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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지역 오지의 섬을 찾아서 -
배에 올라타서는 보길대교 밑을 지난다. 배 안에서 전복을 먹는다. 이미 아침부터 묶여있던 카페리호는 우리가 이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없었다. 예송리 해변에서 아주머니가 한 말이 생각난다. 배를 타려면 부두에서 기다려야제 했는데 아직 뜰 생각을 안하네요 했더니 배는 안개가 걷히면 바로 떠난다고 했었다. 진짜 그렇게 되었다.
친인척이 사는 3가구의 섬, 죽굴도
안개가 다소 희석해져 항해하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더러 한가롭게 낚시대를 드리운 고깃배도 보인다. 그리고 아침에 이목항에 있던 ‘해광페리3호’가 넙도에 정박해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 2007년 10월부터 취항한 카페리는 150톤급으로 길이 40m, 너비 8m로 이목항을 출발해 넙도와 서넙도, 죽굴도, 대정원도, 대장구도, 어룡도를 돌아온다.
등대호는 넙도와 마안도 등의 섬을 지나 서쪽으로 달린다. 죽굴도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GPS에 나타난 죽굴도를 보니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인데 섬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그 아래에 있는 무인도인 문어북도와 문어남도는 표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인도에는 없었다.
등대호는 문어남도와 문어북도를 지나 ‘죽굴도(竹窟島)’로 향한다. 맞은편에 섬이 보이는데 섬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서 간다. 죽굴도는 서쪽 해안에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 선착장에 당도한 것은 12시 35분. 노화도 이목항에서 여기까지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니 상당히 먼 곳으로 왔다.
방파제 끝이 파괴되어 있었다. 돌을 쌓고 그 위에 가늘게 시멘트를 깐 형태의 방파제인데 끝자락이 철부선이 닿을 수 있도록 45도 각도로 경사지게 만들었는데 균열이 져 있었다. 그래서 하선하는데 약간 힘들었다. 보수를 하거나 정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여객선 접안시설이 지나치게 부실해 각종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 섬은 방치상태다.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니 한 남자가 다가온다. 방파제 끝에서 섬을 바라보니 경사진 낮은 곳에 집이 몇 채 있을 뿐 대부분 나무와 돌담에 가려 잘 구별할 수 없었다. 특히 높은 돌담이 인상적이다. 그 뒤로 낮으마한 숲속. 그만큼 이곳도 풍랑이 많은 지역인 듯싶기도 하다. 우리에게 다가온 남자가 우리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로 이야기를 꺼낸다.
주변에는 겨우 조그마한 배 두 척이 있을 뿐이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 혼자 빠져나와 집이 있는 마을로 올라간다. 방파제 끝 약간 넓은 공간에 평지가 있는데 원래 이곳에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단다. 그리고 이곳에 다시 집을 지을 계획이라는데 그대로 놔두거나 아니면 정비를 했으면 좋겠다. 이곳에 집이 들어서면 답답해 보일 것이다.
도로라기에는 다소 불편한 낡은 길. 시멘트를 깐 길과 흙길 등. 이곳저곳 기웃거려보지만 대부분이 빈집이고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나는 곳에 가니 개 한 마리가 요란스레 짖는다. 이어 아주머니가 나온다. ‘죽굴도길 3’번이다. 인사를 하고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 원래 이곳이 고향인데 나갔다가 최근에 다시 돌아왔단다. 역시 노후생활을 위해서란다. 편하게 보이는 인상으로 60대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친인척관계란다. 한 집 건너 시숙 한 집 건너 시아주버니 등. 할머니대부터 이 섬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마을 자체가 경사진 곳이라 옆집과는 나란히 있지만 드물고 대부분이 앞집과 뒷집 사이는 길인 돌옹벽으로 이어져 있다. 겉으로는 다 찌그러진 초라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래도 반듯하게 보인다. 아직은 불편한 섬 생활이지만 고향이라 그리 불편할 것 같지는 않는다. 다시 다른 사람이 오기에 역시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현재 3가구가 살고 있다.
이 집에서 나와 북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본다. 어느 정도 발걸음을 옮기니 양쪽에 대나무로 이루어진 길이 나타난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터널을 이루고 있어 죽굴도의 의미를 알겠다. 섬의 형태는 촛대모양이라는데 왕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죽도라 부르다가 ‘죽굴도’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니 이해할만 하다. 대나무굴이라.
