속에 들어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야차는 게송으로 물었다.
두 손과 두 발과 또 머리와
그 다섯 가지로 나를 묶어놓지만
그저 앞으로 와서 죽음으로 나아가라.
날뛴들 무슨 소용 있으리.
살박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두 손과 두 발과 또 머리와
이 다섯 가지가 묶였더라도
금강처럼 마음을 굳세게 가졌거니
끝끝내 너에게 찢어지지 않으리.
야차가 게송으로 말했다.
나는 귀신 중의 왕
귀신이 되어 힘이 세기 때문에
지금까지 너희들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 수는 이루 다 셀 수 없나니
지금 너는 죽음이 가까이 있다.
무엇하러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가?
살박이 게송으로 말했다.
이 몸은 원래 덧없는 것이어니
나는 일찍 버리려 했다.
악마여, 너는 마침 나의 원을 풀었구나.
나는 곧 이 몸으로 보시하리라.
이것을 인연으로 바른 깨달음 얻어
반드시 위없는 지혜를 이루리라.
야차가 게송으로 말했다.
그 뜻이 묘한 마하살이여,
삼계 중에서 희유하구나.
끝내는 사람 건지는 스승이 되어
오래지 않아 온갖 덕을 갖추리니
원컨대 이 몸으로 스스로 귀의하여
머리 조아려 발 아래 예배하게 하소서.
이에 야차는 살박 앞으로 나아가 5계를 받고,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곧 예배하고 물러가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살박은 여러 상인들을 불러 저쪽 나라로 갔다.
이에 두 나라는 모두 5계와 십선이 귀신을 항복 받고 길을 틔운 줄 알고는 비로소 부처님 법이 한량없이 참된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모두 계율을 받들고 거룩한 세 분을 공경하여 나라가 태평하게 되고 죽어서는 하늘에 올라가 도를 얻었으니, 그것은 곧 5계를 받드는 현자(賢者)의 바른 믿음의 은혜로운 힘이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살박이 바로 내 몸이니, 보살이 행하는 계율바라밀은 구제하는 힘이 이와 같으니라.”
2
과거 수없는 겁 전에 어떤 공작왕(孔雀王)이 있었다.
그는 5백의 부인 공작을 데리고 서로 어울려 여러 산을 돌아다니다가, 빛깔이 아주 좋은 파랑새를 보고는 5백의 부인을 버리고 그 새를 쫓아갔다. 파랑새는 단 이슬과 맛있는 과실만 먹었다.
그 때 그 국왕의 부인이 병이 들었는데 꿈에 공작왕을 보고 깨어나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중한 상금으로 그것을 구하십시오.”
왕은 활꾼에게 명령하였다.
“누구나 공작왕을 잡아오는 자가 있으면 금 1백 근을 주고 처녀를 주어 아내로 삼게 하리라.”
활꾼들은 여러 산에 흩어져 있다가 어떤 공작이 파랑새를 쫓아다니는 것을 보고, 곧 곳곳마다 여러 나무에 꿀반죽을 발라 두었다. 공작은 날마다 파랑새를 위해 그 꿀반죽을 가져다 먹이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사냥꾼은 제 몸에 꿀반죽을 바르고 있었다. 공작이 꿀반죽을 취하러 왔을 때 사냥꾼은 그것을 잡았다. 그는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내가 온 산의 금을 줄 것이니 나를 놓아 주십시오.”
그 사냥꾼은 말하였다.
“왕이 내게 금과 아내를 주신다 하였으니 그것만으로 넉넉하다.”
그리하여 바로 가지고 가서 왕에게 바치자, 공작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은 부인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나를 잡아왔습니다. 원컨대 물을 가져다 주십시오. 주문을 외우고 그 물을 부인에게 주어 마시게 하고 목욕시키면 병이 나을 것입니다. 만일 낫지 않으면 그 때 가서 죽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곧 물을 주어 축원하게 한 뒤에, 그 물을 부인에게 주어 먹게 하자 병은 이내 나았다. 그리고 궁중 안팎의 온갖 병자도 모두 그 물을 마시고 다 나았다. 그리하여 여러 나라의 왕과 백성들로 그 물을 가지러 오는 이가 무수히 많았다.
공작은 왕에게 아뢰었다.
“차라리 끈으로 내 발을 나무에 매어 주십시오. 저 호수 위를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축원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와서 물을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왕은 좋다고 말하고 곧 나무에 매어 호수에 넣고 자유로이 축원하게 하였다. 그 물을 마시는 귀머거리와 장님은 곧 듣고 보며, 절름발이와 곱사등이는 모두 다리와 등을 펴게 되었다.
공작은 왕에게 아뢰었다.
“온 나라의 온갖 나쁜 병이 모두 낫게 되므로 백성들은 하늘신[天神]이나 다름없이 나를 공양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곳을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대왕은 내 발을 풀어 주십시오. 나는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호수에 들어갔다가 날이 저물면 이 들보 위에 와서 자겠습니다.”
왕은 곧 풀어 주게 하였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다가 공작은 들보 위에서 크게 웃었다.
왕은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웃느냐?”
공작은 대답하였다.
“나는 천하의 세 가지 어리석음을 비웃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어리석고, 둘째는 그 사냥꾼이 어리석으며, 셋째는 왕이 어리석습니다.
내가 5백의 아내와 놀기를 버리고 탐욕 때문에 파랑새를 따라갔다가 사냥꾼에게 잡혔으니, 이것이 나의 어리석음입니다.
다음에는 내가 온 산의 금을 주려 하여도 그 사냥꾼은 받지 않고 '왕이 내게 아내와 금을 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냥꾼의 어리석음입니다.
다음에는 왕이 신기로운 의왕(醫王)을 얻어 부인과 태자와 온 나라의 병자들이 모두 나아 단정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런 신기로운 의왕을 얻고도 굳이 잡지 않고 도리어 놓아 주었으니, 이것은 왕의 어리석음입니다.”
공작은 이렇게 말하고 날아가 버렸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공작왕은 바로 내 몸이요, 국왕은 너의 몸이며, 국왕 부인은 지금의 조달(調達)의 아내요, 그 때의 사냥꾼은 바로 저 조달이니라.”
3
옛날 어떤 국왕이 넓은 못에서 사냥하다가 매우 굶주리고 극히 피로하였다. 멀리 바라보니 수목이 우거진 속에 어떤 집이 있어서 곧 가 보았더니, 그 집에 한 여자가 있었다. 왕은 음식과 과실 따위를 청하여 모두 얻고는, 그 여자와 만나보기를 청하였다. 그 시자(侍者)는 말하였다.
“옷이 없어 맨 몸으로 있습니다.”
왕이 옷을 벗어 주었더니 저절로 불이 나서 옷을 태웠다. 이렇게 세 번이나 되풀이하다가 왕은 놀라 물었다.
“왜 그렇게 되는가?”
여자는 대답하였다.
“전생에 왕의 아내가 되었었는데, 왕이 사문과 범지에게 밥을 주고 또 옷을 바치려 하기에 나는 '밥만 주면 되었지 옷까지 줄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 죄를 받습니다. 만일 왕께서 나를 생각하신다면 옷을 지어 온 나라의 사문 도사에게 주시고 또 불경을 아시거든 여자를 축원해 주시면 이런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궁중으로 돌아가 옷을 지어 사문 도인을 찾았으나 마침내 찾지 못하였다.
그 때 그 나라에는 불경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사공[舍度父]에게 물으면 알 것이다' 생각하고 물었다. 사공이 말하였다.
“예전에 어떤 사람을 건네 주었는데, 그가 돈이 없어 오계(五戒)의 경(經) 한 권을 주기에 그것을 읽었을 뿐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너는 불경을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곧 사공에게 옷을 주어 축원하게 하고 또 그 여자로 하여금 한량없는 복을 얻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여자는 새 옷을 입고도 여전히 귀신 세계에 있었으나 목숨을 마치면 제1의 천상에 날 것이다.
4
옛날 바닷가에 어떤 국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사문을 만났다. 왕은 그를 붙들고, 밤에 경을 외우고 범패(梵唄)를 부르게 하고는 말하였다.
“노래를 매우 잘 부르는구나. 손님이 있거든 언제나 노래하라.”
그 때 다른 나라의 장사하는 어떤 우바색가(優婆塞賈)가 그 나라로 갔다.왕은 그 사문을 시켜, 나와서 노래하기를 청하였다. 우바색가는 그 깊은 경전의 설법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뛰면서 돌아갔다.
그 나라의 어떤 사람은 가서 천만 냥으로 그 사문을 사려 하였다. 그러나 3천만 냥이 되어서야 왕은 그에게 사문을 넘겨 주었다. 그 장사꾼은 사문에게 예배하고 말하였다.
“나는 3천만 냥으로 당신을 샀습니다.”
사문은 곧 손가락을 튀기고 공중에 솟아 올라 말하였다.
“그대가 스스로 돈을 내었지마는 나를 사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옛날 왕이 파장수였을 때 그대가 왕에게 와서 파를 사면서 석 냥이 모자라기에 내가 곧 그대에게 돈 석 냥을 빌려 주었는데, 그대는 그것을 갚지 않았다. 지금은 그 이자가 붙어 3천만 냥이 되었다. 그대는 본전 석 냥을 돌려줘라.”
장사꾼은 그것을 알고 허물을 뉘우치고는, 5계를 받고 우바새가 되었다.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많거나 적거나 빚은 지지도 말고 또 남에게 빌려주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5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어떤 어린아이는 그 형수와 한 집에서 살았다.
아이는 날마다 부처님께 나아가 경전과 계율을 배웠는데, 형수가 아무리 말려도 아이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 뒤에 형수는 아이를 잡아묶고 매로 때리면서 말하였다.
“부처님과 비구들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아이는 두려워 울면서 거룩한 삼보에 귀의하여 곧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위신의 힘을 입어, 그는 결박한 나무와 함께 날아가면서 자유자재로 벽을 드나들고 땅을 드나들었다.
형수는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허물을 뉘우쳤다.
아이는 형수를 위하여 선과 악의 행을 설명하고, 부처님께 함께 나아가 계율을 받았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전생의 내력을 이야기하셨다. 그 형수는 기뻐하여 마음이 열리고 때가 없어져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6
옛날 어떤 아라한이 사미를 데리고 산길을 걸어가는데, 사미는 날마다 도인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 왔다.
언덕을 지날 때에는 그 길이 위험하여 사미는 땅에 쓰러지면서 밥을 진흙에 엎질렀다.
사미는 더러워지지 않은 밥은 스승의 발우에 담고, 더러워진 밥은 물에 씻어서 자기가 먹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스승은 물었다.
“왜 너는 버려야 할 밥을 씻어서 먹느냐?”
사미는 대답하였다.
“걸식하러 갈 때에는 날이 맑았는데 돌아올 때에는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언덕 길에서 미끄러져 밥을 엎질렀습니다.”
스승은 잠자코 선정에 들어 그것은 용이 사미를 괴롭힌 것인 줄을 알고, 곧 일어나 언덕 위에 가서 지팡이로 언덕 밑을 두드리며 휘저었다.
용은 늙은 첨지로 변하여 와서 머리를 땅에 대었다. 사문은 물었다.
“너는 무슨 이유로 우리 사미를 못살게 구느냐?”
용은 대답하였다.
“감히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얼굴을 사랑할 뿐입니다.”
용은 이어 말하였다.
“무엇하러 날마다 그렇게 다닙니까?”
“밥을 빌러 다니는 것이다.”
“원컨대, 오늘부터 내 목숨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제 방에서 공양하십시오.”
사문은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 사미에게 말하였다.
“너는 가서 밥을 빌어 거기서 먹고 다시는 밥을 가지고 오지 말라.”
사미는 날마다 나가 밥을 빌어 거기서 먹었다.
그 뒤에 사미는 그 스승의 발우 안에서 두세 개의 밥알을 보았는데, 향기롭고 맛있기가 세상의 밥이 아니었다.
사미는 스승에게 물었다.
“천상에서 공양하십니까?”
스승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사미는 그 스승이 어디서 공양하는가를 엿보아 알고 곧 스승의 평상 밑에 들어가 평상 다리를 잡고 있었다. 스승은 선정에 들어 평상에 앉은 채로 용왕의 일곱 가지 보배로 된 궁전으로 날아갔다. 용왕과 부인과 여러 미녀들은 모두 나와 사문에게 예배하고 또 사미에게도 예배하였다.
스승은 비로소 깨닫고 사미를 불러내어 말하였다.
“너는 마음을 바로 하여 흔들리지 말라. 무엇 때문에 이 떳떳하지 않은 모양을 보고 마음을 더럽히겠느냐?”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사미에게 말하였다.
“그에게 비록 일곱 가지 보배로 된 궁전과 부인과 종들이 있지마는 아직 축생일 뿐이다. 그리고 너는 사미로서 아직 도는 얻지 못하였으나, 반드시 도리천에 나서 그보다 백 배나 훌륭하게 될 것이다. 부디 네 뜻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고 또 사미에게 말하였다.
“첫째 그것은 맛있는 음식이지마는 용이 입에 넣으면 그것은 곧 두꺼비로 변하므로 구역질이 나서 토하여도 도로 들어간다. 그래서 밥을 물리치고 다시 먹지 못한다.
둘째는, 그 여자들이 아름답지마는 부부의 예를 행하려 하면, 두 마리 뱀으로 변하여 서로 교접하게 된다.
셋째는, 그 용의 등에 거꾸로 된 비늘이 있는데 그 속에 모래가 생겨 그 고통은 가슴에까지 온다. 용에게는 이런 세 가지 고통이 있다. 너는 왜 욕심을 내느냐?”
그러나 사미는 듣지 않고 밤낮으로 그것을 생각하면서 먹지 않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그래서 그 혼은 용의 아들로 태어나 위신이 아주 사나웠고, 그 아비는 목숨을 마치고 축생을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났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도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와 국왕의 내밀한 것을 보이지 않아야 하느니라.”
7
옛날 어떤 국왕의 부인이 딸을 낳으니 부모는 그녀를 월녀(月女)라고 이름하였다. 월녀는 아름답기 견줄 데가 없었다.
왕은 딸에게 옷과 보물을 주었는데 딸은 매번 자연(自然)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딸의 나이 열여섯이 되자 아버지는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인데 너는 왜 저절로 그런 것이라 하느냐?”
