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수행자의 땅에서 마주친 등신불..
인도 히말라야의 많은 산자락 중에 스피티라는 계곡이 있다. 행정지역상으로 라다크 지방이 아니라, 내가 사는 이곳 히마찰 프라데시 주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수행자들의 보금자리로 알려진 이곳의 다른 이름은 '다키니 랜드', 즉 '하늘 수행자의 땅'이다.
그곳에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규'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까다로운 특별 허가서가 필요하다. 그 산 너머는 티베트 땅으로 중국국경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2년, 인도의 군인들이 군사도로를 내기 위해 산비탈의 모래를 파헤치고 있었다. 갑자기 작업하던 한 군인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모래더미 속에서 눈을 뜬 채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진짜 사람이었다. 이런 척박한 산속, 그것도 땅속에서 사람이 나오다니! 당시 한 군인이 핀으로 살을 찌르니 피까지 배어 나왔다고 한다. 한손에는 염주도 쥐고 있는게 누가 보아도 수도승의 모습이었다.
인도인의 종교적인 성정상 극진히 잘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 그분은 삽시간에 그곳 산골 주민들에게 알려졌으며 자연스레 '겔롱 깜뽀(삐쩍마른 비구 스님)로 불리기 시작했다. 인도 신문에서도 뉴스거리가 되었고, 훗날 TV디스커버리채널 탐사팀이 학자들과 함께 촬영차 찾아가 탄성파 검사를 한 결과 오백오십년 전의 시신(몸)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전 세계에 이 사연이 방영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소문으로만 들어오다가 몇 해 전에 그냥 호기심에 찾아간적이 있다. 그리고 2011년 7월, 일행과 함께 라다크 가는 길에 무슨 취재 기자라도 되는 양 다시 가서 정밀조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발굴 당시 사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온 몸의 습기가 말라버려 뼈와 살가죽이 달라붙으니 글자 그대로 앙상한 미라가 되었다. 언뜻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의 붓다 고행상이 떠올랐다. 머리털도 좀 자랐고, 손톱에다 속눈썹까지, 사람으로서 갖춘 건 완벽하게 갖추었다. 치아와 치아 사이가 종이 한장이 들어갈 듯 약간 벌어진 상태다.
명백히 모든 번뇌를 여읜 수행자의 자태로서 수행 중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적정 상태, 즉 멸진정(滅盡定)에 들었다가 몸은 그대로 둔 채 윤회계를 벗어난 해탈계의 경지를 보여준다. 몸을 다시 입지 않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네 단계 가운데 마지막 최고 경지인 아라한을 성취한 것이다. 스님 앞에 합장 삼배의 예를 갖추어 흙투성이 맨바닥에 이마를 드리우며 찬탄과 감사의 절을 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달라이 라마께서 이 등신불 수행자의 전생을 선정중에 밝혀내 공포하셨다고 한다. 그 옛날 난행고행의 수행을 한 스님의 이름까지 알아내신 것이다. 거의 육백 년 전에 살았던 이 은둔 수행자의 이름은 '뚤꾸 쌍악 뗀진' 이었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육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사람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정신계의 의식 차원은 신비 자체이다. 몸은 죽지만 바로 이 의식, 영혼은 원인과 조건 지어지는 인연을 따라 시간과 함께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선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를 말한다. 지금의 이 삶이 다음 세계의 내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지금 여기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법(진리)을 따르려는 수행자라면 늘 그런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의식의 규명이 깨달음인 것이다. 잠을 잘 때도 꿈을 꾸는 그 의식의 유희를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이 자리에 있음을 잊지 말자. 그러면 과거와 미래가 전부 지금 현재와 하나가 된다.
황량한 스피티 계곡 아래서 마주한 한 스님의 등신불은 앞으로의 내 삶에서 늘 신선한 충격으로 함께할 것이다.지금 이런 원인과 조건 지어진 모든 인연, 결과에 감사한다. 등신불의 친견 공덕인지, 험하고 힘든 라다크 연례 봉사를 원만히 마칠 수 있었다. -청전스님 글중에서-
*기적을 낳은 기도문..
롭쌍 왕뒤 노스님..
티베트에서 망명한 뒤 다람살라에서 지내신다. 열세 살 되던 해에 라싸 근교의 뀐뒬링 곰빠에 보내졌단다. 올해(2012년)일흔여덟 살이며, 평생 하꼬방 같은 조그만 단칸방에서 지금껏 매일 변함없는 일과 속에서 가난한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신다. 어떤 특별한 존함이나 이력도 없이, 딱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비구로서 조용히 살아가신다. 늘 부산하고 예식이나 의식이 많은 사원을 떠나 당신만의 단칸방에서 혼자 지내신 지 이십육 년이다.
이 노스님의 인연의 시작은 어디서 들으셨는지 누구에게나 약을 준다는 말을 듣고 나를 찾아오신 때부터다. 무릎이 시리다며 영양제를 받아가셨고, 그 후 일 년에 서너 번 찾아오신다. 벌써 십육칠 년이 넘는다.
