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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복의 구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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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실에서....
1. 바지, 저고리
2. 말(버선): 거죽은 붉은 색 비단 : 대례시 착용.
3. 석: 붉은 비단으로 거죽을 한 신
4. 중단 :(흰비단의 속옷, 두루마기 혹은 창의 형태: )
옛날에는 두루마기나 창의가 모두 웃옷으로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여
창의는 중치막(中致莫)의 밑받침옷으로, 두루마기는 창의의 밑받침옷으로 입었다.
사대부는 집에 있을 때에도 두루마기나 창의를 입는 것을 예의로 삼았고,
외출할 때는 위에 중치막·도포(道袍)를 입었다고
5. 상(裳 :하의= 치마... 하얀 비단끈으로 앞면=전상 과 뒷면=후상 두쪽을 연결 구성)
6. 의(衣 ):상의 =上衣 =윗옷)
7. 대대와 후수 : 하얀 비단의 끈(대대)으로
붉은 색 후수( 뒤에 수를 놓아 늘어뜨린 것)를 연결 꿰맨것으로
허리에 둘러 묶는다.
사진속... 황사손 뒤에서 두 여성선생님들께서 들고 있는 붉은 천!
衣 뒷면 위로 오게 후수를 두고 앞으로 衣 속에서 대대끈을 당겨 묶는다.
8. 폐슬: 붉은 색 비단 ( 앞면에 달아 앉을 때나 꿇어 앉았을 때 무릎을 가려 주는 천)
* 앉은 모습에서의 폐슬 역할 모습.
9. 방심곡령: 앞쪽 이기전선생님께서 들고 계신 것으로
대례복중 제례때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는 의미로 목에 두른다.
* 제례가 아닐 때의 대례복 비교 그림.
10. 혁대(각대)
11.패옥: 혁대 좌우에 佩=패옥을 건다.
* /패옥/혁대/ 대대/ 후수 /*
12. 면류관
* 종묘제례 인간 문화재 이기전 선생님의 손길.
* 황제의 면복이 되면서 등 윗쪽에 수놓은 성신(星辰 )
면복 착용을 도와 주신
종묘제례 인간 문화재 이기전 선생님
면복 착용을 도와 주신
(종묘3기) 김안순선생님
(종묘4기) 김동순선생님
첫댓글 드디어 우리 지킴이들의 활동 영역이 "종묘사직"에 ---,면면의 모습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역사속에 묻힌 지킴이가 아니라 오늘에 살아 움직이는 지킴이임이 실증되는 순간입니다. 쌍수를 들어 환호드립니다.
도처에서 노력하시는 선생님들!.. <역사속에 묻힌 지킴이가 아니라 오늘에 살아 움직이는 지킴이>.. ^^ 같은 느낌! 감사드립니다.^^
사직대제란 것은 맥이 끊어진 것을 근자에 새로 "복원"한 것입니다. 원구단이 생긴 이래 황제로서 친히 사직단에 나아가 대제를 지낸 예는 극히 적습니다. 또 그 의장 복식과 절차 등이 어땠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지냈다 하더라도 지금 저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12류 면류관의 황제복을 착용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노파심이 듭니다.
의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말씀을 새겨 읽으며... 학계와 관청과 보존회등에서 묻혀있는 史實을 바르게 밝혀내 주셔야 할 일이 많아 보이네요. 먼저, 종묘대제때 면복 자료를 얻을 준비가 안되었고 이번 사직대제에서 기회 얻음에 드리고자 한 것은 그림자료로만 보아온 면복을 확실히 익히고자 함이었습니다. 하여 사직대제에서라는 글을 넣어야 되나 마나 고민이 있었으나.. 07년 복원된 사직대제에서 행해지는 엄연한 모습이었기에 타이틀에 넣었습니다.
