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님이 제안하셨던 것처럼 저희 가정교회이야기를 시간 나는 대로 올릴까 합니다. 대형교회들의 입장에서는 한 구역만큼도 안 되는 교우들이지만, 우리는 일당 백, 아니 일당 만은 된다고 자부하면서 행복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학교에서부터 목회현장까지 여러 교회에서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 하려고 했는데, 그래봤자 너무 식상한 이야기이고 대책 없는 이야기일 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생략하고 어떤 이유로 가정교회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신학적인 견해부터 밝히고 현재 우리교회의 모습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목사란,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나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이기 전에 예수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본받고자 하는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고 역사 속의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그동안 얼마나 예수님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용감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하게 된 분야가 ‘역사의 예수(Historical Jesus)’였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면 그만이지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구주가 되셨다. 이를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참 쉬운 것을 왜 이렇게 어렵게 고민해야 하고 공부하려고 애쓰는 것인지...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 구원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과 생활 모습은 분명 변화가 찾아 올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십자가처형이란 당시 로마의 가장 극악한 형벌입니다. 십자가형은 아무에게나 집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망친 노예나 반로마투쟁을 벌인 사람, 정치적인 사범에 대한 처형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께서 종교적인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면 당시 유대의 형벌인 돌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처럼 사는 제자가 되고 싶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 현장을 생생히 보고 느끼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예수는 분명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기에 종교적인 견해를 덧붙여 구약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 다음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한마디로 하자면, ‘하나님나라 운동’이라고 표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고 선포하시면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수많은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해주고 있으며, 치유와 나눔(오병이어) 등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까지 예루살렘성전을 통한 율법으로 억압하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율법이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굴레를 씌우고 죄인을 만드는 악으로 변질 되었다고 예수께서 한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게 율법으로 인해 죄인의 굴레를 둘러 쓰게 된 가난한 민중들은 영원히 죄인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왕따 당하고 사람구실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죄인들을 예수님은 받아주시고 한 번도 나무람 없이 친구로 맞아주셨던 것입니다.
참고로, 요한의 세례운동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운동은 요단강에 나와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죄를 씻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 예루살렘성전의 대속행위를 대신 하는 것입니다. 성서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요한의 행적은 당시 역사기록자인 요세푸스도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세례운동을 가장 경계하고 그냥 둘 수 없었던 세력은 누구일까요? 예루살렘성전세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운동에 예수님이 동참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에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복음서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돈 바꾸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채찍질 하셔서 내쫓으시고 기구(제사용)를 가지고 지나다니는 것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곳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은 어떤 모습을 설명합니까? 십일조를 현금으로 내는 사람들에게 이방 화폐를 성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성전에서 사용가능한 화폐로 환전하는 상인들입니다. 비둘기파는 자들은 성전에서 제물로 사용할 짐승을 팔던 자들로 이들은 성전 근처에 엄청난 규모의 농장을 소유하고 여기에서 제물을 생산해내던 농장주들과 관계가 있는 장사꾼을 의미합니다. 또한 기구를 가지고 다니는 자는 사제들로 성전제사를 집전하던 자들입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상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위협세력은 예루살렘성전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을 신앙의 고향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새 예루살렘을 꿈꾸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만.
예수님이 목숨 걸고 당시 예루살렘성전세력과 일전을 치르셨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내팽개치고 예루살렘성전과 똑 같은 행태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지 기독교인지 자신의 정체성도 모른 채 어쩌면 예수님 당시와 똑같이 하나님을 예배당에 가둬놓고 안식일을 부활시켜 ‘주일성수’, 십일조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십일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곳 게시판에 잘 정리되어 있더군요. 유창윤 교수님이 그리워집니다. 강의를 들었던 존경하는 교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셨던 예수님은 어디가고, 가난하고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을 친구삼아 주던 예수님은 어디가고, 이미 폐기되었어야 할 율법의 끄나풀로 지금도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공갈치면서 사람들을 얽매고 있으니...
예수님이 지금 한국교회의 실정을 보신다면 어떠실까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예수님의 유업을 이뤄야 할 텐데, 오히려 기득권층에 빌붙어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더욱 억압하며 쥐어짜고 있으니,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교인들 피땀 어린 헌금을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늘에 쌓아야 복 받는다고 사기 공갈로 인정사정없이 갈취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범죄행위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교회개혁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직접 현장에서 느낀바 에 의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결코 변화되지 않을 집단입니다. 정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그런 징그러운 인간들을 도무지 이겨낼 방법이 없습니다. 내부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면 밖으로 나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교회운동이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되었기에 스스로 제도권을 박차고 나와 몇 안 되는 가정이지만 함께 시작했습니다. 말이야 쉽지 자기 밥줄을 쉽게 내던지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가정교회를 꿈꾼다는 것이 처음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전에 있었던 교회에서 저와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동참해 주셨습니다. 현재 네 가정이 모이고 있습니다. 교우들 다 해봐야 열 명 안팎입니다. 그래도 목사라서 말씀인도와 성서공부는 제가 맡고 있습니다. 초기부터 성서학당을 열어 성서공부를 시작해서 한동안 계속했습니다.