스님은 매일 새벽 두 시부터 명상과 간경, 그리고 절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당신의 좁은 방에서 날마다 삼백 배의 절을 한다. 소박한 티베트식 짬빠(볶은 보릿가루)와 버터차로 아침을 마친 뒤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는 왕궁과 절 주위를 참배하는 꼬라를 매일 새벽에 세 바퀴, 낮에 네 바퀴씩 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얼추 반 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점심 이후엔 개인 일과를 보는데 난민들 가정을 방문할 때가 많다.
잡수는 것도 너무 간소하다. 거기에 오후불식을 지키며, 티베트 사람이라면 불문율처럼 누구나 먹는 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순수 채식가다.
1959년 중국 침략 당시, 승려라면 누구나 끌려가 고초를 당한 감옥에서 조차 이 스님은 오후불식과 채식으로 버텨냈다. 스님의 흐트러짐없는 의연한 모습에 감화된 중국인 간수들조차도 스님께만큼은 예의를 갖춘 존댓말로써 대우했단다. 끼니도 고기 빼고 따로 챙겨다줄 정도였다니 감옥에서의 스님 자세가 어떠했겠는가. 팔 년 동안 매일 밥값으로 정해진 양의 돌을 깨면서도 자기 본연의 자세를 지켜냈다.
어느 날부터 이 스님의 손이 약손이 되어갔다. 난민들의 아픈 부위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신통하게도 아픈 곳이 낫는 것이다.
무슨 특별한 비밀 수행을 해온 스님만의 비법이 있을까? 아니다. 비법이랄 건 하나도 없다. 한 비구승의 맑디 맑은 영혼의 에너지가 그런 기적을 낳았을 것이다.
스님은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여기를 떠나 성도지 부다가야에 내려 가신다. 노구에 추위도 피하고, 당신 혼자 정해놓고 해마다 하는 수행을 허러 가는 것이다. 티베트 절을 매번 이십만 배씩 한다. 백일을 정하고선 그 노구에 하루 이천 배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지금까지 집에서 매일 삼백 배씩 해온 것 빼고 부다가야에서만 절하신게 올해로 육백만 배를 마쳤단다. 놀랍지 않은가! 티베트불교의 전통에서는 어떤 수행이든 하기 전에 십만 배를 기초수행으로 한다.
지난 겨울, 부다가야의 갈라차크라(시간의 수레바퀴란 뜻으로 종교예식과 법문 들을 통해 대중에게 시간의 경광에 따라 삶과 죽음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입체적 법회) 행사에 참석했을 때 대탑을 참배하다 한쪽 구석에서 절을 올리는 노스님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뵙고 참으로 행복했다. 마치 어느 하늘 사람이 절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유연한 몸매로 올리는 절 한 배 한 배에서 가냘픈 노비구의 향이 배어나왔다. 아, 바로 저 에너지, 저 청정무구한 비구의 맑은 영혼이 병든 중생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구나!
당신이 사시는 방을 한번 보자. 컴컴하고 좀 퀴퀴한 버터 향이 배어 있는 방의 구조가 단출하기 짝이 없다. 침대 하나에 취사도구와 조그만 불단, 그리고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전부다. 출입문 하나에, 벽엔 창문도 없다. 우리나라식 평수로 말하면 네다섯 평이나 될까. 이 좁은 방 안에서 이십육 년이라니.. 숙연해진다.
가끔 나를 찾아오는 손님 중에 의식을 갖춘 분이라 판단되면 그 노스님께 인사차 찾아간다. 쉽게는 가지 않는 바, 노스님의 수행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운 좋은 몇몇은 일반 신도였다. 놀랍게도 결과는 하나다. 스님이건 일반인이건 스님과 그 방의 모습을 보고는 그냥 그 자리에서 펑펑 운다. 어떤 이는 대성통곡이다. 왜 우냐고 물으면 대답도 똑같다. 말로 할 수 없는 뭔가가 그리 울음이 나오게 한단다.
절집에서 새벽 예불 중에 항상 올리는 축원문이 있다.
문아명자면삼도
견아형자득해탈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모두 삼악도(지옥,아귀,축생)의 괴로움을 여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모두 해탈을 얻게 하소서"라는 의미의 기도문이다. 바로 이 기도문이야말로 소박한 노스님의 일생 수행을 비추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나 이 스님을 보는 것만으로 크나큰 기쁨과 본래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선함을 돌아보게 되니까 말이다.
어쩌다 한국에 들어가서 대형화해가는 사원들을 볼 때마다. 이 이름없는 롭쌍 왕뒤 노스님의 거처와 삶이 생각난다.
이 글을 쓰고서 사진을 촬영하고자 당신 거처를 방문했을 때다. 묻지도 않았는데 하시는 말씀이, 대탑에서 육백만 배를 마친 마지막 회향일 밤에 놀랍게도 부처님을 뵙는 상서로운 꿈을 꾸었단다. 그러면서 올해는 꼭 고향땅에 당신이 출가한 곰빠에 다녀올 수 있을 거라며 기뻐하신다.
망명 후 아직 한 번도 티베트에 가본적이 없단다.
현재 티베트 국경은 분신 사태로 꽁꽁 묶여 있어 티베트 사람은 누구나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청전스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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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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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면서 즐갑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
감사합 니다_()_()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_()_()_()_
놀랍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럽습니다~~!!!
저 또한 글을 쓰며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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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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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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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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