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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眞我)와 친하자
- 능인선원 지광스님
1. 호흡은 부처님의 몸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곧바로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흡을 할 때마다 숨이 들락날락거립니다. 숨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단순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질 못합니다. 우리가 단 한 순간도 호흡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생명체라고 불리우는 존재들입니다. 생명체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생명과 호흡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상호 한 몸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의 생명은 호흡에 달려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몸이라고 하는 기계는 두뇌로부터 시작해서 오장육부가 있는데 그것들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메카니즘(mechanism)에 따라서 이 몸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우리 몸 안엔 생물학, 의학, 화학, 물리학 그리고 경제학도 들어있습니다. 이 몸뚱아리를 지어낸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무한한 지혜의 실자일 것임에 별로 의심을 하는 분들은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화학, 물리학, 생물학적으로 모두를 지구라는 별의 환경에 맞게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창조주라고 부르고 싶기도 하겠지요. 어쨌든 몸이라는 이 기계는 대단히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습니다. 호흡이 한번 멈춰 버리면 가동될 줄을 모릅니다. 이 기계를 하드웨어(Hardware)라고 부를까요? 이 하드웨어가 가동이 되려면 소프트웨어(Software) 즉 가동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가 있어야 됩니다. 유전자의 세계로 시작해서 미묘한 세포의 세계, 초립자 물리학의 세계등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만 이 몸을 슬기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과 자동차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동차가 아무리 BMW, 벤츠라고 하더라도 운전기사가 없으면 가질 않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운전을 할려면 라이센스라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랜 시간 핸들도 잡고 연습을 해야 되고, 법규도 알아야 되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이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몸뚱아리를 움직이려면 대단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정말 그 존재는 몸을 아무 때나 움직여서 되겠습니까? 아무 때나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호흡이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으면 이것은 멈춰버립니다. 그러면 호흡이란 무엇이냐?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호흡이 바로 생명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한다면 우리의 몸뚱아리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이, 그러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호흡과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정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선 "너희들은 나의 몸을 먹고 마시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나의 몸이기 때문에 허공은 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다 입니다. 허공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몸이니까 들락날락거리는 게 바로 부처님의 분신이 들락날락거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참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몸뚱아리-hardware를 뒤집어쓰고 살지만 이것을 가동하는 것은 호흡이고, 허공을 마시는 것이고, 허공은 부처님의 몸과 마음이랍니다.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가 지금도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데, 생명은 안에도 있는 것이 아니고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주에 있는데 이게 바로 부처님의 몸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내보낸 다음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가버리니까 우리 몸은 하드웨어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나갔다가 호흡이 안돌아오면 죽어버리니까, 이 몸을 가동하는 무지막지하고 어마어마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겁니다. 만일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면 이 몸을 가동하던 무지막지한 라이센스를 가진 능력자는 허공으로 그냥 가버립니다. 이 사실을 《화엄경》에서는 굉장히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나가버리면 이 몸을 가동했던 존재들은 어디가 있겠어요? 지금 여기 여러분과 더불어서 이 법당에 까맣게 와 계시다는 겁니다.