그 뒤에 어떤 거지가 와서 구걸할 때에 그 아버지는 딸에게 말하였다.
“이 거지는 너의 남편이다.”
“좋습니다.”
월녀는 곧 승낙하고 자연히 곧 거지를 따라갔다. 거지는 두려워하여 감히 가지려 하지 않았다. 월녀는 말하였다.
“당신은 늘 걸식하지마는 배부른 적이 없었습니다. 왕이 당신에게 아내를 주었는데 당신은 왜 사양하십니까?”
그래서 둘이 함께 성을 나가, 낮에는 숨고 밤이면 걸어 큰 나라로 갔다.
그 때 그 나라의 왕이 죽었으나 태자가 없었다. 그들 부부는 성 밖에 앉아 있었다. 성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길 가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떤 사람인가, 성명은 무엇이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
그들은 '저절로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십여 일을 지냈다.
그 때 대신들은 범지 여덟 사람을 시켜 성문 밖에서 길 가는 사람이나 드나드는 사람의 상을 차례로 보게 하였는데, 오직 이들 부부의 상이 적당하였다.
그래서 온 나라 신하들은 그들을 맞이하여 왕을 삼았다. 그 왕의 부부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은 편안하고 여러 작은 왕들이 모두 와서 조회(朝會)하였다.
월녀의 부왕도 그 속에서 음식을 먹고 떠나려 하였다. 월녀는 특히 그 아버지를 만류해 두고, 일곱 가지 보배로 고기 기관(機關)을 만들었다. 고기 한 마리를 당기면 고기 1백 20마리가 나타나고 고기 한 마리를 밀면 문이 곧 열렸다. 월녀는 내려와 아버지에게 예배하고 아뢰었다.
“이제 이미 자연을 얻었습니다.”
아버지는 말하였다.
“부인은 자연을 따랐으나 신(臣)은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월녀는 전생에 그 거지와 부부가 되어 농사를 지을 때 남편은 아내를 시켜 밥을 가져오게 하였다. 남편은 멀리서, 그 부인이 어떤 사문을 언덕에서 만나 물가에서 쉬는데, 사문이 부인에게 밥을 청하자 부인은 곧 밥을 나누어 그 도인에게 주고 도인은 그것을 먹는 것을 보았다.
남편은 멀리서 그 두 사람을 보고 나쁜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지팡이를 들고 가보았다.
도인은 날아가고, 아내는 말하였다.
'성내지 마십시오. 당신 몫을 마음대로 처분하였습니다.'
남편은 '둘로 나누어 나와 같이 먹자'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남편은 나쁜 뜻을 가졌기 때문에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뒤에 도인을 만나 기뻐하면서 스스로 꾸짖고 뉘우쳤기 때문에 다같이 저렇게 복을 받는 것이다.”
8
옛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가시다가, 술에 취한 사람 셋을 만나셨다.
한 사람은 풀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한 사람은 바로 앉아 제 따귀를 때리면서 '죄송스럽게 계율을 범했습니다'라고 말했으며, 또 한 사람은 일어나 춤을 추면서 '내가 부처님 술을 먹지 않았는데 무엇을 두려워 하랴'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풀 속으로 도망친 사람은 미륵이 부처가 될 때에 아라한이 되어 해탈할 것이요, 바로 앉아 제 따귀를 친 사람은 천 부처를 지나 최후의 부처가 나왔을 때에 아라한이 되어 해탈할 것이며, 일어나 춤을 춘 사람은 끝내 제도되지 못할 것이다.”
9
옛날 어떤 사문이 밤낮으로 경전을 외웠다. 개 한 마리가 그 평상 밑에서 일심으로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밥 먹을 줄도 몰랐다.
이렇게 여러 해를 지내다가 목숨을 마치고 사람으로 태어나 사위국의 어떤 여자가 되었다. 자란 뒤에는 사문의 걸식하는 것을 보고, 밥을 가지고 달려가 주고는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다가 사문을 따라가 비구니가 되어 정진하여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10
옛날 유위불(維衛佛)이 세상에 계실 때, 그 나라의 큰성바지들은 제각기 한 번씩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였다. 그 때 어떤 큰성바지는 가난하여 부처님께 공양할 것이 없어 아뢰었다.
“스님들 중에 약을 쓰실 분이 있으면 제가 다 대겠습니다.”
그 때 어떤 비구가 병이 있었다. 그는 달콤한 과실 하나를 주었다. 비구는 그것을 먹고 병이 나아 편안하게 되었다.
그 큰성바지는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나서, 다른 여러 하늘보다 훌륭한 다섯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는 병이 없고, 둘째는 얼굴이 단정하며, 셋째는 수명이 길고, 넷째는 재물이 많으며, 다섯째는 지혜가 많았다.
이렇게 91겁 동안, 올라가서는 하늘이 되고 내려와서는 큰성바지 집에 태어나, 삼악도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 때에 와서는 네 성바지 집의 아들로 태어나 이름을 다보(多寶)라 하였고, 부처님을 뵙고 기뻐하여 사문이 되고 도를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대개 행(行)이 높은 한 사람의 사문에게 보시하는 것이 더럽고 탁한 유파야(踰波邪:잘못된 비난의 일종)의 온 나라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 보다 낫느니라.
11
옛날 어떤 부부는 다같이 5계를 가지면서 사문을 섬겼다.
불경을 모르는 어떤 새로 된 비구가 그 집 문앞에 가서 밥을 빌었다. 그들 부부는 그 도인을 청하여 앞에 앉아 공양을 올리고, 공양이 끝난 뒤에는 땅에 내려가 예배하고 말하였다.
“젊을 때부터 도인을 섬겼으나 아직 경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원컨대 이 미욱함을 열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비구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답이 없다가 말하였다.
“아아, 괴롭구나, 괴롭구나.”
그들 부부는 마음과 뜻이 함께 열리어 “세상은 참으로 괴롭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도의 자취를 얻었다.
그 비구도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또한 도의 자취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전생에 여러 번 삼형제가 되어 도를 배우기를 원하여 함께 수행하였기 때문에 다같이 도를 깨달았느니라.”
12
옛날 어떤 국왕이 사냥을 나갔다 돌아오다가, 탑을 돌면서 사문을 위해 예배하였다.
신하들이 그것을 보고 웃으니 왕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끓는 솥에 금이 있다면 그것을 손으로 집어낼 수 있겠는가?”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집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찬물을 거기에 쏟을 수 있겠는가?”
“쏟을 수 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가 왕으로서 하는 일에, 사냥하는 일은 끓는 솥과 같고, 향을 사르고 등을 켜며 탑을 도는 것은 찬물을 가져다 끓는 물에 쏟는 것과 같다.
대개 왕이 되면 선행과 악행이 있을 수 있는데, 어찌 다만 악행만 있고 선행은 없을 수 있겠는가?”
13
옛날 어떤 사문이 다른 나라로 갔다가, 밤이 되어 성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성 밖 풀 속에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 야차 귀신이 와서 붙들고 말하였다.
“너를 잡아먹겠다.”
사문은 말하였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왜 멀다고 하는가?”
“네가 나를 해치면 나는 도리천에 날 것이요, 너는 지옥에 들어갈 것이니 어찌 멀지 않은가?”
귀신은 곧 사과하고 예배하고 떠났다.
14
옛날 어떤 국왕이 사람을 시켜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말하였다.
“왕에게 죄송하다고 말해 주시오. 나는 마침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일곱 가지 보물을 간직하려 하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라면서 사람을 시켜 다시 불렀다.
그는 아뢰었다.
“지금 곧 보물을 구덩이에 내려놓고 있는 중이오.”
왕은 다시 불렀다.
그는 또 아뢰었다.
“지금 막 땅을 고르고 있는 참이오.”
왕은 물었다.
“그대는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보물을 간직하면서 왜 남에게 말하는가?”
친구는 말하였다.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하려는 것은, 땅을 파고 구덩이를 만드는 것과 같소. 국과 밥을 차려 놓는 것은 보물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는 것이며, 땅을 쓸고 물을 돌리고 경의 뜻을 밝히는 것은 땅을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이어 말하였다.
“이 보물은 왕이라도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구나. 그대가 먼저 남에게 알리지 마시오. 내가 먼저 알리겠소. 내게는 여러 창고의 보물이 있소.”
왕은 곧 창고를 열어 크게 보시하고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청정한 축원을 말씀하시어 그는 곧 도의 뜻을 내었다.
15
옛날 어떤 네 성(姓)이 부처님을 청해 공양하였다.
그 때 마침 한 우유 장수가 왔다. 그에게 밥을 먹이고 그로 하여금 재계(齋戒)를 가지고 경을 듣게 하였다. 우유 장수가 집에 돌아가자 그 부인은 말하였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느라고 아직 아침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억지로 그 남편에게 밥을 먹여 재계하려는 뜻을 깨뜨렸다.
그러나 그 남편은 일곱 번 천상에 나고 일곱 번 인간에 났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루만 재계를 가져도 60만 년의 양식이 있다. 그리고 다시 다섯 가지 복이 있다.
첫째는 병이 적고, 둘째는 몸이 편안하며, 셋째는 음욕이 적고, 넷째는 잠이 적으며, 다섯째는 천상에 나서 항상 전생 일을 아느니라.”
16
부처님과 비구들이 어떤 사람의 청을 받아 가셨다.
한 사문은 사미를 데리고 뒤에서 오다가, 어떤 음녀를 만나 끌려들어가 정을 통하고 청하는 집으로 갔다.
부처님께서 사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수미산 밑에 가서 단우물[甘泉]을 떠오너라.”
사미는 이미 도를 얻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합장하고는 발우를 가지고 날아갔다가 조금 뒤에 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스승은 부끄럽고 불안해 하면서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꾸짖고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그 여자는 전생에 그의 아내였는데, 아내를 만나자 죄가 다하여 곧 도를 얻게 된 것이다.
17
옛날 아육왕이 날마다 천 명의 아라한을 청하여 공양하였다.
어느 날 한 젊은 사문이 천 명의 아라한과 함께 궁전에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 아래 위로 궁전을 살펴보며, 또 그 정부인(正夫人)을 쉬지 않고 바라보고 있으므로 왕은 속으로 화를 내었다. 공양을 마치고 각기 돌아갈 때 왕은 장로 세 사람을 붙들어 놓고 물었다.
“그 젊은 사문은 어디서 왔는가, 성명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섬기는가, 그는 사문이 아니다. 왜 궁중에 들어와서는 정부인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면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는가?”
그들은 대답하였다.
“그 사문은 천축에서 왔습니다. 그의 스승 이름은 아무개며, 그의 성명은 아무개입니다. 그는 지혜롭고 경전에 통달하여, 일부러 와서 궁전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살펴본 것입니다. 또 위로 도리천의 즐거움을 바라본 것이요,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왕은 전생에 모래를 집어 부처님 발우에 넣었으므로 지금 이처럼 훌륭하시며, 또 지금은 날마다 천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므로 복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가 정부인을 바라본 것은, 부인은 6천 인 중에서 가장 뛰어나 단정하기 견줄 데 없지마는 지금부터 이레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들어갈 것이므로 세상이 덧없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본 것입니다.”
왕은 당황해 부인을 불러 말하였다.
“이 세 분 도인님께 귀의하시오.”
도인은 말하였다.
“왕이 비록 날마다 우리들 천 명을 공양하시지마는, 우리들 천 명으로는 부인의 마음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젊은 사문을 청하여 경을 설명하게 하시면 부인은 빨리 도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 도인을 청하여 도인은 돌아왔다.
왕은 부인과 함께 땅에 엎드려 그 발 아래 예배하고 귀의함으로써 무거운 죄를 가볍게 해 주기를 원하였다.
도인은 부인을 위하여 전생에 그가 겪고 본 것을 설명하고 요긴한 법을 나타내었다. 부인은 그 자리에서 너무 기뻐하여 온몸의 털이 일어서면서 곧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부인은 전생에 5백 세 동안 도인의 누이가 되어 누구라도 먼저 도를 얻으면 서로 제도해 주기를 맹세하였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전생의 인연이 없으면 마침내 그를 따라 깨달을 수 없고, 또 서로 만나 말할 수도 없으며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사람에게는 각기 본래의 스승이 있느니라.”
18
옛날 이리사(伊利沙)라는 어떤 사성(四姓)은 한없는 부자면서 아끼고 탐하여,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즐겨하지 않았다.
그 때 어떤 가난한 노인은 그와 가까이 살면서 날마다 마음대로 고기를 먹으며 손님이 끊어지지 않았다. 사성은 생각하였다.
'나는 수없는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저런 노인보다 못하다.'
그리하여 닭 한 마리를 잡고 한 되의 쌀밥을 지어 수레에 싣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음식을 내려 놓고 막 먹으려 하였다.
그 때 제석천왕은 개로 변하여 내려와 그의 눈치를 아래위로 살폈다.
그는 개에게 말하였다.
“만일 네가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지 못하면 나는 너에게 음식을 주지 않으리라.”
개는 곧 공중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는 '하늘은 무엇이 무섭기에 이런 일을 있게 하는가' 하고 다시 말하였다.
“네가 눈을 빼어 땅에 놓으면 나는 너에게 이 음식을 주리라.”
그러자 개의 두 눈이 빠져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제석천왕은 사성의 몸으로 변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수레를 타고 돌아오라.”
그리고 그의 문지기를 시켜 거짓으로 사성이라고 일컫는 사람이 있거든 때려서 내쫓으라고 하였다.
사성이 늦어서 돌아오자 문지기는 꾸짖으며 내쫓았다.
제석천왕은 그의 재물을 모두 가져다 크게 보시하고 사성은 집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재물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만 미쳐 버렸다.
제석천왕은 한 사람으로 변하여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리 걱정하는가?”
“내 재물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천왕은 말하였다.
“대개 사람은 재물이 많으면 걱정이 많은 법이다. 오가는 기약도 없이 갑자기 오는 것인데, 재물을 쌓아 두고 먹지도 않고 보시도 하지 않으면, 죽어
서는 아귀가 되어 언제나 의식이 모자랄 것이요, 혹 아귀를 벗어나 사람이 되더라도 하천한 데 떨어질 것이다. 너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부자면서 아끼고 탐하여 먹지도 않으니 또 무엇을 바라는가?”
