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의 인사와 함께
이 훈(바나바 형제)
2008-03-23 20:36
성경을 통해 초대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바울이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면서,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에도 교회가 세워졌는데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후 바울은 또 다른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떠나고, 이어 그 교회에 아볼로라는 목회자가 세워졌습니다. 리더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는 축복도 있었지만, 리더십과 관련해서 어려움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 내에서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서로의 지체 관계가 깨어져 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터를 닦아 놓았습니다. 아무도 이미 닦아 놓은 터 곧 예수 그리스도밖에 또 다른 터를 놓을 수 없습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예, 그렇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합니다. 목회자든 리더든 맡은 역할을 주어진 기간 동안 할 뿐이지 사람은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떠나올 때, 저는 공동체에 대해 경험하고 배우러 왔습니다. 한 집에서 생활하는 공동생활을 배우려 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그 외에는 모두 지체일 뿐 머리가 아니라는 것,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하기에,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은 두드러진 리더 없이도 함께 형제 자매로 아름다운 몸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제게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회든 공동체든 어떤 리더가 너무 두드러진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목사 없는 교회도 없지만, 교회를 소개할 때도 담임목사 이름을 크게 걸듯이, 탁월한 목회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정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공동체도 예수원 하면 대천덕 신부, 두레마을 하면 김진홍 목사, 꽃동네 하면 오웅진 신부 등, 두드러진 리더가 함께 기억됩니다. 그분들이 떠나면 공동체도 사역도 약화될 것 같은 느낌이 있지요. 실제로 교회와 사역의 흥망성쇠, 떠오르고 가라앉고 하는 과정이 리더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욱 탁월한 리더나 목회자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메노나이트에서 경험하고 배운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메노나이트 교회들, 그리고 공동체를 이루는 아미쉬나 후터라이트에 속한 교회들은 리더십의 변화에 별로 영향 받지 않습니다. 리더가 없어도 될 정도로 리더십에 의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유는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잘 서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꿈꾸어 온 교회는 바로 그렇게 든든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위니펙에서 한인 모임을 개척할 때부터 제게는 꿈이 있었는데, 언젠가 저는 떠나고 형제 자매들 중에 리더가 세워지는 그런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곳에 개척을 하고, 그래서 곳곳에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형제 자매들은 제가 떠나기를 원하지 않고 계속 머물기를 바랐지만, 제게는 떠나고 내려놓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여전히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그 동안 제가 가진 은사로 교회가 세워졌다면, 제가 갖지 않은 은사를 가진 다른 분에 의해 교회는 또 다른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바람직한 것은 바로 여러분들, 교회를 이루는 형제 자매들 속에 있는 은사가 발견되고 꽃피고 열매 맺는 일입니다. 그렇게 특별한 리더 없이도 함께 섬기며 조화를 이루는 교회를 꿈꿉니다. 그래서 보이는 리더가 떠나는 것도 유익하고, 리더십의 새로운 변화를 통해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부활주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과 같은 반가운 날입니다. 봄이 되면 지면 곳곳에서 싹트는 민들레를 생각해 봅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날려 여행을 합니다. 언제쯤 날게 될지 어디로까지 가게 될지 모릅니다. 낯선 여행이지만 하늘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믿음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저는 제 인생을 민들레 홀씨처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오늘처럼 이렇게 떠나는 날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오늘일 줄은 몰랐고, 또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하늘 바람을 타고 가다가 어딘가 도착하면, 그곳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인생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신다면, 분명 그분의 때가 있을 것이고 그분의 방향이 있을 것입니다. 불확실한 여행에 불편함과 염려가 찾아올 때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큽니다. 또한 못다한 사랑과 섬김에 대한 아쉬움과 죄송함, 헤어짐에 대한 섭섭함도 작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더 큰 뜻과 섭리가 있음을 믿기에, 축복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두고 떠납니다.
바라기는 제가 지나간 자리에 단지 예수님의 향기와 사상이 남는 것입니다. 바나바의 사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상이 심겨지고, 어떤 리더의 향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향기가 남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잊혀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전교회... 예수님의 교회이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바뀌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며, 앞으로 더 좋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심는 사람이 있었다면 물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나중에 열매를 보고 추수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머무는 동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힘쓸 뿐입니다.
저는 민들레 홀씨처럼 이제 바람에 날아갈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의 거센 바람, 시대의 바람을 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바람을 타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겠지요. 성령의 바람에 저를 맡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있습니다. 그분이 머리이십니다. 그분이면 충분합니다. 성령 안에서 함께 세워져 가는 교회를 이루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자도 이 땅 어디에 있든지 얼마동안 머물든지, 민들레 홀씨처럼 생명의 꽃을 피우기 위해 하늘 바람을 타는 믿음의 여정을 계속하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출처 : http://www.visionmennonite.org
이 글은 캐나다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사역하신 바나바 형제님이 비전교회를 떠나시면서 하신 마지막 설교 내용입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한 교회 …… 당연한 진리임에도, 우리는 만인제사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기 인생에 목사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신앙인들에게, 그리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상실한 채 방황하는 제도권 한국교회들에게 주는 도전과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첫댓글 캐나다에 있는 한인 메노나이트교회에서 사역하셨던 한 형제님의 고별설교입니다. 마음에 울리는 내용이어서 옮깁니다. 특히 굵게 표시한 부분이 그렇네요...
저희 평신도교회의 신조로 삼고 싶은 마음에 널리널리 선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한분만으로 만족할수 있는 저와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훈 목사님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