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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를 쓴 사마천은 비교적 균형감 있는 역사를 기록 했다. 그 때문에 <사기>는 그가 살아서는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하고 그의 손자에 의해서 세상 구경을 하게 된다. <사기>가 세상에 나오자 漢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惡書"라며 폄하 했다. 역사서란 다분히 자기 종족 중심적으로 역사를 구성 하지만 사마천의 균형감 있는 사관을 당시 漢族 사람들은 이해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멋 훗날 <사기>에 의해 중국의 역사와 영토 그리고 종족에 관계 없이 동아시아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 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던 것이다. 三皇五帝와 殷(商), 周 그리고 秦朝에 이르기 까지 사마천의 <사기>가 아니라면 그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三皇五帝와 殷,周 그리고 秦은 누가 뭐래도 그 種族의 구성은 흉노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신들의 역사를 周나라로 부터 찿는 것이며 이 때문에 漢族의 정체성과 뿌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신들과 흉노를 분명하게 구분지어 놓으므로서 그나마 고대 동아시아 역사가 흉노와 한족으로의 이분법으로 구분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그 마져도 역사 공정에 따라서 동아시아 전체가 중국의 변방의 역사라 하여 자신들의 역사로 인식하기 시작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사기>는 흉노가 절대로 중국 역사가 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선을 그어 놓은 역사서인 것이다. 이제 <사기>의 흉노를 분석해 보자
匈奴,其先祖夏后氏之苗裔也,曰淳維。 흉노, 그 선조는 묘예의 하후씨이며, 순유라고 한다. 균형감 있는 역사서를 썼던 사마천도 소위 흉노에 대해서는 악의적으로 표현 했다. 흉노의 원래 이름은 순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즉 淳維(순유)를 사마천은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악다구니를 쓰는 떠벌이 노예라는 뜻의 "匈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그리고 위만조선 부여 고구리 백제 신라는 모두 흉노의 일파들이라는 수 많은 기록들이 존재 한다. 淳維란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유래" 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학자들이 순유를 사람 이름으로 알고 번역을 하지만 오도로스 平原(지금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케스탄)을 근거지로 살던 흉노의 특징은 지금의 바이칼호나 카스피해의 鹽湖(염호)의 특징으로 순유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一]唐虞以上有山戎﹑[二]獫狁﹑葷粥,[三]居于北蠻,隨畜牧而轉移。 1 당우 시대 윗대에는 산융이라 하고, 2 험윤, 훈육이라 불리웟고 3 북만에 위치 하며 목축을 하기 위해 초지를 따라서이동을 한다. "唐虞"란 중국 요순 시대란 고대 "山戎"이란 河北省 북쪽 일대에서 살며 春秋戰國時代에 흉노를 이르는 말이며 고구리는 바로 산융이기도 하다. 험윤이란 "개같은 오랑캐"라는 뜻이며 周代에 흉노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훈육"이란 파 마늘과 같이 냄새 나는 채소와 고기를 먹는다는 의미이며 夏 時代에 흉노를 부르던 이름이며 지구상에서 파 마늘을 즐겨 먹는 민족은 우리 민족 밖에 없다고 한다. 北滿이란 오랑캐의 총칭을 이르는 말이다. 즉 흉노를 지칭하는 모든 용어는 말은 모두 욕임을 알 수 있으며 흉노는 시대에 따라 달리 불리워 왔으며 그 역사는 요순 시대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여와 고구리의 역사는 동아시아 유사 시작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괄지지>(括地志: 唐. 魏王 李泰가 蕭德言, 顧胤 등에 명해 편찬한 지리서)에서는 “幽州 漁陽縣은 본래 北戎 無終子國(끝이 없는 나라)”이라 한 것으로도 황하의 북쪽과 대륙의 서쪽과 동쪽이 모두 흉노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其畜之所多則馬﹑牛﹑羊,其奇畜則橐駞﹑[四]驢﹑驘﹑[五]駃騠﹑[六]騊駼﹑[七]驒騱。 그들의 가축으로 많은 것은 말, 소, 양이고, 기이한 奇畜은 橐駞,(낙타)[4], 驢(나귀), 驘(노새) [5], 駃騠(버새([6], 騊駼(푸른 말)[7], 驒騱(야생마의 일종)가 있다.
