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하자 6.25 (1950.6.25~1953.7.27)
우리민족 역사에 6.25전쟁은 3년1개월 이란 결코 기억하고 싶지않은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녕 잊혀져서도 또한 두번다시 재발해서도 아니 될 참혹한 사건 이거늘
60여년의 시간이 흘러 오면서 세대가 바뀔수록 자꾸만 잊혀저 가는것이
왠지 불안하고 안타까움으로 다가 옵니다.
청소년들의 60%가 6.25 발발 년도를 모른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전쟁 직후 세대인 나는 과연 얼마나 상기하고 있는가 자문 해 보는순간
더욱 더 경각심을 같게 됩니다.
청소년 들이여 부디 바라거니와
6.25전쟁 시기는 모를 지언정 사람이고 세상이고 모든것을 참혹한 폐허로 만드는
전쟁이란 비극의 참상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새삼 몸바쳐 나라를 지키신 숭고한 선열님께 엄숙히 묵념을 올립니다.
★ 분단(分斷)의 형제들이여! ★
분단(分斷) 반세기, 그리고 또
물 흐르듯 사라지는 세월 속
대한민국, 너는 지금 어디쯤인가
저기 저,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호연지기
섬나라 땅에 문명을 전하던 백제인의 기개
찬란한 문화 예술을 꽃피운 신라인의 가슴
평화와 절개를 소중히 하던 백의민족 조선의 혼이여!
동서남북 사방팔방에서 셀 수 없을 무수한 침탈의 흔적들
선열의 붉은 피가 강을 이루었나니
누구를 위해 흘린 피였는가, 누구의 바람(望)으로 이리되었는가
밟히고 짓이겨 둘로 갈라진 슬픈 조국이여
너희는 아는가? 내 조국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을
한민족 동포들의 피맺힌 원한을
원수의 무리는 아직도 기세등등한데
분단된 형제끼리 아귀다툼하려 하고
국회에서까지 난장판을 이루려는가
아무리 숨 가쁜 세상살이라지만
그대는 벌써 잊어버렸는가
한국전쟁, 동족상잔의 그 한맺힌 절규를
이제는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할 때
오대양 육대주에 한민족의 영광을 심어야 할 때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분단(分斷)의 형제들이여
★ 6월의 호국혼 ★
우리 민족에게는 61년전의 6월처럼 잔인한 달도 없을 것이다.
民族의 悲劇인 6.25 전쟁이 발발한 6월을 맞아
우리는 우선 6.25 전쟁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國家의 礎石을 쌓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에는
나라와 民族을 위하여 목숨을 草芥 같이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 英靈들의 피와 눈물의 의미를 깨달아야 할것이다.
해마다 6月이 오면 護國英靈들의 愛國魂이 다시 피어나
이땅의 山河에 서리는듯 하다.
이분들은 숭고한 겨례의 등불이며,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물질적 풍요는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의하여 이룩된 것임으로,
이분들의 애국혼을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게 하여
나라 사랑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여야 할것이다.
한국전쟁 걸작 사진 10장
원조 금순이?
6.25전쟁이 터지자 생활필수품을 한보따리 싸서 머리에 인체 아기를 업고
피난가는 이 젊은 새댁 사진은 전쟁 발발 직후 발행된 미국 LIFE잡지
(1950년 7월 10일자)에 전면 크기로 실렸다.
얼마전 워싱턴 근교에 선 일일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이 잡지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이 새댁의 모습이 요즘 인기 절정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왼쪽에 삽입한 사진은필자가TV화면을 보고촬영한 것.
어른들은 왜 싸울까? 전투 중인 미군 아저씨들로부터 철모를 얻어쓴 두 꼬마 아가씨가 대포 소리가 너무 무서워 귀를 막고 있다. 난리통에 부모를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유명한 사진기자 David D. Duncan이 찍은 보도 사진이다.
이게 유토피아?
인천 상륙작전이 끝난 뒤 ;한 해병이 파괴된 인천 시내를 순찰하다가 어린 아이와 만난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행운아들이다. "유토피아"(이상향)이라는 다방 간판이 폐허가 된 거리 풍경과 아이러니칼한 대조를 이루고있다.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사진)
"피난을 가더라도 갓은 써야지" 미군 차에 실려 두 손자와 함께 피난 가는할아버지와 할머니.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사진인데, 사진 설명을 보면, 중공군과 전투가 있으니 동네를 떠나달라는 미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장인 이 할아버지가 피난 가기를 거부, 할수없이 차로 모시고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군인은 북쪽으로, 피난민은 남쪽으로
6.25가 터진지열흘이 지나서 미군은 처음으로 오산 죽미령에서 인민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계속 남하하는 북한 침략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으로 행진하는 미군들과 그정반대 방향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겁다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탱크도 무섭지 않은 아이들
하도 많이봐서 이제는 탱크가 지나가도 마차가 지나는것 처럼 무관심한 어린이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식량 구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아줌마는 강하다!
머리엔 무엇인가 잔뜩 이고 지팡이를 짚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두 아줌마... 아마도 식량을 구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길 옆에서는 미군들이대포를 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엄마는 위대하다
피난길에 걸어가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이 아기가 지금은 56세쯤 되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8순 할머니가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살고 있을 것이다.
(LIFE잡지 사진)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북진하는 탱크에 방해가 될세라 얌전히 길 한쪽에 한줄로 서서 걸어가는 피난민 대열. 자세히 보면 젊은 사람은 없고 노인들과 아녀자들 뿐이다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사진)
헬로! 땡큐! 미군으로부터 초컬랫을 받고있는 어린이. 처음 보는 것이라 과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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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하자 1.4후퇴
공산군 치하에서는 못 살겠다고 피난 또 피난 철수하는 LST미국 군함을 얻어 타려고 몰려든 피닌민들
철수(후퇴)하는 미국 군함을 타기위에 흥남 항구에 몰린 피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어선과 군함 후퇴하는 다국적군과 피난민의 북새통속
UN군과 피난민14,000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떠난후 군수물자를 폭파했다,
흥남역을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부산을 향해 목메인 기적 소리를 울리며 칙칙폭폭
북한을 출발한 피난 열차의 종착역은 무조건 부산역이였다.
화차안이 좌석이 없자 화차위에도 피난민이 가득
화차 위에타고 졸다가 터널에서 많은 목숨도 잃어가며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
한강 얼음위를 건너 1.4후퇴 서울 시민들
군함과 마지막열차를 못탄 피남민과 후퇴하는 한국군이 어우러졋다.
밀려오는 피난민을 수용할 국가적인 능력도 없어 항구와 역전에 버려졌다.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판자집에서 어려운 피난살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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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문론 체험해보지못한 일이어서 그렇겠지만
어지간이 나이가 있으신분들도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일인지 깨닫지를 못하는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두번 다시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을 노리고 있다는것을 , 국민이면
지금도 북한은 호시탐탐,
다 알것 입니다..분열되지 않고, 단합할때 에는, 그 누구도 우리나라를 넘 보지 못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