제가 워낙이 기초에만 급급(^^ 송구합니다.)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 복원된 종묘대제에서도 12면류관에 12장 면복인데, 황제국가로 전환시 천단(원구단)에 대한 제례를 올리기에 종묘(태묘) , 사직 에 대한 제례가 달라지나요? 천단과 사직의 관계가 관건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혹여 한 두줄 글로 답을 주실 수 없는 질문이 될 것도 같지만... 궁금해집니다.^^ 항상 史料에 근거를 두고 길을 알려 주려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야기가 복잡해지겠네요. 지금 하고 있는 종묘 대제라는 것도 기실 그 자체 제례라기 보다는 보여주기 위해 날자, 시간, 절차 등을 축약하고 변경해서 재현하는 "행사"일 따름이지요. 초헌관이 누구인지, 왜 그분이 되어야 하는지 따져보아야 할 점이 많습니다. 만약 어느 분이 초헌관이 된다 할지라도 그분이 황제가 아닌한 12류 면류관에 12장복을 입을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다만 과거의 제례를 "재현"하는 행사라면 그저 그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것이고요. 사직대제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복원할 자료도 적은데, 종묘대제를 "참고"하여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직대제라는 것은 근년에 종묘대제를 "참고"하여 행하는 "행사"이고, 따라서 종묘대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지요. 저 분이 황사손이라면 황사손에 해당하는 격을 갖추어야지 황제복을 입는 것은 문제지요. 아무라도 괜찮은 대행자라면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요. 종묘대제나 사직대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세세한 절차나 복식 등의 자료를 채집하여 보존하는 것 역시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혹시나 그것이 "원형"으로 오인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한계를 지적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참여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의견이 없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덧붙는 의견이 올라올까 기대가 있었는데.(제 식견이 짧은터라^^ ). 교수님의 원형 이해와 오해를 빚을 수 있는 현행의 정리되지 못한 복원에서의 노파심 관점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걱정으로 다가올 듯 싶습니다. 요는 왕정체제가 아닌 현재에 이르러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올 때.. 사료에 근거한 원형유지, 그에 따른 원칙에 의한 재현(이를테면.. 황사손은 어디까지나 황사손) ..(학계 중심일 것같다는 제생각)과 과거 변화를 수렴한 오늘날의 재현함에 어려움이 있을진대..대표성과 추진의 편이( 황사손 지정= 왕의 대행자) ..( 행사 주관관계처 입장일 것 같다는 생각) 에서의 선택과 그 괴리문제로
전통의 재현에 있어 그 원형유지의 기점과 한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하는 학자들의 논란과 그 어려움이 일반인들의 눈에도 이해가 되는 근본적 어려움으로 이해가 됩니다. 다만 종묘대제의 재현에 있어 <전시성 행사로 치부할 것인가 ><제례 본연의 의미를 가질 것인가>는 행사 주최측이나 학계의 시각보다는 주체인 국민의 의식이 중요, 한국 일반 국민 스스로가 진정한 제례 의미로 인식할 수 있도록 원형고증복원에 보다 신중하게 노력하고 그렇게 재현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궁금 질문 많은데 다음 기회 얻을때 여쭈어 보기로 하고.. 긴 답글 귀찮다안하시고 펼쳐 주심에 무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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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전통을 단지 유물화 된 것이 아닌 살아 음직이는 것으로( ^^정선생님말씀) 마음을 다하시는 오늘에 살아 움직이는 지킴이(^^ 老巨樹 선생님 말씀)로 거듭 나시는 각 궁궐의 선생님들 덕분에 저도 일원이라는게 과히 하는 일 없는 것 같은데 한편 뿌듯해집니다. ^^ 이 번 면복에의 살아 있는 자료기록은 종묘, 사직 전수교육을 수료하신 지킴이선생님들과 그림만이 아닌 입는 방법과 함께 실제 지금도 입는 자료로 지킴이 선생님들게 알려드리고 싶어서 여러번 애써주신 김동순선생님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