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부경으로 보는 날일(日)자의 자원과 용도
제1부 천부경해석의 기본틀과 제2부 천부경해석이라는 글을 주의 깊게 읽어온 사람이라면 오늘날의 옥편식 한자의 의미가 고대와는 달리 매우 협소한 의미로 변형되어 쓰이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대략적인 개요만 잡았을 뿐 세부적인 설명이 부족했다고 보기에 이제는 구체적으로 한자의 부수와 관련지어 은문천부경과 한자식 천부경의 문자적 형태를 대조해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져 쓰이고 있는지 밝혀 한문의 뿌리가 은문이고 은문이 곧 천부경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우리선조들이 만들어낸 문자라는 사실을 증명해 볼까 한다.
사실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은문천부경과 한자식천부경을 비교해 본 사람이라면 두 기록본의 문자적인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이 사람이 삼태극에 올린 글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문자적인 대조만으로도 은문천부경에 쓰인 문자적인 의미가 한자식 천부경으로 바뀌어 지며 과연 고대인들이 쓴 은문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반인은 그렇다 쳐도 어느 정도 동양학에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의문이건만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나 우리의 역사를 되찾고 우리의 정신을 회복하려는데 뜻을 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검토 작업이 모든 동양학의 논리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는 기본적인 텍스트가 한문으로 쓰여져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본다.
불교, 유교, 도교, 역(易 ), 음양오행, 팔쾌 등등과 같은 오늘날의 동양학의 이론적인 바탕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경전의 기본적인 텍스트들이 한문으로 쓰여져 있고 그러한 한문의 문자적의미를 지나인들이 편찬한 옥편의 의미체계로 풀어내어 세워진 것이 오늘날의 우리나라 동양학의 현실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상식적인 질문은 동양학의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있는 각기의 기본 텍스트들에 쓰인 문자적 의미들을 지나인들의 왜곡된 옥편의 의미로 풀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닌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이자 당연하게 가져야하는 상식적인 질문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가장기본적인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동안 내가 아는 한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가지고 접근해 보지 않았다고 본다.
대인을 의미하는 이(夷 )자를 오랑케 이(夷)로 왜곡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나인들의 입맛에 맞추어져 쓰여진 옥편의 의미체계로 세워진 동양학은 지나인들의 동양학이지 우리의 동양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중화 중심주의로 왜곡된 옥편식 한자의 의미로는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결국은 중화 중심주의라는 기본적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학을 바탕으로 한 한국식 동양학의 체계가 세워질 리가 없다.
우리의 정신이 담긴 문자체계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흘러온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번도 우리의 정신이 제대로 반영된 주체적인 한국식 동양학은 나타나지를 못했고 늘 중화 중심주의라는 사대정신의 기본 틀 안에서 끌려온 것이 지나온 우리나라 동양학의 현실이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중화 중심주의를 벗어난 주체적인 한국식 동양학을 세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검토 작업이 옥편식 의미체계에 대한 검증작업이라고 보며 그러한 검증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 텍스트가 은문천부경의 우주론과 문자적인 의미라 나는 판단한다.
만약 왜곡이 사실로 들어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문으로 쓰여진 모든 동양학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엄청난 반전에 부딪치게 될 것이며 지금의 동양학은 신기루나 모래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우리의 정신을 잃어버린 이후 지난 역사 속에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그 많은 우리나라 동양학자들 중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것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확인해 보려는 시도를 한 사람이 있었던가?
내가 아는 한 없었다고 본다.
최근에 강 상원 박사님이 그와 근접한 질문을 던지기는 하나 옥편식 한자의 의미체계에 대한 검증단계 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정신이 제대로 된 동양학자라면 당연하게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있는 경전에 쓰인 문자적 의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고 그를 통해 과연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아닌가를 따져야 하는 것이 상식 중에 상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에 의문을 가진 학자는 없었다고 보며 지나인들의 중화 중심주의로 왜곡된 옥편을 신성불가침의 대단히 권위 있는 바이블처럼 맹신하며 가장 기본적인 문자적 의미에 대한 검증작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워진 오늘날의 동양학은 그래서 더 더욱 모래위에 세워진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세계의 문자 학자들의 공부수준은 어느 한계를 넘어섰고 그들이 우리를 제치고 고대 은문을 해석해내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면 정말 못난 후손들이라는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기게 될지 알 수 없는 이때에 우리는 대국적인 관점으로 서로 손을 잡고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로 남기위해 더욱 우리의 정신을 살리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본다.
나는 이미 옥편의 허구라는 제목으로 이와 관련된 글을 삼태극에 몇 편 올린적이 있기에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은문과 한문으로 쓰여진 천부경을 비교해가며 검증작업을 할까 하며 그 첫 번째로 날일(日)자에 대한 것부터 시작할까 한다.
옥편에 쓰인 날일(日)자의 자원을 보면 태양을 본뜬 글자, 한자 부수의 하나라 하고 있고 풀이로는 1, 낮, 낮 동안, 2, 음양으로는 양(陽), 오행으로는 화(火) 3, 햇 볕, 햇 살 4, 낮의 길이 5, 나라 이름이라고 쓰여 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은문천부경에서는 날일(日)자의 자원과 용도에 대해 명확하게 들어나고 있다고 보는데 태양앙명(太陽仰明)이라는 문장에 쓰인 씨알점(·)과 원(○)의 합자인 (·)+(○)=( )의 그림문자로서 양( )과 앙( )에 쓰이고 있는데 태양과 태양계를 의미하는 해양( )자는 한문식 양(陽)자와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관련성을 찾을 수 있으나 앙(仰)자는 전혀 관련성을 찾기 힘든 형태로 변형되어 있다고 본다.