2. 또 다른 귀와 눈으로
《화엄경》의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 이사무애(理事無碍), 사사무애(事事無碍) 법계의 도리를 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불교는 매일 공부해도 매일 기가 막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사 이른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 고깃덩이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는 전혀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마음, 유체, 영체, 정신체, 상념체 이렇게도 얘기를 하는데, 그들은 우리의 육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어떤 체, 정신의 어떤 체, 귀신이라고 말할까요? 중음신이라고 말할까요? 우리가 종교상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 말고 그들은 우리를 또 다른 차원의 체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법상계>에 나온대로 “너희들은 사실 육신의 눈으로 만상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나라의 존재가 너희들과 함께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어제 이맘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제 이맘 쯤 때"라는 암시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시간을 확정합니다. "어제 오후 2시쯤에 무얼 하셨나요?" 오후 2시"라는 in-put이 주어졌습니다. ‘아, 오후 2시에 카페에 있었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 나왔어요. 그때의 그 카페의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예쁜 아가씨가 있었고, 또 실내장식이 어떻게 되어 있었고 떠오르면서 어제 오후2시에 들었던 그 음악소리가 들려요. 분명한 사실이 그 음악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귀로 들리는 거예요. 그리고 카페 분위기와 그 카페에서 만났던 예쁜 아가씨 얼굴이 떠오른다구요. 그런데 그 아가씨의 얼굴을 이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제 3의 눈으로 예쁜 그 아가씨를 어제 찍었던 비전을 통해서 보고 있다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내 눈과 귀로 보고 듣고 하는 측면도 있지만, 전혀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귀와 눈으로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속의 세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제 밤에 잠을 주무실 때 꿈을 꾸었다면 꿈속에서도 보고 듣고 다 들립니다. 그 내용들이 지금도 선연히 눈에 떠오릅니다. 그것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귀로 듣는 것도 아니라 또 다른 눈과 귀로 듣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안오지(五眼五智)"라고 해서 육안, 혜안, 법안, 천안, 불안이 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자살하고 싶으면 자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네 마음대로 안 되는 그런 구석이 있는 것을 네가 아느냐?" 내 몸과 마음 가운데 내 마음대로 안 된답니다. 왜냐하면 "어제 오후 2시"를 얘기하니까 그림, 사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까? <유식학>에 나오는 얘기대로 지금 여러분은 이 법당에 나오셔서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예불을 올리시고 부처님 말씀을 같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물론 비디오카메라로 찍지만 지금 여러분 개인도 계속 찍고 있습니다. 만약 카메라맨한테 "야, 이제 그만 찍어라" 하면 카메라맨은 그만 찍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그만 찍으라고 말하는 그 존재는 내 말에 대해서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계속 찍어대고 있습니다. 밤이건 낮이건 쉴 사이가 없어요.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석이 몸과 마음 가운데 지금 이 순간도 존재합니다. 내가 "그만 찍어라. 그만해 좀 왜 나를 자꾸 감시 하냐. 찍는 것이 기분 나쁘다. 그만 찍어." 그래도 계속 찍어댑니다. 다른 나라에서 명령을 받았나 봅니다. 다른 존재에게서 명령을 받았는지 내 명령은 안 듣습니다. 그것을 찍어서 뭐에 쓰려고 하는지, 찍어서 계속 재워놓나 봅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는 겁니다.
3. 기도는 마음의 언어
중요한 사실이 예불중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이렇게 계를 잘 지키고 살면 몸에서 향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TV의 원리를 보면 비디오를 계속 찍어대고 있으면 TV회사에서 기계에다 걸고 쏘면 우리 집에 오지 않습니까? 놀라운 사실이 이와 같이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계속 찍어대고 있는 것이 어딘가에 전달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계를 잘 지키면 몸에서 향기가 나오는데 원효대사의 말씀에 따르게 되면 너희들이 격렬하게 살게 되면 광명운대 주변법계(光明雲臺 周邊法界) 광명의 구름이 되어서 두루두루 법계에 펼쳐져 나가서, 공양시방 무량불법승(供養十方 無量佛法僧) 무량한 불법승께 공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누구하고 연결되어 있다, 안 되어 있다를 떠나서 당장 그것이 무슨 역할을 합니까? 시방삼세에 계시는 모든 불보살님께 공양하는 게 됩니다.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계를 잘 지키고, 정을 잘 닦고, 혜를 잘 닦고, 해탈, 해탈지견, 이와 같은 부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게 되면 그 분들께 전달되는 겁니다. 