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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명 피해가 컸던 화재 - 우산동 왕국회관 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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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이후 원주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화재로는 1992년 10월 4일 14시 39분에 발생한 원주시 우산동 왕국회관의 화재이다.
1992년 10월 14일 14:35분경 원주시 우산동 상가건물 2층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교회 "왕국회관"으로 부인을 찾아온 원언식(35세)씨가 "아내를 내놓으라"며 휘발유 10ℓ를 교회에 뿌리고 불을 질러 예배를 보고 있던 교인 90명 가운데 13명이 불에 타 숨지고, 37명이 골절,중화상을 입었다.
또한 병원에 옮겨진 중상자들은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다 1명이 추가로 숨지기도 했다.
증인 신자 14명이 사망하였으며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
최초의 아파트 - 일산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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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아파트는 1977년 1월 17일 준공되었던 일산아파트였다.
일산아파트는 지금은 국제아파트로 2001년 7월 15일 재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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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가장 큰 아파트 - 문막 부영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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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아파트는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1536-1번지에 위치한 문막부영아파트이다.
15층 아파트가 15동이 있으며 총 1,538세대이다.
2000년 10월 27일 준공되었으며 22평,26평형이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산불 - 문막지역 산불 |
원주시 문막읍 포진리 일원과 취병리 일원에서 동시에 발생한 산불은 원주시 최대 규모의 산불이다.
원주시 문막읍 포진리 일원 산불은 2000년 4월 5일 12시 45분에 입산자 실화(추정)로 발생되어 주민 380명,공무원 550명, 소방관 74명, 경찰 22명, 지상진화대 14명 총 1,040명이 동원되었으며
동원장비로는 헬기 5대, 소방차 7대, 등짐펌프 150대, 무전기 55대, 갈퀴등 950점을 동원하여 2000년 4월 6일 오전 7시에 253.7ha의 산림을 태우고 진화되었다.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 일원 산불은 2000년 4월 5일 15시 30분에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에서 논밭두렁 소각으로 발생한 산불이 문막읍 취병리 일원으로 넘어와 주민 400명, 공무원 780명, 소방관 30명, 경찰 12명, 군인 160명, 지상진화대 14명 등 총 1,396명이 동원되었으며
장비로는 헬기 5대, 소방차 4대, 등짐펌프 80대, 무전기 50대, 갈퀴 등 1,100여점을 동원하여 2000년 4월 6일 오전 8시 30분에 75.9ha의 산림을 태우고 진화되었다.
원주시 문막읍 포진리 일원과 취병리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같은 날 발생하여 329ha의 산림을 태운 가장 큰 규모의 산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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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학교 - 원주초등학교 |
원주초등학교는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1896년 9월 17일 원주군 공립소학교로 설립되었고 1946년 4월 1일 원주국민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96년에는 원주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1996년 6월 3일 백년관을 준공·개관하였으며 동년 9월 17일 백주년 기념행사를 갖기도 하였다.
2001년 2월16일 졸업생 총수는 24,678명이고, 재학생수는 1,33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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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극장 - 원주극장 |
1954년 5월 1일 지금의 아카데미극장 자리에 문을 연 시민극장은 원주극장의 전신으로 원주 최초의 극장이다.
가설극장이던 시민극장이 1957년 지금에 자리에 원주극장을 열었다.당시 원주극장은 건평 109평에 45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영사기 2대, 기사 1명,조수외 4명의 직원이 근무하였다. 연관람인원은 180,00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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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우물 - 인목대비 생가 앞 우물 |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은 지정면 안창리에 1584년에 지어진 인목대비 생가 앞에 있는 우물로 인목대비 생가가 지어질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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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이발소 - 혁성이용원 |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는 원주시 신림면 신림리 693번지 신림시장내에 있는 혁성이용원으로 1955년 4월 27일 문을 연 후 최근까지 운영을 해오고 있었으나,
최근의 운영자인 김길수씨의 자금난으로 인해 현재는 문을 닫고 휴업중인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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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 도미약국 |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은 원주시 명륜동 25번지 남부시장에 있는 도미약국으로 1964년 5월 13일 강호섭(현66세)씨가 문을 연 이래 38년 5개월째 운영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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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 - 금강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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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은 금강다방이다.
