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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제는 고정날짜대로가 아니고 기념하는 유월절대체
규례인 성만찬
출 12:14 -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 13:3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
유월절의 역사적인 배경을 통하여 가르치는 진리와, 유월절에 내포된 표상적인 구속의 경륜을 모두 집합하여볼 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인류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 유월절은 참된 복음이다. 유월절 가운데는 거듭남의 비밀과 참된 성화의 진리가 들어 있는 완전한 복음이다.
이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
이 시대에 가장 큰 문제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의 이론은 있으나 칭의(거듭남)의 경험, 중생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니고데모처럼 도덕적으로 완전해 보이는 도덕가들은 많이 있지만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으며 부자 법관처럼 율법을 진실하게 지키는 재림교인들은 있으나 진정한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원고 148, 1897 -“거듭남은 우리 시대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귀한 경험이다. 이것이 교회 안에 어려운 일이 그토록 많은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성화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침례를 받았지만 산 채로 장례를 치루었다.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생명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화잇주석, 롬 6:1-4
애굽을 떠나라
거듭남이 없는 이유는 유월절의 영적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유월절을 지킨 목적이 무엇인가?
죽음의 땅(애굽)을 벗어나 생명의 땅 가나안을 가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들이 애굽을 포기 할 마음이 없다면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애굽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을 잡고 유월절을 지켰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세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경험을 의미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월절의 의미를 안다하면서도 애굽을 떠나지는 않고 있다.
바로 왕이 말한 대로 애굽에서 매년절기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출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세상을 포기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직 거듭남의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매인이 어린양을 취해야 함
출 12:3 -“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믿지만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경험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가?
그리스도께서 나 혼자만을 위해서도 죽으셨을까?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한다.
나의 죄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라고 절규 하셨다.
이 사실이 느껴질 때 마음이 거듭나게 될 것이다.
나만을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도바울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인에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로 인하여 말로 포현할 수 없는 감사와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새 마음 새로운 정신이 창조되고 거듭나게 될 것이다.
실물 194,195 - “한 영혼의 가치를 누가 능히 평가할 수 있으리요? 만일 그대가 그 가치를 알고자 하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그 핏방울과 같은 땀을 흘리시면서 큰 고민을 당하시는 것을 주목하여 보라. … 그리스도께서는 다만 한 죄인만을 위하여서라도 당신의 목숨을 버렸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가면 거기서 그대는 한 영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화잇주석, 눅 15:8-10).”
실물, 187 -“ 목자는 한 마리의 양, 곧 가장 적은 숫자의 양을 찾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러므로 비록 잃어버린 영혼이 단 한 사람뿐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한 영혼을 위하여 죽으셨을 것이다.”
실물, 197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면 온 하늘은 즐거워하고 스랍과 그룹들은 금 거문고를 타며 인간 자녀들에게 베푸신 자비와 인자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양을 돌린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7월 24일. -“그대가 구속의 대가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대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수께서 그대를 위하여 갈바리의 거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느낄 때, 그분의 죽으심은 그대를 위하여 죄를 그치게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가로 그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대의 품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음을 믿는 지적인 사고를 가질 때, 그대는 예수를 믿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고기를 굽고 삶거나 생으로 먹지 말라.
출 12: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고기는 굽고-삶거나 생으로 먹지 말라
쓴 나물과 함께 고기를 먹는 경험이 필요하다.
고기는 구워질 때 비틀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죄 값을 갚으시기 위하여 고통을 당하시는 모습을 연상시키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2000년 전으로 돌아가 온 몸에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시기 위하여 온몸을 비트시면서 고통을 참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의 눈으로 쳐다보아야 한다.
빌라도의 뜰에서 로마병정의 무자비한 채찍에 살점이 찢기는 고통을 온몸을 움트시면서 참으시는 그분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쉬운 방법으로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가장 가혹한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어내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고기는 반드시 구워먹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망, 743-745 -“사형장에 도착해서 죄수들을 형틀에 묶었다. 두 강도는 그들을 십자가에 붙들어 매는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으나 예수께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셨다. …그녀는 십자가에 눌려 졸도하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녀는 예수님의 손이 십자가 위에 펴진 것을 보았다. 망치와 못을 가져왔다. 굵은 못이 부드러운 살을 뚫고 들어갈 때에 비탄에 빠진 제자들은 거의 실신 상태에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그 참혹한 장면으로부터 모셔갔다. 구주께서는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얼굴은 침착하고 평온했으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고 기도하셨다. …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마자 힘센 사람들이 십자가를 들어 준비된 구덩이에 난폭하게 던져 세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가장 격심한 고통을 주었다.”