夏道衰,而公劉失其稷官,[一]變于西戎,邑于豳。 夏의 道가 쇠하니 公劉가 稷官,농사일을 관장하는 벼슬) 직을 잃고 [1] 西戎에서 변화하며(서융의 풍속을 따르며) 豳에서 邑(고대 성읍)을 이루었다. 夏라는 나라는 사마천에 의해 창작된 나라이다. 여기서 道란 종족의 근본 또는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其後三百有餘歲,戎狄攻大王亶父,[二]亶父亡走岐下,而豳人悉從亶父而邑焉,作周。 그 3백여 년 뒤, 戎狄이 大王亶父를 공격하자 [2] 亶父가 岐山 기슭으로 달아나니 豳(빈:( 사람들이 모두 亶父를 따라와 邑을 이루어 周나라를 세웠다. 결국 주나라의 근본은 서융이며 흉노라는 말이다. [三]其後百有餘歲,周西伯昌伐畎夷氏。 그 백여 년 뒤, 주나라 西伯 昌(주문왕)이 畎夷氏를 쳤다. [一一]索隱如淳云:「林胡卽儋林,爲李牧所滅也。」 [11] [색은] 如淳(三國時代 魏)은 “ 林胡는 즉 儋林이고 趙나라 李牧에 의해 멸망되었다.” 했다. 正義括地志云:「朔州,春秋時北地也。 [정의]「괄지지」에서 “ 朔州는 춘추시대 때의 北地 ” 라 했다. 如淳云卽澹林也,爲李牧滅。」 如淳은 “ 즉 澹林이고 李牧에 의해 멸망되었다 ” 했다. [一二]索隱地理志樓煩,縣名,屬鴈門。應劭云「故樓煩胡地」。 [12] [색은] 지리지에 의하면 樓煩은 縣 이름이고 鴈門(안문)에 속했다. 應劭(응소)는 “ 옛 樓煩胡(누번호)의 땅 ” 이라 했다. 正義括地志云:「嵐州,樓煩胡地也。風俗通云故樓煩胡地也。」 [정의]「괄지지」에서 “ 남주(嵐州)는 누번호(樓煩胡)의 땅 ” 이라 했다. 「풍속통」風俗通에서는 “ 옛 누번호의 땅 ” 이라 했다. [一三]集解漢書音義曰:「烏丸,或云鮮卑。」 [13] [집해]漢書音義에서 “ 烏丸 또는 鮮卑를 말한다. ” 했다. 索隱服虔云:「東胡,烏丸之先,後爲鮮卑。在匈奴東,故曰東胡。」 [색은] 복건은 “ 東胡는 烏丸의 선조로 뒤에 鮮卑가 되었다. 흉노 동쪽에 있으니 이 때문에 東胡라 했다. ” 하였다. 동호=오환=선비라는 말이다. 그런데 고구리 역시 동호이다. 案:續漢書曰「漢初,匈奴冒頓滅其國,餘類保烏桓山,以爲號。 俗隨水草,居無常處。 以父之名字爲姓。父子男女悉髡頭爲輕便也」。 속한서에서 말하기를 “ 漢初 흉노의 묵돌이 그 나라를 멸하니 남은 무리가 烏桓山에 의지했기에 이렇게 불리었다. 그 풍속은 물과 풀을 따라 옮겨다녀 일정한 거처가 없고 부친의 이름자를 姓으로 삼는다. 父子男女가 모두 머리를 깎아 가볍고 편하게 지낸다. ” 했다. 고대 조선, 오환, 선비, 고구리, 부여등 수 많은 북방의 이름들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흉노의 부족들을 지역에 따라서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글자가 없는 흉노의 제부족들의 이름은 한족들이 필요에 따라서 한족 사관에 의해 불리운 것이다. 單于有太子名冒頓。 (頭曼)單于에게는 묵돌(冒頓, 묵특)이라는 [1] 이름의 태자(太子)가 있었다. 그런데 두만 선우의 이름인 두만이라는 뜻을 풀이 하면 "짱구 머리"라는 말이다. 