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스님은 사찰음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했다. |
“사교반 우관이 어딨노? 냉큼 올라온나!” 맛좋기로 유명한 ‘슈퍼울트라급’ 규모의 봉녕사
김장김치가 탄생하는 날. 강원 학인들의 일사분란한 손놀림과 협동심으로 3000포기에
육박한 배추를 씻어 절이고, 배추속을 다 버무린 뒤 김장운력이 마무리될 즈음이다.
봉녕사강원 사교반 우관스님을 찾는 학장 묘엄스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대중 스님들 속에 섞여있던 우관스님은 재빨리 손을 씻고 매무새를 바로하고 학장 스님
앞으로 달려갔다. “우관아, 한번 찍어먹어 봐라. 맛이 어떤고?” 짜거나 싱겁거나 딱
좋거나, 이 때 우관스님이 평한 배추속맛이 봉녕사 김치맛을 좌우한다.
봉녕사 강원에 전해오는 ‘전설의 장금이’, 우관스님 이야기다.
호랑이처럼 엄했던 묘엄스님이 새파랗게 어린 학인을 불러 김치속맛을 결정하는
‘특혜’를 준 것은 괜한 호의가 아니었다.
강원실습차 석달열흘간 학장 스님의 공양을 책임졌던 상(上)시자 시절, 우관스님의
손맛은 이미 검증됐다.
매일 점심과 저녁공양을 올렸던 우관스님은 날마다 새로운 음식을 ‘개발’해서 공양으로
올렸다. 밥도 그냥 밥이 아니요, 국도 흔한 국이 아니었다. 모듬버섯밥, 무시래기밥,
산마밥, 얼큰두부찌개, 토란줄기들깨탕…. 그 당시엔 무명에 레시피도 없었던
음식들이다.하루는 묘엄스님이 우관스님을 불렀다.
“우관아, 내가 니 때문에 도저히 못살겠다!” “……” “내일부터 저녁공양은 올리지 마라!
” 긴장하고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우관스님에게 묘엄스님은 지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니가 해준 음식은 왜이리 맛있노? 살이 쪄서 못살겠다!
내일부터 오후불식이다. 알았제?”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던 스님은 큰스님 앞에서 웃음보가 터져서 배꼽을 잡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른 스님의 공양을 맡았는데 저녁에 아무것도 드리지 않을 순 없는 노릇.
고민끝에 천연생식 위주로 메뉴를 ‘개편’했다.
“밭에 나가 제일 맛나 보이는 가을무 하나 쑥 뽑아와서, 싹뚝 썰지말고 길게 잘라 올리면,
무 세 쪽도 큰스님께선 참으로 맛나게 드셨죠.
배불러도 살은 안찌는데다 씹는 맛이 얼마나 좋아요?” 그 날 이후로 묘엄스님은 음식에
관한한 우관스님의 총명한 센스와 손맛을 공인했다.
봉녕사에 귀한 손님이라도 오면, 자랑삼아 우관스님을 불렀고, 이따금 당기는 음식이라도 생기면 우관스님을 찾았다.
우관스님만의 ‘비밀병기’는 무엇일까. 진부한 결론일지 모르나, 정답은 ‘지극한 정성’이다. 묘엄스님을 시봉했던 시절 함께 시자노릇을 했던 한 도반은 어느날 후원에서 공양을 짓는 우관스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관스님, 스님의 뒷통수에는 어쩌면 ‘정’과 ‘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 어떻게 해야 어른 스님께서 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실 수 있을까만 골몰하며
극진한 정성을 쏟았던 우관스님의 표정과 손놀림은 보지 않아도 알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식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마음을 다해 차리는 밥상입니다.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지을 때, 가장 큰 사랑과 자비로 정성을 쏟아넣지.
그게 바로 보약이고, 생명의 음식이죠.”
우관스님이 인도 델리대학서 6년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도,
스님은 행여 어려운 공부를 마쳤다는 오만함이라도 생길까봐 한 노인요양시설
원주를 자청해 어르신들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뜨신 밥을 해주면서 2년을 보냈다.
이웃의 ‘부처님들’을 기꺼이 껴안고 분별없이 극진하게 봉양하는 삶이야말로
우관스님에겐 실천수행이었다.
우관스님에게 사찰음식은 ‘지극한 정성’이다. 스님은 감은사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에서 정성을 가르치고 있다. |
우리나라 사찰음식의 대가로 인정받기 훨씬 전부터 우관스님은 은사 스님을 입적할
때까지 정성껏 시봉한 ‘효상좌’로 알려졌다.
여고시절부터 청담스님 향봉스님 법정스님 등의 저서를 탐독하고 <초발심자경문>과
<법구경>을 줄줄 외고다녔던 스님은 철부지 시절 충동적으로 출가를 감행했다
부친 손에 끌려왔던 ‘경력’이 있다.
이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관악산 약사사로 ‘계획출가’한 스님은 현몽으로 만난 은사
정화스님이 70세 때 마지막 상좌로 머리를 깎았다.
정화스님은 묘엄스님의 사제인 묘희스님의 속가 어머니다.
“꼬부라진 노스님 앞으로 출가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죠.