놀라운 은혜 172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엄청난 값이 지불되었는가! 십자가를 보라! 그곳에 놀라우신 희생자를 보라!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의 몸에 우리의 죄를 지셨다. 그 고통, 그 번민이 그대의 구속의 값이다 ”(화잇주석, 요 19:30)
구운 고기와 함께 먹는 쓴 나물과 무교병
나의 죄 값을 갚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고통당하시는 그분의 고통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의 죄가 심히 혐오스럽고 쓰게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죄의 형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죄의 극악함을 인하여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쓴 나물과 함께 고기를 먹는 경험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과 다시는 주님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누룩 없이 구운 무교병을 먹는 경험이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147 - “죄로 영혼을 더럽히기보다는 차라리 궁핍과 비난과 친구들과의 분리와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택하라. 불명예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겠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이 모두는 거듭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경험들이다.
유월절 가운데 이런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고대 의인들도 유월절을 지키는 참된 이유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기념하라
출 12: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양을 잡아 피를 집 문인방과 좌우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우리의 마음에 바르고 손과 발에 발라야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죽으셨지만 또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화잇주석, 출 12:1-14“희생 제물로 바쳐진 새끼양은 우리들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말한다. 한편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는 넉넉치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피를 인방과 좌우설주에 바르는 목적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보혈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이스라엘백성들의 생애를 보라
홍해를 건넌 후 구원의 기쁨을 이기지 못해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삼일 후에 이 모든 기쁨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유월절양의 피를 왜 인방과 설주에 발라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매년 유월절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잊어버림, 이것이 성화의 생애를 살아가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이다.
잊어버림, 이것이 모든 시험과 시련에서 넘어지는 이유이다.
목사, 31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모든 전진의 발걸음을 되돌아보며 과거를 회고할 때,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바라볼 때, 나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되며, 인도자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이마와 손과 발에 발라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생애를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이마(인방)에 뿌려진 양의 피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게 해줄 것이며
손과 발(문좌우설주)에 뿌려진 피는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켜 줄 것이다.
이것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화의 생애이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이것이 유월절이 가르쳐주는 성화의 방법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생애가 바로 성화의 생애이다.
롬 1:17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은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이마(마음)와 손과 발에 바르고 살아가는 생애를 말한다. 그러므로 성화는 칭의(거듭남)와 함께 시작되며 그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자라나게 된다.
화잇주석, 살전 4:3 -“칭의는 양심이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되어 성화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놓여지는 것을 말한다(원고 113, 1902).”
유월절은 성만찬예식으로 기념 됨
유월절의 의의는 침례예식과 성만찬예식으로 기념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고 예표 하는 것으로 제정 되었다.
화잇주석, 막 16:1,2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그는 주의 만찬 의식으로 세상 죄를 위하여 찢기시는 그의 몸과 흘리실 피를 기념하는 의식을 제정하셨다. 그의 말씀에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재림)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회개한 신자로서 회심에 필요한 계단을 밟는 사람은 침례 예식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지냄과 부활을 기념한다”
원고 27½, 1900년 -“ 침례식과 성만찬 예식은 두 개의 큰 기념비로서 하나는 교회 안에서 행하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가지 예식 위에 참된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 놓으셨다.”전도, 273
”화잇주석, 출 12:1-14“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모형적이요, 애굽에서 구원받은 과거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의 속박에서 석방하시고자 하는 더 큰 구원(초림 및 재림- 편집자주))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소망, 659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교권, 302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이것은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이 소망을 생생하게 간직하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
유월절기의 변화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두 목적을 가지가 있었다.
첫째 : 이스라엘백성들의 민족적 구원(애굽)을 기념하기 위함.
둘째 : 장차오실 그리스도의 큰 구원(초림 및 재림)을 예표하시기 위함.
