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자랑하는 일본서기(니혼 쇼키)는 아시다 시피 왜곡과 가위질의 절정입니다. 일본 기록물은 대부분 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조선왕조실록은 객관성의 극치입니다. 사관들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까지 왕의 사료에 대한 접근을 막고 객관적으로 서술할려고 노력한 역사적 저작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록물이 많이 손실된 이유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수많은 외침과 일본내의 전쟁의 특수성, 그리고 구한말 우리 문화에 대한 가치인식 부족이 있습니다. 일본은 수많은 내전을 겪었지만 한가지 철칙이 있는데 바로 절은 건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현세에 참여한 승병집단들도 있었겠지만 그 수많은 전란속에서도 일본의 사찰속에 보존된 자료들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차대전 전에는 외침을 받은적이 없죠.
반대로 한반도는 외침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외부인들이 그따위 말도 안되는 규칙을 지켜줄리가 없죠. 가치없는 서고는 그냥 불태우는게 제맛이라고 생각했던 놈들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소실된 자원도 상당합니다. 그리고 구한말 국권이 와따리 가따리하고 결국 침탈당한 시가, 일본과 열강들은 수많은 조선의 기록유산들을 해외로 반출시킵니다. 직지심경도 그것이고 조선의 다수의 자료들은 성균관대학교가 아니라 일본 왕립도서관에 더 많습니다. 일본은 절대로 그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일본에서 발견된 것은 아시죠? 모든게 그런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조상들은 부끄럽게도 자신들이 이룩한 문화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냥 던지고, 개중엔 대한민국 건국후 군밤 장수들이 북북 찍어가면서 불쏘시게나 군밤 포장지로 쓴 경우도 있었다더군요 -_-;;;; 이렇게 어이없이 사라져간 사료가 얼마나 될까요? 훈민정음 해례본같은 경우는 정말 기적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렇게 불타오르고 쓰레기 취급해서 소실된 기록물이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남아있는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얼마나 기록물이 많았다는 소리일까요? 일본인이 주입한 잘못된 선입견과는 달리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文의 민족이며 방대한 기록물을 남기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선(혹은 한국)의 문화 유산이라는 것은 언뜻 생각해봐도 기록물이 엄청많습니다. 한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화 유산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부터 생각해보십시오. 훈민정음 아닙니까?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관주도로 과학적으로 만들어낸 문자체계. 그리고 아직도 쓰이는 언어. 팔만 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수많은 성리학적 철학론, 불교관런 철학서 등등 조선은 중세 기준으로 엄청나게 文과 정신적으로 발달된 국가였습니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이런걸 이해할리가 없죠. 중국은 오리지날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은 자극적이며 표면적인 문화가 많습니다. 일본은 딱 생각해봐도 할복, 사무라이, 고대부터 유례해온 상상을 초월하는 성에 대한 개방성 등등 사람의 말초신경에 팍팍 꼽히는 스타일의 문화가 강합니다. 글은 정신체계를 의미하며 이는 문화에 대한 전반적이며 심오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외국인 입장에선 인지도가 낮아보이는 한국의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반면 일본은 시각적이며 즉각적입니다. 칼로 사람을 죽인다, 칼로 내 배를 가른다. 여색과 남색같은 말초적인 성적 문화는 바보가 아닌 이상 보면은 뭔지 바로 알 수 잇습니다. 인지도도 높은 국가인데 이해 할 필요도 없는 즉각성이라면? 누구라도 한번 딱 보면 일본 문화는 독특하구나 라는 생각을 가질겁니다.