흉노인들이 편두(짱구 머리)를 한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고대 한반도에 나타나는 유골들에서 아리안 계통의 편두를 하는 사람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리고 冒頓(모돈)을 뜻하는 漢字를 살펴 보면 冒이란 흉노인들의 모자를 듯하지만 이 글자는 묵돌선우 자체를 설명하는 글자이기도 하다. 自淳維以至頭曼千有餘歲,時大時小,別散分離,尚矣,其世傳不可得而次云。 淳維부터 頭曼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 동안 때로는 강대하고 때로는 약소했으며 따로 흩어지고 분리된 것이 오래되었으니 대대로 전해오는 바를 차례대로 모두 적을 수는 없다. 然至冒頓而匈奴最彊大,盡服從北夷,而南與中國爲敵國,其世傳國官號乃可得而記云。 그러나 묵돌 때에 이르러 흉노가 가장 강대해져 北夷들을 모두 복종시키고 남쪽으로는 중국과 적국이 되었으니 대대로 전해오는 그 나라의 官號를 다음과 같이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흉노의 조직] 置左右賢王,左右谷蠡王,[一]左右大將,左右大都尉,左右大當戶,左右骨都侯。 (탱리고도선우 아래)左右賢王과 左右谷蠡王을 두고 [1], (그 아래에)左右大將), 左右大都尉, 左右大當戶, 左右骨都侯[2]를 둔다. [二]匈奴謂賢曰「屠耆」,[三]故常以太子爲左屠耆王。 흉노에서는 현명함을 일컬어 도기라 하니 [3] 이 때문에 늘 태자를 左屠耆王으로 삼는다. 自如左右賢王以下至當戶,大者萬騎,小者數千,凡二十四長,立號曰「萬騎」。 자유 자재로 左右賢王 이하로 當戶에 이르기까지 크게는 1만 기, 작게는 수천 기를 이끄는 자가 모두 24장長이 있고 이들을 세워 萬騎라 호칭한다. 呼衍氏,蘭氏,[四]其後有須卜氏,[五]此三姓其貴種也。 여러 大臣들은 모두 세습되는 관직이다. 呼衍씨, 蘭씨 그 뒤에는 수복(須卜)씨가 있는데 이 세 姓) 흉노의 貴種이다. 諸大臣皆世官。 모든 대신들의 관직은 세습 된다. 諸左方王將居東方,直上谷[六]以往者,東接穢貉﹑朝鮮;右方王將居西方,直上郡[七]以西, 接月氏﹑氐﹑羌;[八]而單于之庭直代﹑雲中:[九]各有分地,逐水草移徙。 모든 좌방왕과 장수는 동쪽을 다스리고, 상곡를 마주 보고 동으로는 예맥과 조선과 접하고 우방왕과 장수들은 서쪽을 다스리는데 상군 서쪽을 바라 보고 월씨와 저 강과 접한다. 예맥과 조선이 선우의 좌현왕이라는 것이다. 單于의 庭은 代, 雲中을 마주본다. 庭이란 선우는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궁궝이 없이 넓은 초원에 거주 하엿는데 이 넓은 초원을 정이라 했으며, 代는 북위의 윗대의 나라를 말한다. 而左右賢王﹑左右谷蠡王最爲大(國),左右骨都侯輔政。 좌우현왕과 좌우 곡려왕의 영역이 가장 크고, 좌우골도후는 선우를 보필한다. 諸二十四長亦各自置千長﹑百長﹑什長﹑[一0]裨小王﹑相﹑封[一一]都尉﹑當戶﹑且渠之屬。 여러 24長 또한 각자 千長, 百長, 什長, 裨小王, 相封-相邦, 都尉, 當戶, 且渠와 같은 속관을 둔다.
