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이란 말은 최초로 문학과 관련해 1971년에 처음 사용되었고, 시각 예술에서는 찰스 젱크스가 1970년대의 건축현상을 특징짓는 말로 처음 사용하였던 것을 미술 비평가들이 미술에도 적용하여 사용함으로써 올해로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어휘가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연계로서 보는 시각은 3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포스트모던이 갖는 디자인사적 의의와 특징 형성배경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현재 21세기의 통합디자인적 사회를 살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화두라고 보여 진다.
이 소논문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일반적 배경과 디자인사적 형성배경, 디자인에 있어서의 정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던 디자이너들을 두루 돌아보고 사조적 그 특징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모더니즘과의 단절로 규명하고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적 징후로 보는 입장이 있고,
두 번째, 모더니즘의 후기적 양상이며, 퇴조한 혼란의 양상으로 보는, 주로 모더니즘옹호론자나 대변가들의 입장이 있으며,
세 번째는 모더니즘의 지속으로 보지만, 모더니즘의 역사를 새로운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포스트(POST)란 접두사는 「_이후의」 「탈」 이라는 긍정 적 의 미와 부정적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어 이런 양상을 암시해 주고 있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은 변화하는 세계관과 근대 건축의 비판에서 기인하였다. 20세기에 진입하면서 현대 물리학은 새로운 자연관을 제시하였고 이에 따른 세계관은 점차 다른 학문분야에도 받아들여지고, 고전적 과학방법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전개 발전되었다.
즉, 하이젠 베르그, 보어, 카프라, 쥬거트, 헤드의 새로운 양자 역학과 물리학적 사고는 주1)불확정성의 원리가 자연의 불변의 원칙이며 속성이라 하여, 자연의 인과성, 합리성, 과학의 객관성을 뒤엎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또한 수잔 손 탁의 문화적 이론, 제레미 레프킨의 주2엔트로피 법칙, 데칸철학의 부정 등은 신과학 신철학, 신생활 운동을 탄생시컸고, 이러한 변화하는 세계관은 제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성향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을 발생시킨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 원인이 된 비판받는 모던 디자인은 서구에서 근대라는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감을 기반으로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였으며,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기능주의를 추구하였다. 1960년대 중반은 정보혁명에 의한 첨단테크놀로지 등을 바탕으로 일종의 초산업화 사회로의 전환기였고, 1970년대 중반에는 대체 테크놀로지 운동으로 과거의 산업사회와 전혀 다른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후기산업사회로 지칭되는 현대사회는 기계와 컴퓨터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개발과, 계급의 양극화 현상에서 신중간 계급이 등장하게 된다. 이 에 대중 소비재가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소비에 대한 규범을 창출하면서 대중적인 문화양식 이 함께 존재하게 된다. 또, 새로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글보다 말을 이용하여 인간을 연결하면서 삶의 진실을 더 많이 수용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역사가 대립적 2중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서열의 개념에 비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서열의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은 하나의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의 해결책으로 해체를 통해 인간의 억압상황을 풀어보려 하였다. 해체를 통해 보다 자유로운 관계를 얻을 수 있고, 이때 외부로부터의 파괴가 아닌 내부에 있어서의 해체가 좋은 대안이라고 말한다.