리뷰 앤 헤랄드, 1897년 6월 22일”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대신에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심으로, 그것으로 인류를 위한 당신의 크신 희생을 기념하는 표로서 당신의 교회에게 주셨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야말로 두 개의 제도 곧 두 개의 큰 축제 사이에 있는 전환점을 가리키는 말씀이었다. 한 가지 제도는 영원히 폐하여 질 것이었고, 주님께서 방금 제정하신 또 하나의 다른 제도는 먼저 것을 대신하는 동시에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표로서 모든 시대를 통해서 계속해야 할 것이었다.“전도, 273
우리는 이제 유월절기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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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민족이 아닌 우리들에게는 첫 번째의 목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유대력으로 1월14일, 유월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민족이 구원받은 날이다.
그러므로 유대민족적인 차원에서는 이스라엘민족이 존재하는 동안 지킬 가치가 있는 절기(축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민족적으로 구원받은 날이 유월절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1945년 8월15일 일본에서 해방되어 그 날을 해방 기념일로 지키는 것과 같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존속하는 동안 기념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민족이 8월15일 해방일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처럼 유대민족의 해방 기념일인 유월절기를 우리가 지킬 이유는 없다.
○. 유월절에 유대민족이 구원받은 것은 영적으로 죄악세상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단체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민족(단체)적 구원을 상징하는 유월절기(날자)와는 관련이 없다. 만약 구원을 기념하기 원한다면 개인적인 구원의 날이 되는 침례일에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리고 기념하는 것이 옳다.
2.)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유대민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신 큰 구원을 이루셨다. 이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만찬 예식으로 주께서 오실 때까지 기념케 하셨다.
○.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양의 피를 문 인방 좌우설주에 바름, 고기를 먹음, 등의 모든 유월절의 의미가 성만찬예식의 떡과 포도즙에 더욱 확실하게 나타나있다.
○.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3.) 유월절의 가장 큰 의미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표하고 예언하신 것이다.
○. 이 예언은 2천년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유월절기를 지금도 지켜야 한다면 그리스도가 다시오셔셔 죽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 그러므로 유월절기는 반드시 페하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한번 죽으심으로 충분하고 확실하게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절기를 계속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구속이 불완전하다는 주장이 되며 구속의 경륜을 망치게 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8, 7:27, 9:26을 보라)
○. 모세가 바위를 두 번친 경우를 생각하라. 구속의 경륜을 잘못 나타낸 것이다 바위를 한번 치는 것으로 족하였다. 두 번 치는 것은 그리스도가 두 번 죽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절기를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부조와 선지자, 411 -“모세가 친 반석은 그리스도의 표상이었고 이 상징을 통하여 가장 귀중하고 신령한 진리가 가르쳐졌다. 생명을 주는 물이 모세가 친 반석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하나님에게 맞으며”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사 53:4, 5) 상하신 그리스도께로부터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구원의 시냇물이 흐른다. 반석이 한 번 침을 당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히 9:28)실 것이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두 번 희생당하지 않으실 것이었다.”
인류, 95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이 절기를 지키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그 후로는 영원히 다시 지킬 수 없는 마지막 유월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양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하여 가르쳐 주기 위하여 죽어야 했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위하여 죽음을 당하면, 그분의 죽음을 나타내는 어린양이 다시 죽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4.) 유월절은 참 메시야와 거짓메시야를 구분하는 중요한 증거가 됨
○. 유월절기는 메시야에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참 메시야와 거짓메시야를 구별할 수 있었다.
1. 예수님이 잡히시는 날자, -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하되” (출 12:3)” 삼일 전 어린양이 준비됨
2. 죽으실 날자. -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출 12:6
3. 죽으실 시간. -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출 12:6
4. 어떻게 죽으실 것 -“ 뼈도 꺾지 말지며”출 12:46
5. 죄없는 생애를 사실 것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출 12:8
○. 예수님은 참으로 유월절 삼일전(1월10일)부터 죽음을 예비하셨고 1월14일 유월절에 죽으셨으며 그 운명시간 까지도 해질 때에 돌아가셨으며 하나의 뼈도 꺽이우지 않으신(강도들은 뼈가 꺽이움)채 죄 없는 생애의 모본을 남기시므로 구속의 경륜을 성취시키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야 말로 참 메시야가 아니신가? 또 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유월절기(날자)를 기다리거나 고집할 이유가 없다. 이미 그날짜대로 제물되시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또 그날짜에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성만찬 예식은 자주 행해져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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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 예식은 이제 절기의 날자와 상관없이 무시로 자주 행하여져야 한다. 유월절의 참된 의의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은 자주할수록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시면 결코 시기와 날자를 연관하여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고 화잇 선지자도 절기에 성만찬을 행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초기, 116 -“세족 예식과 성찬 예식은 더욱 자주 행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모본을 보이시고 당신이 행하신 것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전도법, 276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고 받아들일 모든 영혼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 거룩한 희생을 우리에게 기억케 하시기 위하여 성만찬 예식을 자주 기념하도록 계획하셨다. ”
화잇 부인은 성만찬 예식을 유월절과 마찬가지로 일 년에 한번만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난 후에 다음과 같은 계시를 기록하셨다.
