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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의 사리사욕과 부정축재, 황금만능주의의 병폐가 체제 파괴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일례로 남베트남 대통령 티우는 패망 당시 철수하는 미군을 향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미군이 마련한 군용기에 몸을 실었다.
티우를 수행한 미국의 CIA 요원은 그의 트렁크를 옮길 때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금덩이가 한쪽으로 쏠릴 때 나는 소리였다. 미군기는 티우의 금괴를 싣고 첫 망명지인 대만으로 날았다. 티우는 이란의 팔레비나 필리핀의 마르코스에 앞서 스위스 비밀은행계좌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전면 철수 하자 사이공에는 100여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해 베트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이들은 베트남 전쟁은 민족 간 내전으로 미국 등 외세가 내정 간섭 할 문제가 아니라면서 미국을 고립시켰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수많은 간첩을 파견, 동조자를 포섭하고 각 분야에 간첩을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하는 등 정부가 힘을 집중시키기 못하도록 했다.
특히 목사, 승려, 학생, 직업적 좌경인사, 반전운동, 인도주의 운동 등 가능한 모든 운동체가 총동원되어 티우 정권 타도를 외쳤다.
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5만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1967년 치러진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도 대표적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면서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
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종교단체의 부패척결운동과 反美·反戰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탄압과 차별, 학대와 폭정이 자행되었고 전국 각처에 재교육 수용소가 설치되어 적대계층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잡아 가두고 공안경찰을 증원(增員)하여 국민의 일상생활을 감시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통제했다.
특히 가혹한 육체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규정하여 "부모의 흘린 피와 땀, 자식이 흘린 피와 땀이 합쳐야 나라가 번영한다"고 선전하면서 무자비(無慈悲)한 노동을 강요했다.
논과 밭은 국유화되고 영농은 철저한 3모작을, 일반 국민은 헌금을 강요받았으며 돈이 없는 자는 노력봉사를 해야만 했다. 노동자는 한 달에 15kg의 쌀을 배급받아 생활해야 했고, 전쟁부채 상환비, 전비(戰費)기금을 내야 했다.
먹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고 수중에 돈이 없게 하여 국민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철저한 국민재교육을 시행했다. 또한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종래 부를 축척한 모든 것을 부정해 자살을 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공산주의자들의 국민 재교육은 "공무원(公務員)은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경찰(警察) 및 정보요원은 제국주의의 도구(道具)로, 군인(軍人)은 무력으로 총을 가지고 대항했던 사람으로, 문예(文藝)인은 민족정신을 교란시킨 사람으로, 종교인(宗敎人)은 국민을 유혹하여 미신에 빠지게 하고 우매하게 만든 사람으로, 자본가(資本家)는 국민을 착취해 강압적 노동을 시켜 반혁명에 앞장을 섰으며 국민에게 피의 부채를 지고 있다"는 죄를 물어 재교육을 시켰다.
이와 함께 "우리 공산당은 반역자들을 재교육 과정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할 선량한 국민으로 개조하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선도할 것이며 노동을 경험하게 하여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길을 열어준다"라고 선전했다.
한 수용소에 2.000명 정도 수용했으며 성(省) 별로 1개 이상이 있고 사이공 주변 등 도시 주변에는 대상자가 많음으로 여러 곳에 설치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밀림지대에 위치시켜 탈출을 방지하고, 나무를 벌목하여 수용소를 짓고 개간하면서 식량은 월 9kg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도록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됐던 땅굴의 모습.
수용소 방침 자체가 체형(體刑) 및 학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작업 실적에 따라서 수용소장의 재량으로 급식의 양을 결정했다.
따라서 제거해 버리고 싶은 적대계층의 사람은 굳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더라도 제거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었다.
가족이나 다른 국민들, 외국(外國)의 항의를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을 강구해 냈다. 수용소 기간에는 면회가 일체 사절되었고, 편지도 1년 또는 2년에 한번 보낼 수 있었으며 의료혜택은 전무하여 병에 걸리면 바로 죽는 것이었다.
말라리아 등의 열병과 뱀 전갈의 독충과 영양실조 및 미래에 대한 포기는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혁명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제거했다. 즉결처분된 사람들을 포함, 그 인원은 최소 30만에서 최대 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정확한 통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군 출신의 경우 하사관 및 초급장교까지 수용소로 보냈으며, 공무원 종교인 경제인 월남 정부 협조자와 그 가족까지를 포함하면 최소한 100만 명 이상의 인원이 재교육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공산치하에서 살기를 거부한 수많은 남부 베트남인들은 즉각 해외 탈출을 시도했다.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망명길에 올랐던 1세대 탈출자들은 미국 등 서방으로 이주하여 비교적 쉽게 그곳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호지명.
그러나 1976년부터 탈출한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안전한 이주 및 재정착의 보장 없이 무작정 국경을 넘거나, 배를 타고 공산베트남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동남아 일대의 바다를 정처 없이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이 바로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 불리는 베트남 난민이다.
1976년부터 1992년 말까지 동남아지역으로 탈출한 사람들의 수는 총 792,893명에 이르렀다. 1979년부터 1992년 말까지 동남아국가들의 난민 수용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난민자격을 인정받아 서방 등 제3국에 정착한 난민 수는 438,436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일은 “한반도 적화(赤化)통일 달성 시 1천만 명은 이민 갈 것이고, 2천만 명은 숙청될 것이며, 남은 2천만 명과 북한 2천만 명으로 공산국가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공산집단의 이 같은 주장을 절대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운명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에서 조종사, 갱도병(땅굴파기 병사) 등으로 참전해 한국군과 미군을 공격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강성대국’ 진입시기인 2012년부터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2015년을 ‘남조선 혁명의 성숙기’로 보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에 앞서 북한에 의한 남한 급변사태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다. 군사 안보전략은 반드시 비관론적 가정에 근거해야 한다. 근거없는 낙관론을 배격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철통같은 총력안보태세를 다짐해야 할 때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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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무섭다 정말 우째 이런일이 ?