천왕은 그를 위해 네 가지 진리와 괴로움과 공(空)과, 내 몸이 아니라는 법을 설명하였다.
그는 뜻이 풀려 기뻐하였고 천왕은 돌아갔다.
사성은 집에 돌아가서 전에 가졌던 마음을 뉘우치고 널리 보시하여 도의 자취를 얻었다.
19
옛날 어떤 큰성바지의 아들은 얼굴이 매우 단정하였다. 그는 금으로 여자상을 만들어 놓고 그 부모에게 말하였다.
“이런 여자가 있으면 장가들겠습니다.”
그 때 또 다른 나라에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그녀도 금으로 남자상을 만들어 놓고 부모에게 아뢰었다.
“이런 남자가 있으면 시집가겠습니다.”
부모들은 각기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 멀리서 서로 맞이하여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들었다.
그 때 그 나라 왕이 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을 비춰 보고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천하 사람의 얼굴로서 나와 같은 이가 있는가?”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들으니, 저 나라에 얼굴이 아름답기 견줄 데 없는 어떤 남자가 있다고 합니다.”
왕은 곧 사자를 보내어 그를 청하였다. 사자는 가서 말하였다.
“왕께서 당신을 보고자 합니다.”
그는 곧 수레를 타고 달려가다가 스스로 '왕이 나를 부르는 것은 내가 지혜 있고 사물에 통달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곧 책의 요술(要術)을 보려고 돌아갔다가 자기 아내가 어떤 손님과 간통하는 것을 보고 슬픈 생각에 기운이 맺혀 얼굴이 야위어지고 괴상하고 추하여졌다.
그 나라 신하는 실망하여 얼굴이 야윈 나그네를 보고 곧 마구간에 끌어 넣었다.
그는 밤에, 그 나라 왕의 정부인이 가만히 나와 마부와 정을 통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깨닫았다.
'왕의 부인도 저러하거늘, 하물며 내 아내이겠는가?'
그는 마음이 풀리고 얼굴빛이 회복되었다. 그래서 왕을 뵈었다. 왕은 물었다.
“왜 밖에서 사흘이나 묵었는가?”
그는 말하였다.
“신하의 마중을 받고 오다가 잊고 온 것이 있어서 그것을 가지러 집에 돌아갔습니다. 거기서 저의 아내가 어떤 손님과 간통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안색이 야위고 변하여 마구간에서 사흘을 묵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왕의 정부인이 가만히 나와 마부 아이와 간통하는 것을 보고 왕의 부인도 저러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하고 생각하자 마음이 풀리고 안색이 회복되었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 아내가 그러하거늘, 하물며 보통 여자이겠는가?”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산에 들어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되어, 여자와는 사귈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면서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여 모두 벽지불의 도를 얻었다.
20
옛날에 어떤 부인이 딸을 낳았는데 얼굴이 아름답기 견줄 데가 없었다.
나이 세 살이 되어 국왕은 데려다 보고 도인을 불러 상을 보이면서 물었다.
“뒷날 부인이 되겠는가?”
도인은 대답하였다.
“이 여자는 남편을 둘 것인데 왕은 그 다음이 될 것입니다.”
“내가 마땅히 감옥에 숨겨 두리라.”
왕은 곧 고니를 불러와 물었다.
“네 있는 곳이 어디냐?”
고니는 대답하였다.
“저는 큰 산 중턱에 있는데 나무가 우거져 어떤 사람이나 짐승도 다니지 못하며 밑에는 소용돌이가 쳐서 배가 다니지 못합니다.”
“이 딸을 너에게 맡긴다. 길러라.”
고니는 곧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날마다 왕에게 밥을 얻어다 그 아기에게 주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내는데 상류에 있는 어떤 마을이 홍수를 만나 떠내려가게 되어 큰 나무가 물을 따라 내려오다가 멈추었다. 그 나무를 얻어 안고 떠내려오던 하류에 한 남자가 소용돌이에 빠져 더 가지 못하다가 나무를 안은 채 소용돌이 물에서 벗어나 멈추었다. 그 산을 의지해 지내던 남자는 고니가 있는 나무에 올라가 그 여자와 정을 통하였는데, 여자는 그를 숨겨 두었다.
고니는 날마다 그 여자를 들고 달아 보았는데, 이미 아기를 밴 여자의 몸은 가볍지 않았다. 고니는 여자의 몸이 무거운 것을 보고 사방으로 찾아 그 남자를 발견하고는 들어다가 버리고 왕에게 가서 사실을 아뢰었다.
왕은 말하였다.
“그 도인은 참으로 상을 잘보는 사람이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짝이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짝은 만나면 서로 허락하는 것이니 짐승도 그와 같으니라.”
21
옛날에 어떤 국왕이 성급한 부인을 두고 있었다.
정부인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네 어미가 되어 난 뒤로는 아직 나라 안을 구경하지 못하였는데, 한번 나가 보고 싶다. 너는 왕에게 아뢰어라.”
이렇게 세 번이나 간청하므로 태자는 왕에게 아뢰었다. 왕도 곧 허락하였다. 태자는 스스로 수레 몰이가 되고 신하들을 길에 내어 부인을 맞이하고 예배하게 하였더니, 부인은 제 손으로 휘장을 열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보도록 하였다.
태자가 모친의 그러한 짓을 보고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 하여 돌아오려 하자 부인은 말하였다.
“내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태자는 '우리 어머니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다른 여자이겠는가' 하고 밤에 나라를 버리고 떠나 산중으로 들어가 유람하고 다녔다.
마침 길가에 나무가 있고 그 밑에 좋은 샘물이 있었다. 태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어떤 범지가 혼자 와서 물에 들어가 목욕하고 밥을 내어 먹고는 요술을 부려 항아리 한 개를 토해 내는데 그 항아리 속에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으슥한 곳에서 장난한 뒤에 범지는 누워 있었다.
여자도 요술을 부려 항아리 한 개를 토해 내는데, 항아리 속에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같이 누웠다가 여자는 항아리를 삼켜 버렸다.
조금 있다가 범지도 다시 일어나 여자를 항아리 속에 넣고 삼킨 뒤에 지팡이를 짚고 갔다.
태자는 나라로 돌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도인과 신하들을 청하여 꼭 붙들고 세 사람이 한 쪽에서 밥을 먹게 하소서.”
범지는 와서 말하였다.
“나는 혼자입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도인은 그 부인을 토해내어 같이 먹으시오.”
도인은 할 수 없이 부인을 토해 내었다. 태자는 다시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
“그대도 남자를 토해 내어 같이 먹으시오.”
이렇게 세 번 말하자 부인도 할 수 없이 남자를 토해 내어, 세 사람이 같이 밥을 먹고 떠났다.
왕이 태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
태자가 대답하였다.
“어머니가 나라 안을 구경하고자 하기에 제가 직접 수레를 몰았더니, 어머니가 손을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자는 음욕이 많구나' 생각하고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 핑계하고 돌아와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저 도인이 뱃속에 여자를 감추어 두었다가 간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자는 간음을 끊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원컨대 대왕은 궁중의 여자들을 놓아주어 자유로이 드나들게 하소서.”
왕은 곧 후궁(後宮)에 명령하여 가고 싶은 이는 마음대로 가라고 하였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천하에 믿지 못할 것은 여자니라.”
22
옛날에 어떤 두 사람이 스승을 따라 도를 배우고, 다같이 다른 나라로 갔다.
길에서 코끼리 발자국을 보고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것은 암코끼리로서 암새끼를 배었고 또 눈이 멀었을 것이요, 또 여기에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계집애를 배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마음으로 생각해서 안다. 만일 믿지 못하겠거든 앞으로 가서 보면 알 것이다.”
그들이 코끼리 있는 곳으로 가서 보니 과연 그 말과 같았고, 또 그 뒤에 코끼리와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
한 사람은 생각하였다.
'나는 저 사람과 같이 스승에게 배웠지마는 나만이 혼자 사물의 이치를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스승에게 돌아와 아뢰었다.
“우리 두 사람이 같이 가는데 이 사람은 코끼리 발자국을 보고 여러 가지 이치를 알았지마는 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원컨대 스승님은 거듭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스승은 그 한 사람을 불러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스승께서 늘 말씀하시던 것입니다. 나는 그 코끼리의 소변한 자리를 보고 그것이 암놈인 줄을 알았고, 오른쪽 발자국이 깊은 것을 보고는 그것이 새끼를 밴 줄을 알았으며, 길가의 오른쪽 풀이 쓰러지지 않은 것을 보고는 오른쪽 눈이 먼 것을 알았고, 코끼리가 멈춘 곳에 소변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여자인 줄을 알았으며 오른쪽 발자국이 깊은 것을 보고는 아이 밴 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나는 세밀히 관찰해 알았을 뿐입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대개 공부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여야 통달하는 것이다. 간략하고 성기면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그것은 스승의 허물이 아니니라.”
23
옛날에 어떤 부인이 금과 은을 많이 가졌는데,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는 금과 은과 옷 따위를 모두 가지고 함께 집을 떠났다. 급한 물가에 이르렀을 때 남자가 말하였다.
“너는 재물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먼저 건너갔다가 너를 맞이하러 오리라.”
남자는 그 걸음으로 달아나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은 혼자 물가에 앉아 있다가, 여우가 매를 잡았다 버리고 고기를 잡으려 하다가 고기도 못 잡고 매도 놓친 것을 보고, 그 여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그리 어리석은가. 둘을 잡으려다가 하나도 얻지 못하는구나.”
여우는 말하였다.
“내 어리석음은 오히려 낫다. 네 어리석음은 나보다 더하구나.”
24
옛날에 용왕의 딸이 놀러 나갔다가 소먹이는 사람에게 잡혀 두들겨 맞았다.
마침 국왕이 순행하러 나갔다가 그 용녀를 보고 곧 풀어 돌려 보냈다.
용왕이 딸에게 물었다.
“너는 왜 울었느냐?”
“억울하게도 국왕이 나를 때렸습니다.”
“왕은 늘 인자한데 왜 억울하게 남을 때리겠느냐?”
용왕은 가만히 뱀이 되어 왕의 평상 밑에 들어가 엿듣고 있었다. 왕은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늘 밖에 나갔다가 웬 소녀가 소먹이는 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고 곧 풀어주어 돌려 보내었소.”
이튿날 용왕은 사람으로 변하여 왕을 친견하고 말하였다.
“대왕은 큰 은혜가 있습니다. 내 딸이 어제 사람에게 맞을 때 왕께서 풀어 주셨습니다. 나는 용왕입니다. 대왕께서 얻고 싶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왕은 말하였다.
“보물은 내게 많다. 나는 온갖 짐승들의 말을 알아 듣기를 원한다.”
“이레 동안 재계하십시오.”
이레 째가 되어 용왕은 와서 말하였다.
“부디 남에게 알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왕이 부인과 같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암나비가 수나비에게 말하였다.
'저 밥을 가져다 주시오.'
수나비는 대답하였다.
'제각기 제가 가져다 먹읍시다.'
암나비는 말하였다.
'나는 배가 아픕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부인이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왕은 잠자코 있었다.
조금 뒤에 왕은 부인과 같이 앉아 있다가, 나비가 벽에서 서로 만나 싸우다가 다같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또 웃었다. 부인은 또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이렇게 세 번이나 묻자 왕은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없소.”
“만일 말하지 않으면 나는 죽어 버리겠습니다.”
“내가 밖에 나갔다 와서 말할 것이니 기다리시오.”
그리고 왕은 밖으로 나갔다.
용왕은 수백 마리 양으로 변하여 물을 건너는데, 새끼 밴 암양이 수컷을 부르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돌아와 나를 맞이하시오.”
수컷은 말하였다.
“나는 도저히 당신을 건네 줄 수 없소.”
“만일 나를 건네 주지 않으면 나는 죽어 버리겠습니다. 당신은 저 국왕이 그 부인 때문에 장차 죽을 것을 모르십니까?”
수컷은 말하였다.
“그 왕은 어리석어 부인 때문에 죽는 것이다. 네가 죽고 나면 내게는 암양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왕은 이 말을 듣고 나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저 양의 지혜보다 못한가 하고, 부인에게 돌아가자 부인은 또 말하였다.
“왕께서 말하지 않으시면 나는 죽어 버리겠습니다.”
“당신이 죽건 말건 좋도록 하오. 궁중에는 많은 여자가 있소. 당신은 쓸데 없소.”
스승은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남자는 여자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 몸을 죽이느니라.”
25
옛날에 어떤 나라가 있었다. 다섯 가지 곡식이 풍성하고 백성들은 편안하여 아무 병도 없었으며, 밤낮으로 풍류를 즐기면서 걱정이 없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들으니 천하에 화(禍)가 있다는데 어떤 종류인가?”
신하들은 말하였다.
“저희들도 보지 못했습니다.”
왕은 곧 한 신하를 시켜 이웃 나라에 가서 구해 오라 하였다.
그 때 천신(天神)은 어떤 사람으로 변하여 시중에서 그것을 팔고 있었다. 모양은 돼지와 같은데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신하는 그에게 물었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그는 대답하였다.
“이것 이름은 화모(禍母)입니다.”
“얼마에 팔겠는가?”
“천만 냥입니다.”
신하는 돌아보고 다시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먹는가?”
“날마다 바늘 한 되씩 먹습니다.”
신하는 돌아가 집집마다 바늘을 내게 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다니면서 바늘을 구하였다. 그들이 가는 고을은 요란스러워 그 해독은 구원할 수 없었다.
신하는 왕에게 아뢰었다.
“이 화모는 백성들을 어지럽히고 모두가 직업을 잃게 합니다. 죽여 버리고자 합니다.”
왕은 말하였다.
“매우 좋은 일이다.”
그리하여 성 밖에 끌어내어 창으로 찔렀으나 창이 들어가지 않고 칼로 베었으나 상하지 않고 몽둥이로 두드렸으나 죽지 않았다. 그래서 나무를 쌓고 불을 붙여 태웠다. 온몸이 불처럼 달아 곧 내닫는데, 시골을 지나가면 마을을 사르고 도시를 지나가면 도시를 사르며 성에 들어가면 성을 불살랐다. 이리하여 지나가는 나라마다 모두 요란하고 백성들은 굶주렸다.