자서전, 111 -“우리가 주님의 희생의 상징물을 차려 놓고 그분의 고난을 기념하는 예식을 행하고자 할 때에 그 형제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자기는 우가 거행
하고자 하는 예식에 대한 믿음이 없으며, 성찬 예식은 유월절의 계승이므로 일 년에 한 번씩만 거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묘한 의견의 불일치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많은 오류들이 진리인 양 제시되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시는 것 같았다. 너무도 큰 슬픔이 내 심령을 짓눌러서 나는 그 짐에 눌려 기절하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내가 죽은 줄로 알고 두려워하였다. 베이츠씨와 체임벌린씨와 거니씨와 나의 남편이 나를 위해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나는 소생되었다.
그 때에 하늘의 빛이 내게 임했고, 나는 곧 세상 사물에 대한 의식을 잃었다. 나를 수행하는 천사가 그들이 주장하는 오류 중 몇 가지를 보여주었으며, 또한 그들의 오류들과 대조되는 진리를 보여 주었다. 그들이 성경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잡다한 견해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의견을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았으며, 또한 그들에게 오류를 버리고 세째 천사의 기별의 진리에로 연합하라고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의 집회는 영광스럽게 끝났고 진리는 승리하였다.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의 오류를 버리고 세째 천사의 기별에 연합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축복을 내리사 믿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되었다.”
성만찬예식은 언제까지 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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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희생은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주께서 오실 때가지 기념되고 지켜져야 한다.
고전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소망, 652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신 바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영광으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의식은 기념되어야 한다.”
화잇주석, 막 16:1,2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그는 주의 만찬 의식으로 세상 죄를 위하여 찢기시는 그의 몸과 흘리실 피를 기념하는 의식을 제정하셨다. 그의 말씀에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재림)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회개한 신자로서 회심에 필요한 계단을 밟는 사람은 침례 예식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지냄과 부활을 기념한다”
유월절사건은 영원한 세월을 통하여 기념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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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희생은 영원한 세월을 통하여 기념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제 인간의 예식이나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 고귀하신 몸에 친히 그 기념을 남기실 것이다.
슥 13:6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쟁투, 674 -“모든 저주의 흔적은 일소된다. … 오직 한 가지 기념물은 남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십자가의 표를 영원히 언제나 간직하실 것이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와 손발에는 죄가 빚어놓은 잔인한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 …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붉은 피를 흘린 그 옆구리는 구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권능이 그 속에 감”추인 곳이다. … 갈바리에서 상한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주님께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능력을 말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영원토록 간직하실 것이다. 온 우주에 저주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그분의 이마와 옆구리와 손과 발에 유월절의 참된 흔적을 가지신채 영원한 세월을 지나게 될 것이다.
모든 구원받은 지상의 모든 영혼들과 온 우주의 거민들은 이 흔적을 보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예언이 성취된 표상적 절기는 날이 아닌 실상이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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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예언은 성취된 이후에는 그 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죽으신 날, 부활하신 날, 승천하신 날 등 어느 한날도 기억하도록 하 거나 기념하여 지키도록 명하신 적이 없다. 왜냐하면 태어나심,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재림 등 그 자체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이요 중요한 복음이지만 그 날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단은 항상 진리의 실체에서 눈을 돌리도록 하기 위하여 중요하지 않는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인간들을 유혹하여 왔다. 천주교 개신교회들을 보라 성탄일, 부활절,등 쓸데없는 날들을 기념하면서 그날들을 죄악을 조장하는 범죄의 날로 만들었다.
