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nceus, der Türmer, auf Faust's Sternwarte singend
(Lynceus, the watchmen, singing on the Faust's watch-tower)
Goethe의 Faust 2부, 5막, Scene 4
성의 watch tower.
눈 아래로 펼쳐진 자연의 경관을 찬미하는 Lynceus& 의 노래.
이미 100세 고령인 Faust, 실명으로 세상은 어두어졌다.
Mephistopheles와 계약으로 얻었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눈은 보이지 않으나 지금의 삶에 만족해 하는 Faust의 심경을
대신 얘기하는 노래이다.
Zum Sehen geboren,
Zum Schauen bestellt,
Dem Turme geschworen
Gefällt mir die Welt.
Ich blick' in die Ferne,
Ich seh' in der Näh'
Den Mond und die Sterne,
Den Wald und das Reh.
So seh' ich in allen
Die ewige Zier,
Und wie mir's gefallen,
Gefall' ich auch mir.
Ihr glücklichen Augen,
Was je ihr gesehn,
Es sei, was es wolle,
Es war doch so schön!
Born to watch
For seeing, I’m born,
For watching, employed,
To the tower, I’m sworn,
While the world, I enjoy.
I gaze at the far,
I stare at the near,
The moon and the star,
The forest and deer:
The eternally lovely
Adornment, I view,
And as it delights me
I delight myself too.
You, fortunate eyes,
All you’ve seen, there,
Let it be as it may,
Yet it was so fair!
[Carl Loewe] Lynceus, der Türmer, auf Faust's Sternwarte singend, Op. 9, Heft 8, No. 3
Christoph Pregardien
아래는 같은 text에 쓴 Schumann 곡이다.
[Robert Schumann] Lied Lynceus des Türmers, Op. 79 No. 27
Thomas Bauer
사족:
& 천리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졌다는 그리스 신화 Lynkeus (링크우스)에서 빌린 character이다.
Goethe의 극작, "Faust" 에서 Faust는 Lynceus (린쓰우스) (Lynkeus)의 이 탁월한 시야을 믿고
그리스 궁전으로 돌아오는 Helene를 망 보는 일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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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파수 보기 위해 태어났노라>
보기 위해 나는 태어났노라
파수 보기 위해 나는 고용됐지,
망루에서 나는 맹세했네,
한편 세상을 즐기면서.
멀리 응시하고
가까이 경이롭게 바라본다.
달과 별,
숲과 사슴을.
영원히 아름다운
장식을 나는 보노라,
그리고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듯
나도 스스로를 기쁘게 하네.
운 좋은 너희 눈이여,
네가 그곳에서 본 모든 것은
그대로 두거라.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지!
눈이 멀어 앞이 안 보이는 파우스트의 심안이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롭네요.
괴테의 대표작인 희곡 [파우스트]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60년이 걸린 대작을 감히 어찌...!
보여 지는 단편적인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듯한 마음.
과연 내가 얼마만큼 소화할 수 있을지..
그 갈등하는 깊은 내면의 파우스트를...!
어린 중학교 시절,
무모하게 집어 들고 읽었는지 말았는지...
희곡이기에 더 접근이 어렵고 어려워 헤매던 기억밖에...!
음악으로가 아닌 문학 작품으로만 접근 했습니다.
24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전 해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
1808에 쓴 [파우스트] 제 1부는
중세를 배경으로 마법을 이용한 개인의 욕망의 이야기이지요.
그 후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1825년에
제 2부, 근대를 배경으로 인류애에 관한 이야기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그로부터 6년 뒤인 1831년에야 탈고를 한 괴테.
하지만 그 원고를 봉인한 뒤에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했다는...
평생의 역작을 완성한 이상, 자신의 최후가 가까웠음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이듬해인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서 평생의 지기였던 실러 곁에 영면의 길로 떠났다고요.
“평안한 기색이 고귀한 얼굴 전면에 깊이 어려 있었다.
시원한 그 이마는 여전히 사색에 잠겨 있는 듯했다.”
사망 다음날 괴테의 유해를 본 에커만이 기록을 남긴 말입니다.
아마도 파우스트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제시한 것만으로는 이해가 부족해 전체를 훑어봅니다.
너무도 난제인... 어렵네요.
제1부와 제 2부의 내용은 현격히 다르지만
그래도 미약하지만 유기적인 연관 때문에
따로 분리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이야기 전개가 애매해 지는 느낌이네요.