우리가 말과 생각과 행동을 잘 닦는 것이 바로 계를 닦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 말과 생각과 행동이 아름답게 살면 그것이 누구에겐가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라 계를 잘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만일 계를 안 지키고 함부로 살면, 그것도 누구에겐가 전달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화엄경》에 보면 그것도 또 다른 차원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고체와 액체로 된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생명체, 기성인간이 있어서 우주를 훨훨 날라 다닌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발사하는 어떤 향기가 있으면 그것이 계를 잘 지켰으면 부처님께 가겠지만, 그릇된 마음으로 발사된 무언가는 그 차원에 맞는 존재들 하고 조화가 된다고 합니다. 골치 아픈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런 논리가 성립이 되는데 우리는 사바세계의 생명체인 동시에 우주적인 차원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고,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른바 제망중중입니다. 그물로 연결되어 망상조직을 가지고 있는 기성인간이고, 우리 자신도 지금 계속해서 외계에 있는 어떤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이 땅에 사는 것은 육신이고, 마음은 계속 뭔가 발사하면서 허공 가운데 만나는 세계가 또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여기만 사는 게 아닙니다. 여기 사는 것은 육신일지 모르겠지만 마음은 또 다른 차원의 존재들 하고 교신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마음을 잘 써야 되는 게, 제가 핸드폰을 보면서 《화엄경》을 많이 이해합니다. 번호 하나만 잘못 눌러도 다른 사람에게로 가버립니다. 생각 하나만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지고 클릭을 한번 잘못하면 그냥 화면이 바뀌어 집니다. 임종일념이라 임종 때 한 생각 잘못 일으킨 죄로 악도로 가 버립니다. 버러지나 뱀이 된다고 합니다. 공덕을 아무리 많이 지었어도 이 허공에는 정말로 무량한 존재가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수라, 건달바, 가루라, 긴나라, 욕계, 무색계, 무슨 천, 무슨 천 허공에 가득 있답니다. 당장 우리보다 바로 위의 하늘에 있는 사왕천 존재들만 하더라도 우리 같은 몸을 안 갖고 있고 날라 다닙니다. 천룡팔부신장님입니다. 사천왕들을 신장님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눈에 안보입니다. 바로 위의 하늘나라만 하더라도 지구의 50년이 하루인 별인데 우리 눈엔 안 보이는 것입니다. 건달바니 뭐니 해가지고 우리 인간만 유독히 보입니다. 우리의 아래로 가면 점점 더 나빠지기는 하겠지만 반수반인입니다. 하늘나라의 성품과 악도의 성품이 같이 소설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로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같은 몸을 안가지고 있고 기성인간이라 훨훨 날라 다니니까 우리가 그들과 교신을 하려면 이런 말로는 안 됩니다. 마음의 언어로 얘기를 해야 되기에 기도라는 양상을 씁니다. "신중기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화엄성중기도" 이렇게 얘기도 합니다.
《화엄경》의 얘기에 따르면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외계인이라고 합니다. 외계인이라고 하니까 무슨 S F소설 얘기 같은데,《화엄경》의 얘기를 <경>이고 종교이니까 그런 냄새를 풍겨서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은 외계의 얘기를 많이 접합니다만 우리는 지금도 우주인입니다. 우리의 껍데기는 지금 사바세계에 이렇게 덩어리로 되어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지옥에서부터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분들하고 어떤 형태로든 계속 교신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처님 전에 기도를 하게 되면 나와 부처님은 하나입니다. 내가 신장 기도를 하고 있으면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이니까 내가 신장님들과 통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신을 하지만 우리가 부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까 매일 살면서 주조(主潮)를 이루는 생각, 그 생각의 세계와 조화가 되는 존재들과 지금 한 덩어리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불합시다." 이러지 않습니까? 계를 잘 지키고, 정을 잘 닦고, 혜를 잘 닦고, 해탈, 해탈지견을 잘 닦으면 부처님이 되는 겁니다. 옛날 어르신네들이 노는 입에 염불하라 하시는데, 우리가 부처님의 말과 생각과 행동 등 똑 같은 것을 하니까 부처님을 닮아가겠지요. 부처님과 항상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자를 납치해서 나쁜 짓만 하면 인신 매매 범으로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인간은 정신세계가 악마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바세계에 살고는 있지만 그는 악마의 주구(走狗)입니다. 서로 속이고 속고 배신하는 개만도 못하고 소만도 못한 인간들이 있습니다. 서로 믿는 마음, 신심은 《화엄경》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부처님을 믿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부처님 전에 열심히 나오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절에 열심히 나가고, 교회를 열심히 나가고, 성당에 열심히 나가고 하는데도 사기 치고 배신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서로 가깝던 인간들이 배신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상대방의 신뢰감을 깨트리지 마십시오. 부처님 문중에선 이천재라고 해서 절대로 안 됩니다.
