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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금문신고’라고 쳐보면 엄청난 내용이 뜹니다. 중국 상고사를 완전히 뒤엎어 버린 책, 중국 상고사가 곧 우리 동이족의 역사, 즉 고조선사였음을 밝혀주는 책, 너무 파격적인 내용이라서 금서가 된 책, 그래서 800부밖에 인쇄하지 못한 비운의 책,
그 정반대로 환단고기의 ‘환’자만 나오면 흥분하는 분들은 금문신고를 형편없는 책, 아무 가치 없는 책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 금문신고를 일부라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더군요. 환빠들이 좋아하는 책이니 당연히 엉터리 내용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더군요.
블로거 ‘초록불님’과 비슷한 성향의 신라 옹호자들이 <금문신고>를 환빠류의 책으로 폄하하는데...아이러니컬하게도 <금문신고>를 한국에 소개하고 금서설까지 퍼뜨렸던 사람들(<금문의 비밀>이라는 책)이 열렬한 신라 옹호자들이라는 것이죠.
이들에 따르면 삼황오제가 등장하는 중국 상고사는 곧 고조선의 역사,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동이족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몇몇 사서의 진한 또는 신라 사람들은 ‘秦之亡人’라는 구절을 '신라의 6촌장들이 진나라에서 망명해온 사람'이라는 뜻이고, 문무대왕비문의 투후 김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은 진시황의 장남 부소의 후손이랍니다.
이들에 따르면, 문무왕비에 나오는 '화관지후'는 순임금, '진백'은 진시황제의 20대 선조인 진나라 목공, '파경진씨'는 휴도왕의 세력이고, '경진'은 지금의 포항 근처의 옛 이름, '투후'는 김일제, '성한왕'은 한반도에 들어와 신라 김씨의 시조가 된 김알지, 김일제의 동생인 김윤의 후손이 한반도에 들어온 게 가락 김씨의 시조 김수로가 된답니다.
이들은 위와같은 몇가지 요소를 조합한 뒤, 신라, 정확히는 신라의 김씨가 삼황오제시대의 순임금의 직계 후손으로 한민족의 정통이라고 주장합니다.
'秦之亡人'에서 '亡'은 망명의 의미가 아니라 도망간 것, 즉 진나라의 가혹한 세금과 부역 동원에 진절머리가 나서 도망간 사람들로 귀족이 아니라 평민들입니다. 그런데 亡을 마치 정치적 망명객인 것처럼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부터 문제가 심각하죠.
<금문신고>를 한국에 대중적으로 소개한 <금문의 비밀> 282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낙빈기의 <금문신고>와 <중국상고사회신론>(금문신고 외편)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금문은 바로 ‘문무대왕비문’을 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조선이라는 당시의 상황과 신농이 만들었다는 최초의 문자를 이해해야 ‘문무대왕비문’의 비밀을 풀 수 있으며 이 비문이 바로 고조선과 우리 역사를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무대왕비문에 나오는 투후 김일제, 신라의 흉노 기원설을 말합니다. 즉 금문신고 금서설을 퍼뜨렸던 사람들은 사실 그 목적은 고대 금문 연구에 있다기 보다는 신라와 신라 김씨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작업의 하나로 금문신고를 소개했다고 볼 만한 것이죠. 제 생각에 이 사람들이 바로 신라 흉노 기원설을 대중화시킨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전에 비슷한 주장이 있기는 했지만...
금문신고는 1987년 중국에서 출판되었고, 지금은 절판됐지만 중국 중고서점이나 도서관, 인터넷 상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양 극단의 주장이 마치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유포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옛날의 역사는 얼마나 쉽게 조작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금문신고는 금서설의 진원지는 <금문의 비밀>
금문신고를 처음 국내에 소개하고 띄운 책은 아마도 지난 2002년 출판된 <금문의 비밀>로 보입니다. 이 책은 소남자 김재섭 이라는 분이 낙빈기의 금문신고가 한국의 중국 전문 서점에 들어온 것은 우연히 보고, 그 가치를 알아봤고...김재섭씨가 낙빈기를 직접 중국에서 만나봤고...김재섭씨의 제자로 보이는 김대성씨가 쓴 책이 <금문의 비밀>입니다.