그것은 즐거움을 싫어하여 화(禍)를 샀기 때문이다.
26
옛날 어떤 앵무새가 다른 산에 갔더니, 그 산의 온갖 새와 짐승들은 모두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해치지 않았다. 앵무는 생각하였다.
'비록 이렇게 하지만 오래지 않을 것이니 돌아가야 하겠다.'
앵무는 곧 거기서 떠났다.
그 뒤 몇 달이 지나 그 산에 불이 나서 사방이 모두 탔다. 앵무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곧 물에 들어가 날개로 물을 묻혀 공중에 날아 올라, 젖은 털로 물을 뿌려 그 큰 불을 끄려고 이와 같이 여러 번 갔다왔다 하였다.
천신이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너는 어찌 그리 어리석으냐? 천 리의 불이 어떻게 너의 두 날개의 물에 꺼지겠느냐?”
앵무는 말하였다.
“나도 꺼지지 않을 줄을 압니다. 내가 일찍이 이 산의 손님으로 있을 때, 이 산의 온갖 새와 짐승들은 모두 어질고 착해서 형제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천신은 그 뜻에 감동되어 곧 비를 내려 불을 껐다.
27
부처님께서 비구들과 함께 가시다가 길을 피해 풀 속으로 들어가셨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왜 길을 버리고 풀 속으로 들어가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앞에 도적이 있다. 뒤에 오는 범지 세 사람은 저 도적에게 잡힐 것이다.”
범지 세 사람은 뒤에서 오다가 길 가에 있는 금덩이를 보고, 모두 멈추어 그것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사람을 시켜 마을에 가서 밥을 사오라 하였다.
그 한 사람은 그 밥에 독약을 넣으면서 '두 사람을 죽이면 금을 나 혼자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두 사람도 나쁜 생각이 들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둘이서 죽여 버린 뒤, 독약이 든 그 밥을 먹고 모두 죽었다. 차례차례로 서로 죽임이 이와 같았다.
28
옛날 어떤 사성(四性)은 그 아내를 감추어 두고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 부인은 종을 시켜 땅굴을 파고 은방 아이[琢銀兒]와 정을 통하고 지냈다. 그 뒤에 남편이 알게 되자 부인은 말하였다.
“나는 평생 그런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억울한 말 마십시오.”
남편은 말하였다.
“당신을 데리고 신수(神樹)한테 갈 것이오.”
“좋습니다.”
재(齋)를 가진 지 이레 만에 재실(齋室)에 들어간 뒤, 그 아내는 가만히 은방 아이에게 말하였다.
“이 일을 장차 어떻게 하면 좋은가? 너는 거짓으로 미치광이가 되어 머리를 풀고 시장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잡아 당겨 끌어안으라.”
남편이 재를 마치고 그 아내를 데리고 나올 때 아내는 말하였다.
“나는 아직까지 시장 구경을 못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데리고 시장을 지나 가십시다.”
그 때 은방 아이는 그 아내를 안고 땅에 뒹굴고 아내는 그 남편을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왜 사람을 시켜 나를 끌어안게 하시오.”
남편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미치광이이다.”
부부는 함께 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내는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저는 평생에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 미치광이에게 안겼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살아나게 되고 남편은 말없이 부끄러워하였다.
여자의 간사함은 이와 같으니라.
29
옛날에 어떤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여러 여자들이 그를 전송하기 위해 누각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즐거워 할 때 마침 귤이 땅에 떨어졌다. 여러 여자들은 모두 내려다보면서 말하였다.
“누가 내려가서 저 귤을 집어와 같이 나누어 먹게 하겠는가?”
시집갈 여자가 곧 누각을 내려가 보니, 어떤 동자가 이미 귤을 집어 가지고 가려고 하였다.
여자는 동자에게 말하였다.
“그 귤을 이리 다오.”
동자는 말하였다.
“네가 시집갈 때 먼저 내게 오면 나는 이 귤을 돌려주겠지마는 그렇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
“그리하리라.”
동자는 귤을 주었다. 여자는 귤을 가지고 돌아 왔다. 여럿은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고 그 여자를 남편에게 보내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내게는 중요한 맹세가 있습니다. 먼저 저 동자를 가서 보고 돌아와 당신
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남편은 곧 놓아 주어 가게 하였다. 그 여자는 성을 나가다가 도적을 만나 그 도적에게 애걸하였다.
“내게는 중한 맹세가 있습니다. 놓아 주십시오.”
도적은 곧 놓아주어 가게 하였다. 그는 앞으로 가다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을 만났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맹세를 지키게 하여 주기를 빌었다. 귀신도 놓아 주어 가게 하였다.
그는 동자의 문에 이르렀다. 동자는 앉으라 하고도 관계는 하지 않고, 그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또 자기가 가진 금과 떡 한 덩이를 주어 돌려보내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그 남편과 도적과 귀신과 동자를 모두 착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하는 바는 다르다.
그 남편이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내를 가지기에 급하기 때문이요, 그 도적을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은 재물을 가지기에 급하기 때문이며, 그 귀신을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은 음식을 먹기에 급하기 때문이요, 그 동자를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은 겸손하고 청렴하기 때문이니라.”
30
옛날 어떤 부인이 늘 “나는 잃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아들이 어머니의 가락지를 훔쳐다 물 속에 던져 버리고 그 어머니에게 가서 물었다.
“금가락지를 어쨌습니까?”
어머니는 말하였다.
“나는 잃은 것이 없다.”
뒷날 어머니는 목련과 아나율과 대가섭을 청하여 공양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고기가 있어야 되겠기에 사람을 시장에 보내어 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와 다루다가, 고기 배 안에서 금가락지를 얻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잃은 것이 없다.”
아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저의 어머니는 무슨 인연으로 저 잃어버리지 않는 복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선인(仙人)이 산 북쪽에 살았는데 음산하고 추운 겨울이 되어 사람들은 모두 산 남쪽으로 옮겨갔다. 그에게는 늙은 홀어머니가 있고 또 빈궁하여 옮겨갈 수가 없었다. 그 어머니는 혼자 남아 있으면서 사람들의 그릇 따위를 잘 챙겨 간수해 두었다가 봄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그 물건 하나하나를 모두 그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홀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네 어머니로서 전생에 여러 사람들의 물건을 잘 보호하였기 때문에 그런 잃어버리지 않는 복을 얻은 것이다.”
31
옛날 어떤 사성(四姓) 집의 아들이 이월(離越:부처님의 제자 離婆多를 일컬음)을 위해 조그만 집을 지어 거처할 만하게 하고, 다시 그의 거니는 곳을 만들었다.
그 뒤에 그는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에 나서 보배로 된 집을 얻었는데 둘레가 4천 리로 거기서 마음대로 즐기었고, 또 기쁜 마음으로 이월의 집 지붕에 하늘 꽃을 흩었다.
그 하늘은 말하였다.
“나는 조그만 진흙집을 지었을 뿐인데 이렇게 훌륭한 집을 얻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생각하고 일부러 와서 꽃을 흩는 것이다.”
39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실 때, 어떤 사냥꾼이 활을 메고 십여 마리의 죽은 새를 지고 지나가다가, 부처님을 뵙고는 그 뜻이 정하고 날카로워 설법을 들어 마음으로 받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곧 그치시고 그를 위해 설법하시지 않으셨다.
사냥꾼은 물러가면서 말하였다.
“만일 내가 부처가 되면 남을 위해 두루 설법하여 조금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사람은 마음을 모아 설교를 듣고자 하였는데 왜 거절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바로 큰 보살로서 뜻을 매우 깊고 굳게 세웠다.
옛날 그는 국왕으로서 여러 미녀들에게 마음을 고루 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이 짐독(鴆毒)으로 왕을 죽였다.
그 왕은 사냥꾼 집에 태어나고, 여러 미녀들은 새[鳥]의 세계에 떨어져 지금 그 죄를 마치고, 뒷날에 도를 성취할 것이다. 만일 내가 그를 위해 설법한다면 그 뜻이 아라한의 도에 떨어질까 두려워 설법하지 않았을 뿐이니라.”
40
옛날 어느 절에 금으로 된 솥이 있어서 다섯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도인들에게 이바지하였다.
그 때 어떤 속인이 절에 들어가 그 금솥을 보고 훔쳐 가지려 하였으나 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거짓으로 사문이 되어 가사를 입고 중들 속에 들어가, 상좌(上座)들의 경전을 논하는 말 즉, '모든 죄와 복과 나고 죽음과 도를 깨닫는 데 있어서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그 갚음은 떠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 도적은 마음이 열리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고는 뜻을 모으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곧 도의 자취를 보았다. 그리고 그 인연을 생각하다가 '솥이 곧 내 스승이다' 하고 특히 먼저 솥에 예배하고 세 번 돈 뒤에 여러 사문들을 위하여 스스로 도를 설법하였다.
대개 깨달음에는 그 인연이 있는 것이니, 마음이 전일하면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
41
옛날 아나율(阿那律)이 이미 아라한이 되었을 때다.
여러 비구들 중에 얼굴이 아름다워 마치 여자 같은 어떤 비구가 혼자 수풀 속으로 갔다. 어떤 경박한 젊은이가 그것을 보고 여자라 생각하고는 삿된 성정이 움직여 관계하려 하였다. 그러다가 그것이 남자인 것을 알자 제 몸이 변하여 여자가 된 것을 보고 부끄럽고 당황하고 답답하여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산중을 헤매면서 여러 해를 지냈다.
그 집 처자들은 그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르자 이미 죽었다 생각하고 날마다 슬피 울고 있었다.
아나율이 걸식하면서 그 집에 이르렀다. 그 부인은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하소연하고 복의 힘으로 살아가게 해 줄 것을 빌었다.
아나율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다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생겨 산중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찾아 만나보았다. 그는 곧 잘못을 뉘우치면서 제 몸을 꾸짖었다. 그러자 도로 남자가 되어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 처자를 만나게 되었다.
대개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나쁜 마음으로 남을 대하지 않아야 하나니, 도리어 그 재앙을 받기 때문이다.
42
옛날 어떤 비구가 텅 비고 고요한 곳에서 나무 밑에 앉아 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가 비구가 밑에서 밥을 먹는 것을 보고 내려와서 그 곁에 머물렀다.
비구는 남은 밥을 그에게 주었다. 원숭이는 밥을 얻어 먹고는 곧 물을 길어 와서 비구의 손 씻는 물을 대주었다.
이렇게 하여 여러 달을 지냈다. 어느날 비구는 밥을 먹을 때 그만 원숭이를 잊고 밥을 남기지 않았다. 밥을 얻어 먹지 못한 원숭이는 매우 성을 내어 비구의 가사를 갖고 나무 위로 올라가 모두 찢어 버렸다. 비구는 분이 나서 이 짐승을 지팡이로 때리자 원숭이가 정통으로 맞아 땅에 떨어져 이내 죽었다.
여러 원숭이들이 몰려와 시끄러이 떠들면서 죽은 원숭이를 같이 메고 절로 갔다. 비구들은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알고 곧 여러 비구들을 모아 그 이유를 따져 물어 보았다. 이 비구는 그 사실을 자세히 설법하였다.
이에 법규를 세웠다.
'오늘부터 비구들이 밥을 먹을 때에는 다 먹지 말고 모두 그 일부를 덜어 남겨 두었다가 다른 동물들에게 주자.'
단월이 음식을 베푸는 것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43
옛날 어떤 자라가 큰 가뭄을 만나 호수와 숲이 모두 말랐기 때문에 먹이가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 때 큰 고니들이 그 곁에 모여 살았으므로 자라는 그들에게 살려 주기를 애걸하였다. 그래서 고니는 자라를 입에 물고 도시 위를 날아 지나갔다. 자라는 잠자코 있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물었다.
“어디로 가기에 이처럼 쉬지 않고 가는가?”
고니는 대답하려고 입을 벌렸다. 자라는 곧 땅에 떨어져 사람들이 잡아먹었다.
대개 사람이 어리석고 생각이 없어 말을 삼가지 않으면 그 비유가 이와 같으니라.
44
옛날 어떤 사문이 도인에게 머리를 깎았다. 머리를 깎고는 땅에 엎드려 그 발 아래 예배하고 말하였다.
“나로 하여금 후세에 마음이 정결하고 도인처럼 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도인은 말하였다.
“그대로 하여금 나보다 나은 지혜를 얻게 하리라.”
그 사람은 예배하고 떠났다.
그는 뒷날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에 났다가 천수가 다하고 내려와 큰성바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뒤에 사문이 되어 지혜로써 도의 자취를 보았다. 이것은 지극한 뜻의 결과니라.
45
옛날 어떤 범지가 왕에게 구걸하러 갔다. 왕은 마침 사냥을 나가려고 그 범지에게 말하였다.
“저 궁전 위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라.”
이내 사냥을 나가 짐승을 쫓아다니며 노느라고 신하들과 서로 헤어졌다. 왕은 산골짜기에 이르러 귀신을 만났다. 귀신이 잡아먹으려 할 때 왕은 그 귀신에게 말하였다.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아침에 성문에서 한 도인을 만났는데 그가 내게 구걸하였다. 그래서 나는 '궁전 위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잠깐 돌아가 그 도인에게 물건을 주고 다시 와서 너에게 먹히리라.”
귀신은 말하였다.
“지금 너를 먹고 싶은데 너는 과연 기꺼이 다시 돌아오겠는가?”
“착하다. 진실로 신용이 없는 자라면 내가 어떻게 그 도인을 생각하겠는가?”
귀신은 곧 왕을 놓아 주었다.
왕은 궁중으로 돌아가 그 도인에게 물건을 내어 주고 나라를 태자에게 맡기고는 귀신에게로 돌아왔다. 귀신은 왕이 오는 것을 보고 그 지성에 감동되어 예로써 사과하고 감히 먹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은 지극한 정성으로 목숨을 보전하고 나라를 건졌거늘, 하물며 5계를 받들어 지니는 현자(賢者)이겠느냐? 지극한 정성의 보시는 그 복이 한량없느니라.”
46
옛날 아육왕은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사문을 공양하되, 태자를 시켜 스스로 헤아려 공양거리를 마련하게 하였다. 태자는 은근히 화를 내었다.
