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야후에서 백범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는 분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읽고 몇가지 자료가 좋아보여 글을 퍼오면서 저의 의견을 추가하여 수정한 글입니다. 그리고
지역감정의 원흉은 도요다 다이쥬 슨상
각 시기별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호남의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지역감정과 지역몰표의 정확한 발생 시점과 원인을
분명히 짐작할 수 있다 (자료 중앙선관위).
58년 4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자유당 41.0% 민주당 36.0% 무소속 22.2%
전남... 자유당 46.2% 민주당 32.5% 무소속 16.6%
경북... 자유당 41.4% 민주당 30.0% 무소속 25.7%
경남... 자유당 40.2% 민주당 31.5% 무소속 22.2%
어느 지역이 여당같은가. 호남이 영남보다 자유당에 더 많은 표를 주고 있다.
특히 전남이 그렇다.
전라남도는 여당 성향을 앞으로도 계속 보인다.
63년 6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33.2% 민주당 14.7% 민정당 21.9%
전남... 공화당 32.3% 민주당 8.7% 민정당 20.4%
경북... 공화당 39.5% 민주당 9.2% 민정당 14.3%
경남... 공화당 41.6% 민주당 14.4% 민정당 16.9%
부산... 공화당 37.1% 민주당 18.7% 민정당 28.7%
박정희 집권 후 첫 선거이다.
영남이 좀 더 표가 나온 정도인데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다음 선거에서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67년 7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55.5% 신민당 29.8%
전남... 공화당 50.4% 신민당 28.4%
경북... 공화당 50.3% 신민당 27.6%
경남... 공화당 54.1% 신민당 31.5%
부산... 공화당 42.2% 신민당 48.7%
박정희 집권 후 5년 정도가 흘렀다.
호남이 영남보다 박정희에게 더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부산에서는 부마사태의 전조인지 박정희가 상당히 인기가 없다.
71년 8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46.2% 신민당 49.8%
전남... 공화당 52.9% 신민당 41.7%
경북... 공화당 50.4% 신민당 38.5%
경남... 공화당 50.8% 신민당 41.6%
부산... 공화당 40.8% 신민당 56.1%
박정희 집권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여전히 전라도는 박정희에게 호의적이다.
특히 전라남도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산은 여전히 매우 삐딱하다.
73년 9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29.3% 신민당 27.7% 무소속 33.1%
전남... 공화당 47.3% 신민당 22.8% 무소속 16.6%
경북... 공화당 34.6% 신민당 27.9% 무소속 32.3%
경남... 공화당 43.7% 신민당 30.5% 무소속 19.8%
부산... 공화당 35.6% 신민당 49.2% 무소속 5.4%
박정희 김대중이 71년도에 한판 승부를 거친 직후이다.
전북이 상당히 나빠졌지만 여전히 전남은 박정희에게 변치 않는 호의를 보이고 있다.
부산은 더욱 나빠지고 경북도 공화당에 대한 지지율이 15% 정도나 떨어졌다.
78년 10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공화당 29.4% 신민당 31.6% 민주통일당 8.3% 무소속 31.2%
전남... 공화당 34.2% 신민당 24.1% 민주통일당 12.8% 무소속 28.7%
경북... 공화당 27.8% 신민당 23.5% 민주통일당 2.9% 무소속 45.6%
경남... 공화당 31.1% 신민당 26.7% 민주통일당 2.4% 무소속 39.6%
부산... 공화당 29.7% 신민당 39.6% 민주통일당 12.4% 무소속 18.1%
10.26 사태 직전의 투표율이다.
부산은 더더욱 나빠지고 말았다. 이듬해 부마사태가 발발한다.
경북과 전북이 여당에게 별로 안좋지만 전남은 여전히 좋다.
전남이 영남보다 공화당에게 더욱 호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85년 12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36.8% 신민당 26.4% 민한당 18.8% 국민당 11.8%
전남... 민정당 35.7% 신민당 25.3% 민한당 18.0% 국민당 10.2%
경북... 민정당 27.8% 신민당 23.5% 민한당 2.9% 국민당 10.4%
경남... 민정당 31.1% 신민당 26.7% 민한당 2.4% 국민당 10.8%
대구... 민정당 28.3% 신민당 29.7% 민한당 18.5% 국민당 15.6%
부산... 민정당 27.9% 신민당 36.9% 민한당 23.6% 국민당 10.4%
80년 광주를 거쳤지만 그다지 큰 변화는 없다.
희한하다. 김대중이 정치일선에 복귀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당시 투표성향이다
지역 대결의 구도가 나타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구가 처음 독자적 집계가 시작되었는데 이 시점에는 민정당에게 부산 경남, 대구
경북이 호남보다 더욱 적은 표를 주고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부마사태의 주역 부산과 인권변호사의 대부 조영래를 낳고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지 명동성당을 사수했던 김수환 추기경을 낳은 대구는 저래야 당연한 것이다.
지역감정? 그런 거 어디에서도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대구와 부산을 보라. 영호남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민정당에 이긴 유일한 지역들이다.
저 때까지만 해도 투표에 관한 한 정말 좋았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정말이지 우리에게도 저런 날이 있었다.
