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 구성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이 작품은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작곡된 명작이다. 그는 4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2번과 3번이 주로 연주되고 있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 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다알 박사의 이른바 암시 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라."라는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제2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작품을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다.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을 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일반에게 친숙하기 쉬운 통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되고 힘찬 그러나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의 상금도 타게 된다.
이 작품은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친숙해 질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시작해서 1917년 혁명을 피해 파리로 망명하기까지가 그의 작품활동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간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4번>, <심포닉 댄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을 작곡한다. 파리에 망명한 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주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해 <제4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곡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그리고 <교향곡 제3번>등을 작곡한다. 만년에 들어 스탈린이
1급 예술가로 대우하는 조건으로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고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LA 비버리힐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01년에 완성되어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 초연 된 작품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제1번)과 쌍벽을
이룰 만큼 많이 연주 되고 있다. 섬세하게 다듬는 악상에 정서가 깊고, 천재 피아니스트답게
피아노의 효과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라흐마니노프의 최고 걸작일 뿐만 아니라 금세기의 피아노 협주곡으로서
차이코프스키의 『제1번 피아노 협주곡』과 나란히 명작으로 손꼽힌다. 1901년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밭아 초연 되었으며 1904년에 이 작품으로 클린카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친숙하기 쉬운 통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곡에 넘치는 빛나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음악으로도 널리 사용되어 가사를
붙여 노래 되기도 하였는데 영화『밀회』에 사용되어 더욱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그저
착실하게 생활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인 남편에게 실증을 느낀 유부녀가 외출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남편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인데, 중간 중간에 흐르는 이 피아노곡의
선율은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