앞에서 화학이 이 몸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화학이 무엇입니까? 최외각 전자, 이른바 말하면 K각 L각등 원소의 세계에서 전자의 움직임이 화학입니다. 전자가 반응하면서 형성되는 게 화학물질이고, 우리 몸도 화학의 실체이니까 전자가 반응을 하면서 나오는 게 광자란 말입니다. 지금도 광자가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말, 생각, 행동을 하면서 계속 광자가 튀어나오는데 광자는 10억년이 지나가도 에너지의 손상이 전혀 없는 물질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계향"을 말씀하신 겁니다. 향(香)을 설명하자면 우리가 계를 잘 지키면 무슨 냄새가 나오겠습니까? 기가 나오겠지요. 일종의 광자라거나 광자이하의 차원이 나오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향이란 말을 쓰신 겁니다. ‘네가 계를 잘 지키면 그 계를 잘 지킨 정보가 허공에 방출되고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계향이란 말씀을 쓰신 겁니다. 색. 수. 상. 행. 식-오온론에 보면 모든 입자는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너희들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겁니다. 지금 여기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과거의 10억년을 끌고 왔고, 지금 이 순간 10억년을 가고 있어요. 20억년정도는 광자 가지고도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광자뿐이겠습니까? 그 아래 단위도 있단 말입니다. 그것을 과학이 체크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제일 아래 단위는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 공(空)상태, 진공, 부처님의 세계인데 그것이 인허진(隣虛塵)이니 극모진이니 해서 광자이하의 단위로 부터 쭈욱 허공화 됩니다.
4. 보관하는 세계 알라야식
《능엄경》에 보면 최하입자가 있는데 인허진입니다. 허공을 꼭 닮아있는 입자인데 그것을 7조각을 내면 허공이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7개를 다시 모으면 인허진이 되는데 그것은 줄잡아서 우리가 아는 입자의 수 천만분의 일입니다. 부처님의 과학은 굉장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사바세계에서 어떤 우주를 구축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등 여러 가지 우주를 형성하고 사실 겁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여러분의 육신은 그와 같은 지상에서 생활하고 계시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놀고 있습니다. 마음의 왕국, 정신의 왕국이 있습니다. 부처님 왕국 보이지 않는 세계와 교신을 나누고 있는 겁니다. 허공 가운데 보면 "옹호성중만허공(擁護聖衆滿虛空)" 사왕천 이런 데는 날라 다닙니다. 여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장님들이 꽉 와 계실지도 모릅니다. 당장 영가라거나 귀신들이 다 있는 건데 우리는 지금도 외계인입니다. 우리가 흔히 텔레파시라고 말하지만 계향, 향기가 날라 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나의 상태를 계속 전송을 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십시오. TV 비디오를 계속 찍어서 어디로 가져갑니까?
KBS로 MBC로 가져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전체 우주가 아주 질서정연하게 돌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오자가 없습니다. 순간순간 다 찍어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찍어대는 것이 어떤 형태로든 보관이 됩니다. 개인 개인의 모든 것을 다 찍어서 어딘가에 보관하는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알라야식"이라고 부릅니다. 알라야는 무엇입니까? 히말라야의 "히마"라는 말은 "눈"이고, "알라야"는 "저장되었다" 이런 뜻으로 함장식이라고 부르는데, 알라야는 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주 전체가 알라야라 겁나는 겁니다. 우주 전체가 개인 개인의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어서 사실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찍어대고 있는 어떤 형태의 정보든 전부 저장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과거의 것도 지금의 것도 계속 저장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질이 낮고 차원이 낮으니까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입니다.