또 하나의 실례를 들면 계란이 병아리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껍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병아리가 태어난 이후 그 껍질은 무용한 것과 같다. 그 누구도 병아리가 태어난 이후 그 껍질은 보관하거나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희생을 상징하는 유월절기는 표상 그대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이제 그날은 병아리가 나온 계란껍질과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병아리가 태어나기 전에는 껍질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처럼 유월절기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한 날이므로 예수님이 그날 그 시간에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를 참된 메시야라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취되기 까지는 그 절기(날)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증거가 되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절기와 관련된 예언의신의 말씀
영문시조, 1900년 5월 16일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지켜온 거국적(擧國的)인 축제를 대신하여 발을 씻는 의식과 성만찬 예식의 기념적인 의식을 제정하심으로써 모든 나라에 있는 당신의 추종자들이 각 시대를 통하여 이 의식들을 거행케 하기 위함이었다.”전도, 275
리뷰 앤 헤랄드, 1897년 6월 22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즙을 나누시는 이 마지막 행위로써 새 언약을 통하여 저들의 구주로서 저들에게 서약하셨는데, …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고 받아들일 모든 영혼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 거룩한 희생을 우리에게 기억케 하시기 위하여 성만찬 예식을 자주 기념하도록 계획하셨다. 전도, 276 ”
화잇주석, 레 23 -“그달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켰는데 그 엄숙하고 감명적인 의식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고 장차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구세주께서 갈바리에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을 때에 유월절의 의의는 끝나고 성만찬 제도가 유월절이 예표하였던 동일한 사건의 기념으로 제정되었다.
화잇주석, 요 13:13-17“ 그가 이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고 나면 사천 년 동안 바쳐온 희생 제도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다. 유대 백성들이 지켜 온 국가적 축제 대신에, 그분은 세족 예식과 성찬식으로 각 시대를 통하여 모든 나라에서 그분의 추종자들이 지켜야 될 기념 예배 의식을 제정하셨다. 이 예식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행동을 되풀이 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참된 예배는 이기심 없는 봉사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도록 하기 위함이다(원고 43, 1897). ”
성만찬예식을 거행할 권세를 교회가 받음,
리뷰 앤 헤랄드, 1897년 6월 22일” -“교회에서 행하는 상징적인 행사들은 단순하고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하며 그러한 상징들이 나타내는 진리들은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 대신에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심으로, 그것으로 인류를 위한 당신의 크신 희생을 기념하는 표로서 당신의 교회에게 주셨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말씀하셨다.“전도, 273
바울은 유월절을 유대인 전도기회로 삼음
행적, 389 -“바울은 유월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를 심히 바랐는데, 이는 절기에 참석하기 위하여 세계 각처에서 올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가지고자 함이었다”
바울은 유대민족의 축제인 유월절을 함께 기뻐함
행적, 390 -“바울은 유월절을 지키려고 빌립보에 머물렀다. 누가만 그와 함께 남아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드로아로 건너가 그 곳에서 바울을 기다렸다. 빌립보 사람들은 사도가 회심시킨 자들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는 8일간의 절기 동안에 그들과 평화스럽고 행복한 교제를 나누었다.”
공개된 죄인들 외에 이 예식에 참여하게 하라
소망, 656 -“그리스도의 모본은 성만찬 예식에 사람들을 제외하는 것을 금하신다. 공개된 죄에 대하여 죄지은 자를 제외하는 것이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가르치신다(고전 5:2). 그러나 이 이상은 아무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회에 누구를 참석하게 할 것이냐는 것을 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의문 때문이다. 누가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누가 밀에서 가라지를 골라낼 수 있겠는가?”
성만찬예식은 영적능력은 받는 예식임
교권, 302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큰 희생을 생각할 때에 그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적 생애와 같아지게 된다. 그 사람은 모든 성만찬 예식 때마다 영적 능력을 받을 것이다. 이 예식은 신자로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산 연결을 이루고 그리하여 하나님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한다.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이것은 의존적인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연결을 이룬다.”
성만찬예식은 세족의식이 병행되어야 함
전도, 275 -“ 현대 이스라엘이 성만찬 예식을 거행할 때 주님의 죽으심을 표상하는 예식에 참례하기에 앞서서 세족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