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 사의찬미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에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 알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의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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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자살한 윤심덕 윤심덕은 동경 유학에서 성악을 전공 하고
1925년부터 극단 토월회에서 연기를 하였으나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게다가 동경에서부터 사랑에 빠진 목포 출신의 거부의 아들인
김우진과의 관계와 온갖 소문들 때문에 실의에 잠겨 있었다.
1926년중순 영극인이며 일축 경성 출장소장을 맡고 있던
이기세가 윤심덕에게 재출발을 위해 레코드 취입을 알선 하였다
윤심덕은 김우진에게 먼저 일본에 도착하도록 연락을 취한뒤에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에 있는 일동에서 3일간 음반을 취입 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취입 예정에도 없던 노래를 녹음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후에 대단하게 인기를 누리게된 "사의찬미'였다
윤심덕의 자작시에 이비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멜로디를 얹어
동생 윤성덕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른 것이다.
"사의찬미'녹음을 마치자 윤성덕은 바로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났고
윤심덕은 사랑하는 남자 김우진과 함께 돌아오다가 현해탄에서
동반투신 자살 하였다.
이 정사 사건은 각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마치 윤심덕 자신의 운명을
예감 하기나 한 것같은 가사와 페부를 찌르듯한 날카롭고도 절망적인
창법이 어울려 "사의 찬미"가 대유행을 하게된 것이었다,
이렇게하여 이노래가 우리유행가 유행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사의 찬미’로 대중에게 스타 가수로 떠오른 윤심덕. 그녀는 애인
김우진과 함께 이루진 못한 사랑을 슬퍼하며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글 옮김- 약산동대
첫댓글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사의찬미 가사와 분위기가 어울리긴 한데 작곡자가 알면기분 나빠 할것 같네요. 어떤 경우든 죽음은 찬미할 것은 못되는것 같습니다.
아 참 가슴이 싸아 합니다. 자살을 찬미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극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첫댓글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사의찬미 가사와 분위기가 어울리긴 한데 작곡자가 알면
기분 나빠 할것 같네요. 어떤 경우든 죽음은 찬미할 것은 못되는것 같습니다.
아 참 가슴이 싸아 합니다. 자살을 찬미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극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