한편 서구 계몽주의의 논리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유지를 위한 권력과 권위를 정당화 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개인의 정서와 감정을 중요시하고 탈 중심화를 주장한다. 기술에 대한 신념과 순수성, 논리성과 형식 적 방법에 대한 과학적 능력을 규명한 모더니즘의 낙관론적 접근은 더 이상 설득력 이 없었고 사회에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지배하게 되었다. 과거 지향적인 자세와 절충주의, 혼란의 양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가부장적 남성주의에서 벗어나 여성의 일, 사고, 관심을 반영하는 여성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1970년대의 반 모더니즘적인 일련의 다원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거쳐 19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신표현주의의 거대한 국제적 물결로 발전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전반 분야에서 하나의 정식사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회학과 철학의 경우 반 계몽주의와 반 합리주의로 나타났고 이것은 인간의 삶이나 전체의 역사는 우연과 감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역사는 이성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진화를 원동력으로 한다는 근대 합리주의 주3)계몽주의의 정신사조에 저항하고 비판을 하면서, 역사는 인간감정과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이에 의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사회가 효율성의 극대화와 기계론적 미학으로 인해 자연과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의 정서가 단조롭고, 메마르게 되었음에 문제를 삼은 휴머니즘적 접근이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었는데, 독일의 한 사회이론가는 합리성이 낳은 부정적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성마저 부정한다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인간의 가치는 이성, 지성, 합리성에 있다고 보고 있다. 예술전반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를 불확정성의 시대로 규정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예술의 구도보다는 행위의 과정을 통해 변화 완성된다고 본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각 하위 예술분야에서도 하나의 사조로서 받아들여졌는데, 문학, 음악, 미술, 건축, 연극, 영화, 댄스, 사진, 비디오아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매우 폭넓게 사용되는 개념이며 현상이지만,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각 예술분야에서 나타나는 전반적 특성을 몇 가지로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공통되는 것은 비합리성, 대중성(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계급타파), 해체적, 이미지 중심 지항, 자유적, 다원적, 전통적 가치에 대한 비판성이다. 이런 특성들로 볼때, 확실히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가치에 도전을 하면서, 서민과 대중에게 다가가려 하며, 틀에 억매이지 않는 형식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예술분야 중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건축분야이다.
건축은 다른 분야보다도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어,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실용적인 욕구와 필요성을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근대 건축 디자인은 인위적 환경의 시각적 무질서, 기계론적 미학에 의한 형태의 단조로움과 의미의 결여, 과거와의 단절, 건축의 상징성 상실 등 제반문제를 야기시켰다. 도시의 황폐화 및 질 낮은 환경으로 기존환경과의 부조화가 생기고, 추상 미학과 기계 미학의 산물인 획일성과 비인간화에 따른 거주자의 아이덴티티의 상실과 박탈, 그리고 장소성의 결핍으로 국제주의적 양식의 추진력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 결책으로 보다 포괄적 이고 휴머니즘적인 접근을 통하여 변모해가는 사회에 대응하기위한 현대 디자인 사조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더니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더니즘의 원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원리를 추구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의미의 다양성(Multivalence), 상징성 (Symbolism), 장식성 (Ornamentation), 회화성 (Picturesqueness), 인유 ( Allusion), 역사주의 (Historicism),이미지(Imagery) 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사용하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에공통되고 있는 것은 첫째, 모더니즘의 배타적인 디자인에 반대한다는 점과, 둘째, 디자인을 언어로 보고 그 의미의 풍부성을 위해 포괄적 디자인 철학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역적 맥락(Context)에보다 적합하게 하고 디자인의 상징과 의미회복을 통하여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제시하려고 시도하는 일련의 운동이다.