그렇다면 왜 한민족은 물질적 유산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것일까요? 물론 조선 시대 성리학을 받아들여 유교적 논리로 물질적 사치를 금한 바도 있습니다만, 전통적으로 한민족의 기본적 정서는 '어울림'과 '은근함'이며 아직까지도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이러한 특색은 문화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지금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하면 뭐가 떠오르십니까? 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 대륙의 스케일이죠. 궁궐을 지으랬더니 걸어다니다간 뻣을 수준으로 짓고, 성곽을 지으랬더니 사람 수십만 파붙을 정도로 길게 지어놓고, 물놀이할 연못을 지으랬더니 호수를 파놓는 민족이 중국인입니다. 중국은 일단 스케일에서 사람을 압도합니다. 위 사진은 서태후가 만든 뱃놀이 장소 이화원입니다. 뱃놀이할려고 파놨다는 호수가 스케일이 .... 경희루만 생각하는 한국 사람으로선 어떻게 저런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물론 저짓하다가 청나라는 뒤로 넘어집니다 ㅋㅋ 수나라도 고구려 침공하고 대운하 짓는다고 뻘짓하다가 나라가 나가리돼었죠.
반면 일본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여러가지가 떠오르시겠지만, 일본인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점은 '찰나'에 대한 집착입니다. 일본식 정원의 대표적 양식중 하나인 가레산스이의 모습이며 아마 많은 분들도 익숙한 모습일 겁니다. 일본식 정원의 특징은 인공미와 정갈성이죠. 모든 것이 사람의 힘에 의해 만들어졌고 특정 모습에 고도의 상징성을 잡아서 자연의 한모습을 집앞에 축소시켜놓은 특성을 보입니다. 곱게 다듬어 놓은 자갈은 파도를 상징하고, 그 위에 솟아 있는 바위는 산이나 섬을 상징하며 몇그루의 작은 나무들은 숲을 상징합니다. 똑같은 논리로 분재도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정돈되어서 하나의 숲을 상징하는 인공미를 보여줍니다.
즉, 일본의 미는 찰나미입니다. 순간 중에서도 최고의 순간만을 잡아서 그것을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일본문화에서 시간은 단절되어있고 정적인 순간입니다. 가레산스이에서 정원은 영원히 그 모습을 간직하여 시간이 멈춰버린 곳이고, 분재는 사람에 의해 성장도 죽음도 정지된 한순간의 모습을 영원히 보여줍니다. 일본 문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문화는 어떠한 찰나, 상황에 대한 가정 같은 죽어있는 시간 혹은 정적인 시간에 대한 집착을 많이 보여줍니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요? 일제시대 이전까지 일본식 정원은 한국에서 존재할 수도 없었고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상식과 감정에서 일본식 정원은 매우 독특해보이고 이질적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원중 하나인 '비원'입니다. 일본의 정원과 비교해서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바로 자연미입니다. 정원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인공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사람이 지은 구조물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유명한 일화가 하나있죠. 비원을 보러온 일본인 관광객이 한바퀴 둘러보고 한말이 "이제 비원을 보여주십시오" 라는것. 일본인 상식으로 정원이란 재단된 공간인데 한국인에게 정원은 자연의 연속입니다.
비원보다도 오히려 대표적인 조선의 정원 양식은 바로 '정자'입니다. 한국에선 정원 문화가 발달하는 대신 산수가 좋은 목을 골라서 정자를 짓고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는 양식을 채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차경'이라고 하는데 그말 그대로 경치를 빌렸다는 의미를 뜻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사람이 인위적으로 거대하거나 정돈된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는 그대로 두고 내가가서 어울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정서는 '어울림'과 '은근함'입니다.
그래서 자연이 변하면 사람도 따라서 변합니다.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죠. 일본이 '찰나미'라고 하여 정적이며 죽은 시간을 다루었다면 한국인에게 시간은 연속적이며 영원합니다. 일본은 찰나를 간직하기 위해 죽은 시간으로 영원을 기억하지만, 한국인에겐 시간의 흐름속에 영속성을 가지게됩니다.