'내가 왕이 될 때에는 이 도인들을 모두 죽여 버리리라.'
도인은 마음으로 태자의 성낸 것을 알고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세상에 오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태자는 놀라며 말하였다.
“도인은 그처럼 밝아 내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곧 생각을 돌렸다.
'내가 왕이 될 때에는 이 도인들을 아버지보다 더 낫게 공양하리라.'
마음이 온화해지면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도인은 말하였다.
“태자가 왕이 될 때에는 나는 이미 천상에 날 것입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거룩하십니다, 사문님.”
태자는 뒤에 국왕이 되어 5계와 10선으로 나라 정치를 행하여 마침내 나라가 번영하고 태평하였다.
47
옛날 어떤 사성(四姓)은 두 부인을 두었다. 큰 부인은 날마다 좋은 음식으로 사문에게 공양하므로 사문은 날마다 그 집으로 가서 공양을 받았다. 그러나 작은 부인은 그것을 매우 미워하였다.
이튿날 사문이 다시 왔을 때, 작은 부인이 곧 나가 발우를 받아 똥을 담고 밥을 그 위에 덮어 사문에게 주었다.
사문은 그것을 가지고 산중에 가서 막 먹으려 하다가 똥을 보고는 발우를 씻고 그 뒤로는 다시 가지 않았다.
그 뒤 작은 부인은 입안과 온몸에서 구린내가 나서 사람들이 그를 보면 모두 피해 달아났다.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똥구덩지옥[沸屎地獄]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수천만 년 동안 삼악도에 떠돌아다니다가 죄가 끝나고 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언제나 대변 먹기를 생각하다가 얻지 못하면 뱃속이 뒤틀리는 듯 아팠다.
그 뒤에 남의 부인이 되어서는 자주 밤에 일어나 대변을 훔쳐 먹었다. 남편은 이상히 여겨 나가 찾다가 그 부인이 대변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전생에 지은 죄의 결과니라.
사람에게는 성취하기 어려운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탑을 세우는 것이요, 둘째는 초제승사(招提僧舍)를 짓는 것이며, 셋째는 비구들에게 공양하는 것이요, 넷째는 집을 떠나 사문이 되는 것이니, 이 네 가지를 성취하면 그 복이 한량없다. 왜냐 하면 이 삼계는 잠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람으로 태어나 재산이 있으면서 인색하고 탐하는 뿌리를 뽑고 때를 따라 보시하면 그 공덕은 순수히 성취될 것이니, 이것도 또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누가 이 복을 아는가. 오직 부처님뿐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는 음식으로 서로 부르는 것이 친하는 길이 아니요, 오직 경법(經法)으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 친하는 길이다.
비구가 맛있는 음식으로 서로 보시함으로써 비구의 좋은 이름을 세상에 나타낸다면 후세에 아무 응함이 없고 또 부처님도 나쁜 평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외도의 수행자들이 비구를 보고 '부처님 제자들은 다만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서로 보시할 뿐이다. 누가 저렇게 가르쳤는가? 바로 부처님이다'라고 할 것이니, 그것은 부처님이 나쁜 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비구가 경전과 계율과 도와 법으로 서로 청하면 그것은 매우 친해지는 길이다. 왜냐 하면 외도의 수행자들이 비구를 보고 '저 부처님 제자는 다만 경전과 계율과 도와 법으로만 서로 보시하고, 다른 것은 서로 주지 않는다' 하면, 그 비구는 현세에서도 좋은 이름을 얻고 후세에서는 해탈을 얻으며, 부처님에게도 좋은 평이 있을 것이니 그들은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부처님께서 바로 저 비구들의 스승으로서 그 제자들에게 다만 경전의 도로써 가르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으로써 보시한 것이 아니요, 다만 좋은 말로써 서로 보시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는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란 이른바 한 벌 옷과 하루 한 끼를 구하고 항상 거닐면서 생각하며 밖으로 구하기를 생각하지 않고, 능히 쉬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또 비구는 만족할 줄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른바 경전과 계율을 알고 네 가지 선정과 네 가지 공정(空定)과 수다원과 사다함을 얻었다고 만족할 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만족하다고 생각하지 말지니라.”
48
어떤 비구가 걸식하다가 소변이 너무 급해 길에 서서 소변을 보았다. 길 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 비웃으면서 말하였다.
“부처님 제자들은 걸음걸이에도 법도가 있고 입는 옷에도 위의가 있는데, 저 비구는 서서 소변을 보는구나. 참으로 우습다.”
그 때 어떤 외도 니건(尼揵)의 종족은 사람들이 그 비구를 비웃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우리 니건 종족은 알몸으로 다니지마는 아무도 꾸짖는 사람이 없는데, 부처님 제자는 서서 소변한다 하여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그것은 우리들 스승에게는 법칙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웃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부처님 제자들의 법은 청정하고 예의가 있으며 이야기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곧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사문이 되어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비유하면, 사자는 온갖 짐승 중의 왕인 것처럼 비구는 사람 중의 스승이다. 그러므로 쓰는 말씨에도 법이 있어야 하고, 걸어다니고 앉고 일어나는 데에도 위의가 있어서 사람의 법칙이 되어야 하므로, 스스로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가벼이 여기고 스스로 비방하는 것은 선현(先賢)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49
제석천왕과 제1 사천왕은 보름날에 세 번 천하를 살펴본다. 누가 계율을 가지는가 하고. 그리하여 계율을 가지는 이를 보면 그 하늘들은 매우 기뻐한다.
마침 보름날이 되어 제석천왕은 정전(正殿)에 앉아 가만히 말하였다.
“만일 보름날에 세 가지를 재(齋)하는 사람이 천하에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내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곁에 있던 여러 하늘들은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다만 보름날에 세 가지를 재한다 하여 제석천왕과 같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아라한이 된 어떤 비구가 제석천왕의 마음 속 생각을 알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과연 저 제석천왕의 말과 같이 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제석천의 말은 믿을 수 없다. 그것은 진실한 말이 아니다. 왜냐 하면, 보름날에 세 가지 재에 정진하는 사람은 세상을 건너갈 수 있는데, 제석천을 해서 무엇하겠느냐? 이와 같이 그것은 진실한 말이 아니니 믿을 것이 못 된다. 누가 재의 복을 알겠는가? 오직 부처님뿐이니라.”
50
바닷속에 큰 용이 있었다. 그 용은 염부제에 비를 내리려 하다가, 염부제땅에는 그 물을 감당할 것이 없을까 두려워하여 '그 땅에는 내 물을 감당할 것이 없을 것이니, 도로 내 바다에 비를 내리자'고 생각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로운 제자들은 위엄과 덕이 매우 커서 외도의 96종들에게 법을 주려 하다가 그것을 감당할 이가 없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부처님 제자들이 서로서로 베풀어 주는 것은 마치 저 용이 도로 바다에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51
옛날에 나이 백 20이 되는 어떤 범지가 있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음심이 없어 장가도 들지 않고, 사람이 없는 깊은 산에 살면서 띠풀로 집을 삼고 쑥대로 자리를 삼으며 물과 과실로 음식을 삼아 어떤 재물도 쌓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국왕이 청하였으나 가지 않고 마음은 함이 없는 고요한 곳에 있어서, 산중에서 수천 년을 지내면서 날마다 짐승들과 서로 즐겼다.
거기에 네 마리 짐승이 있었다. 첫째는 여우요, 둘째는 원숭이며 셋째는 수달이요, 넷째는 토끼였다.
그 네 마리 짐승은 날마다 그 도인에게서 경전과 계율의 법을 들었다.
이렇게 오래 지나자 그 많던 과실도 모두 없어졌다. 그래서 도인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 하였다.
네 마리 짐승은 큰 시름에 빠져 서로 의논하였다.
“우리는 각기 가서 도인을 위하여 공양할 것을 구해 오자.”
원숭이는 다른 산으로 가서 맛있는 과실을 가져와 도인에게 바치면서 떠나지 말기를 마음으로 원하였다.
여우는 떠나 사람으로 변하여 한 포대 밥과 미숫가루를 구해 와서 도인에게 바쳤다.
그것은 한 달 양식은 되었다. 그리고 머무르기를 원하였다.
수달은 물에 들어가 큰 고기를 잡아 와서 도인에게 바쳤다. 그것도 한 달 양식은 되었다. 그리고 떠나지 말기를 원하였다.
토끼는 생각하였다.
'나는 무엇으로 저 도인을 공양할까?'
다시 생각하였다.
'나는 내 몸으로 공양하자.'
그리고 곧 가서 나무를 주워 와 불을 붙여 숯을 만들고는 도인에게 가서 말하였다.
“지금 나는 토끼가 되어 공양이 가장 박합니다. 이 불 속에 들어가 굽히어 내 몸으로 도인께 바칩니다.
하루 양식은 될 것입니다.”
토끼는 불 속에 몸을 던졌다.
도인은 토끼를 보고 그 인의(仁義)에 감동되고 또 그들을 가엾이 여겨 떠나지 않고 거기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범지는 저 제화갈(提和竭)부처님이요, 토끼는 내 몸이며, 원숭이는 저 사리불이요, 여우는 저 아난이며, 수달은 저 목건련이니라.”
52
옛날 도인 다섯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가 눈과 비를 만나 어떤 신사(神寺)에서 잤다. 그 집 안에는 귀신의 형상이 있는데, 그것은 그 나라 백성들과 관리들이 받들어 섬기는 것이었다.
그 중 네 사람이 말하였다.
“오늘 밤은 몹시 추운데 이 나무사람[木人]을 태워 불을 때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받들어 섬기는 것이니 부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부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 집에 있는 귀신들은 늘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들은 저희끼리 말하였다.
“저 한 사람을 잡아먹자. 저 한 사람은 우리를 두려워하는데, 저 네 사람은 몹시 굳세어 범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감히 부수지 못한다는 사람을 억누를 것이다.”
네 사람은 밤에 귀신의 말을 듣고 일어나 동무를 불러 깨우고 왜 이 상(像)을 부수어 불을 때지 않느냐고 하며 가져다 불을 때었다. 그러자 귀신은 달아났다.
대개 도를 배우는 사람은 항상 마음을 굳게 가지고 겁내거나 약하지 않아서 귀신으로 하여금 사람의 틈을 타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53
옛날 어떤 국왕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 사문이 되어 산중에서 고요히 생각하면서 띠풀로 집을 삼고 쑥대로 자리를 삼아 스스로 뜻을 얻었다 하여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 시원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도인이 물었다.
“그대는 시원하다고 하지마는 산중에서 혼자 앉아 도를 배우는데, 과연 무슨 즐거움이 있는가?”
사문은 말하였다.
“내가 왕으로 있을 때에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이웃 왕이 내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였고, 사람들이 내 재물을 빼앗을까 걱정하였으며, 이익을 탐하는 사람의 해침을 받을까 두려워하였고, 혹은 신하들이 내 재물을 탐하여 뜻밖에도 반역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익을 탐하는 사람의 해침을 받을 걱정이 없으니 시원하기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원하다고 말한 것이다.”
54
옛날 어떤 국왕이 도와 덕을 매우 좋아하여 항상 탑을 돌았다. 백 번 돌기를 마치기 전에 국경의 어느 왕이 쳐들어와서 그 나라를 빼앗으려 하였다.
가까운 신하가 매우 당황하여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적의 군사가 옵니다. 원컨대 대왕은 이 탑 돌기를 그치고 돌아가 생각을 가다듬어 큰 도적을 물리치소서.”
왕은 말하였다.
“그 군사들이 여기 오는 것을 허락해 주라. 나는 이대로 돌고 있으리니.”
왕은 계속해서 탑을 돌았다.
그래서 탑 돌기를 마치기 전에 적의 군사들은 흩어져 돌아갔다.
대개 사람이 한결같은 마음과 확정한 뜻을 가지면 어떤 재앙도 사라지는 것이다.
55
옛날 어떤 국왕이 부처님 계신 곳을 지날 때마다 부처님께 예배하되, 진흙탕이거나 빗길이거나 가리지 않았다. 곁의 신하들은 그것을 걱정하여 저희끼리 말하였다.
“왕의 마음씀은 어찌 그처럼 자질구레하고 성가신가?”
왕은 이 말을 듣고 궁중으로 돌아가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가서 짐승 머리 백 개와 사람 머리 하나를 구해 가지고 오너라.”
이윽고 신하들은 아뢰었다.
“모두 가져 왔습니다.”
왕은 그들을 시켜 그것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팔라 하였다. 그러나 짐승 머리는 모두 팔렸지마는 사람 머리는 팔리지 않았다.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짐승 머리 백 개는 다 팔렸지마는 이 사람 머리는 냄새 나고 문드러져 전연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왕은 곁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알지 못한다. 아까 내가 부처님 계신 곳을 지나다가 부처님께 예배하였을 때, 너희들은 '왕의 뜻은 자질구레하고 성가시다'고 말하였다. 내 머리를 알고 싶은가? 저 깨끗하지 못한, 죽은 사람 머리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복을 구하여 천상에 나야 하겠거늘, 너희들은 어리석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자질구레하다고 말하였다.”
곁의 신하들은 말하였다.
“진실로 대왕님 말씀과 같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였다.
“신(臣)들이 어리석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이 뒤에 대왕님이 다시 나가시면, 신들도 모두 말에서 내려 부처님께 예배하여 대왕님으로 법을 삼겠습니다.”
56
옛날 어떤 왕이 밖에 나갔다가 사문을 볼 때마다 곧 수레에서 내려 예배하였다. 그래서 도인은 말하였다.
“대왕은 그만두시오. 수레에서 내리시지 마시오.”
왕은 말하였다.
“나는 오르고 내리지 않습니다. 오르고 내리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은, 나는 지금 도인님께 예배함으로써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를 뿐이요, 내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57
옛날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도로 제 마사(摩娑)1)의 옛 뼈로 돌아오므로 곁의 사람이 물었다.
1) mma의 음역. 고기·짐승 고기·동물질의 음식물.
의 옛 뼈로 돌아오므로 곁의 사람이 물었다.
“너는 죽었는데 무엇하러 다시 그 마사의 마른 뼈로 돌아오는가?”
혼은 대답하였다.