금강다방은 1967년 10월 10일 등록이래 36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위치는 원주시 중앙동 260번지이며, 대표자는 이운숙(현43세)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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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의장과 초대 부의장 |
원주시 초대의장은 박태희(당44세)의장으로 공직과 언론계에서 일을 하였고 1955년 9월 1일부터 1956년 8월 23일까지 1년간 재임하였다.
원주시 초대부의장은 엄규상(당56세)부의장으로 고보를 졸업하고 회사중역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55년 9월 1일부터 1956년 8월 23일까지 1년간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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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원주시 초대 의회의장과 부의장 |
1995년 1월 1일 통합 원주시의 초대 의장은 김성봉(당74세)의장으로 1995년 6월 30일까지 의장직을 역임하였다.
초대 부의장은 이명복(당68세), 어연선(당63세), 임상규(당60세) 3인 공동으로 임기는 1995년 6월 30일까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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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부동산 중개업소 - 원주부동산중개사무소 |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부 동산 중개업소는 지정면 간 현리 810-1번지에 소재한 원주부동산중개사무소로 최 돈영(66)씨는 1994년 7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1994년 이전에도 부동산 거래 중개업을 하는 곳은 있었으나 중개사무소 허가를 받은 것은 원주부동산중개사무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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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필지의 사유림 |
원주에서 가장 큰 필지의 사유림은 김해김씨참교공파종중 소유의 땅으로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 산20번지 1호이다.
면적은 3,704,861(1,120,720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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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필지의 국유림 |
판부면 서곡리 산166번지의 산림청 소유의 땅으로 12,114,282㎡(3,664,570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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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필지의 시유림 |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50번지1호로 금대리 소쩍새마을 입구 일대의 산이다.
면적은 13,130,746㎡(3,972,050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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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등산로 - 봉화산 등산로 |
원주시 단계동 산57번지 일대와 호저면 만종리에 걸쳐 있는 봉화산은 옛날에 "봉화"를 피웠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며, 정상은 해발 337m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야산이지만 산 정상에서는 원주시내는 물론 먼곳까지 한눈에 관망이 가능하다.
1996년도에 봉화산 등산로에 삼림욕장을 조성하여 각종 운동시설과 편익시설을 설치하고 매년 시설물을 확충·정비하고 있으며, 정상까지 1.1㎞로 약 1시간 정도면 왕복이 가능하고 하루 평균 800여명의 등산객이 찾고 있다.
봉화산은 접근이 용이하고 운동량이 적당하며 주변 경관이 좋은점 등 여러 가지 장점으로 이용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용면에서 전국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등산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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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가축사육농가 - 한우 |
원주시 지정면 간현4리 271번지에서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최일영(당52세)씨는 원주시 관내에서 한우 사육농가로써는 최대규모(120두)이다.
최일영씨는 결혼전인 1975년(25세때)부터 한우사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우 암송아지 1마리부터 시작하여 현재에는 120두의 최대 규모로 성장할 때까지 남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때 그 때 남다른 감각과 경영 능력으로 한우 사업을 추진해 온 일꾼이다.
현재까지 지정면에서 한우를 사육하면서 2차례에 걸친 한우 파동을 겪어 오면서 남과는 다른 한우사육 기법과 경영 능력을 발휘해 슬기롭게 대처해 오면서 부농의 꿈을 일구어 가고 있는 일꾼이다.