<금문의 비밀>은 절판됐는데, 제가 제본해서 한 권 가지고 있습니다. 겉 표지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중국 사학계의 금서 <금문신고>를 통해 본 4500년 한중 상고사”
출판사 서평에도 금문신고 금서설이 나옵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0970161
“사실 중국 학계에서는 상고금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중국 문자의 시작은 은나라 때의 갑골문자부터이다. 따라서 상고금문을 기초로 전설시대로 간주하고 있는 삼황오제시대를 풀어놓은《 금문신고》에 대한 중국 학계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중국의 사회 특성상 책을 출판하려면 공식적인 허가와 함께 정부 담당 연구원의 검열을 거쳐야 한다. 들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이 책을 검열한 몇몇 학자들이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800권이라는 소량의 부수만 인쇄가 가능했는데, 나중에는 그것도 회수되고 결국 '금서'로 묶여지고 말았다.“
http://www.coo2.net/bbs/zboard.php?id=qna&no=1631
‘茶香’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소개한 <금문신고> 소개 글은 낙빈기가 이런 엄청난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3번이나 하방당했다, 워낙 파격적인 내용이라서 모 대학 중문과 교수들에게 번역을 의뢰했으나 이해못하겠다며 포기했다 등의 내용입니다.
금문신고는 금서가 된 적이 없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중고 인터넷 서점 콩푸즈 닷컴(http://book.kongfz.com/1974/39051650/)입니다. 금문신고가 중고책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가격이 400위안이네요. 금서가 이렇게 버젓이 중고 책으로 판매될 리가 없지요.
요 그림은 작자가 직접 사인한 책이라고 원가 20위안의 50배인 1000위안을 불렀군요.
중국의 각종 학술 서적을 스캔해서 올려놓는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 중국 국학망(http://bbs.gxsd.com.cn/)에서 검색한 결과입니다.
<금문신고>와 그 후속편인 <중국상고사회신론>이 스캔되어서 올려져있습니다. 하나는 2008년 11월, 또 하나는 2009년 8월 올린 것입니다. 제가 다운 받아서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요것은 중국의 유명한 학술논문 전문 검색 사이트인 CNKI에서 검색한 것인데, 1987년 상해사회과학원 계간지에 실린 서평입니다. 공산당 직속 산하 기관에서 이런 논문이 실렸는데 금서일리가 없지요.
무엇보다 제가 건너건너 아는 분이 금문신고를 불과 3년 전 중국 도서관에서 직접 대출받아 제본했습니다. 그 제본한 책을 다시 복사한 것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신분만 확실하면 한국인에게도 대출해주는데 무슨 금서입니까?
금문신고가 800부 밖에 인쇄되지 않은 것을 ‘중국 당국이 이 책의 파격적인 내용에 놀라서’라고 설명하는데...이런 류의 책은 13억 중국 인구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워낙 상업성이 없기 때문에 소수 연구자들용으로 소량만 인쇄합니다. 더구나 당시는컴퓨터 조판이 아니라 납 활자를 사용하던 시절이어서 그림 문자인 갑골문과 금문이 많이 들어간 책은 활자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일일이 필경사가 다 써야 합니다. 따라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상업성도 없고 제작비는 비싸고...당연히 소량 인쇄할 수 밖에 없지요.
제가 낙빈기 관련 기록을 중국어 검색엔진에서 검색해봤으나 하방당했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혹시 하방당했다면 문화대혁명 기간에 지식인 하방은 아주 흔했으니 그 와중에 하방당한 것이지 금문신고 때문은 아닐 겁니다.
모 대학 중문과 교수에게 번역을 의뢰했으나 포기했다? 요것도 믿기 힘든 말입니다. 금문신고 내용이 학술계 정설과 워낙 차이가 있고 내용이 난해하기는 하지만, 제 생각에 중국 문자학 박사 과정 정도에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낙빈기가 세계적 금문학자? 그는 소설가였다.