“이것은 내 옛몸이다. 이 몸은 살생하지 않았고 도둑질하거나 간음하거나 이간하는 말·욕설·거짓말·꾸미는 말 하거나 질투하거나 성내거나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뒤에 천상에 나서 소원이 저절로 이루어져 즐겁기 끝이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
58
옛날 외국의 어떤 사문이 산중에서 길을 가는데, 어떤 귀신이 머리 없는 사람으로 변하여 사문 앞으로 왔다. 사문은 말하였다.
“머리 아플 걱정이 없구나. 눈으로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지마는 마침내 머리가 없으니, 얼마나 한결같이 유쾌하겠는가?”
귀신은 사라지더니, 다시 몸은 없고 손발만 있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사문은 말하였다.
“몸이 없으면 아프거나 가려움을 모르고 다섯 창자가 없으면 병을 모르리니, 얼마나 한결같이 유쾌하겠는가?”
귀신은 다시 손발이 없는 사람으로 변하여 한쪽 수레를 굴려 사문 앞으로 왔다. 도인은 말하였다.
“아주 유쾌하겠구나. 손과 발이 없으면 능히 가서 남의 재물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니, 얼마나 유쾌하겠는가?”
귀신은 말하였다.
“사문은 한결같은 마음을 지켜 움직이지 않는구나.”
귀신은 곧 얼굴이 단정한 남자로 변하여 도인의 발에 머리를 대고 말하였다.
“도인님은 그처럼 굳게 뜻을 가졌습니다. 지금 도인님의 공부하는 바는 오래지 않아 성취될 것입니다.”
귀신은 머리를 도인의 발에 대어 공경의 예를 올리고 떠났다.
59
옛날 어떤 사문이 산중 길을 가다가 속옷이 풀어져 땅에 떨어졌다. 그는 곧 좌우를 돌아보고 천천히 옷을 당겨 입었다.
산신(山神)이 나와 그에게 말하였다.
“여기는 어떤 사람의 옷도 땅에 떨어진 일이 없는데, 왜 기면서 옷을 입는가?”
그는 말하였다.
“산신이 지금 나를 보았고, 나도 또 위를 쳐다보면 해와 달과 하늘들이 나를 보는데, 도리에 있어서 몸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니라.”
60
옛날 어떤 여섯 사람이 짝이 되어 지옥에 함께 떨어져 한 솥에 같이 있으면서 각기 전생의 죄를 말하려 하였다.
첫째 사람은 '사(沙)'라고 말하고, 둘째 사람은 '나(那)', 셋째 사람은 '특(特)', 넷째 사람은 '섭(涉)', 다섯째 사람은 '고(姑)', 여섯째 사람은 '타라(
부처님께서 그것을 보고 웃으시자, 목건련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왜 웃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여섯 사람이 짝이 되어 지옥에 함께 떨어져 한 솥에 같이 있으면서, 각기 전생에 지은 죄를 말하려 하는데, 솥의 물이 펄펄 끓어 오르기 때문에 첫 마디 말을 내자 둘째 말이 나오기 전에 물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첫째 사람이 '사'라고 말한 것은 '세간의 60억 년이 지옥의 하루이니 언제 끝날까' 하는 뜻이요, 둘째 사람이 '나'라고 말한 것은 '언제 벗어날는지 기약이 없네'라는 뜻이며, 셋째 사람이 '특'이라고 말한 것은 '아아,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뜻인데, 제 마음을 조복 받지 못하고 다섯 집의 재물을 빼앗아 거룩한 세 분께 공양하였지마는 어리석고 탐하여 만족할 줄 몰랐으니 지금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넷째 사람이 '섭'이라고 말한 것은 '살림살이를 지성으로 하지 못하여 내 재산이 남에게 속해버렸으니 매우 고통스럽다'는 뜻이요, 다섯째 사람이 '고'라고 말한 것은 '누가 나를 보호하여 지옥에서 나갈 수 있으면, 다시는 계율을 범하지 않고 천상에 나서 즐기겠다'는 뜻이며, 여섯째 사람이 '타라'라고 말한 것은 '위의 이 일은 본래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니, 마치 수레를 잘 몰지 못하여 바른 길을 잃고 삿된 길로 들어가 수레 굴대를 부러뜨린 것과 같으니, 후회하여도 어쩔수없다'는 뜻이니라.”
[이하 『아라한의 비유』에서 일곱 수(首)를 뽑아 적는다.]
61
옛날 부처님께서 사리불을 보내어, 서쪽에 이르러 장엄한 유위국(維衛國)에서, 그 부처님께 세 가지 일을 물으라고 하셨다. 즉 '부처님 몸이 편안한가, 한결같이 설법하시는가, 받드는 이가 불어가는가?'라고.
사리불은 부처님의 위엄과 신력을 받들고 그 나라로 가서 그와 같이 전하였다.
그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모두 편안하다.”
그리고 그 부처님께서 아유월치(阿惟越致) 바퀴를 굴려 이 칠주 보살(七住菩薩)을 위해 설법하셨다.
사리불은 이 설법을 듣고 그 나라에서 돌아오는데, 얼굴빛은 빛나고 걸음걸이는 보통 때보다 훌륭하였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저기 갔다 오더니, 어찌하여 걸음걸이가 그처럼 편하고 즐거우냐?”
사리불은 아뢰었다.
“마치 굶주리고 떨던 가난한 사람이 수미산 같은 큰 보물을 얻은 것 같은데,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은 일이다.”
사리불은 다시 아뢰었다.
“저는 거기 가서 그 부처님으로부터 아유월치의 매우 깊은 법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좋구나. 너의 말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큰 장자나 거사는 순수한 자마금(紫磨金)과 마니주(摩尼珠)를 보배로 삼는데, 그 집에 있는 구리와 쇠와 아연과 주석을 모두 밖으로 쓸어내어 쓰레기 통에 버렸을 때, 어떤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기뻐하면서 '나는 가라월(迦羅越:거사)의 보배를 많이 얻었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것이 바로 장자의 진묘한 보배이겠느냐?”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들어 얻은 것도, 저 가난한 이의 그것과 같다. 저 부처의 말한 것은 다만 십주(十住)와 또 그 안에 있는 청정한 것만 칭찬한 것이니, 네가 들은 것은 말할 것도 못 되느니라.”
사리불은 곧 실망하고 근심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얻었다는 보배는 바로 아연이나 주석이었구나.”
사리불이 이렇게 말할 때, 한량없는 수의 사람들은 다 위없이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고, 또 한량없는 수의 사람들은 모두 아유안주(阿惟顔住)를 얻게 되었다.
62
옛날 마하목건련이 나무 밑에 앉아 자기 도안(道眼)을 스스로 시험하여 8천 부처 세계를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보시는 것도 나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자(師子)걸음으로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성문(聲聞)의 부류로서 지금 왜 사자걸음을 걷느냐?”
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스스로 여덟 방면의 8천 부처 세계를 보았습니다. 아마 부처님께서 보시는 것도 저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자걸음을 걸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다. 목련이여, 본 바가 그처럼 넓고 크구나.”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치 등불을 마니(摩尼)에 비교하는 것 같아서 그 거리가 너무 멀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 눈은 시방(十方)에 각기 열 개 항하(恒河)의 모래알 같은 세계를 본다. 한 개 모래알은 하나의 부처 세계인데 그 가운데 있는 것을 다 본다.
도솔천에서 내려와 어머니 뱃 속으로 들어가는 이, 거기서 태어나는 이, 집을 떠나 도를 배우는 이, 악마를 항복 받는 이, 제석천과 범천이 와서 권하는 이, 법륜을 굴려 모든 법을 설명하는 이, 열반에 들려고 하는 이, 열반에 든 뒤에 사리로 불사르는 이 등 이러한 것이 이루 다 셀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눈으로 그런 것들을 모두 다 보느니라.”
부처님은 두 눈썹 사이의 호상(毫相)에서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환히 비추시고, 몸 안의 광명을 놓아서는 팔방을 두루 비추시며, 발 밑의 광명을 놓아서 하방(下方)의 백천 세계를 모두 비추시니, 그 때마다 시방의 모든 세계는 여러 번 진동하되 그 큰 광명은 아무 걸림이 없었다.
그 때 목건련은 부처님 앞에서 한량없는 수천의 항하 모래알 같은 끝없는 세계를 보았는데,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아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10항하의 모래알 같은 세계가 지금 부처님께서 나타내신 그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믿지 않을까 하여 조금 말하였을 뿐이다. 지금 내가 이와 같이 나타낸 바는 이루 다 셀 수 없느니라.”
마하목건련은 이 말을 듣고 마치 큰산이 무너지듯 땅에 쓰러져 소리를 높여 크게 울면서 말하였다.
“저는 부처님의 공덕이 이러하여 차라리 저의 몸을 큰 지옥에 들어가게 할 망정 우협견자(右脇見者)는 백 겁을 지나더라도 아라한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여 알겠습니다.”
다시 대중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저를 신통 제일이라고 말씀하시마는 그것은 아직 말할 것도 못 됩니다. 제가 지은 공덕도 이처럼 미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얻지 못한 것이겠습니까? 마음을 내어 공부하려면 마땅히 부처님과 같이 되기를 뜻할 것이요, 부디 저를 본받아 몹쓸 종자가 되지 마십시오.”
거기 모인 일체 용과 귀신과 백성들과 한량없는 수천 무리들은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뜻을 내었고, 큰 도의 마음을 낸 이는 곧 아유월치를 얻었으며, 이미 불퇴전을 얻은 이는 모두 아유안주(阿惟顔住)를 얻게 되었다.
63
옛날 발저(拔抵)라는 용왕이 있었다. 위엄과 신력이 넓고 커서 감동시키는 바가 많았으나 성질이 조급하여 사나운 일을 많이 행하였다.
그래서 많은 용들을 모아 법답지 않은 일을 많이 행하되 바람과 비와 우레와 우박으로 사람과 짐승과 곤충들을 죽여 그 시체가 수없이 쌓였다.
아라한 만(萬) 사람이 모여 서로 의논하였다.
“만일 한 사람을 죽이면 한 겁 동안 지옥에 떨어져 백 번 갚아도 죽을 죄는 오히려 끝나지 않는다는데, 지금 저 용은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중생을 죽인다. 저렇게 하기를 쉬지 않으면 더욱 제도하기 어려울 것이니, 우리 같이 가서 충고하여 그런 짓을 그치도록 하자.”
그 때 부처님은 그것을 아시고 찬탄하셨다.
“너희들이 집을 나와 함이 없는 도를 구하는 것은 모든 재앙을 만난 목숨을 구제하려는 것인데 죄가 있는 이를 건지는 것은 당연히 매우 유쾌할 것이니, 그것이 곧 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 때 아라한들은 저희끼리 말하였다.
“우리 만 사람이 한꺼번에 갈 것이 없다.”
그래서 한 사람씩 각각 갔으나 곧 그의 해침을 받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혼자 가서는 저 용을 꺾고 항복 받아 허물을 고치고 선으로 나아가도록 교화할 수 없다.
우리 만 사람의 힘을 모아 한꺼번에 가자.”
그리하여 모두 모아 다시 갔다.
용은 바람과 비와 우레와 우박을 내렸다. 그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갈 바를 몰랐다가 도리어 욕을 당하여 항복하고 돌아왔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용이 그곳의 사람과 짐승들을 죽여, 그 죄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우박 등을 퍼부어 만 명의 아라한을 떨게 하고, 그들의 옷에 비를 내려 마치 물에 빠진 사람 같은데, 그 죄는 크고 깊어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기사굴산에서 일만 보살과 일만 아라한과 함께 계셨는데, 그 산을 떠나 용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용은 곧 화를 내어 사나운 비와 큰 우레와 우박과 벽력을 일으켜, 우박 하나를 떨어뜨리면 사방 40발이 부서지고, 만일 땅에 떨어지면 땅 속으로 넉 자나 들어갔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을 해치려 하였다.
마침 그 때 우박이 내려오다가 공중에 멈추어 하늘 꽃으로 변하였고, 부처님이 광명을 놓아 여러 곳을 두루 비추셨다. 산중에 있던 여러 사냥꾼들은 구름과 비를 만나 어둠 속에서 헤매면서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다가 만 명 아라한들과 합해 모두 광명을 찾아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용은 다시 벼락을 치면서 사방 40발 되는 큰 돌을 떨어뜨렸다. 그 돌이 땅에 떨어지면 땅 속으로 40발이나 들어갔다. 그 돌은 부처님 위에서 앞의 꽃과 합하여 꽃 일산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작은 용들의 우박과 돌은 사방으로 한 발로서, 모두 앞의 것과 같이 되었다.
그 아라한들은 용의 재변을 보고 모두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을 의지하였다.
그리고 용은 구름 속에서 우박과 돌이 꽃 일산으로 변하여 허공에 달려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내 몸을 굳게 서리어 결박하리라.'
이에 용은 몸을 40발로 만들어 부처님과 스님들 위에 떨어지려 하였다. 그리하여 곧 스스로 쳤으나 맞히지 못하고 땅에 쓰러져 한참 동안 온몸을 앓다가 머리를 들고 눈을 뜨고 부처님을 우러러보았다. 그리고 '내 계획은 하나도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아마 이 분은 거룩하고 묘한 위없는 신인(神人)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였다. 그리고 작은 용들도 제 몸으로 쳤으나 부처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때 용왕은 이내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나고, 여러 작은 용들도 모두 목숨을 마치고 하늘사내가 되어 내려와 부처님 곁에 섰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하늘들의 내력을 아느냐?”
아난은 대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아까 네가 말하기를, '나쁜 생각을 일으킨 그 용들의 큰 죄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쳐서 땅에 떨어져 있으면서 한 번 선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의 거룩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는 하늘이 되었으니, 이 하늘들이 바로 그 용들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여러 하늘들은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그 때 산중에 있던 여러 사냥꾼으로서 부처님께 나아간 이들은 모두 “우리가 목숨을 해친 것도 이 용들에 비하면 아마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하고, 도의 마음을 내려 하다가 그래도 망설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만 명 아라한들은 그 용들의 모든 죄를 구제하려 하였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만일 내가 없었더라면 그 용들에게 억눌려, 그들을 건지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 죄만 더하였을 것이다. 만일 일체를 건지려 하거든 먼저 선정에 들어 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한 뒤에 행하여야 한다. 너희들이 건지지 못하는 이라도 이 부처님은 건질 수 있느니라.”
