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그만 잊어요 (Acoustic Version) - 거미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고백-신달자
분명한 존재는 어둠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가려져 있는 것이 더 많다.
진실로 사람도 감춰져 있는 것이 더 많으리라.
그래서 인생은 아직 절망적이지 않다.
더 아름답게 눈 뜨는 힘을 길러서
가려진 것을 보는 지혜를 배우는 일도 중요하다.
1973년.
대학교 시절.
나는 한 달에 천원짜리 방(쪽방)을 얻어 자취를 하였다.
우리집은 동장집으로 3채이다.
안채는 동장부부,할아버지,할머니,그리고 손자 3.
또 한 채에는 혼자인 묘령의 여인, 도망 나와 살림을 차린 아가씨와 막노동 하는 총각,
자전거에 생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29살 쯤 되는 분과
나이가 어려 보이는 그의 아내, 그리고 겨우 걸어 다니는 꼬마소녀.
또 다른 한채에는 하숙생 3명이었다.
복잡한지 누구하나 관심조차 없었다.
어느 봄날이다.
오후에 강의가 있어 집에 있을 때였다.
마당에 나와 있는 꼬마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어진이란다.
어진이?
나는 옆에 있던 어머니에게 어떤 ‘어’짜냐고 물었다.
어거하다 ‘어’와 참된 ‘진’이라고 했다.
御眞?
순간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선장수하는 그냥 그런 사람이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생선장수.
그랬다.
우리집에서 그 부부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
술을 한잔 하자고 청했더니 흔쾌히 응하는 것이 아닌가?
우린 이런 저런 얘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나눴다.
어지간이 술 기운이 올랐을 때 그는 한숨을 쉬면서
밤마다 아내와 딸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모든 게 다 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곳까지 오게 된 얘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c사립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와
지방의 사립학교에 교사로 근무하였다.
잘 생긴 얼굴, 매력있는 목소리에 그 학교 여학생들은 난리였다.
더군다나 소설과 시를 쓴다니 더 했다.
그런데 그만 그 학교 고3학생이었던 여학생과 사랑하게 돼
어느날 밤 둘이 도망 친 것이다.
두 사람 다 그 지방에서 부유하고 유명한 집안이어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어쩌랴.
이곳에 방 한 칸을 얻어 살림을 차린 그들은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가지고 나온 돈도 다 떨어져 할 수 없이 동장인 주인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 집에 있는 자전거로 생선장사를 해보라고 해서 생선을 받아다가
다니면서 장사를 했던 것이다.
이제 후회는 없지만 밤마다 자는 아내와 어린 딸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단다.
언제가는 장편소설 한 편 쓰는 것이 희망이고 다시 교직에 돌아 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딸을 낳고 부터는 양쪽 집안의 어머니들이 몰래 몰래 다녀갔고,
양쪽 아버지들도 인정해 주는 눈치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아마 그 후 그들 부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갔을 것이고,
선생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생선장수와 선생.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선생을 거꾸로 읽으면 생선이 된다.
생선은 비린내가 난다.
잘못하면 썩는다.
한때 그는 불장난(?)으로 선생에서 생선장수가 되었다.
아마 생선을 팔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선생으로 돌아가면서
두 번 다시 비린내 나는,썩은 선생은 되지 않겠다고 했으리라.
그 후 그는 틀림없이 훌륭한 선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자기가 경험한 생선장사에 대해
장편소설을 썼으리라.
그들이 보고싶다.
첫댓글 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