當是之時,東胡彊而月氏盛。 당시에는 東胡와 月氏가 강성했다. 동호는 동쪽 흉노를 말하는 것이며 월씨는 서쪽 흉노를 말하는 것이며 그 영역의 구분은 모호 하지만 陝西省을 기점으로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一]匈奴單于[二]曰頭曼,[三]頭曼不勝秦,北徙。 흉노 선우는 두만이었는데 두만은 진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북쪽으로 도주 하엿다. 秦은 묘예이며 묘예는 청해성 남쪽에 분포된 나라이지만 秦은 甘肅省과 陝西省의 고대 지역 이름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동아시아 고대 종족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지금의 감숙성과 섬서성에서 출발 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종족은 모두 감숙성 순유의 후예임을 알수 있지만 한족들만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흉노와 구분하기 때문에 지금도 동아시아의 역사 분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즉 차이나는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흉노를 의미하는 이름임에도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차이나라고 하는 것은 역사의 矛盾(모순)인 것이다. 十餘年而蒙恬死,諸侯畔秦,中國擾亂,諸秦所徙適戍邊者皆復去, 於是匈奴得寬,復稍度河南與中國界於故塞。 10여 년 뒤 몽념이 죽었고 諸侯들이 진나라를 배반해 中國이 擾亂해지자 진나라가 (둔수하기 위해) 변경으로 옮겼던 適戍(적수)들이 모두 다시 떠났다. 이에 흉노가 여유를 얻게 되니 다시 점차 하수를 건너 남쪽으로 와서 예전 塞에서 中國과 접경했다. 河란 황하의 고대 표현이다. 중국이란 중원을 차지한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中華人民共和國의 약칭을 中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다 보니까 마치 지금의 중국과 고대 중원의 나라를 중국(the middle kingdom)이라는 것이 혼동되어 고대 중국 역사가 지금의 중국 역사 처럼 느껴지게 하는 역사 착시를 일으 키는 것이다. [一]正義氏音支。括地志云:「涼、甘﹑肅﹑延、沙等州地,本月氏國。」 [1] [정의] 氏의 음은 支.「괄지지」에서 “涼州, 甘州, 肅州, 延州, 沙州 등의 땅이 본래 月氏國.” 이라 했다. [二]集解漢書音義曰:「單于者,廣大之貌,言其象天單于然。」 [2] [집해]「한서음의」에서 “ 單于는 廣大한 모양으로 그가 하늘을 닮아 홀로 그러함(其象天單于然)을 말한다. ” 했다. 索隱案:漢書「單于姓攣鞮氏,其國稱之曰『O黎孤塗單于』。 [색은] 살펴보건대,「한서」에 의하면 ‘ 선우의 성은 攣鞮氏이고 그 나라에서 "탱리고도선우"라 칭했다. 而匈奴謂天爲『O黎』,謂子爲『孤塗』,單于者,廣大之貌也。 흉노에서는 하늘(天)을 탱리(O黎)라 하고 자식을 孤塗라 한다. O(탱) = 手+棠 (撐의 이체형) 탱리라는 한자 표현은 "탱그리"라는 북방 언어를 漢字로 표기한 것으로 탱그리란 "퉁구스" 계열의 사람들이 하느님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일부 언어 학자들은 "檀君" 역시 탱그리의 또 다른 漢字 표현이라고 주장 하는 사람들도 있다. 言其象天,故曰O黎孤塗單于」。 선우는 광대한 모양으로 그가 하늘을 닮았음을 말하니 이 때문에 탱리고도선우라 하였다. ’ 했다. 우리 고대 북방종족들은 "하늘이 둥글다"라고 생각햇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둥근 태양을 숭배하게 되고 그들의 최고 통치자를 태양과 동일시 하고 둥근 태양과 닮은 알(卵)에서 그들의 지도자가 탄생하는 신화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又玄晏春秋云「士安讀漢書,不詳此言,有胡奴在側,言之曰:『此胡所謂天子。』 또한 「현안춘추」(玄晏春秋, 위진 때 황보밀)에서 “ 사안(士安,황보밀의 字. 호가 玄晏임)이 「한서」를 읽을 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치 않았는데 胡奴가 곁에 있어 그가 말하길 ‘ 이는 胡에서 天子를 일컫는 말입니다. ’ 하였으니 우리가 중국인들을 폄훼하여 부르는 "되 놈"은 바로 胡虜를 말하는 것이며 虜와 奴가 다른 듯 하지만 사마천은 奴로, 흉노의 후예인 唐朝는 虜로 표기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고구리는 消奴部, 絶奴部, 順奴部, 灌奴部, 桂婁部의 5부를 奴라고 표현을 하는 것으로도 고구리는 흉노인 것이며 胡虜는 漢族들이 북방 오랑캐들을 욕처럼 사용하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가정교육이 안되어 있고 禮儀 없는 사람을 호로 새끼라고 하지만 호로의 본질은 북방 오랑캐를 지칭하는 것이며 호로의 주체 부족은 고구리인 것이다. 與古書所說符會也」。 古書에서 말하는 바와 符會(부합)하였다. ” 했다. [三]集解韋昭曰:「音瞞。」索隱音莫官反。韋昭音瞞。 [3] [집해] 위소(韋昭)는 (曼의) 음이 瞞이라 했다. [색은] 음은 莫+官. 위소(韋昭)는 음이 瞞이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