그 때 사냥꾼들을 이 말씀을 듣고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고 그 모임에 있는 하늘과 용과 사람들을 위하여, 부처님은 설법하시어 모두 아유월치를 얻게 하셨다.
옛날 용왕 발저는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이 바라문이 되었는데, 그 때 발저의 제자 만 명은 석가모니의 인품을 보고 용맹스럽게 그 스승을 버리고 석가모니를 섬겼다. 그래서 발저는 원한을 품었기 때문에 그 죄로 용이 되었고, 부처님은 이미 덕을 이루어 일체를 많이 제도하여 그 제자 만 명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용의 나쁜 마음은 끝내 왕성하여 모든 것을 두루 해치려 하였다. 그 만 명 아라한은 용들을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건지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찍이 스승이었기 때문에 네 가지 도(道)는 넉넉하였지마는 오히려 그 욕을 당했던 것이다. 그들이 만일 보살이었더라면, 용이 아무리 해치려 하여도 마침내 감히 해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64
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다. 백성들이 번성하고 남녀 노소들이 온갖 나쁜 짓을 두루 행하였다. 그러나 성질이 흉하고 사나워 교화하기 어려웠다.
부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그 이웃 나라로 가셨다. 5백 아라한의 마음은 몹시 교만하였다. 그래서 마하목건련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제가 저기 가서 저 인민들을 제도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곧 허락하셨다.
그는 가서 법의 도를 설명하였다.
“착한 일을 행하여야 한다. 만일 온갖 악을 행하면 그 죄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자 온 나라 사람들은 그를 때리고 꾸짖으면서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돌아왔다.
사리불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여러 사람을 교화시키려면 지혜로써 못난 체 하여야 합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저기 가서 그 사람들을 권하여 제도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또 가기를 허락하셨다.
그는 가서 법과 계율을 설명하였으나 그들은 또 그것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때리며 욕하였다.
그리고 마하가섭과 높은 제자 5백 인이 차례로 갔으나 제도하지 못하고 모두 무시와 비방을 받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나라 사람들이 포악하여 착한 가르침을 받지 않고 도리어 학대하고 욕을 보입니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욕하여도 그 죄가 적지 않거늘, 하물며 그런 많은 사람의 가르침을 거스름이겠습니까? 마땅히 허공도 용납할 수 없는 중한 죄를 받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그 죄가 깊고 무겁지마는 보살이 보면 깨끗하여 죄가 없느니라.”
이에 문수사리를 보내어 제도하게 하셨다.
문수사리가 그 나라로 가자 모두 그를 찬탄하였다.
“현자의 하시는 일은 어찌 그리 유쾌하십니까?”
그리고 그들의 왕에게 가서 직접 칭찬하고, 늙고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루 듣고 알게 하였다.
“아무개는 용맹스럽고 건장하며, 아무개는 어질고 효도스러우며, 아무개는 담이 크고 지혜롭다.”
이렇게 말하며 그들이 있는 곳을 따라 마음껏 칭찬하면서 모두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 어른의 말씀은 신묘하여 우리의 생각을 잘 알아 주시니 얼마나 유쾌하고 장하시냐?”
그들은 각기 금과 향과 꽃을 보살 위에 흩고, 또 모두 좋은 모직물과 비단 옷과 맛있는 음식을 보살에게 바쳤다. 그리고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문수사리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내게 공양하기보다 우리 스승님께 공양하십시오. 우리 스승님의 이름은 부처님이라 합니다. 모두 같이 가서 공양하면 그 복은 한량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은 못내 기뻐하면서 문수사리를 따라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그들은 곧 아유월치를 얻었으며, 삼천세계는 크게 진동하였다. 그리고 산의 수풀과 나무들은 모두 찬탄하였다.
“문수사리는 이처럼 잘 제도하신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깊고 크다는 죄가 어디 있는가?”
5백 명 아라한들은 땅에 쓰러져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보살의 교화하는 위신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부처님이야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몹쓸 종족으로서 일체에 이익될 것이 없다.”
65
옛날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무 밑에 앉아 한량없는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 중에는 수다원을 얻은 이도 있고 혹은 사다함이나 아나함이나 아라한을 얻은 이도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그 때 부처님 얼굴에 깨끗한 광명이 없어지면서 마치 근심하는 것 같았다.
아난은 부처님의 마음을 깊이 짐작하고 꿇어앉아 아뢰었다.
“제가 8년 동안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지마는, 오늘처럼 부처님 신관에 광명이 없던 적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어떤 변(變)이 있어 부처님을 그렇게 하시게 하였습니까, 지금 누가 큰 행을 잃었으며 누가 악을 지어 지옥에라도 떨어지겠습니까, 혹은 누가 근본 자리를 멀리 떠났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장사꾼이 많은 보물을 가지고 수천만 리 먼 길을 떠나 이익을 구할 때, 길에서 도적을 만나 보물을 모두 잃어버리고 발가벗은 몸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면 과연 근심하지 않겠는가?”
아난은 아뢰었다.
“그 근심은 아주 대단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수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힘들여 도를 닦아 사람들을 모두 제도하여 부처가 되게 하려고 하였는데, 나는 지금 스스로 부처가 되었지마는 아무도 공덕을 짓는 이가 없구나. 그래서 나는 불쾌하여 얼굴빛이 변하는 것이다.”
아난은 아뢰었다.
“지금 부처님 제자로서 아라한을 얻은 이가 과거에도 이루 다 셀 수 없이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나함과 사다함과 수다원에 있어서도 그와 같이 이루 다 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도할 공덕의 인(因)이 없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늙은 부부가 딸만 수십 명을 두었다면 그래도 능히 집을 다스려 문호(門戶)를 이룰 수 있겠느냐?”
“이룰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내 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아라한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내 아들이 아니다. 그래서 좀처럼 부처의 나무 밑에 앉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많은 딸이 있어도 모두 남에게 시집가고 나면 그 늙은 부부는 고독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부처님은 눈물 세 방울을 떨어뜨리셨다. 삼천대천세계는 그 때문에 진동하고, 수많은 하늘과 용과 신(神)과 사람들은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그러자 부처님의 얼굴은 아름답고 기뻐지며, 수많은 광명은 천억만으로 변화하여 보통 때보다 몇 배나 더 시방세계를 환히 비추셨다. 그리하여 광명을 보는 이는 모두 제도를 받았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 다시 이 광명의 신변과 미묘가 이러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늙은 부부가 하늘에 제사하고 땅에 기도하면서 아들을 구하다가, 늘그막에 가서 아들을 낳아 문호를 세운 것과 같거늘, 어찌 기뻐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축하하지 않겠는가? 지금 모든 중생들은 대승(大乘)의 뜻을 내었다. 그래서 부처 종자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수마제보살(須摩提菩薩)을 보내어 60억 항하의 모래알 같은 저 나라를 지나 그 나라로 가서 사자좌(師子座)의 온갖 음식거리를 가져 오게 하셨다. 그는 팔을 굽혔다 펴는 동안에 거기 갔다 돌아와 높고 넓은 사자좌를 장엄하게 하고 일체 중생을 청하여 모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낸 이들은 모두 저절로 된 사자좌의 천 잎사귀의 금연꽃 자리에 앉고, 일곱 가지 보배로 얽어 만든 장막 안이나 일곱 가지 보배로 된 나무 밑에 앉은 이는 온갖 당기와 번기를 세우되 일곱 가지 보배로 자루를 만들었고 하늘 비단으로 번기를 만들었으며 하늘 문채 비단으로 꽃잎 일산을 만들었다.
부처님은 곧 대천세계를 목욕못으로 변화시키고 일곱 가지 보배 연꽃이 그 안에 가득 나게 하신 뒤에 자기 몸을 바꾸어 보살로 변해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제석천과 범천과 사천왕의 형상을 나타내어 온갖 맛있는 음식으로 일체 중생에게 두루 보시 공양할 때, 그 향기는 시방 일체 중생에게 널리 풍기어 향기를 맡은 이는 모두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다시 온몸의 털구멍으로 향기를 내어 그 향기를 맡은 사람은 계속하여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그리하여 시방의 가없는 나라가 모두 크게 진동하고, 그 나라마다 부처는 모두 그 곁에 있는 거룩한 보살들을 보내어 축하하였으니, 그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보살 마음을 내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자마금으로 된 연꽃을 가지고 온 이도 있고, 마니보배로 된 연꽃을 가지고 온 이도 있어서, 각기 여러 가지 진귀한 보배로 된 연꽃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 위에 흩었다.
부처님은 위신의 힘으로 그 흩는 꽃들을 모아 꽃 일산을 만들어 시방의 무수한 세계를 두루 덮자, 그 꽃 일산의 광명은 모든 세계를 밝게 비추어, 그윽하고 어두운 곳도 항상 밝으며, 지옥 중생과 아귀·6축(畜)들도 모두 큰 뜻을 내어 부처 되기를 구하였다.
부처님은 모인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어 이루 다 셀 수 없는 보살들은 모두 아유안주(阿惟顔住)를 얻게 되고, 또 이루 다 셀 수 없는 하늘 사람들은 나고 죽지 않는 진리를 얻었으며, 또 이루 다 셀 수 없는 용과 신과 사람들은 모두 아유월치를 얻게 되고, 또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66
옛날 어떤 젊은 사람이 빈궁하여 다른 나라로 갔다가 맛있는 과실 하나를 얻었다. 그것은 향기롭고 아름다우며 또 커서 세상에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감히 먹지 못하고 마음으로 부모를 생각하여 그것을 드리려고, 곧 유야리(維耶離)로 돌아왔다.
그 때 부처님은 여러 보살과 큰 제자들을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가 신도 장자의 청을 받아 그 집으로 가셨다. 그 사람이 집에 가기 전에 마침 부처님이 지나시자, 그는 그 과실을 부처님께 바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랄 때까지 일찍이 부처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부처님 발자국 수레바퀴 무늬가 일산 같고 그 광명은 갖가지로 변하되 모자라거나 줄지 않음을 보고, 발자국 곁에 서서 싫증 없이 들여다보다가, 마음으로 다행히 여겨 슬픔도 기쁨도 잊고 '걸어가신 발자국이 이러할 때에는 그의 몸은 참으로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한번 지나갔으니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나는 우선 부모님의 몫을 두고 이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이 과실을 드리리라'고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는 발자국 곁에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였다. 길 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물었다.
“왜 이 과실을 가지고 여기 앉아 슬퍼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그 끝없이 거룩한 이의 발자국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신인(神人)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스스로 귀의하고 이 과실을 드리려 하는데 그 빛나는 신관을 지금까지 뵙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니 얼마나 박복합니까? 그 때문에 슬퍼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모여 묻는 사람이 마치 구름 일산 같았으나 그들은 모두 그를 괴상히 여겨 어리석다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한번 간 사람이 어디로 돌아올 지 어떻게 알아 여기서 기다리려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단월 장자의 집에 가서 앉으시고, 여러 스님들도 손을 씻고 차례로 앉았다. 장자 집 노소(老少)들은 손수 음식을 날라다 차려 모두 갖추어졌다.
부처님께서 멀리 길에서 발자국을 지키면서 과실을 가지고 부처님께 드리려고 못내 기다리는 이의 보시를 생각하시고 공양을 마치셨다.
그 단월은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으시고도 나는 생각하시지 않고, 밖에서 과실을 가지고 있는 이를 축원하시니, 혹 내 공양에 잘못된 것이 있는가?'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공양에는 복이 갔을 뿐이다. 이른바 그는 아무리 넓은 마음으로 바라는 바가 있더라도 마음에 네 가지 두려움이 있고 그 뜻은 멸도(滅道)에 있으며, 저 밖에 있는 젊은이는 맛있는 과실을 가지고 한결같은 마음에 딴 생각이 없다. 즉 내 발자국을 지키면서 자비로써 나를 기다려 일체를 위하여 그 과실을 올리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도의 마음을 내었다. 그러므로 여기 앉아서 멀리 축원하는 것이다.”
장자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저 사람은 과실을 보시하고 다른 음식이 없지마는 부처님께서는 그 덕을 찬탄하여 매우 높고 묘하다 하시고, 나는 큰 부자로서 풍부한 음식을 차렸건마는 그 경중을 헤아려 내 복이 그보다 못하다 하시니, 나도 부처님을 모시고 따라가서 그 사람을 보리라.'
부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발자국을 지키는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보살 제자들과 장자와 거사와 그 밖의 여러 사람들도 부처님을 따라갔다.
과실을 가진 그는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몸에는 온갖 좋은 모양을 갖추었고 광명은 해와 달보다 빛났다. 그는 곧 앞으로 나와 부처님을 맞이해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과실을 가지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드리면서 위없는 평등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곧 광명을 놓아 끝없이 밝게 비추셨다. 삼천세계는 그 때문에 크게 진동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도 모두 나타났다. 마치 거울 속의 모양이 멀고 가까움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았다.
부처님께서 그 과실을 받아 여러 부처님께 차례로 주시어 한 과실로 하여금 끝없이 두루 차게 하셨다.
시방의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도 각기 가사에서 금빛 광명의 손을 펴 천억의 불꽃을 놓았다. 그 불꽃 끝마다에 각각 저절로 보배 연꽃과 구슬로 엮은 장막과 사자좌가 있고, 그 위에 앉은 부처님과 보살들은 모두 보배 발우를 가지고 그 과실을 받은 뒤에 각기 과실 하나씩을 가지고 신통으로 축원하였고 석가모니부처님도 또한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 시방세계를 밝게 비추어 모든 허공과 신의 하늘에 충만하여 8방과 상·하에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삼계의 모든 보살들은 기뻐하고 기리며 찬탄하고는 모두 그 은혜를 입었다.
그 때 과실을 올린 사람은 생멸이 없는 진리를 얻었고 부처님은 그에게 수기를 주셨다.
“이 뒤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과존왕(果尊王)부처라 할 것이요, 그 나라는 아미타부처님의 세계와 같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분별하시는 이 국토라는 말을 듣는 이는 모두 저절로 청정하여 저 아유안(阿惟顔)을 얻었고, 장자와 거사로서 도의 자취로 향한 수없는 사람들은 모두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얻었으니, 크게 제도하는 그 덕은 이와 같았다.