최일영씨는 지정면 간현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 앞으로 원주 지역 한우사업을 이끌어 나갈 유망한 축산 농업인으로 축산을 경영하고자 하는 후배 농업인들의 귀감이 되고자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가축사육농가 - 양돈 |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 568-5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초축산단지는 1995년 소초면의 9명의 축산농가가 협심하여 소초축 산영농조합법인(대표 김주명,42세)을 구성하고 축산단지화를 위하여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 4,895백만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단지화 하여 축산단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는 축사 및 퇴비사를 포함한 28동 16,611㎡의 축산기반시설을 조성하여 단지화 되어 있으며, 13,000여두의 돼지를 사육하여 원주 지역 최대의 양돈단지를 이루고 있다.
소초축산단지는 양돈업은 물론 양돈 부산물인 분뇨를 이용하여 발효퇴비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를 농가에 공급함으로써 친환경농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축산단지 활성화를 위하여 다각적인 방면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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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가축사육농가 - 양계 |
원주시 봉산동 293번지 번재 부락에서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 병락(당58세)씨는 1970년 후반기부터 지금의 반곡동 월운정부락에서 처음으로 양계사업을 시작하였다.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젊은 나이에 시작한 관계로 양계에 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여 실패를 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양계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현재의 위치로 양계 사업장을 이전한 것은 1990년도 부터이며 현재 양계사 6동 2,000여평 규모로 대단위 사육농가로 발전했다.
지금은 봉산동 번재부락에서 80,000여수의 산란계를 사육하고 있으며 부농의 꿈을 현실로 일궈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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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동물병원 - 원주종합동물병원 |
원주종합동물병원(원장 박근하, 47)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동물병원중 가장 오래된 종합동물병원이다.
박근하 원장은 1983년 5월 21일 인동 206번지(현, 세종예식장맞은편)에서 동물병원을 시작하여 약 17년간 구 분수대 맞은편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여 왔으며, 지난 2001년 9월 28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 개설하여 현재까지 약 20년간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병원을 처음 개설할 당시만 해도 원주지역에서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손꼽을 만큼 적어서 애완동물에 대한 진료 수요는 많지 않아 대가축 위주의 진료 활동을 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많이 증가하여 동물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박근하 원장은 원주시 공수의로 위촉되어 있어 각종 가축질병 예찰 및 예방접종활동을 펼치고 있는 등 가축전염병 예방 활동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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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정육점 - 한양정육점 |
원주시 명륜동에 소재하고있는 남부상가 내에 위치하고 있는 한양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용훈씨(당68세)는 남부상가가 건립되기 이전인 1968년 12월 22일부터 현 남부상가 위치에서 정육점을 시작하였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시가지가 형성되지 않았고 논과 밭이 산재한 재래시장에서 조그만 학고방 형식으로 정육점을 시작하여 지난 1983년 1월 24일 남부상가가 건립·개장되면서 현 위치에 정육점을 이전하여 현재까지 운영하여 오고 있다.
현재 한양정육점은 사단법인 축산기업조합중앙회가 지정한 모범업소로 소비자에게 신선한 축산물(우육, 돈육, 계육)을 공급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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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종묘사 - 제주종묘농약사 |
원주시 중앙동 52-4번지에서 제주종묘농약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하생(당68세)씨는 1971년 현재의 위치에서 종묘와 농약을 취급하는 종묘·농약사를 개업하여 현재까지 운영하여 오고 있는 가장 오래된 종묘·농약상이다.
제주종묘농약사는 각종 농작물의 종자는 물론이고 농약을 지난 41년간 농민들에게 공급해 온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우리 농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농업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현재는 아들과 함께 종묘사를 경영하고 있으며 자식에게 가업을 전수하여 2대에 걸친 종묘사 운영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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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칼라쌀 - 향미,흑미,자광미 |
문막에서는 전국 최초로 기능성 쌀인 향미, 자광미를 1994년도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흑미는 1995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2001년도 생산량은 85ha에서 11,000가마(35kg)로 전국 최대의 생산량이다.