5. 버리고 비우면 참 나가 되네
불교에서는 번뇌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버려라, 비워라,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벼워지겠지요. 가벼운 존재가 되니까 그들이 발사하는 기운이나 이런 것도 점점 정묘로운 게 되는 겁니다. 그들의 말과 생각과 행동하는 것이 우리 사바세계의 차원하고는 버리고 비웠으므로 차원이 다른 겁니다. 고차원적인 존재가 됩니다. 전파로 치면 고주파가 되는 거지요. 점점 버리고 비우다 보면 참 나〔眞我〕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수행을 점점 해가다 보면 파장이 대단히 고도화 되는 겁니다.
지금 나노라고 굉장히 미세한 세계인데 그것을 이용해서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 아닙니까? 2010년에서 2015년이 되면 대단히 획기적으로 나노가 컴퓨터 부품에 상용화 되면, PC 하나만 가지고도 전 우주를 커버하는 것은 문제도 안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퍼 컴퓨터라고 해서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이 드는데, 나노 반도체를 가지고 컴퓨터를 만들면 경천동지할 일들이 벌어지지요. 만약에 2010년쯤에 실용화된다고 한다면 지금 그렇게 하려고 예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반도체에다 모든 것을 수록을 하고 하는데 나노 컴퓨터는 그것하고는 게임이 안 됩니다. 나노 튜브에다 지저분한 불순물을 다 제거하고 정묘로운 미립자 소립자세계에다 정보를 집어넣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이 정확하게 맞는 게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론에 보면 모든 물질들은 의식이 있으니까 나노에도 의식을 집어넣고, 정보를 집어넣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분자 원자 광자가 의식이 없을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자꾸만 내려놓고 버리고 비우고 하면 점점 고차원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기운은 점점 고조화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화엄경》에서의 얘기는 "화엄경"이라는 종교로 말하지만 과학적인 안목으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현대 21세기 과학으로도 이해되는 면이 대단히 많습니다. 과학입니다. 우리가 본래 외계인인데 업 따라 지구란 별에 온 겁니다. 엊그제 신문에 났는데 여기서 멀지 않는 곳에 태양계가 또 있다고 합니다. 95광년이면 멀지도 않는 곳입니다. 큰 목성 같은 별을 찾았다니까 그 밑에 지구라는 상황의 별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는 겁니다. 왜 없겠어요? 지구는 뭐 대단한 별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가 사는 육신의 왕국 말고 또 다른 왕국이 있습니다. 우린 또 다른 왕국의 주민입니다. 그 왕국은 바로 텔레파시로, 염파로, 행기로, 기로 교신이 되는 그런 왕국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바세계에 살고 고깃덩이로 사니까 그냥 여기에 취해서 자기가 우주의 대 생명체임을 전혀 인지를 못합니다.
기도라고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합니까? 내가 부처님 전에 열심히 기도를 하며 "SOS. 나를 좀 도와주시오. 어려운 상태에 있다. 내가 사바세계에 사는데 일이 안 풀리니 너희들이 좀 도와주오. SOS." 그러면 외계인들 허공계에 있는 나와 같은 급수의 존재들이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으로 오는 겁니다. 이게 또 다른 왕국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기서 귀와 눈으로 들리는 세계 말고, 또 다른 눈과 귀로 보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왕국의 법칙에는 "너희들 그릇되게 살았다가는 국물도 없네." 계속 찍어대고 있는 겁니다. 찍어서 저장해 놓았다가 여러분이 이 세상을 등지게 되면 어떻게 살았는가 쫙 한번 보여주는 거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과(因果)" 잘못된 것은 절대로 용납을 안 합니다. 인과라는 것은 과학의 법칙입니다. 그 인과를 증명하기 위한 무지막지한 우주의 카메라맨이 개인 개인마다 다 찍어대고 있지만, 하나의 통제사령탑에서 이 우주를 전부 다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가 헐렁헐렁하고 말랑말랑한 게 아닙니다. "네가 누구한데 뭘 잘못하고 있구나. 누구한테는 잘하고 있구나"하며 지금도 계속 찍어대고 있는 겁니다.