67
옛날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가시어 그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실 때, 어떤 하늘이 목숨이 다하려고 일곱 가지 징조가 나타났다.
첫째는 목 안의 광명이 없어지고, 둘째는 머리를 장식한 꽃이 시들며, 셋째는 낯빛이 변하고, 넷째는 옷에 먼지가 앉으며, 다섯째는 겨드랑 밑에서 땀이 나고, 여섯째는 몸이 여위어지며, 일곱째는 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여 '내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장차 하늘자리와 일곱 가지 보배의 궁전과 목욕하는 못과 동산의 과실과 자연으로 된 음식과 온갖 여자의 풍류를 버리고 구이나갈국(拘夷那竭國)의 문둥병 든 돼지 뱃속의 새끼로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몹시 걱정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무슨 방편으로 이 죄를 면할까' 하고 생각하였다.
어떤 하늘이 그에게 말했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그 어머님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신다. 부처님께서는 삼계 중생들의 구주(救主)이시다. 오직 부처님만이 그대의 죄를 면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아직 여쭙기도 전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체 만물은 모두 덧없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너는 본래부터 아는데 왜 근심하고 걱정하는가?”
하늘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하늘복이 오래 가지 못하는 줄을 알기는 하지만 이 자리를 떠나 문둥병이 든 돼지 새끼가 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요, 다른 몸을 받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돼지 몸을 떠나려거든 마땅히 귀의하여 '나무 불·나무 법·나무 비구승, 즉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를 날마다 세 번씩 외우라.”
그 하늘은 부처님이 시키는 대로 밤낮으로 귀의하다가 이레 뒤에 목숨을 마치고, 유야리국(維耶離國)에 내려와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그 어머니 태 안에서 하루 세 번씩 '나무' 하고, 처음으로 세상에 나서도 꿇어앉아 '나무' 하였다. 그리고 그 어머니도 아기를 낳았지마는 오로가 없었다.
어머니 곁에 있는 몸종들도 두려워하여 아기를 버리고 달아나고, 어머니도 매우 괴상히 여겨, 아기가 땅에 떨어지면서 말하는 것을 요망한 일이다 생각하고 가만히 죽이려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돌이켜 생각하였다.
'내 아기가 괴상하지마는 만일 이 아이를 죽이면 그 아버지가 반드시 나를 죄 줄 것이니, 장자에게 아뢴 뒤에 천천히 죽여도 늦지 않다.'
그리하여 곧 아이를 안고 장자에게 가서 아뢰었다.
“사내를 낳았는데 태어나자마자 꿇어앉아 합장하고 거룩한 삼보에 귀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이 모두 괴상히 여겨 요망한 일이라 합니다.”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그 아이는 비범하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백 년이나 혹은 8, 90을 살아도 거룩한 삼보에 귀의할 줄 모르거늘, 하물며 아이가 땅에 떨어지자 '나무 불'이라고 일컫는 것이겠는가? 잘 보살펴 기르고 부디 가벼이 여기지 마시오.”
아이는 자라나 일곱 살이 되어, 그 동무들과 길가에서 유희하고 있었다. 그 때 부처님 제자 사리불과 마하목건련이 마침 아이 곁을 지나갔다. 아이는 앞으로 나와 그 발에 예배하고 말하였다.
“사리불과 마하목건련께 문안드립니다.”
두 사람은 어린애가 비구에게 예배할 줄 아는 것을 보고 놀라고 괴상히 여겼다.
그러자 아이는 말하였다.
“도인들께서는 저를 알지 못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천상에서 어머님을 위해 설법하실 때, 저는 그 때 하늘로 있다가 인간에 내려와 돼지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의 지시를 받고 귀의하여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구들은 곧 선정에 들어 이내 그것을 알고 곧 축원하여 '자리기(咨梨祇)'라고 하였다. 아이는 두 분에게 말하였다.
“저의 이름으로 부처님과 보살님들과 또 당신들을 청합니다.”
목련과 사리불은 그 청을 받았다.
아이는 돌아가 부모님께 아뢰었다.
“아까 길에서 유희하다가 부처님의 두 제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부처님과 사부대중에게 공양하시기를 청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그를 사랑하여 그 청을 들어 주었다.
어린 나이와 달리 큰 뜻을 내고, 또 그 전생을 아는 일을 기특히 여겨 아주 진기한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되 아이 생각보다 뛰어난 좋은 음식을 모두 구해 갖추었다.
부처님과 스님들은 각기 그 공덕으로 신통을 부려 그 아이 집으로 갔다. 부모와 노소들은 공양을 마치고 손 씻을 향기로운 물을 돌려 모든 것을 법답게 마쳤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 부모와 아이와 안팎의 친족들은 곧 아유월치를 얻었다.
귀의하는 복을 제도하는 것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한평생 도의 가르침을 수행함이겠는가?
32
옛날 어떤 도인 세 사람이 서로 물었다.
“너는 어떤 인연으로 도를 얻었는가?”
한 사람은 말하였다.
“나는 왕의 동산에서 아주 무성하고 아름다운 포도를 보았는데, 석양이 되자 사람들이 와서 모두 꺾어 어지러이 땅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덧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도를 얻었다.”
또 한 사람은 말하였다.
“나는 물가에 앉아 어떤 부인이 손을 흔들면서 그릇을 씻을 때 팔찌가 서로 부딪치는 것을 보고, 인연이 합해야 소리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인연하여 도를 얻었다.”
또 한 사람은 말하였다.
“나는 연못가에 앉아 무성하고 아름다운 연꽃을 보았는데, 석양이 되자 수십 채 수레가 와서 사람과 말이 못 가운데서 그것을 모두 꺾어가는 것을 보고 '만물의 덧없음은 저러한 것이라' 깨닫고 도를 얻었다.”
33
옛날 어떤 범지가 있었다. 그는 재주와 학문이 매우 높아 남의 이론을 반박하였다. 까닭없이 바른 가르침을 힐책하고 어기며 거짓을 인용하여 진실이라 주장하고 사물을 끌어와 비유를 계속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당할 수 없어 여러 나라에서는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뒷날 그는 사위국으로 가서 한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므로 성 안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이 나라가 너무 어두워 밝음이 없기 때문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그 나라의 왕은 매우 부끄러이 여겨 성문에 북을 달고 이 사람을 꺾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널리 구하였다.
그 때 어떤 사문이 그 나라에 들어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가?”
그는 대답하였다.
“이 나라의 왕이 저 범지의 하는 짓에 매우 부끄러이 여겨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면 이 북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문은 발을 들어 그것을 뛰어넘었다.
왕은 그 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사문과 범지를 청하여 궁전 위에서 음식을 공양하였다. 사문은 왕에게 말하였다.
“장합니다. 이 범지는 참으로 지혜가 밝은 도인입니다. 그러나 종도 아니요, 졸병도 아니며 상여꾼의 종족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합니까?”
범지는 잠자코 답이 없었다. 그 때 왕은 한꺼번에 풍악을 울려 그 범지를 붙들어 똥 쓰레받기에 담아 자취를 쓸고 그 나라에서 쫓아내었는데, 이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
34
옛날 어떤 사문이 밥을 먹고는 화장한 얼굴을 닦고 옷을 정돈하면서 앞뒤를 살피고 있었다.
아난은 그것을 보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비구의 법답지 않음이 저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막 여자들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남은 흔적이 다하지 못하여 그러하니라.”
비구는 곧 아라한의 도를 나타내어 열반에 들어 떠났다.
35
옛날 사위성 밖에 사는 어떤 부인은 청신녀(淸信女)가 되어 계행을 순수히 갖추었다. 부처님께서 그 집 문에 가서 걸식하실 때, 부인은 부처님 발우에 밥을 담고 물러나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를 심으면 열이 생기고, 열을 심으면 백이 생기며, 백을 심으면 천이
생긴다. 이리하여 만이 생기고, 억이 생기며, 또 도를 보는 자리를 얻게 되느니라.”
도덕을 믿지 않는 그 남편은 뒤에서 잠자코 부처님의 축원을 듣고 있다가 여쭈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어찌 그리 지나치십니까? 한 발우의 밥을 보시함으로써 그러한 복을 받고, 또 어떻게 도를 보는 자리까지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어디서 왔는가?”
“저는 성 안에서 왔습니다.”
“네가 그 니구류(尼拘類) 나무를 볼 때 그 높이가 얼마나 되던가?”
“높이는 40리요, 해마다 수만 섬의 열매를 땁니다.”
“그 씨는 얼마 만한가?”
“겨자 만합니다.”
“한 되쯤 심었던가?”
“씨 하나를 심었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어찌 그리 지나친가? 겨자 만한 열매 하나하나를 심어 어떻게 그 높이가 40리가 되며 해마다 수십만 개의 열매를 따겠는가?”
“진실로 그러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땅은 지각이 없는 것이지마는 그 갚음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기뻐하면서 한 발우의 밥을 여래에게 올림이겠는가? 그 복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들 부부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곧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36
이미 아나함의 도를 얻은 어떤 사문이 산 위에서 풀을 삶아 가사에 물을 들이고 있었다.
그 때 소를 잃어버린 어떤 소먹이는 사람이 두루 다니면서 소를 찾다가, 산 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가 보았다. 그 솥 안에는 모두 소 뼈요, 발우는 소 머리로 변하며 가사는 소 껍질로 변하였다.
그 사문은 소 뼈를 머리에 매달고 온 나라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구경하였다.
그 때 사미는 점심 때가 된 것을 보고 건추를 쳤으나 스승이 오지 않아 곧 방에 들어가 선정에 들어 그 스승이 어떤 사람에게 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곧 그리로 가서 땅에 엎드려 발 아래 예배하고 말하였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스승은 대답하였다.
“오랜 과거의 죄업 때문이다.”
“어서 돌아가 공양하십시오.”
그들은 곧 신통을 부려 함께 갔다.
사미는 아직 도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항상 성을 참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청신사와 그 나라 사람들을 돌아보고 생각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 스승을 이처럼 욕을 보였다. 용을 시켜 모래와 돌을 내려 이 나라를 진동시켜 모두 놀라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자 사방에서 모래가 내려와 성과 집들이 모두 부서졌다.
스승은 말하였다.
“나는 전생의 한 세상 동안 소 잡기로 업을 삼았기 때문에 이런 화를 받는 것이다. 그렇지마는 너는 무슨 이유로 이런 죄를 짓느냐? 너는 떠나라. 다시는 나를 따르지 말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죄와 복이 이와 같다.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되느니라.”
37
옛날 어떤 국왕에게 다섯 사람의 대신이 있었다. 한 대신이 일찍이 부처님을 청하였으나 부처님께서 거기에 응하지 않자, 그 대신은 돌아가 왕의 이름으로 부처님을 청하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대신은 오늘 반드시 목숨을 마칠 것인데, 내일이 되어 누가 복을 지을 것인가?”
그 대신은 일찍이 관상쟁이에게 상을 보였는데 관상쟁이는 '장차 흉기(凶器)에 죽을 것이니 흉기로써 스스로 보호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칼을 빼어 가지고 있다가 밤이 깊어 눕고 싶어 그 칼을 아내에게 주어 들고 있게 하였더니, 아내는 졸다가 칼을 떨어뜨려 그 남편의 목을 베었다.
아내는 “남편이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왕은 곧 네 대신을 불러 문책하였다.
“너희들은 호위한다는 것을 빙자하고 이 간사한 사고를 거짓으로 꾸며 그 아내와 갑자기 이런 죄를 저질렀다. 그 여자가 누구를 위해 그 곁에 있었던가.”
이렇게 말하고 네 대신의 오른손을 베었다.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남편은 전생에 양을 치는 아이가 되었고 그 아내는 흰 양의 어미였는데, 그 네 대신은 전생에 도적이 되어 양치는 아이를 불러, 그 오른 손가락을 함께 들고 양의 어미를 죽이게 하였다. 그리고 다섯 사람을 위해 그것을 삶을 때, 그 아이는 슬피 울면서 양을 죽여 도적들을 먹였다.
그리하여 생사에 흘러다니다 금생에 와서 함께 모였기 때문에, 그 전생의 죄를 마친 것이니라.”
38
옛날 어떤 큰성바지는 억대의 큰 부자로서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누구나 구하는 것이 있으면 그 청을 어기지 않았다.
뒤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손발이 없어 형체가 고기 같았으므로 이름을 어신(魚身:고기 몸)이라 하였다.
그는 부모가 돌아간 뒤 집안 살림을 물려받고, 항상 방 안에 누워 자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그 때 어떤 역사(力士)가 왕의 부엌밥을 의지해 살면서도 늘 굶주리므로 혼자 열여섯 수레의 나무를 끌고 가서 그것을 팔아 살아 갔으나 또한 모자랐다. 그래서 이 사성(四姓)에게 가서 모자라는 것을 청하면서 말하였다.
“여러 해로 왕의 음식을 의지해 살았으나 항상 모자라 늘 굶주렸습니다. 듣자니 사성은 억대의 재산이 있다 하기에 빌러 왔습니다.”
어신은 그를 청해 보고 제 형체를 보였다. 역사는 물러나와 생각하였다.
'나는 역사이면서 이 꼴이니, 저 손발 없는 사람보다 못하다.'
역사는 그의 물건을 여러 가지 훔치고는 부처님께 나아가 그 의심되는 바를 여쭈었다.
“세상에는 국왕처럼 호화롭고 존귀한 이도 죽고 손발이 없는 사람도 저렇듯 부자인데, 나는 힘 세기로 이 나라에서 당할 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음식이 부족하여 굶주림을 안고 있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이렇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어신은 저 왕과 함께 부처님께 공양하게 되었는데, 너는 그 때 빈궁하여 심부름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어신은 얻어야 할 것을 갖추어 왕과 같이 가게 되었을 때 왕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일이 있어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은 내 손발을 끊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간 사람은 바로 저 왕이요, 가지 않고 거짓말한 사람은 저 어신이며, 빈궁하여 그 일을 도와 준 이는 지금의 네 몸이다.”
이에 역사는 마음이 열리고 뜻을 깨달아 곧 사문이 되어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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