칼라쌀은 또한 일반쌀에 비해 최고의 수매가격을 기록하였는데, 95년도의 일반쌀은 정부수매 기준으로 80kg에 132,680원이었고,이에 비해 칼라쌀은 640,000원으로 일반쌀의 4배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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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환경미화원 |
- 성명 : 김 기 노(남 51세)
- 주소 : 원주시 명륜동 247-10
김기노씨는 원주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다.
1974년부터 2002년 현재까지 28년간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한 원주시 환경미화원의 산증인 중 한사람이다.
1974년 미화원으로 채용되어 28년이란 세월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결근 한 번 없이 새벽부터 나와 도로 청소를 하고 도로 청소 후에는 원주시 관내에서 수거해온 재활용품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장 음지에서 일하며 보람을 ?는다는 김기노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로 출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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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최고의 환경개선부담금 납부대상업체 |
- 업체명 : 연세대원주기독병원
- 주 소 : 원주시 일산동 157-2번지
- 환경개선부담금 납부금액 : 22,988,820원(2002년 2기분)
환경개선부담금은 경유자동차 및 160㎡이상 규모의 건물에 대하여 부과하는데
특히 시설물 환경개선부담금은 연료사용량과 용수사용량에 따라 차등 부과되는 부담금으로 원주기독병원은 2002년 상반기(6개월)동안 연료사용량이 854,135ℓ이고, 용수사용량이 116,389톤으로 원주시에서 가장많은 환경개선부담금을 납부하는 업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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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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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명 : 그린벨리 화장실
- 위치 : 문막읍 건등리 338-1
- 규모 : 20㎡ (남자8㎡, 여자12㎡)
- 입상 : 제2회 "아름다운화장실 BEST 10"강원도선정(2001년)
그린벨리 화장실은 2001년 제2회 아름다운화장실 베스트10에 입상한 화장실로서 유로스타일의 건물외관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내부는 부드러운 원목과 특색있는 천정그림 등으로 마감하여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또한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들이 화장실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직원들이 직접 안내 등 특별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각종 위생용품 및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원주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로 손꼽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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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정차과태료 최다 체납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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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정차 과태료를 가장 많이 안낸 체납자는 원주시 학성2동의 000로 59회의 불법주정차에 체납금액은 236만원이다.
불법주정차 과태료는 4만원(승용) 5만원(기타)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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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되고 길이가 긴 횡단보도 - 원주역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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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횡단보도는 원주역 앞에 있는 횡단보도로 설치년도는 알 수가 없다.
이 횡단보도는 길이 44M폭8M로 또한 원주에서 가장 길이가 긴 횡단보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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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신호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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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교통신호등 중 가장 오래된 교통신호등은 남부시장 맞은편에 있는 신호등이다
이 신호등의 설치년도는 근거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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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택시승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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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택시승강장은 기업은행 맞은편에 있는 택시승강장으로 설치년도는 알 수가 없다.
설치년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승강장인 이 승강장에는 세 대의 택시가 정차할 수 있다.
교통유발부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건물 - 이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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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유발부담금은 건물연면적이 1,000㎡이상의 건물에 부과하는 교통혼잡에 대한 부담금이라 할 수 있다.
교통유발부담금을 원주에서 가장 많이 내는 건물은 원주시 무실동 1062-1번지에 있는 대형할인점 이마트이다.
건물연면적 17,479.83㎡의 대형할인점인 원주이마트에 부과된 교통유발부담금은 10,168,490원(2002년도)이다.
원주시에서 부과되는 교통유발부담금 총액의 10%에 가까운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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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리고 최대 법인택시 - 원주택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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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택시회사는 원주택시(자)이다.
원주택시는 1953년 8월 16일 15명의 주주(대표자:강주희)로 차량 30대,40여명의 직원으로 원주시 개운동 380-39번지에서 설립되었다.