악마 메피스토페레스는 신과의 내기로
삶의 회의에 빠진 노학자 파우스트를 유혹하지요.
그 악마의 유혹에 빠져 20대가 된 파우스트는
순수한 처녀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지는데 악마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둘을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범하게 하지요.
감옥에 갇혀 미쳐버린 그레트헨은 파우스트를 용서하며 하늘에 오릅니다.
파우스트 또한 자연에서 치유하지만
제2부의 시작으로 그리스 전설의 마녀 헬레나를 만나네요.
파우스트는 헬레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모든 모순과의 화해로
상반된 관계의 최고의 조화를 발견하고 매혹되지요.
육체와 마음, 현실과 이상의 조화.
그리스의 미녀 헬레나에 의하여 생의 충실을,
현실과 육체를 추구하며 밤의 쾌락으로 들어가지요.
시간을 초월하고 있는 듯 기쁨에 넘치는 합일의 파우스트와 헬레나.
환각 속에서 화해의 축제를 올리고 있지만, 그것은 짧은 한 순간일 뿐...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이포리온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헬레네는 저승으로 돌아가고 파우스트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쾌락을 선사하려 하며
파우스트에게 접근한
‘근심’의 영이 그의 눈을 멀게 하지만, 파우스트의 심안은 외려 깊어집니다.
이제 파우스트는 자신의 쾌락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복락의 사회를 바라보면서
악마와 약속한 말을 하며 쓰러지지요.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이 이겼다고 믿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려 하지만, 하늘의 은총을 받은
속죄의 여인 그레트헨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이야기.
현실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쾌락을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하는 파우스트.
그리고 현실에서의 수많은 쾌락과 슬픔을 당하는 파우스트.
결국 파우스트는 마지막에 이르러
그 자신 스스로 현실에서의 삶에
충실하게 임하여 악마와의 계약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만
그의 영혼은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
불멸을 이루게 되는... 나름의 <파우스트>의 요점을 정리해 봅니다.
쓰면서 스며드는 이 뜨거움,
인간 삶의 이야기와 다름없는 것 같은 마음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줌으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지에 대한
충분하고도 지속적인 사유를 요구하고 있는 파우스트.
얼핏 보면 기독교적인 논리 같지만
인본주의를 뜻하는 파우스트를 봅니다.
쾌락과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고 헤매면서도 다시 일어나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인간상. 자기완성을 길로 향하는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의 허무한 인간적인 모습 또한
세상의 모습과 다름없는 두 인간상.
인간이 진정으로 살아가는 의미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자유로움과 노력을 하는 삶,
그리고 공공의 선을 위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천상의 구원을 받는다는....
악마와 인간, 신과 영혼을 노래하는 이 천상의 문학작품, 파우스트.
결국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본성과 본질에 관 관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의의는?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가슴에 차오르는 이 뜨거움은 무언지...
눈물이 불쑥 쏟는 마음... 고달프고 힘든 인생의 살아가는 우리들,
나를 속이고... 서로를 기만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면서
그래도 인간이기게 착한 심성으로 태어난 인간이기에
굽어보며 깨달음으로 다시서는...
마지막 죽음을 맞는 우리네 삶과 무어가 다를지...
깨달음이 나를 울립니다.
살면서 아프며... 터득하며... 긴 세월을 아직도
거친 자갈밭 같은 마음으로 들쑥날쑥 그렇게 삽니다.
언젠가는 그윽한 심정으로 조용히 마지막은 맞는 내가 되기를...
간절한 기도이며 염원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노라...
즐거움도 행복도 누린 감사한 삶이었노라고
기도처럼 읊으며 떠나고 싶은 마음...
Born to watch!
비록 눈은 멀어 보이지 않지만
삶의 충만함과 평안이
그대로 전해오는 Christoph Pregardien의 연주처럼...
영원한 안식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감사와 사랑으로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뜻하시는 바를 제가 잘못 이해한 것 같지만
그 어렵던 파우스트가 한 발 성큼 다가온 느낌에
감사드립니다.
이걸 내가 했다니... 너무 어려웠습니다.
더는...! 사양할래요. 어려운 주제는...^^
쓰다 보니 한 없이 길어졌네요.
그렇다고 짧게 주리지도 못하고...
어느덧 밤을 맞습니다.
평안한 밤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