6. 고도의 존재들과 교신하고 싶은데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항상 "아, 나는 지금도 외계인이다. 지금도 나는 외계와 교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특별히 고도의 존재들과 교신을 하고 싶은데"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다보면 범부중생이니까 말과 생각과 행동이 조야(粗野)해서, 지금도 교신을 맺고 있는 존재들이 저차원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더라도 도움을 크게 줄 수 있는 상태가 못 됩니다. 그렇지만 고도의 존재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보살님들로부터, 신장으로부터 허공계에 있는 기도는 바로 부처님과 하나 되는 작업이고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대화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인터넷이라거나 이런 일체 모든 제품들이 사실은 전부 다 우주의 그림자요, 우주의 반영입니다. 외계인들이 살고 있는 양상들을 우리가 궁구(窮究)하고 추구하니까 그 양상들이 지구에 투영이 되어서 과학이 닮아나가는 겁니다. 또 중요한 사실이 내가 외계인들과 교신을 하게 되면 교신이라는 것은 파동이고, 파동이라는 것은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타고 영혼 세계의 정보가 흘러 들어오지 않습니까? 길이라는 게, 전파라는 게 오고 가는 것이니까 쌍방향으로, 한 방향으로 하나의 라인을 타고 들어오는 거니까요. 앞으로 점점 불교가 가면 갈수록 세계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경《화엄경》에는 너희들은 외계인이다 하셨습니다. 여기 사는 것은 육체의 왕국이고 전체 우주를 관장하는 무지막지한 지구적인 차원으로 발전을 합니다. 아마 핸드폰이 발전하여 전 우주와 교신하는 무슨 핸드폰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것 이전에 우린 지금도 외계와 계속 교신하고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차원의 왕국을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왜 물질을 이기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왜 번뇌를 이기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달리 그런 게 아닙니다. 물질의 세계에 마음을 두면 차원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아집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자기가 집착하는 조그마한 우주에 갇혀서 외계를 모릅니다. 거대한 외계와 내가 하나로 호흡하고 있는 생명체임을 모릅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얘기이지만 이사무애, 사사무애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강의할 때 화엄의 이사무애, 사사무애가 무척 어렵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외계적인 차원으로 풀면 하나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사사무애는 뭐냐? 허공이라고 하는 이 허공에는 수도 없이 많은 억천만 차원의 존재들이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고, 서로 모른 채로 같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눈이 뜨인 자들은 무한대한 차원의 존재들을 다 알고, 다 보고 그들과 교신을 나누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도의 차원으로 들어가면 좀 더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나는 외계인이다’ 선언을 하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이 외계와 교신을 하는 비결입니다. 외계 정보가 흘러 들러오는 통로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선하고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항상 하나라고 말씀하셨듯이 모든 것을 항상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우주를 하나로 생각합니다. 부처님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것 네 것 따지고, 내 편 네 편 따지고, 갈라져 있으면 교신이 안되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 사람의 주파수는 대단히 저주파입니다. 멀리 못가니까, 갈라져 있으니까 차원이 낮습니다. 조그마한 우주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이고 바보인 겁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장은 돈 많이 벌고, 명예가 높아가는 게 아닙니다. 물질에 대한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의 편견과 아집, 오만, 이런 것들을 저부 다 내려놓는 게 참된 성장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어도 진짜 순수한 마음으로 마음을 텅 비우고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세상에 사시면서도 점수가 매겨지고 있습니다. "저놈은 나쁜 놈이구나. 저놈은 배신자이구나." ‘저 사람은 사람들에게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구나!" 다 압니다. 