이후 사업확장을 위해,1982년 12월 현 위치인 단구동 146-11번지로 이전하여 현재는 원주시 최대 규모인 차량 72대, 직원 130여명의 규모로 확대 운영해 오고 있으며 2002년 4월 3일 강신홍(강주희의 자)으로 대표자를 변경하여, 고객을 위한 서비스 향상과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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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개인택시 - 이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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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개인택시는 강원 17바5012의 이도식(59세)씨이다.
이도식씨는 1977년 12월 14일 원주에서 처음으로 개인택시 허가를 받았다.
또한 이도식씨는 모범운전자 1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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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최대규모의 유료주차장 - 원주기독병원주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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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대규모의 유료주차장은 1959년 11월 7일 설립된 원주기독병원주차장으로 290대를 주차할 수 있고 면적은 3,500㎡이다.
위치는 원주시 일산동 162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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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오래된 건축설계사무소 - 김화영건축사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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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건축사사무소는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설계사무소로 1971년도에 문을 열었다.
현재 위치는 원주시 학성동 326-4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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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로 - 군도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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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로는 판부면 금대리에서 치악산 향로봉을 연결하는 군도14호로 해발 800m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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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다리 - 원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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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다리는 원주교로 1915년 가설되었다가 1922년 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23년 12월 3일 신축하였다.
이 다리는 1930년 다시 유실되었고 1931년 6월 11일 신축하였으며 통칭 "쌍다리"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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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건물 - 인목대비 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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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는 1584년에 태어난 인목대비 생가로 지정면 안창리에 있다.
인목대비는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둘째딸로 태어나 1602년 의인왕후의 뒤를 이어 선조의 계비로 책봉되었으며, 1606년 영창대군을 낳았다.
영창대군은 광해군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김제남은 사사되고, 인목왕후는 폐하여 유폐되었지만 광해군의 실정으로 인한 인조반정으로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었다.
1632년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며, 목릉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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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설계사무소 - 원호창건축설계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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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설계사무소는 원호창건축설계사무소로 1960년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없어지고 없다.
없어진 때도 오래되어서 언제 없어졌는지 파악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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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아파트 - 일산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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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아파트는 1977년 1월 17일 준공되었던 일산아파트였다.
일산아파트는 지금은 국제아파트로 2001년 7월 15일 재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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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아파트 - 해동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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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아파트중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원주시 명륜동 남부시장 옆에 있는 해동아파트로 1979년 12월 7일 준공되었으며 총 36세대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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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건물 - 성원아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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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는 원주시 명륜동에 위치한 성원아파트로 구 명륜아파트를 재건축한 아파트이다.
성원아파트는 22층 59.5m이다.
세대수는 818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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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건물 - 한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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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하나의 건물로써 가장 면적이 큰 건물로는 흥업면에 위치하고 있는 한라대학교 건물이다.
한라공업전문학교로 시작해서 현재는 4년제 대학교이다.
총장은 이창훈씨이다.
면적은 9층 41,983㎡로, 1995년 1월 19일 준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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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성당 - 원동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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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성당은 원주시 원동에 있는 원동성당으로 1896년 6월 1일 창설되었고 1913년 중국인 기술자를 불러와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1938년 당시의 천주교 신자는 980명이었다.
1938년까지 프랑스인 신부 6명과 조선인 정규랑 신부 등 7명의 신부가 사목활동을 하였으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故 지학순(池學淳)신부가 1965년 3월 22일부터 1993년 3월 12일까지 주교를 맡아 왔고, 지금은 김지석(金智錫)신부가 원주교구 주교로 봉직중이다. | |
최초의 청소년수련시설 - 간현청소년수련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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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1108-11번지에 있는 간현청소년수련시설로 1993년 9월에 설립되었다.
부지면적은 4,631㎡ 이며 건물면적은 1,383㎡이다.
수용인원은 197명이고 대표자는 김춘광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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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규모가 큰 분묘 - 운곡 원천석 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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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행구동에 있는 운곡 원천석 묘지가 원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분묘이다.