日本赤軍파 日本軍國主議식 통일 획책 南北 동포확인 하고 赤軍파 추적 색출하여 놓고 있다./日本간살스럽고 교활한 방법으로 南北 전쟁 충동질한 후 中共하고 美國 전쟁하게 만든후 中共비밀협동으로 美國을 전쟁에서 越南전같이 만들려 했다. 南北 정규군 헤체상태...???나치 독일계 미국인 미국 부시父子 대통령은 홀려서 협력자 만들어 놓고 美軍 철수 國民 몰래 시도했다./일본 달러 벌기위하여 강대국 비위맞추고 창녀외교 왔다갔다 양다리 걸치기 외교 사기꾼 외교하고 있다. 일본하고 무역할때 현금달러로 무역결재 해야 한다./일본 통상 장사치 외교에는 현금달러 거래가 좋다.전자 신용장으로 전자사기 신용장 사용하다 캉통 소리 ??
왜구 구주열도 朝鮮의 범죄자 유배시킨 범죄섬 이였다. 朝鮮에서 사기꾼 살인 강간 범죄자 유배섬 일본본섬은 母계사회 여자가 이놈 저놈 붙어서 아들 나면 姓氏각각 女子 나면 창녀 딸 팔아 장사 밑천하는 개 犬 주인 아들 죽이는 도사犬 최후애 아들 에게 母는 살해 당하고 氏다른 형제는 母하고 함쩨 죽든지 도망. /왜놈 수작 은 광견병 몽둥이가 약 /암개犬이 이놈개犬 저놈개犬으로 生産한 개犬 母계 가족 ///일본 휴전선남 일본정유회사 비축 석유 남아 돌고 있다. 남북 전쟁후 중공 미국하고 전쟁확전되면 석유장사 할려 했다. 그런데 남북 전쟁 없다하니까? 천안함 연평폭격 충동질 짜마추기 방송 그것도 실패.
日本에 보고되겠지...??? 休戰線 南쪽 日本범죄자 장애인 훈민정음을 한글이라고 교육시켜 추방 이주시키고 있다.한마디로 쓰레기장 만들어 놓았다. 南北戰爭 하면 南北 국민에게 南에서는 北에서 北에서는 南에서 독가스살포한다 하고. 일본놈들이 독가스 살포하여 大漢國民 모두죽이고 일본놈들 이주시켜 日本犬國土 만들려고 하였다.
미국 정부가 바보입니까? 김대중 정부 들어 선 다음 초기 월례 주한미대사관 고위관리의 국정원 브리핑에서 아주 낮은 수준의 정보만 제공하고 거짓 정보를 끼워 넣었는데 한국정부가 얻은 정보에 대한 북한에서의 즉각 반응을 확인하고는 그 이후로는 월례브리핑이 증단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부가 바보입니까? 그리고 현재 한국정부를 비롯해 많은 기관에 친북좌파성향의 관리도 많고, 특히 국회에도 친북좌파 의원들이 버젓이 합법적인 친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고 있는 중 아닙니까?
남북 일본적군파 통치에 미군에 허위정보 제공하여 박정희 미군을 가지놀아 습니다. 김대중 전라도 빨갱이 전두환 경상도 전라도 오가면서 지리산 빨치산 둘다 전라북도 이리 김제군 거주하고 일제강점기때 동무로 활동하든 일본적군파 이다. 현재 그들 동무 졸개들 살아있는자 많다. 근로복지공사 철도공사(김대중(대희) 해방후 이리기관차 사무소 기관조수 출신) 농촌공사 구석구석 부동산 투기사업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모두 일본적군파 소굴이다. 일본 군국주의 동북아 허위정보 해방후 가지놀았다. 남북 특 남 여야 일본적군파 끼리끼리 편싸움 했다 꼭 여야 민주주의 당쟁같이. 광주 사건 증명. 같은놈들이다.
우리는 월남의 멸망에서 배워야한다 이 위기의 순간에도 우리 국민들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설마설마 하지만 재앙은 한순간에 닥친다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대통령을 위시한 각료들이다 리장노는 아직도 역적 김대중 심어논 국정원 500명 경찰 1.200명 기무사 1.500명 세작들 처리 한하고있는 것이다 임기 끝나고 당해봐야 정신차린다 아니면 그전에 찌끄만 애숭이 정은이에게 나라를 빼앗겨 봐야 눈물난다 그들이 주장하는 강성대국은 남한을 삼켜 군사적 경제적 대국을 꿈꾸는 것이다 리장노는 정신차려야 한다 소귀에 경 읽기 이겠지
제갈대중이 들어서고 국정원 대공분야를 싹쓸이하고, 덩달아, 검찰, 기무사의 대공분야도 유명무실하게 축소시켰고, 또 대체인력으로 심어 놓은 친북,좌파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대한민국의 안보에 내적인 위협이다. 완장만 안 찼을 뿐이지 시한폭탄이나 매한가지다. 전쟁의 승패가 총칼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내부의 적을 도려내지 못하면 월남의 패망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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