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잔재 보존에 대하여
숭례문의 화재로 인해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예전의 무관심에 비하면 당연히 우리문화 보존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일천한 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사이 숭례문화재에 대한 신문이나 방송의 기사를 보면 관심의 차원에서 우리 문화에 대하여 공부하였다는 본인에게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발화지점에 대한 추정이나 신문에 실린 숭례문에 관련된 개념도를 보면 목조건물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한 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적심은 노출되어 있는 부재가 아니어서 결코 발화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그려진 도면도 최소한의 지식만 있었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내용들이 버젓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신문과 방송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일방적인 주장하고 있다.
숭례문 화재 다음날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자료검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접속자가 넘쳐났다. 이런 상황 때문에 혹시 중구청도 그렇지 않을까 했더니 정작 1차적인 관리책임을 가지고 있는 중구청 홈페이지는 조용했다. 화재 다음날 중구청홈페이지에는 숭례문에 대한 내용이 한 건도 없었다. 그만큼 우리들은 문화재관리체계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후 문화재관리책임이 지자체에도 있다는 기사가 나오자 중구청홈페이지는 항의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만일 이러한 기사가 나지 않았다면 중구청장이 사과문을 발표했을까.
최근 불타버린 잔재를 급하게 치우는 것에 대한 질타가 있다. 그리고 버려진 기왓장에 대한 보존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 말에 대하여 나도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하여는 의견을 달리한다. 우선 화재현장은 당분간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화재가 어떻게 확산되었는가와 방화사건에 대한 처리가 종결되지 않았는데 현장은 치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건의 현장을 보존해야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재의 시작과 진화까지에서 일어난 문제점을 밝히기 위하여 현장보존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문제점에 대하여 명확히 밝히는 것은 같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설사 발생하였더라도 어떻게 조치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제점을 규명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화재에서 얻을 교훈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은 이러한 연구가 끝날 때까지 반드시 보존되어야한다.
그러한 전말을 규명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숭례문을 어떻게 복원하고 후대에 대한 교훈으로 삼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토론해야한다. 그러는 과정 중 하나가 사용가능한 부재의 검토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겨질 자재와 폐기될 자재가 결정될 것이다. 그때부재의 처리방법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현장이 흉물스럽다거나 또는 아픈 과거를 빨리 잊겠다는 마음에서 현장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모든 자재가 다 남겨져야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숭례문은 그간 몇 차례 고쳐졌다. 조선시대에도 태조 때 지은 것을 세종 때 중건하였고 성종 때 중수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61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도 기와를 다시 교체했다고 한다. 새로 다시 짓는 <중건>과 일부를 고치는 <중수>의 과정에서 많은 부재의 교체가 이루어진다. 중건의 경우는 새로 짓기 때문에 건물이 있었던 장소에 원래의 규모대로 짓지 않는 이상 모든 부재가 교체된다. 그리고 중수의 경우도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부재가 바뀐다. 따라서 61년도에 이루어진 중수에도 많은 부재가 교체되었다.
목조건축물은 목재의 특성상 계속 손을 보아야 한다. 기와의 경우는 50년 정도마다 교체해주고 서까래와 같은 부재도 100년 정도 경과되면 교체해야한다고 한다. 비가 새어 썩었을 경우는 더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기타 주요구조부재도 썩거나 충해蟲害가 발생하였을 경우 수시로 바꾸어준다. 이처럼 목재건축물은 최근에 짓는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끝없이 손보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건물이 온전한 600년 전의 건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61년에 이루진 수리보고서를 보지 못하여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당시에도 많은 부분의 부재가 교체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성종 때 중수한 것이 마지막이었다면 거의 대부분의 부재를 교체하였을지도 모른다. 기와는 더 많이 교체되었을 것이다. 숭례문 기와 중 조선시대의 기와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와는 틀에서 찍어내어 굽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따라서 기와문양의 틀이 보존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구워낼 수 있다. 기와는 집에서는 자주 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모품의 성격이 많다. 기와에도 역사는 있다. 기와도 시대별로 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형태와 문양에 따라 시대구분을 할 수 있으며 명문이 있는 경우는 집의 이름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지금 기와와 과거의 기와와는 물성에도 차이도 있다. 과거 기와의 치명적인 단점은 흡수율이 높다는 것이다. 높은 온도에서 굽지를 않아 흡수율이 높아 물이 스며들어 동파가 되어 물이 새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자주 기와를 갈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와는 고온에서 굽기 때문에 흡수율이 아주 낮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얇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옛 기와보다는 가볍다. 또한 색도 변하지 않는다. 옛 기와는 탄소가 빠져나가면서 색깔이 변화되어 오래되면 색이 바랜다. 중요한 것은 옛 기와는 손으로 일일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기계장치가 많이 도입되어 대량생산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소모품의 성격이 있고 다량을 반복 생산할 수 있는 기와가 사료적 가치를 가지려면 많은 시간이 경과되어야 한다. 100년 쯤 지나면 그 시대의 기와의 하나로 사료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단지 불탄 숭례문 위에 얹어져 있어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논리라면 전국에 산재에 있는 수많은 사지들에서 뒹굴러 다니는 수도 샐 수 없는 모든 기와조각도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복재된 청자도 보물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숭례문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잔재를 보존한다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모두 보존해야만 그 교훈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중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을 모아 불타 처참하게 무너지는 사진이나 동영상과 함께 전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앞서 말한 현장의 충분한 검토 후 사료적 가치가 낮거나 없는 것은 기념품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숭례문 화재를 통하여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철저한 반성이다. 그 반성은 현상의 정확하고 세밀한 분석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얻어졌다고 할 때까지 현장은 훼손됨 없이 보존되어야한다. 잔재처리에 대하여는 그 후에 논의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을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