가정교회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성서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정교회를 희망하는 분들은 기존교회에 대한 실망과 염증 때문에 결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성서적으로 왜 무엇이 어떻게 그릇되어 현재처럼 변질되었는지 신학적으로 정확히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문제인줄은 아는데 성서에 근거해서 어떤 것이 잘 못되었는지 정확한 논거를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부터 성서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특히 교회의 전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성막, 성전, 회당 등)공부했습니다. 이러한 성서공부를 매주 수요일마다 계속했는데, 요즘은 다들 생업이 바빠서 못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감사할 일은 일 년여 계속되는 모임에 참으로 많은 변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분이 확신을 갖고 신앙이 성숙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실 때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교우들이 행복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헌금 이런 것은 아예 언급조차 않습니다. 참고로 가정교회를 시작하면서 교우들에게 분명히 밝힌 것이 있습니다. 시작은 이렇게 했지만 나중에는 더 많은 교우들이 참여하고 여러분들이 성숙했다면 그 다음엔 각자의 가정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더 많이 모여서 더 큰 교회를 이루려고 애쓰기보다 민들레 홀씨처럼 각 가정마다 교회를 이루고 이웃과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참, 재정이 필요할 텐데 이를 어떻게 충당할지 궁금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목사가 밥벌이를 교회를 통해서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것 빼고 나면 무슨 재정이 크게 필요하겠습니까? 처음에는 여러 목적(선교, 구제 등)으로 헌금을 하기로 했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소홀합니다. 저 또한 교우들과 똑같이 주중에 일해서 살림하고 있습니다. 큰 벌이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다양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맞벌이를 하면 아무리 적다해도 둘이 버는 것이라 낫더군요. 몇 몇 분의 후원도 빼놓을 수 없는 큰 힘이기도 합니다. 물론, 노회나 총회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쪽의 물질적 도움은 원하지도 않습니다.
교회개혁, 목사가 움직이면 더 쉽겠지요. 아직 순수한 신앙인들이 많기에 좋은 목사를 만난다면 달라지겠지요. 그러나 대다수의 목사들은 하나같이 교회 대형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목사님 빼놓고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우들이 결단해야만 합니다. 뭐가 어렵습니까? 여러분이 현재 문제 있는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원래 나가던 교회 출석 안하면 죄가 된다고 하셨던가요? 부모형제나 인간관계 때문에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요? 그곳을 안 나가게 되면 밥줄을 놓는 일입니까?
결정적으로 교우들이 움직이면 교회개혁 이룰 수 있습니다. 뭐가 두렵습니까? 폼 나는 교회출석하면 인생 성공합니까? 구원이 교회(예배당 출석)에 있던가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예수님이 직접 일러주셨던 부분을 설교했던 자료를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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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글이 빽빽한가요? 제가 좀 주절주절 하다보니 위의 머릿말이 길어 졌네요.^^
아주 좋은..소중한 <가정교회 체험기>입니다..먼저..현재 한국교회에는 원글님이 말씀하신 <역사속의 예수>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역사속의 예수>가 사라져버리면..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 사라져 버리고..여기에 한국의 전통적인 기복사상이 맞물려버리면..그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복을 비는 무속이나 기복불교와 마찬가지가 됩니다 (매년초에 소위 잘나간다는..<영성>이 철철 넘친다는 기도원 부흥회에 가 보시면 제가 드리는 말씀을 이해하실 겁니다). 이런 점에서 원글님의 가정교회는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역사의 예수'에 큰 관심을 보여주시니 참 반갑습니다. 어서 회복해야 할 한국교회의 과제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것은 미국의 '예수 세미나'같은 단체가 한국에도 생겨서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기간을 여기에 쏟았거든요.^^ 원시 기독교의 모습 찾기에서 부터 예수님 당시의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의 모습, 당시 유대지역의 상황(정치-전쟁사, 경제, 종교), 구약시대 특히 포로기 전후의 유대 모습 등등... 신앙인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성서를 접한다면 정말 유익하고 흥미롭기도 할 텐데요.