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28.7% 민주당 1.3% 평민당 61.4% 공화당 2.4%
전남... 민정당 22.8% 민주당 0.7% 평민당 67.9% 공화당 1.2%
경북... 민정당 50.9% 민주당 24.5% 평민당 0.9% 공화당 15.9%
경남... 민정당 40.2% 민주당 36.9% 평민당 1.0% 공화당 10.3%
대구... 민정당 48.1% 민주당 28.3% 평민당 0.6% 공화당 13.1%
부산... 민정당 32.1% 민주당 54.2% 평민당 1.9% 공화당 6.8%
그러나 87년 김대중이 민주당을 깨고 나가서 평민당을 창당하고 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언제도 볼 수 없었던 김영삼의 민주당이 호남에서 1% 내외의 지지율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김영삼은 결국 민자당을 창당한다.
전남북은 평민당에 65% 내외의 몰표를, 대구경북은 민정당에 50% 내외의 비교적 높
은 득표를, 부산경남 은 민정당과 민주당에 비슷한 몰표를 주는 극한적인 지역 대립
의 단초가 드디어 시작되고 말았다.
근데.. 김대중이 87년 대선에서 4자 필승론이니 뭐니 하면서 지역 분할 구도를 그리
기 시작한 게 과연 지역 감정이나 오늘날의 병적인 투표성향과 무관할까?
당시 김대중은 경북은 노태우가, 경남은 김영삼이 갈라 먹고
충청은 김종필이 차지하고 자신은 전남과 전북에서 압승하고
수도권에서 고정지지층과 호남표의 단결로 필승할 수 있다는
4자필승론 을 내세우고 경선을 거부한 채 당을 깨뜨리고 나갔다.
김대중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김영삼에게 대선 주자를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지
만 김영삼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총재 김영삼에 비해 열세였던 김대중은 당을
깨버리고 평민당을 창당했다.
4 자필승론은 그럴 듯한 이론이긴 했다. (나중에 노무현이 열린당을 창당했을때 이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김대중은 자신을 추종하는 의원에게 전통적 지지층을 확보하
라는 교묘한 훈수를 두었다. 전통적지지층확보하라는 건 말그대로 지역감정을 더욱
더 심화시키자는 말밖에 더 되는가?)
어쨌던 8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영삼에 이은 3위로 대선을 마쳤고
이 때 생긴 지역 몰표현상은 두고두고 그에게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김대중은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주장하는것처럼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
지역몰표 탓에 피해만 보고 산 억울한 인물인가?
김대중이 충청도였으면 영남과 충청이, 김대중이 강원도 출신이었으면 아마도 영남
과 강원 사이에 지역감 정이 생겼을 거라는 건 나만의 느낌인가?
누군가가 지역차별을 강변하면서 자기 지역에서 우리도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외
쳤다면 충청, 강원 그 어 디라도 지역감정의 불은 붙어 버렸을 것이다.
DJ는 지역감정의 피해자라가 아니라 이 땅에 지역감정을 깊고 깊게 뿌리박히게 한
장본인이자 주역이었어며 또한 최대 수혜자였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박정희가 지역차별을 해서 지역감정은 시작되었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박정희는 김대중이 말했듯이 63년에 전라도 높은 득표로 당선되었으며
( 63년 대선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에게 전국적으로 단 15만표를 이겼는데 호남에서는 35만표를 이겼다.
호남은 5.16혁명 당시 박정희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 박정희에게 핍박받았다고 생각하는 김영삼은 나중에 5.16을 쿠테타로 명명했지만 50년 대,6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의 암울하고도 참담한 상황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한 출발점이 된 5.16은 분명 혁명 아니 그이상의 것이었다.)
위에서 보듯이 전라도는 박정희 서거 직전까지도 공화당에 계속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정희의 고향 경북 구미시 상모리에도 70년대 중반에야 전기가 들어갔다. 다른 지역
보다 10년은 늦었다. 90년대 초반이 돼서도 시내버스가 하루에 두세번 다녀갔다. 10
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활황중인 구미 전자공 업단지가 있었는데도 박정희의 고향 상
모리는 특별한 혜택은 고사하고 구미에서도 오지로 남아있었다.
변변한 포장도로 하나 없던 시절에 굳이 호남이나 충청, 강원도에 공장을 지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60년 대 당시 그나마 수출항구 기능을 조금이나마 가진게 부산항이
었고 또한 대일 대미 수출입이 국가의 전부였다. 김대중의 말처럼 호남이 차별받지 않
게 목포항에서 수출입을 했어야 할까.. 요즘은 대 중국 수출입이 엄청나게 늘어났는
데 인천항에서 하지말고 그것도 목포항에서 해야 할까? 나라 형편과 국제사정이 그
러할 진데 김대중은 전라도가 차별받는다며 경부고속도로 공사때도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선동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전두환 전대통령께서 재임기간 유치하신 88올림픽을 두고도
한국같은 작은 나라에서 올림픽같은 큰행사를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고 선동하다가 잘 먹히지 않자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한 상태에서 전세계의 손님을 모셔놓고 올림픽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까지
개드립을 쳤는데 과연 한평생을 분열과 갈등조장 , 네거티브전략과 선동으로 살다간 김대중다운 발언이긴 하다.
"지역주의 선거 근본원인에 관한 성찰과 해결방안"이란 연대 주승만의 논문을 보면
47p에 이승만 정권에서 4%에 불과하던 호남출신 장관 비율이 박정희 들어서서
15.3%로 늘어 났다. 고위 관료도 6.2%에서 13.5%로 늘어 났다.
정말 박정희가 호남을 차별했을까. 진정 누가 호남을 차별했단 말인가.
박정희가 호남을 특별히 차별했다는 게 과연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김대중이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신의 집권을 위한
망국적선동에 불과했던가를 판단하는것조차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