봉분의 높이는 1m이고, 둘레는 18.72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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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수가 가장 많은 기업 - (주)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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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직원수가 가장 많은 기업은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5-22번지에 있는 (주)만도로 총직원수는 1,136명이다.
부지는 173,385㎡이며 대표자는 오상수씨이고 주요 생산품은 자동차 조향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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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최다고용기업 - 이수세라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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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장애인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이수세라믹으로
전체직원은 103명이고 이중 24명이 장애인이다.
원주시 문막읍 농공단지내에 있으며 대표는 이상경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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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최장수의 고아원 - 성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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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초의 고아원은 원주시 관설동 1389번지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성애원으로 1945년 7월 개원하였고, 1946년 11월 1일 인가되었다.
성애원 최초 원생은 남자 15명,여자 7명으로 총 22명이었다.
지금은 남자 23명,여자 22명으로 총 45명이 입소해 있으며 원장은 최인숙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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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여성 성리학자 - 임윤지당(任允摯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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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 ~ 1793,
임윤지당의 본관은 풍천으로 부친은 임적이고 모친은 파평 윤씨였다. 윤지당은 당호이다.
19세인 1739년(영조 15)에 원주의 선비 평산신씨 신광유(1722~1747)와 혼인하였으나 8년뒤에 남편과 사별하여 자식을 두지 못하였고 1793년 73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원주에서 살았던 여성 유학자였다.
임윤지당은 조선후기 영?정조시대에 원주에 살았던 한국 역사상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로서 일평생 유교경전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우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원리를 체득하였고,
부단한 수양과 도덕적 실천으로 높은 인격을 완성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었다.
저서로는 자신이 연구하고 체득한 것을 훌륭한 문장으로 저술한 ‘윤지당 유고’가 있는데, 대부분이 경전연구와 성리설에 관한 논설 및 선유에 대한 인물논평들로 경전에 대한 조예와 성리학의 이해는 대학자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그 중에서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 인심도심사단칠정설(人心道心四端七情說), 예악설(禮樂說), 극기복례위인설(克己復禮爲人說) 등의 논문은 율곡 이이에서 시작된 기호학파의 정통 성리학을 계승하고 있으며 조선후기 관념철학에 대한 높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봉건적 사회분위기에서 매우 진보적인 여성론 - 여성도 교육과 수양을 통해 성현이 될 수 있다 -을 주장한 매우 독보적인 인물로서 학문을 닦고 자아를 실현한 최고의 여성예술가이며 여성학자라 한다.
족보에 나타난 묘소는 정지안면 무지곡 뒷산의 경좌에 있으며 시동생인 신광조와 서조카인 신재승의 묘소도 함께 있다고 하며, 현재 호저면 무장리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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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엄(趙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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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숙종 45년) 지정면 간현리에서 태어나 1777년(정조 1년)까지 살았던 인물로 본관은 풍양, 자는 명서(明瑞), 호는 영호(永湖)이다.
이조판서 상경의 아들로 그의 시호는 문익이라 했다.
1738년(영조 14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내시교관?세자익위사시직을 지내고, 1752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벽파인 홍인한.정후겸 등과 결탁하였다는 홍국영의 무고를 받아 파직되면서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되었다가, 아들 진관의 호소에 의하여 죽음을 면하고 김해로 귀양이 옮겨졌으나 이듬해 병사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해차록 등 저서를 남긴 경제가로 명성을 떨치신 분으로, 영조 39년(1763)에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고구마 종자를 최초로 가져와 경남 동래 및 제주도 등지에서 재배하여 구황 작물인 고구마를 전국에 보급시킴으로써 굶주림에 허덕이던 많은 백성들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1794년 좌의정 김이소, 평안도안핵어사 이상황의 노력으로 신원되고 1814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그의 묘소는 지정면 간현리 산 69-3번지(작동 앞산)에 있다.
