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oto by photo 조성호 |
김씨는 최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주간조선과 몇 차례 인터뷰를 갖고 자신이 직접 관여한 3000억원 조성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들이 특수활동비 유용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김대중 정권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내부 핵심 담당자에 의해 폭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중 정권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현대그룹을 동원해 4억5000만달러를 조성, 국정원 계좌를 통해 북한에 송금한 바 있다. 후임 노무현 정권은 이 대북 불법 송금에 대한 특검 수사를 벌여 관련자들을 처벌했었다.
김은성씨가 폭로한 ‘3000억원 조성’은 앞서의 대북 송금보다 1년 후의 일로서, 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김씨는 “2001년 상반기 어느날 신건 국정원장이 청와대 주례보고를 하고 오후 3시 반에서 4시쯤 카폰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시중 은행을 통해 3000억원을 준비하라. 청와대 회의를 통해 결론이 났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신 원장의 전화를 받은 시간이 “은행 마감이 임박한 시점이었다”며 “그래서 국정원 ○○단장에게 (3000억원을 조성하라고)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당초 국정원은 3000억원을 시중 은행 한 곳을 통해서 조성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은행 한 곳에서 그 같은 거액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자 6개 은행 분산 조성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김씨의 증언이다. “모 은행장이 ‘1개 은행에서 한꺼번에 3000억원을 마련하는 건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단장이 전화로 내게 보고했다. 그래서 ‘청와대 지시’라고 강조했더니 그 은행장이 500억원씩 6개 은행에서 대출하는 방법을 주선해줬다. 결국 6개 시중 은행에서 500억원씩 3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 김은성 차장은 6개 은행을 통한 3000억원 조성을 승인한 후 신건 원장과 따로 만나 사후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증언이다. “국정원으로 돌아온 신건 원장이 ‘어떻게 됐냐’고 묻길래 ‘6개 은행에서 분산대출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누가 찾아간다면서요?’라고 물어보니 신건 원장이 ‘청와대에서 알아서 하겠지. 우린 거기까지만 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신건 원장은 당시 ‘청와대 실세인 ○○○씨와도 얘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며칠 후 신건 원장과의 대화 속에 등장한 청와대 실세 ○○○씨와도 직접 만났다고 했다. “청와대가 거액을 조성하는 게 수상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려고 만남을 청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씨는 청와대 ○○○씨와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회고했다. “내가 ○○○씨한테 ‘정권 후반기에 은행에서 그런 거금을 빼면 정치문제가 된다. 6개 은행이 관련되어 있어 보안유지가 어렵다. 은행장 이하 본부 담당자들도 국정원의 요청으로 대출이 됐다는 걸 알 것이다. 자칫하면 정권이 넘어간다’고 따졌다. 그러자 ○○○씨가 ‘나만 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 내가 ‘그럼 대통령님도 아시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부분에 대해 김씨는 “대통령 몰래 3000억원을 조성했다면 자기들 맘대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 되고, 그렇다고 대통령이 안다고 할 수도 없으니, 난감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못하던 ○○○씨에게 “‘나는 원장 지시를 받고 ‘3000억원을 조성하라’고 ○○단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휘계통하에 일을 처리한 거니 나와 연관시키지 말라. 감옥엘 가려거든 댁들이나 가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문제가 됐을 때 검찰이 ‘돈을 국정원 차장이 직접 마련했다’고 하고 청와대가 싹 빠지면 꼼짝없이 내가 엮인다. 그래서 나는 지시를 받고 지휘계통을 통해 돈을 조성했음을 청와대 실세 ○○○씨에게 강조한 것이다. 용처 또한 물어보면 괜히 엮일까봐 묻지 않았다.”
3000억원 조성에 대한 김씨의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지만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아무리 청와대 지시라고 해도 어떻게 시중 은행 6곳에서 용도가 확실치 않은 500억원이라는 거액을 회계상 ‘흔적’ 없이 마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3000억원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3000억원의 보관 방법과 용처에 대해서는 “모른다”면서도 “정부가 하는 건데 ‘자국’이 남겠나. 은행대로 다 재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시중 은행에서 대출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맡아온 한 간부 직원은 “쉽지 않지만 방법은 있다”며 이런 말을 했다.
“국정원이라 하더라도 500억원 정도의 거액 대출은 반드시 내역이 남는다. 따라서 정상을 가장한 ‘불법 대출’ 형식을 띠었을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이 일종의 회사(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뒤, 시중 은행들이 그 회사에 대출해주는 방식을 썼을 수 있다. 대출이 단번에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고, 그에 따른 시간이 꽤나 소요됐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출이라면 담보가 있어야 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국가기관, 그것도 정보기관에 담보를 요구할 금융기관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시중 은행 직원은 “2000~2001년경 성행했던 이른바 공적자금이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추정도 했다. 당시 예금보험공사 등 정부기관이 공적자금을 집행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지만 은행에 지급된 공적자금이 국정원 페이퍼컴퍼니에 대출된 후 은행이 이를 손실처리해버리면 추심할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는 설명이다.
3000억원은 어디로 갔나?
그러면 김대중 정부는 3000억원을 어디다 쓴 것일까. 김대중 정권이 3000억원 조성 1년 전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4억5000만달러를 조성한 사실을 떠올리면 3000억원 역시 대북 프로젝트와 관련된 돈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정부 말 산업은행 총재를 지냈던 엄낙용씨는 올해 초 발간한 회고록에서 ‘2002년경 정부가 S그룹이 대북사업에 참여하도록 압박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S그룹 임원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엄낙용 전 총재가 S그룹 임원으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은 시점 역시 김대중 정부 말기다. 시기상 3000억원이 북한에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3000억원 조성 주장에 대해서는 김은성씨 외의 관계자 모두가 입을 닫고 있는 상태다. 김은성씨가 신건 원장 지시를 받고 조성 지시를 내렸다는 당시 ○○단장 김모씨, 김은성씨가 자금 조성 지시 후 만났던 청와대 실세 ○○○씨 등에게 김은성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이메일 등을 통해 물었으나 기사 마감 시점인 12월 7일 현재까지 일주일이 넘도록 회신이 없는 상태다. 김은성씨의 기억에 남아 있는 6개 시중 은행 중 한 곳의 당시 은행장에게도 이메일을 보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3000억원 조성에 대해 알고 있을 법한 당시 국정원 간부들과도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3000억원 조성 주장을 방증하는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국회에서는 김대중 정부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야당의 질의가 있었고, 김은성씨를 포함해 여기에 관련된 인물들도 대체로 일치한다. 구체적으로 2007년 10월 18일 김정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미국 비자금 사건 관련해 가지고 신건 전 원장,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김○○ 국정원 직원, 김○○ 전 외환은행장, 이○○ 전 신한은행장을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날치기 하면서 싹 다 삭제를 해버렸어요.”(국정원 직원과 전직 은행장 이름은 주간조선이 익명처리한 것임.)
당시 질의 배경에 대해 김정훈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워낙 시점이 오래됐고, (김 의원이) 초선일 때라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같은 시기 한나라당 정무위 간사로 국회 업무를 총괄했던 이계경 전 의원도 ‘김대중 비자금’과 관련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한나라당 관계자는 “뚜렷한 정황이 있었기에 당 차원에서 그들을 증인 신청했던 게 아니겠냐”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개인 비자금이라는 것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