네 저도 반갑습니다..^^ <예수세미나>는 미국이 아니라 전세계 학자들의 모임입니다..그런데 현재 한국교회의 분위기에선 절대로 용인되지 않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이야기일뿐이죠..한국교회는 완전하게 닫힌<폐쇄회로 시스템>이니까요. (제가 알고 있기론 세계적으로는..<예수세미나>에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나 가톨릭신부 혹 개신교목사들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단 한명의 목회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님이 성경관 역시 저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주후 1세기의 유대의 정치, 문화, 종교적 상황..<탈무드>로 대표되는 당시의 유대문헌들..요세푸스의 유대사등..당시의 유대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성경해석이 너무 <영적으로>, 그리고 <사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저로서도 무척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가정교회의 문제점중 현재 가장 크게 대두되는 것이 바로 원글님이 얘기하신대로..성경공부의 부재로 인한 성경적 진리에 대한 무지 내지는 왜곡입니다..자칫하다가는 그저 <그런저런 친목회>정도로 떨어져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감입니다..실제 제도권교회에서 가장 강력하게(혹은 비아냥식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님은 목자이기때문에 이점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만..역시 가정교회일수록 성경공부는 정말 열심을 내어서 해야 합니다..이것이 선행되지 않고는 정말로 <부부동반 친목회>정도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점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이미 인터넷을 통한 <가정교회 네트웍>이 확립되어 있지만..우리나라에선 아직 거의 일천한 상황입니다..가정교회는 고립되어선 존립하기 대단히 어렵다고 봅니다..한국에서도 무소의뿔님같은 목사님들이 적극참여하시어 이런 문제점들이 충분히 보완되어 나가길 바랍니다..
가정교회 네트웍에 대해 구상 중입니다.
그 전초 작업으로 수기를 공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네트웍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가든님 꼭 힘을 보태 주시기를 바랍니다.
진달래님..고맙습니다..제겐 진달래님이나 무소의뿔님같은 힘은 없지만..그래도 측면에서 혹이라도 약간의 도움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시크릿가든님, 말씀 맘에 와 닿네요. 아직 시작 단계라 그런 네트웍에 참여하는 것과 더 체계적인 모양을 갖추는 것에 보완점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좀 조심스럽고 그렇더라구요. 다만, 성서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난 기간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었는데, 함께하는 분들이 열린 마음으로 참여해주셔서 생각보다는 수월했습니다. 그 중에 안 맞다고 나간 가정도 있었죠.
울며 탄식하는 자에게 이마에 표하게 하고 늙은자로부터 어린아이까지모두 심판받은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성전 곧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디에 심판을 하시겠습니까?
밭에 심겨진씨가 자란곳은 어디며 알곡과 가라지는 밭에서 갈라집니다
하나는곳간에 하나는 밭에 그냥 그대로 두어 불로 사른다하였죠 오늘날은 그밭이 어디일까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르우님, 말씀하신 '심판 받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성전 곧 예루살렘'이라는 구절이 성서의 어디에 나오는 말씀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예언서에 비슷한 구절을 접한 것 같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전후문맥을 정확히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의 답을 직접해주심이 좋을 듯 합니다. 자칫 비아냥으로 들릴 염려가 있는 것 같아 조금 수정해서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대형교회와 개혁교회(가정교회,자비량교회 등)의 영적인 전쟁(표현이 과격하다면 경쟁..)이 될것입니다..사랑의교회건축문제는 그 신호탄이되리라봅니다...가정교회가 많아져야되고 활성화되어야합니다.대형교회의 끝은, 부정,타락,복음의왜곡,이라봅니다...무소의뿔님의 가정교회체험고백은,많은 대안이 될것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리를 위한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까페의 운영진은 가정교회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지는 않지만
교회 개혁을 위한 유력한 대안중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곳곳에 산재해 있는 가정교회의 네트웍이 필요하고 가정교회의 허와 실에 대한
예리하고 정확한 분별의 작업을 통해 일정 부분의 가이드 라인 정도는 제시 되야 함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가정교회 사역을 하시는 또 다른 분들 있으시면 수기를 올려주시기를 권합니다.
무소의 뿔님의 또 다른 수기도 기다려 보겠으며 많은 분들의 참여도 바랍니다.