포스트 모던 디자인 특성
1) 디자인 사조로서의 형성배경
건축은 다른 예술분야처럼 보고 느끼고 즐기는 시각예술이 아니라 사용하기도 하는 예술분야이며 좁은 의미에서 건축보다는 광의의 환경디자인(built-enviromentdesign)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건축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양상이 다른 예술분야와는 약간 다르게 전개되어 왔으나, 18세기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이후 기술의 발달로 생산체계는 기계화, 대량생산화 되었고, 이는 사회 전체에 대중화, 규격화, 획일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20세 기로 오면서 시민계급이 형성되고 개인 중심적 가치관이 팽배하게 되었으며, 철근 콘크리트가 대중화 되면서 공업 기술의 발달이 정치적, 대중적 요구에 부응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모더 니즘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오랫동안 모던 디자인은 곧 좋은 디자인 혹은 기능적 디자인을 의미해 왔으나, 그것들은 인간의 역사적 연속성이나 장식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하였으며 그것들이 사용되거나 세워지는 환경과 충돌하는 경우가 생김은 물론 획일적인 디자인으로 인하여 인간성을 무시하였다는 문제점이 자주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산업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빠른 유행의 변화를 가져와 미학적 기호의 수준이 철학적, 예술적 평가를 받을 여유도 없이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대체되었다. 이 시기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로는 하나가 민족적 전통을 추구하는 경향과 인간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 즉 건축에 휴먼 스케일을 이용한다든지, 건축을 하나의 언어로 본다든지, 건축을 미학적 기준 이전에 생리학적, 정신적, 심리적 기준에서 이해하려 한다든지, 또는 건축을 문화적 전통성에서 추구하려는 인간화 경향들을 들 수 있다. 이모든 성향을 크게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르나 그 안에서 다시 구분한다면 모더니즘의 이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대적 요구를 수용하는 후기 모더니즘적 경향과 모더니즘 디자인의 한계를 인식하여 새로운 형태를 통해 상징적 의미를 구사하려는 탈 모더니즘적 경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기 모더니즘은 이 시대에 나타난 가장 보수적인 접근 방법으로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의 디자인인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에 확고한 기초를 두고는 있으나, 더 새롭고 감각적이며 과장적이고 기묘한 형태를 띠고 있고 하이테크를 디자인에 이용하고 있다. 또한 반복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하며 구조를 장식적 요소로 사용함은 물론 은유적 표현이나 역사적인 요소는 디자인에서 배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건축이 재료와 구조의 사용에서 진실해야 하며, 건축의 형태구성은 시대 정신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근대 건축의 논리 대신에, 건축은 표현의 수단일 수 있으며, 범세계적 이 기 보다는 지역적이며, 규범적인 것의 산물이 기 보다는 개인적인 창조의 산물이라는 논리를 가진다. 또한 건축의 작업 은 창조적이기 보다는 역사의존성을 가지며, 동시에 하나의 원리 체계가 아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소위 건축창작 행위에 있어서의 다원주의의 대두라고 할 수 있으며, 건축의 형태 구성방법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받아들이는 태도와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성격을 띠며, 전개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포스트모던 건축은 그들의 유구한 도시와 건축 역사를 자원으로 생각하고 출발하였다. 건축의 창조는 무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든 창작 행위는 과거의 산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에서, 역사성 을 도입했으며, 표피적이고 장식적인 대신에 원론적 이고 본질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의 대표적 경향은 알도 로시와 마리오 보타의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맥락에 일치하는 유형들을 재해석하고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였다. 이들 신 합리주의자들은 건축과 도시를 의미 전달매체로서 인식하여 대칭성을 도입하고 고전적인 주4)콜라쥬를 이용하여 그 지역의 특성과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짧은 건축역사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절충적 양식이나, 미국적 지역성에 의존하여 건축형태를 시도하는 성향을 띤다. 로버트 벤츄리는 순수한 형태 대신에 복합적인 형태를, 단순 명쾌한 형태 보다는 애매하고 모호한 형태를, 쉽고 단순한 형태의 조합보다는 여러 요소가 통합되고 어려운 질서를 요구하는 매너리즘 건축을 추구하였으며,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 ,즉 민중의 생각이 가장 진실된 것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미국의 상업주의에 부합되는 건축을 전개하였다. 로버트 벤츄리, 필립 존슨, 찰스 무어, 마이클 그레이브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주의는 기본적 유희 엘리트적인 건축가상을 지양하고 대중의 인식과 함께 대중의 취향에 맞추고 있다. 특히 로버트 벤츄리는 건축의 대립성과 복합성을 주장하면서 건축에 있어서의 장식과 상징성에 크게 몰두하고 있다. 찰스 무어는 일반적인 것, 과거의 이용, 모든 것의 사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형태 구성의 수난으로서 과거의 양식 및 장식을 취합하여 콜라쥬적인 효과 등을 구사한다.
