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와 엽총 (외 1편)
주민현
오늘은 나의 이란인 친구와
나란히 앉아 할랄푸드를 먹는다
그녀는 히잡을 두르고 있고
나는 반바지 위에 긴 치마를 입고
우리는 함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암사자는 물어 죽인 영양을 먹다가
뱃속의 죽은 새끼를 보자
새끼를 옮겨 풀과 흙을 덮어주고 있다
마치 생각이 있다는 듯
생각이 있다는 건
총 밖으로 새가 날아오른다는 건
오늘 친구와 나는 나란히 앉아 피를 흘리고
우리는 가슴이 있어서 여자라 불린다
마치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그녀는 검은 히잡을 두르고 있고
철새를 사냥하듯이 총을 들고 숲을 뒤졌다고 했다
그녀의 친구가 옆집 남자와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흑백사진 속에선 무엇이든
흰 눈발의 검은 얼룩처럼 보이고
흰 얼룩도 긴 적막도
발사된 뒤엔 모두 사라지는 소리지만
그녀의 히잡은 검고
내 치마는 희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 세계에 허락된 음식을 먹는다
우리는 나뭇가지로 딱총을 만들어
나뭇잎들을 맞히기 시작하는데
떨어지는 나뭇잎은 날아오르는 새들 같고
우리는 생각 없이 웃는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내 발바닥엔 글씨가 적히기 시작한다
* 이란에서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노래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원피스에 대한 이해
원피스는 창문을 가리는 커튼이 될 수 있고
이목구비를 지우는 수건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잠들기 직전까지 신문을 본다
거기에 인생의 중대한 의미라도 담겼다는 듯
그런 건 없더라도 해 지는 저녁이면 뭔가를 기대하게 되고
배부르게 먹고 난 뒤엔 그런 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게 된다
노래를 부르던 윗집 여자가 이윽고 조용해질 때까지
우리 둘뿐인 노란 방에서
고독은 끊임없이 흘러 우리를 연결한다
햇빛처럼, 전깃불처럼
오 일 만에 발견된 여자는 목이 긴 구두를 신고 있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걸어 나가기 위함이라는 듯…
지금은 도주 중인 그 여자 애인과 당신은 조금 닮았다
우리도 종종 다정하거나 난폭하게 지퍼를 내리고 폭주기관차처럼 깊어지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땐 버려진 개의 눈빛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전깃불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볼까,
환한 빛 아래선 아무래도 서로를 잘 쳐다볼 수 없고
어두워져야 하는 순간에도 불이 들어올 땐 조금씩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어서,
깜박거리는 조명 아래 나는 원피스를 벗고, 당신은 여전히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럴 때 원피스는 고장 난 창문, 삐걱거리는 슬픔, 얼룩덜룩한 반점 따위를 가리는 커튼이 될 수 있고,
어쩌다 흐른 땀이나 눈물을 몰래 닦는 수건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신문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원피스를 덮고 잠이 들고,
그런 저녁이면 이대로 영화가 끝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현대시》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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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현 / 1989년 서울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한국경제〉신춘문예에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