일본의 대표적 시양식인 하이쿠가 찰나에 대한 묘사가 많다면 한국인의 시가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묘사가 많습니다. 황진의 시중에서 "동짓날 기나긴 밤을 밤을 한허리 잘라내서 임이 오신날 구비구비 펴보겠다"는 구절 생각나십니까? 정말 기발한 착상입니다. 시간을 동적이며 흐름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시간을 미리 잘랐다가 임이 오신날의 시간을 더 늘리겠다는 발상입니다. 만약 일본인이 이러한 시를 썼다면 임과의 최고의 순간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고 ㅤㅆㅓㅅ을겁니다. (갑자기 지붕킥 엔딩이 -_-;;;)
일본의 찰나에 대한 집착은 자살문화와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최고의 순간을 간직하는 순간 죽어버리고 싶다는 발상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죠. 전교 2등이 날마다 2등하다가 1등을 하는순간 그 기쁨을 보존하기 위해 자살한다는 도시 괴담은 일본에서 넘어온 것입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살에 대한 문화가 없고 그것을 매우 터부시했습니다. 자살을 하면 어떠한 멸시를 받게 되는지 우리 문화에 스며들어 있는 전통적 인식을 상기해보시면 될겁니다. 반면 일본은 자살에 대한 로망마져도 만들어낸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국의 시간에 대한 인식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옛날 모습을 간직한 시골의 마을을 가보십시오. 어디에도 인위적인 미는 없습니다. 뭔가 삐뚤삐뚤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룰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는 항상 과장된 중국과 인위적인 일본의 중간형태를 취합니다. 유명한 지붕의 처마에 대한 비교를 생각해보시면 알겁니다. 지나치게 굽거나 펴진 일본과 중국과는 달리 한국 지붕의 곡선은 항상 적당하며 중간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연스러워'보입니다.
고대부터 소실된 문화가 많기도 하지만 딱히 눈에 임팩트가 있다던가 기억에 남을만한 구조물이 적은 이유도 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외부인이 보기에 이게 뭐야 튀지도 않고 독특하지도 않네? 하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그것입니다. 한국인에게 그런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한국인의 호환성과 일본인의 고립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문화라고 하면 뭔가 독특하면서도 공감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내가 왜 내 배를 가르고 자살해야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AV 물에서 -_-;; 별 희한한 취향까지 다 공급해주는 다양성에, 별에 별 축제가 다 있다보니 남근축제같은 한국에선 죽어다 깨어나도 성사될 수 없는 축제까지 버젓히 행해집니다.
일본의 축제 다양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런 고립성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일본인의 특징은 단적으로 말해서 밑으로 파고들고 심화되는 양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좋게말하면 그 유명한 장인정신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타쿠 정신입니다. 한군데 매우 파고 들고 그것만 보전시키면 무슨일이 일어날까요? 오리지널리티를 보전할 수는 있어도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나중엔 이질적 존재가 됩니다. 역설적으로 오리지널이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식의 흐름이 계속되면 결국 서로 단절이 됩니다. 결국 제3자가 볼때 공감이 안되는 이유입니다. 보편 정서의 부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중 하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인간심성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지만 다른쪽으로 말하면 니가 나만큼 살던가 아님 내가 너만큼 따라잡아야 겠다는 심리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즉, 내 주변의 모든이는 나와 비슷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에 대한 어울림의 정서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일반론에 입각해서 말하면 한국인은 주위 환경과 비슷해지기를 원합니다. 그걸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그러지 못하면 불안해합니다.