먼저 옥편에서 양(陽)자는 볕 양으로 읽고 있고 자원으로 역(易)은 해가 높이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문자와 ( )이라는 쌓아올린 흙을 합쳐서 해가 비치는 언덕이라는 뜻, 나중에 태양도 나타내게 되었음, 풀이로는 1, 양지 2, 양(陽) 3, 밝다 4, 나타나다 5, 고귀하다 6, 속이다 등으로 적어 놓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은문에 쓰인 양( )자에서 왼쪽에 쓰인 ( )은 넓은 의미에서 모든 대지(大地)를 나타내는 문자이고 오른쪽에 쓰인 ( )자에서 점(·)과 원(○)의 합자인 ( )은 날일(日)자의 자원으로 이 문자에서는 태양과 태양계를 의미하고 아래에 쓰인 육(⊤)은 일신의 하느님을 나타내고 있기에 은문에 쓰인 양( )자는 생명이 발 딛고선 대지위에 떠오르는 태양과 태양이 다스리는 태양계에서 천일신의 하느님은 태양임을 나타내는 문자로 본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태양숭배와 연관된 문자가 이 문자라 본다.
따라서 역(易)자의 자원이 은문의 양( )자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역(易)자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는데 옥편에서는 바꿀 역(易), 쉬울 이로 읽고 있고 자원으로는 도마뱀 붙이와 빗금친 삼(三)자 무늬를 합친 글자, 도마뱀 붙이는 평평하게 옆으로 뻗어 있고 또 빛에 의해 피부색이 점차 변하므로 차례차례로 변하다 평탄하고 쉽다는 뜻을 나타냄으로 적고 있는데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은문 양( )자와 한자식 양(陽)자를 비교해 보면 역(易)은 분명 태양일신과 태양계와 관련된 문자인데 거기에 무슨 도마뱀 새끼를 갖다 붙이는지 왜곡을 해도 적당하게 세련되게 해야지 이건 너무 심하다 못해 그 정신 상태까지 의심하게 만들만큼 한심한 수준이라 본다.
그리고 풀이로는 1, ➀ 바꾸다, 물건과 물건을 바꿈 ➁ 바뀌다. 변화하다. ➂ 점(占), 화복등을 아는 일 ➃ 역학(易學), 주역(周易), 역경(易經) 2, ➀ 쉽다. ➁ 평안하다 등으로 풀이하는데 고대에는 태양일신이 다스리는 태양계의 변화와 관련된 의미로 역(易)자가 쓰였을 것으로 보는데 일신이 다스리는 천지(天地)의 운행원리를 나타내는 것이 역(易)의 원래 용도였다고 본다.>
그리고 앙(仰)자를 옥편에서는 우러를 앙(仰)으로 읽고 있고 자원으로는 서서 내려다 보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는 사람을 의미하는 ( )과 사람인(亻)을 의미하는 기호가 합쳐진 글자, 우러러 보다. 쳐다 보다의 뜻을 나타냄, 풀이로는 ➀ 우러르다, ㉮ 존경하다. 사모함, 그리워 함 ㉯ 위를 봄, ➁ 마시다, 등으로 적어 놓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은문에 쓰인 앙( )자에서 위에 쓰인 점(·)과 원(○)의 합자인 ( )은 날일(日)자의 자원으로 이 문자에서는 생명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일신인 영혼과 자연을 의미하고 아래에 쓰인 두 손을 모아 소중하게 생명을 보듬고 있는 형태인 ( )은 생명을 보살피고 훈육하고 있는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존재가 곧 지일신의 하느님이 다스리는 지구와 달임을 뒤에 쓰인 명( )이라는 문자로 명확하게 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날일(日)자의 용도는 태양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는 일신이 다스리는 모든 존재의 세계를 나타내는 개념의 그림문자로 씨알점(·)과 원(○)으로 나타나는 은문에 쓰인 날일(日)자는 십진수로 나타나는 현재 진행형의 모든 존재를 나타내고 일(一)자와 원(○)의 합인 날일(日)자 형태는 완전히 완성된 상태의 미래형을 의미한다 보는데 무진본과 관련된 것이 씨알점(·)과 원(○)의 합자인 날일자의 용도이고 부동본과 관련된 것이 일(一)자와 원(○)의 합자인 날일자의 용도라 본다.
이 정도만 해도 옥편의 의미가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으리라 본다.
부족한 것은 옥편의 허구란 글과 탱양앙명이라는 천부경해석의 글을 참조해 주기를 바란다.
첫댓글 이 점과 원의 합자에 대한게 다빈치코드로 유명해진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에 중요한 고대상징으로 나옵니다. 실제 고고학과 기호학에서 연구되는 상징이라는데 읽어보니 재미있더군요. 근데 읽은지 오래되서 뭐라고 나왔는지 생각은 안납니다;;;
호두님도 상당한 상식을 가지고 있네요.
유클리트 기하학이나 오늘날의 수학은 너무 평면적인 사고에 갇쳐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프렉탈 기하학과 그와 관련된 마방진의 수학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고대인들의 기하학과 수학은 평면사고가 아닌 입체적 사고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적으로 우주는 평면이 아닌 입체적 상태로 존재하고 변화 합니다.
천부경의 우주론은 이와 같은 입체적 사고에서 세워진 우주론입니다
따라서 평면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만이 천부경의 우주론을 이해할 수 있게되고 나아가 현대 수학과 기하학의 평면사고의 틀을 깰 수 있읍니다.
그래야 만이 인류의 정신적 성숙과 새로운 차원의 과학지식의
사용이 가능해지는 신인류문명의 탄생이 이루어지리라
예측합니다.
그러한 분기점에 있는 것이 지금이고 그러한 변화의 태풍의 눈이 고대한국학의 핵심을 담은 천부경의 우주론이라 나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