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보다 중요한 생명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 26:35-75)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예수님과 함께 걸어본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의 기적을 보아왔지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신 권능을 나타냈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께 직접 파송받아 전도하였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오는 것으로
구원받는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실제로 천국을 경험했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만져 주신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직접 발을 닦아 주었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 인정받고 사명 받은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대 사명을 직접 받고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름을 불러 주신 것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3년간이나 예수님이 불러 주셨지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과 어떤 극적인 체험이 있었다고 해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3년간이나 그같은 체험을 했었지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자주 받는다고 해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3년간이나 예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아왔었지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위에 나열된 것 중에 한 두가지의 체험으로
구원받은 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3년 동안이나 위의 모든 체험을 했어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당신이 옛생명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수님과의 어떤 신기한 체험이나
그분의 만져주심과 사랑하심과 사명을 부여 받은 적이 있다해도
당신은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체험으로 예수님의 인정을 받거나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타고난 생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가 됩니다.
많은 체험으로 생명이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버려진 십자가를 받아들인 후
실제로 자신의 생명을 버린 다음에
그분을 생명으로 선물받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위의 체험을 단 하나도 하지 못했을지라도
십자가에서 일어난 자기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생명 삼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옛생명을 그대로 간직할 때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
옛생명을 버리고 새 생명을 취할 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구원이란 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입니다.
새 생명은 옛 생명을 버림으로써만
취할 수 있습니다.
새 생명을 취한 자만이
옛 생명에 속한 죄에서 벗어나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영적 체험을 구하지 말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구하십시오.
아무리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어도
체험 자체로는 생명에 이르지 못합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자기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길 뿐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체험을 구하는 것은
십자가에 대한 믿음과는 정 반대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은 옛생명으로도 얼마든지 영적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발 아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의 영적 체험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자신을 생명으로 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말입니다.
새생명을 받을 때에 죄에서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빌어 영적 능력을 발휘할지라도
자신이 새 생명을 취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삼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자들을 불법자라고 하셨습니다.
헛된 것들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옛생명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의 죽음의 상태에서 새생명을 받지 않으면
당신에게 구원이란 없습니다.
옛생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한
아무리 많은 영적 체험이 있다 할지라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구원을 논할 순 없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그의 생명이 그리스도로 바뀌었고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생명이 된 자는
그리스도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 :1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6:46)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12:24-25)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6:4)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 :11)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5:12)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1: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사 6:9)
09.01.29
김윤창목사/광주좋은교회담임/http://cafe.daum.net/into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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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옛생명을 죽이는것은 내가 하는것이 아닙니다. 이글에서 성도들에게 옛생명을 죽이는 방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그 옛생명을 자기가 죽여야 하는것처럼 말하고 있음에 심히 안타까움과 분노를 금할수 없습니다. 옛생명을 내가 죽일수 있다면? 그것또한 조건적인 구원이 되는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옛생명을 죽이고 새생명을 받아들이는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조건구원이 되는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옛생명을 죽이시고 새생명을 우리에게 주신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거늘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것이 나의 힘 나의 노력으로 되는것처럼 말하는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옳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불가합니다. 오직 계시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로 나아가 나의 죽음만 주님께 드릴 뿐입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7)
배드로가 옛생명을 가지고 있었을때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지 못했지만 그것또한 하나님의 역사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나누었고 체험했던 그런 사랑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되었을때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곧 자기 힘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할수 밖에 없는 자이지만 성령님의 능력으로 성령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내어줄수 있는 자로 변화된것입니다.
곧 옛생명을 죽이고 새생명을 얻는것은 내가 선택하는 일이 아닌 성령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음입니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것 그것이 바로 새생명을 얻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깨닫는것으로도? 구원을 얻을수 없다고 말하는것은 너무 심한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이루셨고 또 이루실것임을 믿는 믿음은 그냥 생기는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것은 내가 하는것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경 속의 양대산맥은..........하나님/세상. 생명/사망. 옛사람/새사람. 빛/어둠. 의/불의. 선/악. 진리/비진리. 하늘/땅. 믿음/불신. 반석/모래. 지혜/미련. 참/거짓. 영생/영벌. 구원/멸망. 사람/짐승. 순종/불순종............ 따라서....................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인]을 받을 것이요/세상과 세상것들을 사랑하고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짐승의 인]을 받을 것입니다.
글 쓰신 목사님께서는 '베드로'가 행2:1 이후에 거듭났다는 사실을 모르시나 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하)라고 했으니까요...
뭔가 잘못 보신것 같네요?
"베드로는 오순절에 그의 생명이 그리스도로 바뀌었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자세히 읽어보시겠어요?^^
글의 취지가 제목처럼 '체험보다 중요한 생명'이라면, '생명'을 강조해야지 끝에 가서 '생명'이라는 말이 들어간 성경 몇 구절을 나열한다고 '(새)생명'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명'이 바뀌어 '그리스도 처럼 산' 베드로라면 왜 사도 바울한테는 '면책'(갈2:10~15)을 당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