즉, 일본은 고립성을 추구하고, 한국인은 호환성을 추구하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매우 단편적이고 간단한 정의라서 진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
일본은 王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라면왕이 되고 싶어하고, 스시왕이 되고 싶어합니다. 여기서 왕이라는 것은 한분야의 최고를 의미합니다. 즉, 고립된 한가지 분야에 울인해서 그 곳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이죠. 일본 최고가 세계최고라던 80년대 일본의 자부심도 이러한 심리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한국은 國民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국민가수, 국민스포츠, 국민배우 같은 칭호는 한 분야의 최고에게 붙여지는 최고의 호칭으로 통합니다. 공통적으로 국민이라는 한국인 전체가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분야에 대해서 독단적인 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과 공통정서를 의미하는 국민을 붙이는 문화 차이가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만큼 한국인들은 보편정서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한국인은 국제적인 보편문화를 받아들이는데 매우 빨랐습니다. 고대에는 중국의 한자와 불교 문화를 받아들였고, 중세에는 유교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인 보편정서에 대해서 최대한 오리지널(중국)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금도 불교철학에 대한 심도를 살펴보시면 중국 못지 않다는 것을 아실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성리학에 대한 이해도는 이이와 이황의 케이스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심도있는 수준까지 발전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사대주의라고 폄하받지만 소중화라는 자부심은 이러한 심리에서 출발합니다. 오리지널보다 더 한 오리지널, 즉 호환성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뜻합니다. 도리어 문화대혁명으로 제2의 분서갱유를 겪은 중국은 한국에서 유교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유교 문화를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한 국가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입니다.
만약 지금 그 모습이 부끄럽다던가 하시는 분이 있다면, 현재 한국의 모습을 보십시오. 조상들의 속성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보편성과 호환성을 올려야할 존재가 한문과 유학에서, 영어와 서양 과학기술로 바꼈을 뿐입니다. 오늘날 영어 한마디 못하면 난리라도 나는 모습은 한자 모르면 쌍놈취급받던 옛날 모습과 판박이입니다. 세계의 보편문화인 영여와 과학기술에 대한 엄청난 집착은 이러한 보편정서를 맞추고 싶어하는 기본적 속성에서 기인합니다.
고대는 지역 혹은 고유 문화가 발달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즉 민족적 고유 문화같은 고립된 문화가 발달하는 시기를 말하는데, 중세는 이러한 고유 문화가 보편문화에 의해 소멸되는 시기를 말하니다. 한국은 정확하게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합류하게 되는데 삼국시대의 고유 문화가 한자와 불교의 유입으로 민속신앙(무교)와 여타 문화들이 소멸하거나 복속되는 과정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중세인 고려와 조선은 이러한 보편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반면 일본은 이러한 정서가 애초에 없었으며 보편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고대 부터 전해져온 여러 문화가 그대로 이어졌고, 불교와 유교는 그 형식만 차용되었을뿐입니다. 불교는 신도에 흡수되었고 유교는 형식으로만 차용되어 사무라이의 주군관계를 뒷받침해주는 상하복종 관계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중세를 이러한 보편문화 없이 보내버렸기 때문에, 또다른 보편문화인 근대의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었습니다.
조선과 청나라는 자신들의 보편문명이었던 유교와 한자문화를 지켜내야만 했었고 서양의 새로운 보편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근대사에 비극을 맞게 됩니다. 즉,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바르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데는 이러한 속성에 크게 작용한 점이 큽니다. 반대로 말해서 지금의 서구 문명이 보편문화의 기준이 된 상황에 한국과 일본이 똑같이 적응한다면? 호환성 올리는데 도가 튼 한국인의 잠재력은 말을 안해도 짐작이 가실겁니다.
