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졸지에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의원 사무실에서, 또 한 번은 전교조 편집실에서이다. ).
그는 이 사회 비주류의 한계를 뚫어내고 대통령직에 올랐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진보적이었다고 감히 평가한다.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 끝을 모르게 진행될 우리 겨레의 역사투쟁 현장에서 그가 남긴 족적의 의미를, 반동 정권이 들어선 1년 반 후, 그리고 반동정권의 포위망 속에 갇혀 우군도 없이 벼랑 끝으로 몰려 '백척간두 진일보' 한 후 사람들은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하도 아쉽고 안타까워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전후하여 그가 남긴 족적을 찾아 보았다. 그의 교원노조와 제도교육에 관한 관점의 일단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988년 4.26총선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부산 동구에서 당선된 노무현 의원은 1989년 5월14일 경인지역 전교조발기인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운집한 3500여 명의 교사들 앞에서 노무현 의원은 사자후를 토했다.
"민중이 쟁취하지 않은 권리를 국회 스스로 입법한 예가 없었다. 교원노조의 합법화는 교사들의 주체적 노력에 달려 있다."
이 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해 줄 것을 청하기 위하여 필자와 전교협 관계자들이 의원회관 노무현 의원 방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발언하여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노태우가 교사 100명 못 자릅니다. 500명? 500명 자르면 정권이 무너집니다."
1989년 5월30일에 전교조 편집실이 주관하고 필자가 사회를 본 좌담회에 참석한 노무현 의원(당시 43세)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선생님들이 노조를 만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왜 노동자냐?' 하는 왜곡된 시각이 있습니다. 교사도 노동자다라는 사회적 관념이 아직까지 정리돼 있지 않은 증거겠죠.
한편 선생님 같이 숭고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통 노동자들처럼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렇게 싸우려고 하느냐,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노조는 일반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졍제적 대우를 노리고 투쟁하는 것으로 비쳐 있으니까 그렇겠지요. 선생님들도 이제 돈독이 올라서(웃음) 노동조합 만들겠다고 발벗고 나섰구나, 이런 식으로 몰아다 부치고 있어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노동에 대한 관념이 매우 왜곡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노동, 노동조합, 노동법 이런 말들을 하면 일단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거든요.
우리가 보통 '노동' 하면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육체적인 노동입니다. 노동의 목적 역시 노동의 댓가로만, 다시 말해 돈벌이로만 여기거든요. 한 마디로 노동을 천시하는 잘못된 풍조의 반영이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노동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동 그 자체가 삶이며 노동의 내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됩니다. 이제 우리는 노동을 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눈 돌릴 때가 됐다는 것이죠. 노동조합, 노사분규를 얘기하면 육체노동, 시간, 돈 등만을 떠올리는 물량적 관점을 버릴 때가 됐다는 것이죠. 자신의 노동이 얼마만큼 사회와 자아계발에 기여하느냐, 하는 척도에 따라 노동을 논할 단계가 됐단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교사들의 움직임을 볼 때 지극히 정당할 뿐만 아니라 정말 바람직한 방향에서의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교사들의 노조결성은 다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노동의 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불러일으키는 선도적인 활동이었다고 평가해 봅니다."
"작금에 전교조가 출범하면서부터 정치투쟁화해 가고 있다는 일각의 보도가 있습니다만 노동운동은 누구는 정투(정치투쟁)하고 누구는 경투(경제투쟁)한다고 정형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동은 그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선생님들의 삶 자체를 파괴하는 비교육적 현실이 어디에서 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데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교사들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일하라고 강요해 왔습니다. 교육내용 또한 권력을 가진 세력들이 그 부당한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합리화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처럼 잘못된 구조 속에서 경제적으로 특별히 이익을 누리는 소수의 특권층들에게 항상 유리하도록 교육내용이 채워져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만드는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이 말입니다. 요컨대 학생들의 '가축화' 또는 '노예화'의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교육노동에 종사하는 교사들이 사실상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데 어찌 정치투쟁화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생산직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동자의 권익은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않고는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죠."
사회 : (전교조) 결성대회를 앞두고 현(노태우) 정권은 물론이거니와 제도 언론, 교육관료들이 수많은 협박과 회유를 일삼아 왔다. 교직원노조가 결성되면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느니 일파만파할 것이라느니 온갖 대국민 여론조작을 자행해 왔고 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데 그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노무현 의원 : "그런 거죠. 부당하게 정치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려면 군대 경찰 뿜만 아니라 언론과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자신들의 불법적 통치를 합리화시키는 유효한 수단이었던 교육부분에서 지금 문제가 생겼으니까 아주 큰 일이 난 거죠. 말하자면 부당한 지배세력의 존폐가 걸린 문제란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거짓말-기만-공작 따위의 흔히 써 먹던 낡은 수법으로 탄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거꾸로 얘기 하면 교직원노조의 정당성을 이미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직원노조가 정당하지 않으면 교직원들 사이에서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고 저절로 자멸할 것인데 사실은 그 반대란 말입니다. 이는 이미 역사적 정당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회 : 학생은 순수하게 자라야 한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라는 말들이 있다. 최근 들어 노조활동 교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지지 움직임, 자주적 학생회 건설 주장 등 학생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금라 (학부모) : 저는 엄마 되는 입장에서 학생들의 집단적 행동이 교문 밖까지 나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반댑니다. 그들이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일단 의심스럽거든요. 하지만 학생들이 토론하고 성명서 내고 하는 것은 굳이 막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수업을 막아 집단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정말 옳지 못한 일이예요.
노무현 의원 :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린 학생들까지 들고 일어났을 때는 아주 심각한 역사적 시기였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자발성을 억누르지 않는 범위에서 교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통제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전교조의 일차적 과제는 합법성 쟁취에 있습니다. 아울러서 투쟁과정 속에서 희생되는 동지들의 석방 복직 투쟁도 줄기차게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실정법 위반 운운'은 자기 논리가 궁색하기 짝이 없고 어거지로 우길 때 사용해 왔습니다. 지금 정권은 전혀 '합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러기에 전국교직원노조 운동은 이미 이긴 싸움인 것이죠.
그리고 야당들의 '기다려 달라'는 명분 없는 논리에 말려들어서는 안됩니다. 기다렸다가 만드는 것보다는 싸워서 만든 데 오래 가고 질긴 생명력이 있습니다.
저는 참교육 실현에 몸부림치는 교사가 없다면 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겁니다.(웃음)"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전교조는 이른바 '네이스' 문제를 들고 나서서 출범 반 년도 안 된 노무현 정권을 상대로 총력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쳤는가? 우리는 그의 투쟁을, 그의 성취의 의미를 너무 쉽게 보았다. 아니,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했다.)
첫댓글 좋은 글 펌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