미국과 유럽의 공통적인 특징은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하고, 건축물에서의 다원적 의미를 지닌 형태를 창조하는데 있다. 그리고, 지역성의 추구와 함께 고전적인 건축의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상대적 비교를 하면,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 특히 이태리에서는 자기들의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한 역사성의 도입을, 미국에서는 짧은 건축역사에서 오는 문화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절충적 양식, 미 국적 지역성, 상업주의, 대중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디자인에 있어서의 정의
포쓰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모더니즘이 쇠퇴해 가는 시기였던 20세기 중반에 처음 사용된 뒤, 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문화사조로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모더니즘에 반발하는 건축에서의 경향과 결합되어 건축에서 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포스트 의 모더니즘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찰스 젠크스(Charles Joocks)는 포스트모던 건축은 건축을 언어로 간주하여 이중 코드의 사용과 함께보다 풍부한 상징성의 탐구를 위해, 인습적 형태를 사용하여 근대건축의 사상을 부정하고 새로운 건축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하였으며, 로버트 스턴(Robert Stern)은 포스트모던 건축은 반 모던적 전위 양식이 마니라 르네상스 때까지 소급되는 근대건축의 광범위한 흐름과의 재통합이라고 정의하면서, 문맥주의, 은유성, 장식성의 특성은 문화적으로나 감각적으로도 분명하며 실용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는 역사적 기억과 지역적 특성 및 이미지 등의 개념에 관심을 갖는 건축가들을 포스트모던 건축가라고 한정하였고, 파올로 포토제시(Paolo Portoghesi)는 역사적 스킬을 의심하고, 재구성을 통해 근대 건축이 세운 역사적 가정의 신뢰성을 검증하려는 경향과 도시의 일상적인 대중문화의 동질성을 인식함으로써 고급문화와 하급문화간의 상관성을 고찰하여 이를 건축에 반영시키려는 경향들을 포스트모던 건축이라 규정하였다. 이렇듯 포스트모던 건축의 정의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은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칭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디자이너
1)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마이클 그레이브스는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포스트모더니즘의 디자이너이다. 그는 포스 모던 건축가로 알려져 있으나 건축물에 못지않게 실내디자인, 가구디자인 작품도 활발히 하였으며 각 분야마다 그의 역할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는 1979년 초 서너(Sunar) 가구 회사를 위해 각각의 다른 도시에 8개의전시장을 시리즈로 디자인 하였는데 이 전시장의 실내에 나타난 느슨하게 주름 잡은 직물, 살구색, 회색프렌치 블루, 짙은 회색, 황토색 같은 섬세하고 매력있는 색조는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채택이 되어 사용이 되었다. 이들 전시장에서 그레이브는 분리된 방, 방들의 체계적인 연속, 건축 공간 요소를 사람과 같이 세부분(발, 몸, 머리)으로 나누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였으며, 원주, 주두, 박공, 볼트 천정과 같은 고전적인 표현수단을 사용하였다. 또 포틀란드에 있는 포틀란드 빌딩은 고전적 모티브가 대규모의 도시 건물에 사용된 대표적 예로서, 건물을 기단, 주신, 주두로 구성하는 고전적 분할을 채택하였다. 건축물의 외관은 획일적으로 통일되지 않고 여러 부분들로 나누어져 각 부분들이 독립 적인 색, 형태로 처리됨으로서 다양성을 지니는 동시에 주5)절충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타일을 붙인 기단부분의 아케이드는 인접건물과 연관성을 갖게 하여 도시적 맥락에 대응하고 있으며 이 건물의 형태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전달되고 있다. 또한 그는 크리스마스 즈음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은앞에 걸어두는 등근 크리스마스 화환이 미국 문화의 표현임을 인지하고, 이를 대중을 환영해야하는 공공 건물에 도입하여 거대한 건축물의 외관에변용하여 적용시켰다. 그레이브가 디자인한 가구는 그의 건축적 경향과 근본적으로 같은 흐름을 하고 있고 특히 고전적인 것을 암시하는 디자인이 그 특징을 이룬다. 건축적 형상과 신조형적 기하학적 특성 그리고 고전의 부활, 그가 강조한 장식적 성향은 아르데코가 보여주었던 성향과도 일맥 상통하고 있다.