덕분에 나라의 궤도가 잡힌 현재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위에서 설명한 양식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는 번역문화가 발달합니다. 그리고 번역도 저작으로 쳐줍니다. 해외 문화를 그대로 일본으로 끌여들어와서 자신에 맞게 번역하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쓰는 단어중 일본식 한자가 많은 이유도 마땅히 우리가 의미가 맞는 단어를 만들어 내지 못할때 일본의 것들을 차용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오히려 영어공부하로 시킨다음에 원서 보라고 합니다. -_-;; 저작물은 쳐주지도 않고 교수들도 그런 분위기를 아니깐 자기 이름만 올리고 대학원생들 번역 시킵니다. 그래서 교수가 직접 참여하지 않는 이상 번역물의 수준은 개판입니다. 오히려 이런식이니 원서를 보라는 분위기가 더 권장되는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맞는 단어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영어의 본래 의미 자체를 이해하라는 것, 즉 보편적 기준인 영어에 대한 호환성을 올리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국제적 경쟁력이라는게 한국인은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나라가 기울어가는 일본인 입장에서도 현재의 한국인은 적극적이며 영어에 능통하고 (토익같은 의미없는 점수 말고 실제로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는 사실상 민족적 속성과 밀접한 관련성이 잇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온 서양인들이 하는말이 꼭 있습니다. 영어에 미친거 같다, 도시는 현대화되고 첨단 과학기술이 도배된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한국의 전통적인 것은 무엇인가? 즉, 한국의 대표적 문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하게 되고...... 오히려 이점에서 우리는 할말이 없어집니다 -_-
생각보다 우리는 앞으로보고 달리기에 매우 익숙해져있으며, 변화에 능동적이고 주위 환경을 따라잡을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민족에 대한 정의는 항상 dynamic하다 이죠. 서울을 생각해보시면 알겠지만 외국인들은 서울에선 자고 일어나면 뭔가 계속 변해있다고 합니다. 휴대폰 신제품이 나오면 너도나도 사야되고, 다들 월드컵 축구보고 열광하면 길거리 나아서 대한민국을 외쳐야하며, 국민 가수의 음악이 뜨면 그 노래를 보르면 간첩이 되는 것 - 즉 '냄비 근성'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렇게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하다보면 오리지널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답하기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대로 일본은 오리지널리티를 지켜나가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일본은 한번도 정권이 바뀐적 없습니다. 막부라는 권력집단이 변한적은 있어도 천황(혹은 일왕)은 끝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한번 전수된 기술은 수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한국에서 시조는 계속 변해왔고 춤사위도 계속 변해왔습니다. 즉응성과 변화가 한국인의 특성이라면, 일본의 하이쿠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고 일본의 전통 춤은 변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장인으로 여깁니다. (앞에서 말한 시간의 찰나성, 즉 그대로의 보전이 이곳에서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독특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을겁니다.
이 말 한마디 할려고 참으로 길게도 뻘소리 늘어놓은 거 같군요 -_-;;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文과 정신을 중시한 국가입니다. 자연과의 어울림을 더 중요시 여기고 은근함을 멋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현재의 시류를 따라잡는데 매우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제3자가 보기엔 그 근원이 무엇이냐고 묻기 쉽고, 쉽고 즉각적으로 이해가도 힘든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이해할려면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 체류하고 한국 문화를 이해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오래 남은 외국인들은 한국화 되어버리고 한국적 보편 정서에 대한 시류영합을 당연시 여기게 됩니다 -_- (사람이라는게 다 비슷한가 봅니다)
뭐 농담으로 하는말로 한국에서 총알 버스 타다가 캐나다 돌아가니깐 이건 느리고 지루해서 못타겠다 뭐 이런겁니다 ㅋㅋㅋ
* 사족1
한국이 일본과 중국의 중간이라는 것은 미인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중일 3국의 미인 취향을 놓고 보면 일본은 거유 로리 *-_-*를 선호하고 중국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인공미가 강한반면, 한국은 중간입니다. 성숙미와 자연미를 중시하기 때문에 한국의 미인의 얼굴은 편안한 인상에 키도 적당하고, 성숙해보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점은 3국의 연예인들을 보시면 알겁니다. 연예인이라는 것이 각국의 미남 미녀가 집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에 대한 취향을 알기 쉬운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한듯 안한듯한 자연스러운 투명화장이라는것도 이러한 속성에서 기인합니다. 원래 모습을 최대한 살려주면서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한국의 화장법이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죠.