후손들이 7대를 내려오면서 판서를 지냈다고 하여 마을명이 작동인 것은 벼슬 작(爵)자를 쓴 것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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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장 - 임경업(林慶業)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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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 ~ 1646,
그의 출생지에 대해 충주 달천과 평안도 개천이 언급되고 있으나 충북도지와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평촌마을의 전설과 현지주민의 보고, 그리고 임씨 문중에서는 부론면 태생임을 시인하고 있다. 판서 정의 7대손으로 황의 아들이다.
임경업 장군은 27세가 되던 1618년 무과에 급제한 후 이괄의 난 당시 관군으로 길마재싸움에서 크게 이겨 공을 세우고 일등진무 원종공신이 되었고 1643년 명군의 총병으로 청나라를 공격할 때까지의 조선조 명장이다.
1640년 청이 명의 금주를 치게 되어 조선에 원병을 청해오자 조정에서는 임경업을 출전하게 하였으나 친명파인 임경업은 명군과 협력하여 청군을 치려는 계획까지 세웠으나 탄로나 천보산으로 도망쳤다.
임경업은 중의 행세를 하며 해풍현에 도착하여 등주도독 황용의 안내를 받으며 숭정황제로부터 부총병의 관직을 받았다.
명이 망하자 마등홍은 배반하여 임경업을 잡아 청에 항복하였다. 임경업이 북경의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조선에서는 인조반정의 공신 심기원의 옥사가 일어났다.
서인은 노서와 소서로 갈라지고 다시 원각(원두표)과 낙당(김자점)으로 당파싸움을 하던 때로 김자점이 득세하던 시대였다.
심기원의 모반사건에 임경업이 관련되었다 하여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잡혀오게 된 것이다. 53세 되던 해 6월 20일에 죽음을 당하였다.
그는 충주의 충렬사, 선천의 선민사, 백마산성의 현충사에 제향되었다. 그의 추모비는 부론면 손곡리 248번지, 임경업 장군의 생가터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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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가장 긴 사람 - 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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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머리카락이 긴 사람은 원동에 거주하는 강정희씨(만43세).
그녀는 18 세부터 유난히 댕기머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덕에 지금의 머리카락을 기르게 되었다.
당시 학창시절 모발 단속이 심해 학교 졸업후부터 모발을 기르게 되었는데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그녀는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두 딸 예쁜이, 예림이도 머리카락 기르는걸 무척 좋아해 가 족 모두의 머리카락 길이는 무려 5미터가 넘는다.
역시 20년 넘게 정 성을 들여온 강정희씨는 2.4m, 첫딸 예쁜이(중3)는 1.5m, 둘째 예림 이(초등6)도 벌써 1.3m가 되었다.
두딸이 머리카락을 잘 기를 수 있도록 학교에 사정을 했더니 들어주어 정말 고마웠다는 강정희씨.
요즘 청소년들이 자기자신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자기 신체를 소 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孝의 시작임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주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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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축구예술가 - 허남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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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은 1968년 4월 17일 원주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부상으로 축구선수의 꿈이 깨 져버린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꿈을 이루어냈다.
그는 축구에 관한 한 대적할 사람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1995년 3월 11일 멈추지 않고 전신으로 볼컨트롤하기에 도전해서
18시간 11분 4초, 10만번 이상의 바운딩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또한 2000년 6월 19일에는 멈추지 않고 헤딩오래하기 부문에서 4만 3백 51번, 7시간 24분 54초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지금 서울 강북구 번1동에 거주하며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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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가업을 계승하는 한지장인 - 장응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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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산림청 지정 임업 신지식인으로 원주시 우산공단내에서 "원주한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3대째 전통한지를 만드는 가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260여종에 이르는 색한지를 제작하여 전국의 한지공예가들로부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1999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원주한지문화제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방식인 외발뜨기를 선보여 일본의 화지 장인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2001년에는 제26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전통한지 천연염색을 출품해 입상하였으며 일본 히가시찌찌부 화지축제에서 원주한지를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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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리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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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막 반계초등학교 부근 42번 구국도상에서 4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33m, 둘레 14.4m, 면적 100평의 크기이며 수령은 800년이상 된 나무이다.