2) 맴피스(Memphis)
이태리의 몇몇 건축가들과 산업디자이너들로 구성된 멤피스(Memphis)그룹은 1981년 9월 밀라노에서 그들의 첫 작품 전시회를 열면서 혜성처럼 나타나 전 세계의 디자인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화려한색과 패턴이 든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 액센트 역할을 하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해서 하루아침에 산업디자인계 의 상징처럼 되었다. 이 멤피스 그룹은 1980년 연말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미 2~3년 전부터 밀라노의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은 좀 더 색다른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개별적으로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집 전체를 같은색 카펫으로 깔고, 이곳저곳에 그림을, 여기저기에 조각품을, 그리고 유리와 크롬으로 된 커피테이블에 검정색 스틸 전등갓을 천장에서부터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생활환경에 반기를 들고, 거의 무모할 정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과 코디네이션을 쏟아내었다. 1980년 이전에 밀라노에서 가장 실험적인 새 아이디어를 제시하던 디자인 스튜디오로는 1976년 구에리에로(Guerriero)가 설립한 스튜디오 알카미아(Alchymia)를 들 수 있다.
구에리에로는 동료 작가 멘디니(Mendini)를 통해서 후에 멤피스의 중심인물이 된 소트사스(Sottsass), 드 루키(De Lucchi), 브란지(Branzi), 나보네(Navone)를만나게 되었고, 건축파 디자인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서로 교환하고 함께 활동하는 장소로서 알키미아를제 공하였다. 그러나 구에 리에로의 관심은 실험 적인 작품의 전시를 통해서 문화활동을 장려하는데 있었고, 산업디자인의 제품이 지닌 질과 이미지를 가지고 직접 산업에 참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소트사스 등이 만들고 싶어했던 것은 수집가의 품목이 아니고 상점에서 직접 팔리고 가정에서 일상 쓰일 수 있는 가구들이었다. 그래서 소트사스는 새 디자인을 전수시키는 중요한 발판 역을 해온 알카미아를 떠나서, 드 루키와 함께 새 방향을 모색하였다.
이것이 멤피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멤피스」라는 이름은1980년 12월 11일,드 루키가 그의 노트 첫 페이지에 낙서처럼 쓴데서 기인한다. 이것은 그날 디자이너들이 소트사스의 집에 모였을 때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데 함께 모였던 사람들은 소트사스를 제외하고 모두 30세 미만이었으며 대개 건축가들이었다. 그날 저녁 멤피스가 제목으로 들어가 있는 음악이 틀어졌고 그때 소트사스가 그 그룹의 이름으로 멤피스를 제청했으며 모두 그 의견에 찬성하였다고 한다. 멤피스는 이집트 파라오의 수도 신성도시이며 동시에 블루스, 테네시, 엘비스 프레슬리, 록큰롤, 팝아트, 미국 교외를 상징하는 만인의 이름이었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다음 해 81년 2월 그들은 이미 약 100여점의 도안을가지고 다시 모여 멤피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였다.
그 해 9월 18일 그들은 시계 3점, 램프 10점, 도자기 11점을 가지고 요란한 음악 속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멤피스는 산업디자인계에 커다란 충격이었기에 예찬과 비평 이 엇갈린 가운데 매스컴의 주목을 독차지했다. 이 집단은 산엽 디자인 뿐 아니라 독단적이며 변덕스러운 색과 형태를 사용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의 가구와 실내 디자인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많은 디자이너들은 이들의 양식을 받아들이는데 열중하고 있다. 미국과 이태리에서 디자인 분야의 발전에 공헌한 대표적 디자이너는 에밀리오 암바즈(Emilio Ambasz)와 지안카를로 피레티(Giancarlo Piretti)가 있다. 1970년대 말 이들이 디자인한 밀란의 건물은 포스트 모더니즘을표현하는 것으로 여러 색의 페인트 계획, 다양한 가구의 사용과 색상, 장식적인 세부장식 등 수공예적 장식 전통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시적이면서 창의력이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그들이 디자인한 가구는 모서리가 예리한 각을 이루고 있으며, 날카로운 기하학적 형태와 원을 주로 결합하였고, 대칭, 비대칭, 경사등의 모든 형태가 실험적으로 적용되었다. 가구의 재료로는 새로운 공업 재료인 라미네이트 플라스틱, 패턴이 프린트된 유리, 형압 요철판, 셀룰로이드, 아연판, 네온관, 색전구 등 과거에 외면되었던 소재들을 과감히 사용하였다. 가구의 형태는 자유로운 유희적 감각을 강조하고 잊혀진 과거의 양식을 더욱 세련되고 밀도있게 재현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화려하고 분방한 색채와 패턴 또한 멤피스 가구의 큰 특징 중하나이다. 모든 색채가 예기치 않게 조합되어 원시적 이며 환상적 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며, 라미네이트 플라스틱 표면은 세균, 효소, 세포처럼 느껴지는 패턴으로 인쇄되어 새롭고 경이로운 유머를 자아낸다.