이곳을 벗어나면 사방이 트인 그런 길이다. 날씨만 좋으면 사방의 무인도가 다 보일 것 같다. 노화도에서 서쪽으로 약 14㎞ 해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장도·외모도·문어도 등의 작은 섬이 산재해있다. 이곳에 길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어진다는 의미다.
길은 서쪽 해안 선착장에서 동쪽 해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동서를 잇는 도로인 셈이다. 경사도가 제법 급하다.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는 사이에 앞선 간 울산 사진작가가 열심히 꽃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참 내려가니 해안가다. 여기서 낚시를 해도 좋을 법 하다. 여기서 마주 보이는 섬이 무인도인 ‘잠도’라는 섬이다.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사진작가가 여전히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시 사진작가는 다르네. 다시 능선에 올라 북쪽을 보니 길은 없다. 섬은 고만고만한 높이로 길게 이어져있는데. 잡초가 무성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만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대신 해안길을 통해 가봐야지 하고 되돌아 나온다.
나오다가 끝자락에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앞으로 간다. 재래식 화장실 옆으로 또 다른 대나무굴길이 있는데 선착장을 바라보는 서쪽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선착장이 있는 이곳과 앞으로 보이는 두 개의 섬이 연결되는데 해안까지 나왔다가 북쪽으로 계속 갈려다가 역시 길이 막혀 포기하고 되돌아온다. 남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이곳은 선착장과 같은 영역으로 바로 선착장 입구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왔던 길로 해서 다시 집으로 올라간다.
재래식화장실에는 화장지가 걸려있다. 그 앞 짜투리 밭에는 채소를 가꾸고 있었고 마당에는 담장으로 소주병 수 십 개를 옆으로 쌓아두었다. 아담하게 잘 꾸며진 집이다. 거기에다 바로 바다를 바라보는 그런 위치라 별장으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섬사람들에게는 별장이 아닌 생활의 터전이겠지만.
반대편의 공간으로 간다. 큰 태양열발전시설이 들어선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이 이곳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아저씨의 집이란다. 주변 옷을 걸어놓고 말리는 모습으로 사람의 냄새를 느낀다. 거기에다 개도 낯선 사람을 봤다고 여전히 짖어대고 있다. 이 뒤로 높이 61.5m의 야산이 있다.
면적 0.12㎢, 해안선 길이 3㎞인 이곳에 사람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약 200년 전으로 해남에서 이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주민들이 대부분 60~70대 노령이라 고기잡이와 김, 미역, 톳, 파래 등의 해조류 채취로 생활한다.
마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선착장 방파제로 내려오니 1시 35분.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남자 세 명이 배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작가들이 원하는 연출을 한 듯싶다. 바다를 보니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서쪽 해안가에서 촬영하던 두 사진작가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들이 도착하여 배에 올라타자 등대호는 다시 시동을 건다. 다음 목적지인 대제원도를 향해.
나오면서 죽굴도의 모습을 둘러보니 참으로 기묘하게 생겼다. 세 개의 섬이 붙은 것도 같고 떨어진 것도 같고. 그리고 섬은 일정한 높이로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 끝자락 섬에 하얀 등대가 보인다. 아차 싶었다. 죽굴도에 등대가 있었던가?
섬 주변을 두른 해식애. 섬이란 것이 어떻게 생성되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원래는 돌이었다가 그것이 먼지가 쌓여 흙이 되고 그 위로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여 유인도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가구만 사는 섬, 대정원도
배는 북쪽으로 간다. 다시 안개가 끼기 시작하여 시야가 가린다. 그러더니 어느 정도 가니 저만치 희미하게 섬이 하나 보인다.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이어 나타나는 방파제와 집. 안개 때문에 섬의 높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이곳이 지도에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섬 ‘대제원도(大諸元島)’다. 위에서 본 섬 모양이 정자와 비슷하여 정원도라 부르다가, 지형이 돼지형이어서 재물이 번성할 것이라 생각하고 재원도라 칭하나 현재 공식적인 명칭은 ‘대제원도’이다.
방파제에 올라서자 방파제에는 톳을 말리는 풍경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방파제 끝으로 가면 왼쪽에 파란색의 집이 한 채 있고 역시 개가 집을 지키고 있다. 주소지는 ‘대정원도길 3’이다. 이곳에 주소지안내도가 방치되어 있는데 1~13까지 있다고 되어있다.
