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꼴찌였다
어느 대학 교수의 가슴 뭉클한 고백이
트위터 사이에 화제가 됐습니다.
이 교수는 중학교 1학년 때
전교에서 꼴찌를 했는데
성적표를 1등으로 위조해
아버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이후 그 학생은 너무 죄스러운 마음에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 17년 후
대학 교수가 됐고
유명한 대학의 총장까지 하게 됩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 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 말"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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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떻게 추천을 않할수가 있겠어요. (강추)
부모님이 진정한 교수군요.
참고가 많이되겟읍니다 좋은글 감사함니다..
좋은글 감사 함니다
훤이 아시면 서도 속아준 그 아버님이 교수를 능가하신 분이십니다 정말 장한 아버지를 두셧내요!
안녕하세요
골목길에서 만난
낯선 아이한테서인사를 받았다
안녕!
기분이 좋아진 나는하늘에게 구름에게지나는 바람에게
울타리 꽃에게인사를 했다.
안녕!
문간 밖에 나와쭈그리고 앉아 있는순한 얼굴의 개에게도인사를 했다.
너도 안녕!
나태주 가슴으로 읽는 동시
아버지의 선견 지명
잘 감상합니다.
휼륭한 부모님 감사를드림니다
훌륭하신 부모님의 덕을받아 성공의운을 잡으셨네요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감상하고 감니다.
고운글 감사합니다.
진
짜 교육자는 그 아버님이십니다
감감사 합니다 정말 그래
감사합니다.
감명깊게 잘 읽고 감니다.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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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感謝합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부모 마음을 어찌알리...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깊고깊은뜻 감동받았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진짜든 거짓이든 가슴 뭉클 하네요~!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운 부모님 잘 보고 갑니다.
그게 부모의 속마음...
니들이 부모맴을알어?...
부모님의 처신에 자식들이 알아 효도를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