형태적 요소에는 기하학적이고 자유로운 모양을 비대칭적으로 배열하고 과장된 형태를 광범위하게 사용했으며, 비싼 재료와 저급문화의 싼 재료를 매치시킴으로써 다양성을 꾀하였다. 아이들의 그림이나 공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순진성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대담성을 그대로 삶의 즐거움으로 표현한 멤피스 그룹의 작품들은 신선하고 전율적이었다. 이것은 종래의 문화가 추구하던 금욕주의적인 태도로부터의 해방을, 역사와 전통 및 공식적인 디자인이 지녔던 가치관과 그 기준에 대한 도전을, 소비주의 사회가 지닌 새로운 욕망과 불만,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동기를 현대의 생활환경 디자인을 통해서 표현한 커다란 움직임이었다. 즉, 컴퓨터, 전자공학, 비디오게임, 과학 공상만화, 우주선, 유전생물학, 레이저 광선, 몸에 대한 새로운 의식과 이색적인 식이요법, 체조와 조깅, 관광여행과 팝 뮤직 및 팝아트, 이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사회의 가치관과 질서를 변화시켜 가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가구를 통해 표현하였다. 멤피스 가구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가 그들이 사용한 재료이며, 둘째가 색상과 장식 그리고, 셋째가 그 아이디어 이다.
첫째, 재료면에서 멤피스는 소트사스의 식 기진열용 사이드보드를 비롯하여 여러가구에 플라스틱 라미네이트를 사용함으로써 현대 가구의 면모를 바꾸었고, 양식의 변화에도 엄청난 역할을 하였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플라스틱은 멤피스 이전에도 벌써 오래전부터가정생활에 깊이 침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엌이나 아이들의 방 혹은 장속 등에서 사용되었지 응접실이나 거실 등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플라스틱은 값싼 허드레 도구와 실용성을 상징하는데, 멤피스는 이런 개념을 바꾼 것이다. 그들은 질감이 없고 차갑고 비문화적이며 딱딱한 플라스틱을 장식장, 경대, 소파, 안락의자, 테이블, TV, 시계 등등에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전형적 가구 재료인 값비싼 목재와 같이 사용함으로써 영원히 젊고 생동적인 가구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재료의 혁신은 플라스틱 라미네이트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무의 박힌 유리, 아연을 도금한 철판, 셀룰로이드, 네온튜브, 산업용 페인트, 색 전구와 같은 이질적 재료들을 가구에 즐겁게 사용했다. 그들은 이 재료들을 기술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아니고 질감과 색과 패턴, 농도와 투명성 등 인간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미의 매체로 사용하였다.