집 앞에는 돌로 만들어진 물을 받아두는 저장시설이 있다. 빗물을 받아두는 공간이다. 옆의 집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두는 곳이다. 물이 부족해 식수는 못하지만 수돗물을 받아 잡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이 섬은 빗물을 받아먹고 사는 것이다.
개가 낯선 사람들을 보자 요란스레 짖는다. 왼쪽 해변가로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집 오른쪽 해안은 암반이고 마을로 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있는데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올라가는데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시멘트길은 경사진 길을 오르자마자 끊긴다. 오른쪽으로 판넬로 된 가건물과 함께 태양열발전시스템과 6개의 바람개비 즉 풍력발전시설이 있다. 그 옆으로 오른쪽으로 길이 있는데 비포장도로다. 잡초가 많아 사람이 다니나? 아니 길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다. 전봇대가 있어 길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고 걷는다. 산 중턱을 가르는 전형적인 산길이다.
어느 정도 가니 툭 튀어나온 지점이 나타난다. 갈림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에 전봇대와 가로등이 있다. 왼쪽으로 능선 비슷한 길이 보이지만 길은 없다. 가로등은 오른쪽으로 꺾어져 들어간다. 그 길을 따라 내리막길을 걸어가니 제법 넓은 길이지만 잡초투성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그런 길이다. 잡초를 밟고 내려가니 연한 파란지붕을 한 집이 한 채 보인다. 마당은 좁지만 시멘트로 되어있고 낮은 돌담이 테두리를 둘렀다. 사람이 살고 있는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그 뒤로 또 한 채의 집이 보인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감이 안잡힌다. 담장을 둘러 깊숙한 곳에 숨은 집이다. 몇 번이나 가는 길을 찾다가 이 집 뒤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하고야 갈 수 있었다. 이곳에도 대나무가 많았는데 집으로 가니 막상 사람은 살지 않는 집이었다. 그런데 지붕 처마 아래의 백열전구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이곳에서 다시 나오면 옆집으로 가는 길인데 그 아래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곳을 통해 해안가로 가니 북쪽 해안가였다. 그러니깐 이 길을 통해 드나들었던 것이다. 어족자원이 많아 바다낚시터로도 좋은 곳이다.
좌우로 드넓게 형성된 암반, 그 위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낚시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길 같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톡 튀어나온 부분까지 가면 선착장이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연결되지 않고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밧줄이 있다. 밧줄을 잡고 가까스로 올라온다. 올라오면 아까 만났던 가로등이 있는 그 갈림길.
면적 0.062㎢, 해안선 길이 1.9㎞에 불과한 섬이다. 그리고 아까 본 두 개의 집과 선착장에 있는 집 등 모두 세 채가 전부다. 그러나 이 세 채도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 두 집이 너무 불편해 선착장에 기거지를 마련한 것이다. 마침 아저씨가 언제 왔는지 방파제에서 톳을 말리는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정원호가 정박해있다. 이 집 주인의 것이다.
처음 섬에 들어온 시기는 약 150년 전으로 해남에서 오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전해오는 ‘대제원도’는 면적 0.06㎢이며 완도에서 서남쪽으로 20㎞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다. 부근 바다에서 도미, 도다리, 농어 등이 잡히고, 청정해역에서는 김과 톳의 양식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목사님이 이곳 남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작가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오자 자리를 정리한다. 그리고는 배에 올라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 다음 목적지는 대정원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장구도.
할머니 한 분이 외롭게 지키고 있는 작은 섬, 대장구도
대장구도에 닿은 것은 3시. 대정원도에서 10여 분의 거리였다. 지도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날씨 탓인지 10분이 좀 더 걸려 닿은 것이다. 대장구도 북쪽에 있는 무인도가 소장구도이다. ‘대장구도(大長久島)’는 아주 단순한 구조다.
