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방문은 적대지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며, 적의 행동의 직접적인 결과로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엔군 및 미합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은 방문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만일 적의 적대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지지 않습니다.
(방문자 선언서-유엔사 규정551-5)
판문점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방문자 선언서에 서명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항상 긴장이 감도는 판문점. 유엔사 경비대대(UNCSB: United Nations Command Security Battalion)소속 JSA(Joint Security Area)요원들은 바로 그 곳에서 북한군을 마주 대하며 근무하는 병사들이다. 언제든지 허리에 찬 총을 빼서 쏠수 있는 자세로 대치한 JSA요원과 북한군 사이에는 단지 너비 50cm, 높이 5cm인 시멘트 블록이 있을 뿐이다. 전쟁이 나면 1㎡당 폭탄 하나씩이 떨어져 3분이내에 전원 몰사한다는 판문점. 지름800m, 넓이 약 15만평인 공간에서 선 하나를 놓고 적과 대치하는 생활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영화(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서 JSA요원들의 삶이 조금씩 알려지기는 했지만, 실제 이들의 군 생활은 영화보다 더 극적인데가 있다.
유엔사 경비대대 창설은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담장 경비를 위해장교 5명과 병사 10명으로 경비부대가 구성된 것이 부대의 모태이다. 처음에 미군으로만 구성되었던 이 부대는 이후 한국군도 포함되어 현재는 5백명 중 3백명이 한국군이다. 유엔사 경비대대는 크게 행정과 지원을 맡는 본부중대와 영화에서처럼 판문점 경비를 맡는 경비중대로 나뉜다. 이 중 경비중대는 부대원 전원이 한국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을 한국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관점에 따라 유엔군일수도, 미군일수도, 한국군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논산훈련소에서 차출되거나 미8군 산하 카투사 교육대 (KATUSA Training Academy, KTA)에서 선발된 이들은 유엔사 소속 "JSA 요원"이 된다. 한국군을 입대 했다가 유엔군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내용을 들어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유엔사 경비대대는 유엔군 산하이지만 부대 지휘관은 미군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 중령이 유엔사 경비대대 대대장을 맡는다. 부대의 지휘체계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대장 (Battalion Commander, 미군 중령)
부대대장 (Deputy Commanding Officer, 한국군 소령)
대대부관 (Executive Officer, 미군 소령)
부대 주임원사 (Battalion Command Sergeant Major, 미군 주임원사)
부대 주임원하 (Battalion Command Sergeant Major, 한국군 주임원사)
본부중대
Headquarters and Headquarters Company
중대장 (Company Commander, 미군 대위)
부중대장 (Deputy Commanding Officer, 한국군 중위)
중대부관 (Executive Officer, 미군 중위)
중대 선임부사관 (Company First Sergeant, 미군 상사)
중대 선임병장
(Company ROK Army Senior NCO, 한국군 병장)
경비중대
Joint Security Force
중대장 (Company Commander, 한국군 소령)
부중대장 (Deputy Commanding Officer, 한국군 중위)
중대부관 (Executive Officer, 미군 중위 또는 소위)
행정보급관 (First Sergeant, 한국군 상사)
교육대장 (Training Sergeant, 한국군 중사)
중대본부 선임병장
(JSF Headquarters Senior NCO, 한국군 병장)
근무한 1999년부터 2001년 당시 부대를 중심으로 위 도표를 그려봤다. 이렇듯, 세계 그 어느 부대에서도 보기 힘든 지휘체계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당시 대대장이었던 William P. Miller 중령이 항상 했던 말이 생각난다: "This unit has only one chain of command. There are no US soldiers, nor are there ROK soldiers. In this unit, there are only JSA soldiers."
훈련소에서 JSA요원을 차출할때에는 주로 신체 조건을 본다.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훈련병을 뽑아 신원조회를 거친 후 선발하는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도군번"이라고 해서 무술 유단자들을 주로 선발했다. JSA요원으로 선발되면 판문점 남방한계선 바로 밑에 있는 캠프 보니파스로 가게된다. 캠프에 가면 신병들은 건물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축된다. 대부분의 시설들이 북한군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니파스라는 캠프 이름도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사망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앤더슨막사(Anderson Barracks), 배럿막사(Barrett Readiness Faci1ity), 벨린저 홀(Ballinger Hall)도 모두 희생자의 이름으로 붙인 건물이다. 대중에는 한국군 JSA요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설도 있다. 경비중대 2소대가 사용하는 장명기 막사는 1984면 소련 관광객이 귀순할 때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죽은 장명기 상병의 이름을 기한 것이다. 이외에도 한국군 JSA요원의 이름을 딴 시설이 여러곳 더 있다. 이런 까닭에 "아차 실수하는 순간 캠프 보니파스에 이름을 남길수도 있다."라는 고참 사병의 으름장에 신병들은 긴장하지 않을수 없다.
신병 교육 과정(차후 시리즈에 다루어질 예정)을 무사히 마치면 드디어 판문점 근무를 서게 된다. 근무를 설때는 무릎을 조금 굽히고 손을 총 옆에 바짝 갖다대는 "코단(Cordon) 자세"를 취한다. 이 자세는 총을 가장 빨리 뽑을수 있는 자세이다. 그러나 총을 빨리 봅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사방에 자신을 향해 총구가 겨누어 지고 있을 것이다 때문이다. 총을 뽑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재촉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긴장이 흐르던 판문점도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미군부대에 오래 근무한 한 관계자는 바뀐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에는 JSA요원들의 사고가 많았다. 남북간의 긴장이 고조 될 수록 군기를 더 잡게 되고, 이를 버티지 못한 요원들의 자살사고나 월북 사고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거듭된 것이다. 그러나 방북정상회담 이후로 판문점에서 소몰이 방북, 미군유해 송환, 장기수 송환처럼 인도적이 행사가 진행되면서 긴장된 분위기가 예전보다 휠씬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