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약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여약사들이 삶의 이야기를 전하며 감동을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집창촌의 이모로 불리는 약사, 어머니의 투병과 자신의 아픔을 이겨낸 약사, 암투병을 극복한 약사 등 여약사들이 전하는 다양한 사연은 약사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전해줬다.
2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6차 전국여약사대회'를 통해서다.
이날 '강연 36.5도'에는 이미선 약사, 안화영 약사, 우영순 약사가 강연자로 나서 약사들의 호응을 받았다.
메디파나뉴스가 이날 강연을 통해 소개된 약사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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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선 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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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이모가 된 행복한 약사 = 서울 미아리 성매매집창촌에서 이십년 가까이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미선 약사. 그는 이곳에서 삶의 마지막에서 겨우 버티고 서있는 이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피임약 복용법을 몰라 약을 먹으면 피임이 되냐고 물어보던 스무살이 채 안된 소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중학생이 된 딸을 키우며 집창촌에서 일하는 미혼모, 늙은 부모와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집창촌에 들어왔던 마흔살 처녀 등 다양한 인생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약사는 약사로서 전문지식을 쌓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가는 일이 소중하다는 생각에 이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약사는 약국에서 만나는 미아리 사람들이 아기와 같은 순백의 여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며 여린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듬어 안으면서 약국의 불을 밝히고 있다.
이 약사는 삼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전신불수와 전립선암 말기환자인 아버지를 모시며 겪은 어려움을 전했다.
된장찌개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는 투정을 부리고 오로지 자기만 봐달라며 아기가 되어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는 것.
또 과거 고등학교 시절 등록금을 제날짜에 내본 적이 없었고 늘 똑같은 도시락반찬을 내놓기 부끄러워 점심을 굶기도 한 기억도 끄집어 냈다.
이 약사는 이러한 경험이 현재 약국을 밝혀주는 튼튼한 밑불이 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 약사는 "약사로서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은 하루하루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의 그물을 한 코 한 코 넓히는 일이 약사의 몫"이라며 "행복한 약사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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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화영 약사 |
◆ 약사로 살기 = 시흥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안화영 약사.그는 어머니의 투병으로 힘든 삶을 겪었고 자신의 아픔을 통해 약사로서의 역할을 깨닫게 됐다.
안 약사는 약대를 졸업한 후 3년 만인 1985년 약국을 개설하며 정신없이 지내는 중 어머니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사고 이후 기억력이 떨어지며 치매 증상이 찾아왔다.
안 약사는 부모님을 모시며 병 구환과 함께 약국에서 환자들을 상대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맡아하면서 23년이 지났다.
그러다 밭이 있고 약국이 가까운 시골풍경의 도시로 이사를 했는데 어머니의 치매가 더욱 심해졌고 밭을 가꾸며 약사회 업무와 주민 대상 건강강좌 등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계속된 무리로 인해 갑자기 걸을 수 없어 병원을 갔고 양쪽 다리의 뼈를 자르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됐다.
안 약사는 수술 후 1년 반 동안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됐다. 이후 1년 반 만에 퇴원하고 조금씩 걸을 수 있었고 무리하게 맡아왔던 일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후배 동료들이 안 약사가 맡았던 일을 대신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더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서야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의 삶의 경험이 약이 되고 거름이 돼 온전한 자신, 약사라는 직업을 택해 살게 된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약사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약국과 집, 약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고 싶다고 말한다.
안 약사는 "약사의 기본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약이 될 것"이라며 "몸이 허락하는 한 그동안 쌓았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약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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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영순 약사 |
◆ 세상의 약이 되렵니다 = 40년 넘는 약사의 길을 걷고 있는 강원도 원주의 우영순 약사. 그는 유방암의 암투병을 이기며 환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약사의 길을 걷고 있다.
어머니의 권유로 약사가 된 우 약사는 약국을 경영하며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암투병을 겪게되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 약사는 제약회사와 관리약사를 각각 1년씩 근무하며 같은 약사인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된다.
다국적 제약사 트레이닝 매니저였던 남편으로 인해 집에서 살림만 하게된 우 약사는 사정상 남편의 사직하면서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한 약국을 개업하게 됐다.
서울토박이로 생면부지의 장소였던 횡성은 낯선 곳이었고 우 약사에게 얼마간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2년 후 원주에서 현대식 건물에 약국과 살림집이 함께 있는 약국으로 옮긴 후부터 행복을 만끽하게 됐지만 IMF와 의약분업의 시작으로 약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부도가 나서 쉬고 있는 중소병원 앞에 있는 약국을 인수했지만 병원이 경매에서 계속 유찰돼 1년을 개업하지 못했고 어렵사리 병원이 개원했지만 안정되지 않은 채로 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유방암이 발병했다.
우 약사는 TV에서 보던 겉 입술 위에 하얗게 백태가 앉은 모습, 머리 빠진 몰골, 화장실 가기조차 힘든 걸음걸이 등 암으로 인한 고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그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아픔을 헤아려 보게 됐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던 것.
약사가 무슨 암에 걸리냐고 비아냥 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우 약사는 약사의 모습으로 약국에 있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게 됐다.
젊은시절 이 같은 우 약사의 경험은 약국 운영의 결과에 따라 좌절하고 힘들어했던 초기 약사의 모습에서 환자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우 약사는 "약사로서 약국을 운영하는 것에 집중됐던 시절이 있었지만 어느새 변해있었다"며 "환자 뿐만 아니라 저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며 이 세상의 참다운 약으로 쓰일 약사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