동쪽이 조금 뭉툭하고 서쪽 끝자락이 가늘어지는 형국으로 북쪽에 움푹 들어간 만에 선착장과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마을이라고 했지만 집이 몇 채 달랑 있는 섬이다. 기껏해봤자 5채도 채 안되는 섬, 지도상에 섬 이름도 없는 그런 섬이다. 현재 두 사람만 남아있고 그나마 고령이라 무인도가 될 실정에 놓여있다. 주변에는 작은 무인도가 점처
럼 떠있어 전망이 좋아 예부터 결핵 등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요양 차 머물렀으며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선착장에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짧은 방파제지만 제법 넓은 방파제로 왼쪽에 철부선이 정박할 수 있는 경사진 방파제다. 방파제 끝자락 물양장에는 판넬로 된 건물이 있고 그 뒤로 태양광시설이 있다. 판넬로 된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러나 가끔 오갈 뿐 상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왼쪽에 계단이 있는데 오른쪽에 슬라브집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에 공터가 있는 역시 판넬로 만들어진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가정용 태양발전시설이 있다. 공터에서 할머니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태우고 있었는데 모기를 쫓기 위한 것이었다. 이 할머니가 이 섬의 유일한 상주주민이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사진작가들이 말벗이 되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는 등 사진촬영에 몰두한다.
이 섬에는 두 가구가 있는데 아래 한 가구는 수시로 육지를 드나든다. 그래서 이 한적한 섬에 할머니 혼자서 밤을 지샌다. 그리고 2주일에 한 번씩 흑일도에 있는 교회 목사 사모님이 방문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아래에 사는 영보라는 아저씨가 가끔 이곳에서 힘든 일을 봐주곤 한단다. 노화도의 이목항을 출발 넙도, 서넙도, 죽굴도, 대정원도, 대장구도, 어룡도를 돌아오는 낙도 보조항로로 카페리를 투입하여 운항하고 있다지만
결항을 밥 먹듯이 한다.
섬의 지형이 흡사 개가 산을 먹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이 섬에 개는 살 수가 없으며 사람의 자손만 오래 번창할 것이라는 뜻의 ‘장구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기 위해 해남에서 신씨가 섬에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면적 0.135㎢, 해안선 길이 2.9㎞이며 섬은 대부분 임야로 이루어져 있고, 산에는 갖은 약초와 구렁이가 많은 대신 독사는 없다고 한다.
이 섬은 주위의 어룡도, 죽굴도, 대제원도의 경우와 달리 김 양식을 전혀 할 수가 없는 곳이다. 대신 앞바다는 자연산 미역과 톳이 풍부한 청정해역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을 할 수 없는 할머니에게는 그림 속의 떡이다. 주요 수산물은 멸치와 삼치, 톳, 전복 등이다. 특히 매년 섣달그믐 때나 정월 대보름 때 풍어와 주민의 무사를 비는 제를 지낸 풍습이 기록으로 전해온다.
섬에는 모두 대여섯 채 정도의 집이 있지만 대부분이 빈집이고 할머니가 사는 판넬로 된 집과 선착창에 있는 집 외에는 방치된 폐가들이다. 폐가 주위로는 잡초들이 무성해 접근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지만 잡초를 밟아가면서 집을 구경한다. 섬 자체가 단순해 더 이상 돌아볼 길도 없다. 낮으마한 산세에다 나무들만이 있는 그리고 모기가 왕왕거리는 무인도 같은 섬.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모기에 시달려야 했다.
선착장에 있는 판넬집은 문이 닫혀 있지만 주변에 각종 어구가 널려있다. 그리고 곳곳에 소주병이 있고 바베큐시설이 있으며 쇼파도 준비되어 있어 가끔 놀러오는 기분을 알만 하다. 한 번 둘러보는데 20여 분 정도 걸린 후 방파제로 걸어간다.
일을 끝낸 후 방파제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오늘의 점심메뉴는 라면. 우리가 섬을 돌아보는 동안 목사님이 끓인 라면이다. 평소에는 잘 안먹더라도 바다에서 먹는 라면도 그런대로 괜찮은 맛을 낸다. 식사를 하면서 섬에 대해, 특히 이런 한두 명이 사는 척박한 섬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내 시선은 할머니가 사는 곳으로 돌린다.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움직이는 할머니다. 모기를 퇴치하기 위한 불을 피우는 작업일게다. 같이 식사를 하였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내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할머니도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서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저 할머니를 방치하는 자식들이나 내나 뭐가 다를까 싶어서.
20여 분 동안 점심식사시간을 가진 후 자리를 정리한다. 식기를 대강 씻고 챙긴 후 배에 올라탄다. 그리고 다시 핸들을 잡는 목사님. 모두 자리에 들어가 앉고 나는 다시 선수에 선다. 시간을 보니 3시 45분이다. 다시 안개가 몰려든다. 날씨 하나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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