* 사족2
한류라는 것도 보편정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일본 문화가 한국 문화에 의해 동아시아에서 밀려났는가? 라는 점인데 한국 드라마가 포함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공감대 (보편정서 - 가족애, 사랑, 우정)은 비슷한 문화권을 공유한 동아시아, 혹은 세계인 (이란과 아프리카의 대장금)이 공감할 수 있는 측면입니다. 반대로 인위적이며 만화같은 연출이 강한 일본 드라마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K Pop도 마찬가지인데 가사로는 절대로 공통 점이 될수 없으나 어느나라라도 공감할만한 춤실력과 간단하고 중독성 있는 가사로 J pop을 밀어내버렸습니다. 보편 정서라는 것이 오리지널리티를 묻긴 힘들어도 역으로 바깥으로 뻣어나갈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 사족3
한류에 왜 열광하느냐에 대한 다른 답이 될 수 있는데, 역설적으로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한 열광이 아니라 현재의 최상의 보편정서인 서구문명을 동아시아식으로 받아들여 (한국인의 적응성) 그걸 멋지게 동아시아 보편정서로 재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즉, 서구적인 면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빠르게 서구화 산업화한 한국은 그것을 다시 유교와 동아시아적 가치관으로 적당히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이 버렸던 유교 문화를 밑에 깔고서도 오히려 서구식으로 성공해서 쿨하게 사는 모습이 부럽다는 것이며, 동남아는 한국의 성공한 경제력에 멋지게 동아시아 식으로 사는것이 멋있다는 것이고, 일본은 겨울연가같이 자신들이 80년대 이후 잃어버린 거같은 따뜻한 감정을 느낄수 있다는 등등 하여 사람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많지 한국 전통에 대한 환상은 그에 반하여 적다는 것입니다. 이는 막장 드라마 수준이었던 아이리스가 해외에서는 잘만들었다는 추노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K pop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아시아를 휩쓴 K pop은 발라드 같은 가사 중심의 곡이 아니라, 미국의 댄스 그룹 문화를 차용한 아이돌 그룹입니다. 즉, 주류의 문화에 빠르게 적응해서 그걸 재빠르게 재해석해서 오리지날 만큼의 수준을 보여주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 사족4
자꾸 길어집니다 ^^ ㅋㅋ 찰나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입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와 타자의 일합 승부이며 검도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축구가 실시간 전략시뮬(스타크래프트)이라면, 야구는 턴제 전략시뮬(문명! )에 가깝습니다. 턴제 승부이고 한 턴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공의 궤적과 그것을 쳐내는 타자의 움직임에 따라 승부가 갈립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야구에서 수많은 분석을 내놓습니다. 항상 정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분석은 적합하며 잘 먹힙니다. 그러나 축구에서의 일본은 형편없습니다. 90년대 선진적 기법을 도입하여 한국을 앞지른 적이 있지만 똑같이 한국이 그러한 기법을 도입한 후 바로 역전됩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동적이며, 포메이션 같은 이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변하는 공간을 선점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축구는 공간 점유의 싸움이기도 하며 야구같은 정적인 분석이 효용성이 떨어집니다. 양국의 축구 스타일을 비교해도 알 수 있는 것이 한국은 옛부터 엄청나게 뛰어다녔습니다. 무식한 로보트 축구라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뛰어다녔고, 일본은 포메이션을 유지하는 패스축구를 선호했습니다. 물론 이번 월드컵에서는 그걸 깨고 좋은 성적을 냈습다. 하여튼 찰나를 좋아하고 시간을 정지시키길 좋아하는 일본인에게 야구는 최고의 스포츠입니다. 반대로 축구에서 약하다는 점은 연속적이며 변화하는 환경에 생각보다 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으로 조낸 긴 뻘글어이었습니다 ( - _-)
개인적 의견이 그득 하므로 다른 의견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사실이 걸 끝까지 읽어보실분이 얼마나 될련지부터 확신이 -_-;;
|
내일을 위해 자야 될 시간이라 일단 중간정도까지만 읽고 댓글을 답니다. 첫번째 글도 관심있게 읽었는데, 이번 글은 더욱 좋네요. 굵은 표시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인터넷에서 쓰는 글에 중요표시를 해주시니 읽기가 훨씬 편하네요. 글 재주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 추천 기능이 없어서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