멤피스 디자인의 특징 중 두 번째는 색상과 장식이다. 그들의 작품은 색이 강렬하고 밝을 뿐 아니라 다양하고 미세한 무의와 기하학적 도형으로 장식되었다. 멤피스 이전에는 가구에 색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지는 않았다. 옻칠이 된 동양가구를 제외하고는 가구에서 색은 자개나 상아 혹은 청동을 상감시킨 경우나 대리석 세공같은 부분적인 장식 역할을 할 뿐이었다. 멤피스의 무의 장식은 상하좌우가 없고, 동질적이며, 계속 같은 무의나 형태가 반복되고 추상적이다. 따라서 이것은 오브제를 유동적으로 보이게 만들며 그 윤곽을 시각적으로 확장시켜 주고 중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패턴은 기하학적 도형의 반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커피알, 쌀알, 진흙, 액체의 유동적 표면 등이 그래픽을 확대시켜 놓은 것들이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적 모티브들이 지녔던 고상함도 유식함도 없고 무척 중성적이다.
멤피스의 세 번째 디자인 특성은 아이디어이다. 이 점은 멤피스의 대표적인 에토레 소트사스의 아이디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소트사스는 세계를 감각을 위한 장(field)이며, 감각과 생물적인 욕구, 실존적인 행복을 위한 의사소통의 공간이라 하였다.
3) 찰스 잭슨(Charlesjackson)
찰스 잭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디자이너중 한사람으로서 그가 디자인한 콜로세움(Colloseum)스툴과 콜로세움 의자는 포스트 모던양식의 대표적 디자인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의자와 스툴은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을 연상시키며 원을 기본형태로 팔을 편안하게 하고 등을 기댈 수 있게 하였다. 쾌적하고 기하학적이며 아래 부분의 아치모양과 더불어 구의 느낌이 들게 한다. 잭슨이 디자인한 커피와 티세트(Coffe 8 TeaSet)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것으로 각각은 투스칸, 도릭, 이오닉식의 원주 형태를 연상케 하고 있으며, 주두에는 소용 돌이형, 혹은 양의 뿔 모양을 하고 있고 반대쪽에 있는 입에서 붓는 장치가 되어져 있다. 또한 잭슨은 여러 가지 동물, 꽃, 새 등을 도안화하여 주택 롤부와 가구 디자인에 인용하였다.
결론
모더너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1960년대 조금씩 표면화되기 시작하였으나 과 당시에는 이러한 시도들이 급진적이라 생각되어져 비판을 받았으므로 소수의 집단만이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모더니즘에 도전한 경향들이 많은 대중과 건축가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1970년대와198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많은 도전들이 표면화 되었다. 이 시대에는 미래의 디자인을 주도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여러 방향들이 갈등과 흔란을 빚었으며, 특히 1980년대 초에는 다양한 접근방법들, 유형들이 가구를 포함한 실내디자인에도 적용되었다. 따라서 접근 방법의 다원주의(Pluralism)는 1970,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복잡, 다양한 시도속에서도 공통적으로 추구되어 온 것은 모더니즘에 의해 부정되었던 인간 감성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디자이너들은 대중주의와 다원주의라는 주제하에 절충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는 있지만, 이런 모든 상황은 본질적으로 의미와 상징성 즉 은유적인 표현을 추구한다는 사실로 귀결이 된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적 특성 혹은 성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때 각 특성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으며 중복되어 나타나는 성향이 있다.
첫째, 역사주의(Historicism)이다. 이 특성은 포스트모던 디자인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역사적 모티브를 디자인에 사용하는 것이다. 즉 디자이너들은 모더니즘에서 무시되어온 역사적, 전통적 형태와 그 형태가 지닌 의미들을 상황에 맞게 디자인에 각색, 적용시켜 장식적 요소는 물론 역사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둘째, 은유와 상징이다. 인간은 사물을 대할때 그것과 비슷한 대상과 비교하는 은유적 방법을 사용한다. 즉 사람은 어떤 건물이나 실내의 형태나 색을 접했을 때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이미지, 기억, 연상작용 등을 통해 그 형태나 색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건축물은 이런 상징적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에서 이러한 은유와 상징은 포스트모던 디자이너들이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셋째, 장식성 이다. 모더니즘에서 배제하였던 이 특성은 인간의 감정에 호소성 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적정수준의 자극을 받고자 하는 본능이 있으며 이것이 박탈당했을 때에는 복잡한 자극 못지않게 인간의 감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성향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기능과 상관없는 장식적 특성을 강조하게 된다.
