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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자 이학영의 이력서
1974년 8월 긴급조치 4호를 위반한 죄로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 어찌 된 일인지 1975년 2월 15일, 형집행정지조치로 출소하여 커피행상으로 일하다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다. 1977-78년에는 돈암동 제일복장사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하면서 한미직업훈련소에서 선반공 과정을 이수한 후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1978년 10월 6일에 남민전 민투에 가담하여 암호명 조선택으로 활약했다. 세운상가 등에 “격! 몰아내자 박정권, 모이자 민투” “기미항쟁의 불길을 박정희 타도의 횃불로!” 등의 제목으로 된 삐라를 수없이 살포하는 것으로 민투의 범행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남민전은 조직 자금난을 해소키 위해서 1978년 9월 29일 이재문, 안재구, 신향식, 이해경 등 핵심조직원이 흉기를 사용하여 부정축재자, 악덕재벌을 대상으로 폭력적 방법으로 재물 등을 탈취하기 위해 ‘혜성대’라는 강도단을 창설했다. 이들은 범행장소에 대한 약도를 그려놓고 칼 등 범행도구를 마련한 후 범행 절차와 도망가는 절차 등에 대해 수차례 예행연습을 했다. 혜성대는 봉화산작전(1978.12.5 가정집 강도), G.S작전(1979.3.25 금은방강도), 땅벌1호작전(1979.4.27 동아건설 사장집 강도) 등 떼강도 행각을 잇 따라 자행했다. 이학영은 1979년 3월 25일 종로2가 소재 보금장 금은방을 대상으로 한 ‘G.S 작전’에 김남주(작고, 시인)와 최석진(환경운동, 승 법륜의 친형) 등과 범행에 가담했고, 이어서 ‘땅벌1호작전’ 떼강도 사건에 가담했다. 1979년 4월 27일 동아건설 최원석 사장 집에 침입했다가 경비원에게 발각되자 경비원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 죄 등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이학영은 출소 후 28년간 YMCA 등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YMCA의 대부'로 불려오다가 2011년 12월, 문재인, 문성근, 김두관 등 친노·시민단체가 만든 시민통합당에 참여한 여세를 몰아 민주통합당 예비경선을 통과하고 대표경선에까지 나서게 되었다. 왕재산 간첩들이 간첩행위를 진행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그 간첩들에 민주화 유공자 자격을 부여하고 보상금까지 주는 마당이니 어찌 국가가 걸레조각으로 갈갈이 찢어지지 않겠는가? 2012. 1.9. 지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