금문신고 금서설을 날조하는 것만큼 황당한 것은 ‘세계적인 금문대가 낙빈기 드디어 고조선 인정’이라는 글입니다.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my&no=954
일단 낙빈기는 소설가였지, 세계적인 금문대가로 인정받았던 적이 없습니다. 위 글은 <한배달>이라는 잡지에 김재섭씨가 쓴 글인데...제목이 참 오묘합니다. 세계적인 금문대가 낙빈기가 김재섭씨가 제시한 설에 대해 수긍했다는 내용인데...그러면 김재섭씨도 동시에 세계적인 금문 대가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아니 세계적인 금문 대가 낙빈기를 뛰어넘은 더 위대한 금문 학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금문의 비밀>은 <금문신고>와 별 관계 없는 책입니다.
위 링크의 한배달 잡지에 실린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朝는 제 전욱의 씨칭자고, 鮮은 鯤이 되고, 고조선의 고한자 韓이 순임금의 씨칭자라는 김재섭씨의 주장을 낙빈기가 인정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낙빈기가 실제로 저런 말을 했을 지 의문이고...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몇가지를 낙빈기가 인정했다고 곧 중국 상고사가 곧 고조선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김재섭씨의 제자로 보이는 김대성씨가 쓴 <금문의 비밀>은 바로 위를 근거로 중국 상고사가 곧 고조선사라는 전제하에 글을 썼습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못하겠고, 아무튼 <금문의 비밀>은 마치 금문신고를 바탕으로 약간의 해석을 덧붙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책 내용을 읽어보면 어떤게 낙빈기의 견해이고, 어떤게 김재섭씨의 견해이고, 어떤게 저자인 김대성씨의 견해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금문신고>의 서문과 1장, 중간 중간 훑어본 바로는 <금문의 비밀>은 그 내용상 실상 <금문신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낙빈기는 말 그대로 순수 학술 목적으로 금문신고를 썼는데, <금문의 비밀>은 그 가운데 아주 약간의 것을 끄집언내서 중국 상고사를 고조선사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한뒤, 마지막에는 신라 김씨 정통성 주장으로 빠져버립니다. 즉 금문신고 이름만 빌린 것일 뿐 내용상 아무 상관없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금문의 비밀> 맨 마지막장인 7부는 ‘고조선을 밝히는 징검다리 문무대왕비문’입니다. 이 책 299쪽은 “문무대왕비문의 출자대로라면 문무왕은 고조선의 창시자, 즉 곡부에서 나라를 연 신농씨의 직계 후손인 순의 계열이 된다”고 되어있습니다.
신라는 동이족 선조인 신농씨의 직계 후손으로 한민족의 정통이 되는 거죠. 김재섭씨와 김대성씨라는 두 김씨가 <금문신고>를 소개한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고개가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죠.
낙빈기는 듣보잡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태도 역시 앞의 사례보다는 덜해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금문신고와 낙빈기(駱賓基)에 대한 아무런 근거없는 폄합니다. 우선 저자인 낙빈기라는 인물을 봅시다.
중국의 유명 학술논문 검색사이트인 CNKI(http://search.cnki.net/Default.aspx)에서 ‘駱賓基(간자체 骆宾基)’로 검색해보면 그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이 3건, 석사학위 논문이 7건, 학술 잡지에서 그와 관련된 글이나 기사가 171건이 나옵니다. 즉 낙빈기는 대중적으로 아주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중국 문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알 정도의 지명도는 있던 사람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상해사회과학원 기관지도 마찬가지지요. 실제로 중국어 검색엔진에서 금문신고로 검색해보면 많은 내용이 뜨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전문학자가 금문신고를 인용해 논문을 썼거나 따로 인용한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낙빈기는 1917년 흑룡강성의 훈춘에서 태어난 문학가입니다. 중국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던 이른바 항전시기에 참여문학을 했던 사람입니다. 중국 인터넷에서 그에 대한 어떤 글을 읽다보니 “낙빈기의 문학적 성취는 소홍, 소군 형제(중국 현대문학에서 아주 유명한 여류 문학가 형제) 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데 이상하게 대중적 지명도는 낮았다. 즉 그는 자신의 문학적 성취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런 평이 보이더군요.