무소의 뿔님. 수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역시 가정교회가 한국교회 개혁의 유일한 대안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유력한 대안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must be"가 아니라 ""may be"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가정교회를 하는 분들도 거의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대안으로서..좀더 깊고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많은분들이 무소의뿔님의글 읽고 신앙 생할에 많은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참고로 우리 목사님입니다
저는 한 교회에서 19년 동안 다니면서 교회가 해가 가면 갈수록 세속화 되어가는모습 성경에 맞지않는말로 묶어 놓는 모습들 예배을 드려도 마음의 감사가.아니라 짐을 하나더 지고오는 늦낌이였죠.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에 목사님 만나 가정교회을 이루게 되었고 하루 하루 감사하고 참 자유가 무엇인지 하나님나라가 어떤모습인지 알게 되었답니다.목사님 좋으글 자주 올려주세요.^^
아이고 낯뜨겁네요. ㅎㅎㅎ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모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도권에서 모이든, 가정에서 모이든 중요한 것은 그 모임이 그리스도의 성분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살아내고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느냐 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가정교회는 기성교회의 틀을 버린다는 의미는 높이 살 만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주님의 몸을 형성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설무지님의 말씀 새겨 듣고 의미를 잘 생각하겠습니다.
설무지님? 닉넴대로 정말 사태파악을 못하시고 무지하시군요? 쩝;; 지금 개혁방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실제 사례와 수기를 모집하여 좀더 모범적인 가정교회를 활성화 시키고 어찌하든 기성교회의 모순을 막아보고자 많은 분들이 좋은 의견들을 내놓으시고 수고들을 하시는데 반대도 긍정도 아닌 뭐를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주님의 몸 어쩌고 하면서 무지하게 초를 치는 일은 하지 마시기를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초는 각종 회무침에나 쓰시고요
성경사랑님..이른바 교회개혁이라는 것의 본질은 교회 안에서 성경에 없는 것들(목사제도, 십일조 등)을 제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설사 그런 개혁이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진 것뿐이죠. 주님의 몸은 조금도 세워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거기서 더 나아가 성경에 있는 것들(그리스도의 성분, 능력 등)을 교회에 채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녕 개혁을 원한다면 성도 개개인이 먼저 자신의 죄와 육체와 자아와 세상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개혁의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이미 교회인 성도 자신입니다. 자기자신은 조금도 개혁되지 않은 채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정교회는 단순히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가정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십자가를 통과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육체를 제거한 자이어야 합니다. 단지 기성교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것을 탈피했다고 해서 내가 개혁이 된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밖에 있는, 한 기독교 단체가 조금 달라진 것뿐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그분의 몸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가 그도의 몸이라면 그도의 몸은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이고, 그분의 몸을 세우는 것은 각 성도 안에 그도의 성분이 충만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진정한 개혁의 대상은 먼저 우리들 자신입니다
설무지님이 말씀하신 의미를 잘 이해했습니다.
그렇죠. 교회(모임)의 형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자체(성도)를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 우선 맞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자면, 우선해야 할 순서를 논하다보니 이런 방법적인 문제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저를 포함하여 이곳에서 주목하는 것은 현재 기존 교회의 틀 안에서는 그런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 성서적으로도 어긋남 없고 보다 효과적인 바로 세움을 위해서
좋은 대안이라 생각되는 것이 가정교회라고 뜻을 모았다고 보입니다.
저도 부모님과 함께 나갔던 교회에서 나와 가정모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무소의뿔님의 겸손하신 댓글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솔~솔 풍겨납니다. 감사해요^^기성교회에서 분리하여 가정교회로 모이는 것이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부족하지만 저의 요점은, 가정교회가 단지 교회의 외양을 개혁하는 것이라면 기성교회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릇은 겉을 닦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속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자신이 곧 교회라는 인식이 절실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개혁하기 위하여 모이는 가정교회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그러나 오늘 가정교회를 지향하는 모임중에 더러는 교회의 낡은 껍질을 벗기는 것에만 주력합니다. 성경지식과 교리를 세워서 성경에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그것으로 기성교회와 분별되었다는 자만심에 젖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교회의 겉에 낀 때를 벗긴 것에 불과하지요. 교회의 속에는 여전히 육체와 자아와 세상이 가득합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지식과 교리로 증가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자신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교회가 그리스도로 채워질 수 있겠는지요. 행복하고~ 행복한 가정교회를 꿈꾸며 시작하신 일이니 아름답고 좋은 열매 맺기를 소망합니다.귀한댓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가정교회는 통일교로 검색에 나옵니다.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임을 가정에서 갖는다 해서 줄여서 가정교회입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 의 약자로 줄여서 그냥 가정교회로 통칭 합니다.
물론 가정에서 모여야만 교회라거나 간판이 달린 곳에서 모여야만 교회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자는것은 아니고요. 모이는 형태적인 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설무지님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설무지님 댓글 견해가 참 쫄습니다
가정교회 사역자 번개모임 제안합니다 자면 한그릇 대접해 드리고 싶군요..
오잉?? 언제, 어디서요? 얼른 달려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