명확한 사실이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도 여러분들이 저승에서 맺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여러분을 가호하고 여러분과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영혼들의 질이 다릅니다. 갈고 닦은 것만큼 다 다릅니다. 여러분은 지구의 주민이면서 부처님 왕국의 주민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 살면서도 만약에 죽으면 그 길로 곧바로 가는 겁니다. 여기서 내가 교류를 맺고 있는 그 나라로 금방 가버리는데 그곳이 지옥일 수도 있고 아귀일 수도 있습니다. 아귀라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고통스러운 귀신들입니다. 사람들은 개나 송아지나 이런 것들을 싫어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많이 진보된 영혼들입니다. 사람은 아니지만 아귀들보다는 낫고 지옥 중생들보다는 덜 고통스럽습니다. 지옥 아귀를 억 천만년 거쳐서 축생으로 오는 겁니다. 《능엄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비우고 버리라고 하고, 하나가 되라고 하고, 하나가 되면 될수록 교신의 영역이 넓어지고, 나의 마음으로 쏘는 염파(簾波)가 그만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7. 강력한 신심은 부처님의 힘
한 나라의 왕이 되거나, 그 나라의 모든 주민들에게 그 사람의 공덕이 힘입은 삼계도사 사생자부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유명해지고 유명해지지 않고, 돈을 많이 벌고 벌지 못하고 이것이 예사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부처님의 분신들이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외계 왕국의 주민들이니까 누구도 하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소중한 것만큼 그 사람도 소중하니까요. 불교는 그렇게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나를 비우라, 나를 버려라, 물질을 이기라, 공덕을 지으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는 점점 고차원적인 세계와 지금 여기서 교신을 할 수 있고, 내 마음이 고차원적인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 내가 이 땅을 등지면 다시 그들과 연결되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 육신의 왕국 사바세계의 주민이기도 하지만 부처님 왕국의 주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측면이 이 몸과 마음 가운데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이 사바세계는 한계가 있지만 즉 육신이라는 세계는 한계가 있지만, 부처님세계는 한계가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내 몸과 마음 가운데는 육신의 왕국에 복종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 왕국의 주민이기 때문에 철두철미하게 감시당하고 감독 당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핀돌라 존자의 걸식얘기 아시지요? 부처님 제자들은 바루를 들고 공양을 나가지 않습니까? 어느 날 핀돌라 존자가 걸식을 나갔는데 공양을 준다고 주는데, 문둥병 환자가 공양을 주다가 손가락이 뚝 떨어졌습니다. 바루통에 문둥병 환자의 뭉그러진 손가락이 떨어져 있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기가 막힌 일이지요. 핀돌라가 "문둥병은 없다. 부처님뿐이다." 이러고는 먹어 버렸어요. 문둥병에 걸리겠어요? 안 걸리겠어요? 안 걸리지요. 바루를 가지고 걸식을 다니다 보면 기가 막힌 게 많지요. 부처님뿐입니다. 문둥병은 없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유배자들이랍니다.
탁월한 현자들은 하나 없이 우주의식의 소산입니다. 강력한 신심이라거나 강력한 믿음이 기적적인 효과를 내는 이유가 이 우주가 도와서 그렇습니다. 우주의 진리이기 때문에 "저 녀석을 내려 보냈더니 정말로 나의 뜻대로 열심히 살고 있구나. 우주의 왕국의 주인답게 열심히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해서 불법을 전달하고 갈고 닦고 있구나." 계속 부처님께서 힘으로 밀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대로 대우주의 에너지는 그의 수행의 정도 즉 그가 우주의식을 얼마나 자각했는가의 정도에 따라서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세계인의 의식과 우주의식이 강화됩니다. ‘눈 뜨고 사는 동안에 정말로 내가 이 땅에 이용자로 왔다. 감독 당하고 감시당하고 있으니까 정말 잘 살아야 되겠다.’ 이런 의식이 투철해야 됩니다.
항상 마음 가운데 ‘나는 외계인이다, 우주의식을 머금고 살고 있다. 참 나와 만나야 된다. 항상 부처님과 만나야겠다.’ 이 의식을 투철히 가지고 살으십시오. 그 의식이 바로 이 땅에 우리가 와서 사는 근본적인 목적입니다. 나는 외계로 끊임없이 먹고 산다, 부처님을 품고 산다, 열심히 정진하는 그 길이 정말 내가 이 우주를 가슴에 안는 길임을 아시고 열심히 기도하시고, 부처님과 만나고 다른 것과는 만나지 마십시오.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이 구족하신 분 아닙니까? 부처님은 하나도 아낌이 없으십니다. 부처님은 절대로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부처님과 친하기만 하면 지혜와 복덕 구족한데 무엇이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그저 부처님하고만 가까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