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또한 어디서 시원하게 보낼것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좋은 장소와 맛있는 음식들, 시원한 에어컨이 있더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없다면
휴가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서점에 갔더니 계시록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대충 20권은 넘게 보입니다.
왜 이처럼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와야 할까요?
서로 다른 관점으로 결코 어울리기 어려운 해석들로 가득찼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저자들이 예외 없이 <특별한 사명감으로 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온 이 책들은 서로 좌충우돌 할 것입니다.
지혜는 무엇일까요?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을 자신있게 증거하되, 누구든 오류나 부족함이 발견되면
과감하게 수정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내가 과거에는 이렇게 알았는데 이제 보니 흠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것에서 흠이 발견되었는데 독자 여러분들은 올바르게 수정하였으면 합니다."
이런 겸손함과 깨끗함으로 나아간다면 많은 책들은 서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 아니라
주의 재림을 위한 큰 힘을 제공하는 생명의 떡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첫댓글 옳으신 말씀입니다
외국 저자들이 쓴 책들은 주로 무천년적 관점으로 보면 됩니다.
한국의 저자들은 가끔 무천년 해석이 나오지만 나머지는 주로 역사적 전천년 분들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세대주의적 책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굳어진 틀을 넘어선 창조적인 저술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인지 연구를 못한 것인지 모르지만
<심각한 결함을 가진> 무천년, 역사적 전천년, 세대주의의 약점을 보완해서
나는 이렇게 보노라하는 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직장생활 하는 분들을 열심을 보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 그리고 성도들도 그들처럼 노력한다면
능히 좋은 열매들을 거둘것이라 확신합니다
아멘, 요즘 말도 안되는 억지 해석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분은 원어해석으로 접근했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있지만 별 도움이 안됩니다.
서구학자들은 모두 상징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카페에서 논하는 내용들은
어찌보면 시중에 나와 있는 학자들보다도 더 깊은 것들이 많습니다.
아닌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좋은 것을 취했으면 합니다.
계1: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22: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오류를 과감하게 수정할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것을 서로 다른 해석의 책들이 채워줄 수도 없고 각자 사명으로 해석했다고 하나
부족하든 틀리든 과하든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 사명감 등등으로 계시록을 해석했더라고 한들 그들에게 위와 같은 말씀이 계십니다
종교학자니 박사니 목회자니 등이 세상교회의 권위로 잘못된 해석을 해서 감히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