우리 스님 역시 ‘내가 이 나이에 어찌 니 머리를 깎겠노?’라고 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난 우리 스님이 정말로 좋았으니까요.” 스무살 ‘앳된 중’과 일흔살 ‘노스님’은 가난했지만
친모녀처럼 알콩달콩 살면서 정을 나눴다.
그 시절 은사 스님으로부터 배운 음식 역시 우관스님에겐 큰 자산이다.
“산천에 널려있는 제피, 참가죽, 돌미나리 무쳐먹고 고소 뜯어먹고 장떡 해먹고….
그 시절 전통 절음식을 숱하게 접했지요.
거기에 ‘선천성 손맛’까지 가세하니 우리 스님이 어느날 하시는 말씀, ‘니 어디서 중노릇
하다왔나?’…하하하. 봄이 오면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 스님 몸에 영양을 불어넣기 위해
가죽나물의 보들보들한 새순을 얇디얇게 부쳐서 초고추장에 콕 찍어 드시게 했죠.
하다못해 시원한 물 한모금도 제 때 맞춰 드리면 은사 스님은 탄복하면서 ‘우관이 너는
참으로 기특하다’는 칭찬을 입이 닳도록 하셨어요.”
제사가 너무 많아 하루종일 음식장만에 쉴틈이 없었던 행자시절,
남은 떡과 나물로 떡볶이를 해서 별식으로 내놓으면 대중 스님들은 ‘쓰러졌다’고 한다.
밥먹고 돌아서기 무섭게 배가 고팠던 그 때 남는 음식으로 요리해 새참으로 먹다보니
행자기간 6개월만에 체중이 8kg이나 늘었어도, 스님이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아서 자다가도 머리를 만져보고 빙긋 웃었다는 스님….
2009년 10월 봉녕사에서 첫 사찰음식대향연이 열릴 무렵 전시음식이 턱없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발생하자 당시 묘엄스님이 난데없이 “우관이는 할 수 있을 게야”
라고 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행사 나흘 전,
봉녕사는 우관스님에게 급히 연락을 취해야 했다. 큰스님의 전폭적인 신뢰속에서
행사 당일날 새벽 단한번의 연습도 없이 신선한 식재료를 싣고 봉녕사에 당도한
우관스님은 열여섯가지 밥과 죽을 선보여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묘엄스님이 입적하기 전 어느 가을날 마지막으로 우관스님이 살고 있는 이천 감은사에
찾아왔을 때도, 우관스님은 갑작스런 큰스님 방문에 동네아낙이 따다준 가지와 절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갖고 즉석요리 ‘가지방울토마토조림’을 만들었다.
살캉살캉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이 음식을 한 그릇 드시더니 더 갖고 오라며 “여전하다”
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묘엄 큰스님을 우관스님은 지금도 못잊는다.
사찰음식? 우관스님은 “‘오로지 어른 스님께 맛있는 공양 해드려야지’하는 향심(向心)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스님의 오래 묵은 향심으로 버무려진 갖가지 공양물로 이천 감은사는 날마다 잔칫날이다. “음식이라도 해서 내놓아야, 이름없는 산 속 절에 세상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어?
함께 수행하고 더불어 치유하는 도량에서 음식이야말로 가장 좋은 징검다리지.”
우관스님이 꿈꾸는 수행공동체가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출가한지 어언 30여년. 우관스님은 날마다 초발심 시절로 돌아간다. |
이천 감은사 주지 우관스님은 동국대 부설 전통사찰음식연구소 수강생들 사이에
‘천재 스님’으로 통한다.
식재료만 보면 가장 어울리는 맛을 뽑아내는 재주와 손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3년째 이천과 동대를 오가면서 사찰음식을 알려온 우관스님은
“가장 구하기 쉬운 식재료로 가장 손쉽게 만드는 음식이 바로 사찰음식”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철칙이다.
스님은 종단에서 건립한 국제선센터 ‘향적세계’에서 사찰음식을 강의하고, 종단 차원의
사찰음식전문가 그룹에서도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초청으로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한국사찰음식의 날’ 행사에도
도감으로 참석해 전세계인들 앞에서 우리나라 전통사찰음식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과식과 비만으로 사람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가장 적게 섭취해도 큰 영양을
발휘하는 절음식이 늦게나마 전세계인들에게 어필이 된 것이죠.
” 스님의 손맛 깃든 오래된 절음식을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우관스님의 꿈이라면
꿈이지만, 스님은 그 꿈을 꼭 이루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도(道)를 닦고자 하는 출가본연의 열망이 훨씬 깊은 스님에게 음식은 그저
방편일 뿐이다.
스님이 최근 출간한 책 <우관스님의 손맛 깃든 사찰음식>은 250여가지 음식을 향한
스님의 방대한 ‘러브스토리’가 다채롭게 엮어져 있다.
‘사찰음식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다. 요즘말로 너무나 쿨하고 유머러스한 우관스님은
“저는 음식으로 세상에 할 말은 이 책으로써 다했다”면서
짧고 굵은 홍보성(?) 발언을 했다.
[불교신문2924호/2013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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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음식의 매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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