즉 낙빈기는 결코 듣보잡이 아닙니다.
邱崇丙 이란 중국의 언어문자학자가 쓴 <漢語文化論集>의 경우 한 챕터가 ‘金文新考与上古史研究’로 되어있습니다. 즉 금문신고에 대해서 할해한 것입니다. 이밖에 학자들이 금문신고를 인용한 것을 몇건 볼 수 있습니다.
뭣보다
http://bbs.zjol.com.cn/thread-3267953-1-1.html
“著名作家骆宾基虽不是嵊州人,但在抗日战争期间,他赴嵊州从事基层救亡宣传工作,光荣地加入了中国共产党,并任县委第一任宣传部部长之职。他留给嵊州的音容笑貌,已成为人们心里挥之不去的记忆,他因此被人称为特殊的嵊县“老乡”。”
절강성 동부에 있는 嵊州란 곳에 낙빈기가 항전 시절에 잠깐 머물렀는데, 그를 자랑스럽게 소개한 신문 기사입니다.
즉 결론적으로 낙빈기는 전문적인 금문학자는 아니지만 소설가로서는 상당한 지명도가 있던 인물입니다. 또 그는 소설가였지만 시경이나 좌전에 대한 주석서를 내는 등 고문헌에 대해 상당히 연구를 했던 사람입니다.
앞에 캡쳐해 놓은 중고책 가격이 꽤나 비쌉니다. 호가가 실제 거래가일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렇게 비싸게 불렀겟지요. 국학망에 금문신고와 중국상고사회신론이 스캔되어 올려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학망에 올려지는 책 가운데 듣보잡은 없습니다. 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책이 스캐되어 올려집니다.
이런 인물이고 이런 책인데, 한 쪽은 세계적인 금문대가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듣보잡 취급합니다. 둘 다 문제가 많은 거죠.
한 1000년 뒤에 <금문신고>라는 원본은 없어지고 만약 <금문의 비밀>만 남아있다면 , 사람들은 <금문의 비밀>이 곧 <금문신고>의 내용인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둘 책은 사실상 전혀 상관없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른 책입니다.
중국 역사서 가운데 <죽서기년>이나 <위략>처럼 원본은 없어지고 인용문만 남은 책이 많습니다. 이런 책들도 비슷했을 지 누가 압니까?
첫댓글 낙빈기가 중국의 소설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칭 고금문이라는 주장의 실체가 결국 이런 것이었군요. 중국어를 못하니까 속여넘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인지...ㅡㅡ;
<금문의 비밀>이라는 책은 금서가 된 적도 없는 <금문신고>를 금서라고 과장해서 마치 엄청난 내용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을 심어준 거죠. 아마 <금문의 비밀>이라는 책을 많이 팔기위한 마케팅 차원이었던 것 같은데, 마케팅에 어느 정도 과장은 필요하지만 이 경우는 너무 심하죠. 더구나 문자학 책인 <금문신고>를 고조선의 역사를 밝힌 책으로 둔갑시킨 뒤, 투후 김일제 등을 끌어들여 신라 왕조의 김씨들이 순임금부터 이어지는 만세일계의 한민족 정통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요건 <금문신고>를 '김씨 족보'로 둔갑시킨 격이죠.
그러나 <금문신고>라는 책 자체는 그 내용에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한자의 어원과 관련해서 시사점을 주기는 합니다. 한자 한개는 동시에 여러개의 음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 학자들은 보통 방언의 영향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금문신고>는 신농계와 황제계의 음이 달랐던 것에서 찾습니다. 신농이나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상고시대 다른 민족을 상징한다는 것은 학계의 상식입니다. 즉 한자 한개의 음이 여러개가 나왔던 것은 단지 방언의 영향이 아니라 신농계와 황제계의 음이 달랐던 것에서 이유를 찾은 게 낙빈기의 <금문신고>입니다. 요건 황당한 소리라고 치부할 수 없는 상당한 근거와 정황이 있습니다.
좋은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