넷째, 이중 코드화다. 이중 코드화란 디자인이 갖는 의미의 다양성에 기초를 둔 이중의 코드화로서, 작품의 형태가 이중적 의미로 자각되는 것을 말한다 즉 대중의 이해와 접근을 위해 디자인에 대중문화와 팝아트 등 다른 예술의 개념을 흡수하여 표현수단으로 삼고 대중과의 의사전달을 통한 디자인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것으로서, 디자인의 어휘를 보다 확장하여 대중적 취향과 하부문화의 다양성에 대응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다섯째, 복합성과 대립성 이다. 이것은 형태를 더욱 생기 있게 지각하여 그 의미의 풍부성을 체험하도록 해주는 방법이다. 즉 모던 기능주의적 디자인이 산출하였던 획일성, 단순성을 탈피하여 디자인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여섯째, 맥락주의(contextualism)이다. 건축에서 맥락주의란 개개의 건물을 고립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큰 전체의 단면으로 계획함으로써 문화적, 역사적 연속성과 도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즉 그 건물이 위치한 도시와 조화되는 건물 내외의 디자인, 건물의 환경이나 역사적 전통을 참고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일곱째, 절충주의이다. 이것은 과거와 과거, 과거와 현재와의 문화적 양식을 혼용하는 시간적 절충주의뿐 아니라 서로 다른 지벽의 문화를 결부시켜 한 디자인에 구성하는 공간적 절충주의 모두를 말한다.
여덟째,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이다. 이것은 기존의 모더니즘 디자인에 내재하는 통합성의 개념이나 시각적 형태에 나타난 규범을 이탈하는 파괴 지향적인 성향을 말한다. 완벽성, 일관성, 획일성에 새로운 긴장감을 주는 형태로 디자인되거나 계급적 구분이 되어 사용되던 재료나 색 사용상의 규범이 깨지거나 하는 형태로 나타남으로써 이중 코드의 경향이나 파괴적, 미완성적 성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개념적 특성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간은 공간적 요소를 공간에 인용하는데 있어 기묘한 변용을 통해, 즉 부분생략, 휭, 경사, 축소 등의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물체안의 물체, 방안의 방과 같이 공간을 중첩시키고 결합 혹은 분리시킴으로써 사람의 지각적 경험을 다양하게 하려하였다. 또한 형태나 공간에서 어떤 한 요소를 지나치게 과장, 변형시킴으로써 그곳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와 함께 관찰자의 지각 경험을 확대시켜 주었으며, 다양한 색채를 공간에 사용함으로써 확장, 축소 등의 지각적 효과와 동선체계의 지시같은 기능적 효과를 나타내었고, 여러 형태들을 공간 내에 절충하여 사용하였다.
주1)불확정성의 원리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 역학에 있어서의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1927년에 하이젠베르크가 제창한 원리로서 양자 역학이 다루는 미시 세계를 서술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주2)엔트로피 법칙 '일정량의 열을 일로 바꾸었을 때, 열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거나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했을 따름이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이 열역학 제1법칙 뿐이라면 에너지를 계속 사용한다 해도 에너지는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같지 않다. 이에 대한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주3)계몽주의 영국의 명예혁명~프랑스혁명에 이르는 시기(18C)는 봉건사회 해체되고 근대사회 형성되는 시기. 인간의 이성과 지성을 해방하여 인간의 지성적 자율을 수립하려고 했던 사조.
주4)콜라쥬 화면에 인쇄물, 천, 쇠붙이, 나무조각, 모래, 나뭇잎 등 재료를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기법
주5)절충주의 이 시대 작품의 특징은 석재의 재사용과 고전적인 모티브의 사용 그리고 고전적인 3부 구성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절충적 작품성향을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마천루는 마치 1920년대 아르데코 시대와 같이 강한 상징성을 중심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르데코 시대의 특징인 기하학적 고전형태와 다양한 색채의 사용과 함께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절충주의적 경향과 모더니즘적인 경향을 하나의 건축물에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