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요한 20장 11-18절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곱 마귀 대신 일곱 빛깔 무지개가>
정말 후덥지근하던 오후, 예보도 없이 갑자기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렸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에 찌는 듯했던 무더위가 순식간에 가시더군요. 소나기 끝에 상쾌한 바람마저 불어오니 이게 웬 떡인가 했습니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면 너무나 좋은 나머지 우산도 쓰지 않고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농부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누구에겐가 저렇게 시원한 한 바탕 소나기 같은 고마운 존재가 되어야 할텐데...’
나란 존재가 누구에겐가 고마운 선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 중에서도 뜻밖의 선물, 기대하지도 않았던 의외의 선물, 이게 웬 횡재냐,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선물이 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텐데...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님을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누구입니까? 한때 일곱 마리 마귀가 들려 갈 데까지 간 여인이었습니다. 일곱 마리 마귀의 횡포로 인해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여인, 나 같은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 하며 자포자기했던 여인, 거의 죽음 직전까지 다가섰던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그런데 죽음 직전의 순간에 기적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마치도 영화처럼, 마치도 소설처럼 뜻밖의 행운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녀 앞에 예수님께서 ‘짠’하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어둡기가 무덤 속 같았던 그녀 인생의 창에 환한 한 줄기 햇살이 드리웠습니다.
세상에 나같이 기구한 운명을 지닌 여자가 어디 또 있겠는가 하며 매일 대성통곡을 터트리던 그녀였는데, 뜻밖의 선물, 예수님이란 존재의 출현으로 인해 그녀에게서 일곱 마귀가 모두 빠져나가고 일곱 빛깔 아름다운 무지개의 선명하게 뜬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마리아 막달레나의 암울했던 삶은 순식간에 장밋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이제 더 이상 밤마다 무덤가를 헤매면서 괴성을 지를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피해 다닐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의 지난 생애는 참으로 비참했고, 억울했으며, 참혹했지만, 끝까지 기다림으로 인해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만으로 가득하신 예수의 다정다감한 눈길,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눈길이 마리아 막달레나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그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사랑이 마리아 막달레나의 오랜 상처와 고통, 슬픔과 절망을 한 순간에 녹여버렸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마리아 막달레나의 어두운 과거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어떤 유행가 가사처럼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심장을 되찾아주었습니다. 점차 잦아들던 그녀의 맥박을 다시 뛰게 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내면, 그녀의 영혼, 그녀의 삶 안에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살리신 예수님을 향한 극진한 사랑, 일편단심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제자 중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이웃들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한 인생을 살리는 단비 같은 존재, 뜻밖의 고마움을 선사하는 소나기같이 고마운 존재는 못될지라도, 잘 지어놓은 농사 다 망치는 우박 같은 존재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하루 예수님처럼 나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길이 바로 펴지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새 삶을 시작하며, 나로 인해 누군가가 가슴 설레고 행복해지며, 나로 인해 누군가가 구원되는 그런 하루를 엮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첫댓글 굳건한 믿음의 제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성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