옛날 한 도사가 이곳에 이르러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는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성장한 것이라고 전하며, 또 이 나무 속에는 큰 백사가 살고 있어서 아무도 자르지 못하는 신목(神木)으로 가꾸어 왔다고 한다.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현지 조사후 거목대장에 기재하고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했다.
용문사 은행나무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는 이 나무는 예전부터 나무가 일시에 단풍이 들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전해지는데, 현재까지도 이를 믿는 사람이 많다.
또 서리가 내리면 나뭇잎이 언제 어떻게 지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시에 떨어져 신기함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200년 전 화재를 당했으나 아직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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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 최대의 사찰 - 법천사지(法泉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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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부터 임진왜란시대에 존재했던 사찰로 경주 황룡사와 익산 미륵사 다음 가는 중부지역 최대 사찰로 추정된다.
법천사지는 부론면 법천리 산70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법천사는 725년(성덕왕24)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문종때 지광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유방선(柳方善)이 머물면서 강학하였는데 이때 수학한 한명회,강효문,서거정,권람 등이 탑에다 그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중창되지 못했다고 한다.
문화재로는 금당(金堂)터 북쪽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를 비롯하여 불상광배,불두,연화문대석,용두,석탑재 등이 있다.
국보 제59호로 지정된 지광국사현묘탑비는 높이 455cm로 비면 주위에는 아름다운 국화문양을 조각하였고 좌우 양쪽에는 각각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을 양각하였는데 이는 11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이다.
원래는 이 탑비 옆에 국보 제101호로 지정된 지광국사의 부도(浮屠)인 지광국사현묘탑이 있었는데 경술국치 뒤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8.15광복 이후에 국내 여론으로 다시 반환되어 경복궁에 보존되고 있다.
또한, 절터 남쪽 약 800m 지점에는 완전한 형태의 당간지주가 있다.
높이 280cm에 화강암으로 조성한 이 당간지주는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당시 법천사의 규모를 대변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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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수가 가장 많은 구룡사(龜龍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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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번지에 소재한 구룡사는 조계종으로 오대산 상원사의 말사이다.
구룡사는 치악산 국립 공원 내에서 가장 큰 사찰이며 조선말기까지도 그 사격(寺格)이 대단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룡사에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6년(666)의상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엽에 거북바위와 얽힌 연유로 구룡사(龜龍寺)로 불렀다고 하며 숙종 32년(1706)에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대웅전은 전면으로 보아 기둥 위에 주심포를 두고 주심포 사이에도 공간포를 2조씩 배치한 다포계양식이며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앞 좌우에는 90여평의 심검당, 설선당의 승사가 있고 정면에는 보광루가 푸른숲에 반사되어 그 위용이 더욱 돋보이고 있다.
기타 부속 건물로는 원통문, 직묵당, 국사당과 종각 등이 있으며, 1989년부터 구룡사는 가람규모를 갖추기 위하여 불국사 석가탑의 형태를 모방한 석가탑을 세우고 사천왕문 1동을 신축하여 사천왕상 4개를 점안하여 전통사찰로써의 규모를 갖추어 오고 있다.
현재 신도수 6,000명으로 원주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은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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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강원감영(江原監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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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감영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감영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원주시 일산동 54-2 구 원주군청 자리이다.
조선태조 4년(1395)부터 고종32년(1895)까지 500여년 동안 강원도의 정치.행정.사법등 수부 역할을 담당했던 곳으로 북원문화의 중심지였다.
2000년 9월 17일 강원감영 발굴조사시 국가사적지로 지정할 필요성이 인정돼 현재 복원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강원감영 선화당은 여지도서에 의해서 볼때 원주목과 강원감영이 함께 아사로 사용하다가 감영에서 독립된 관사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1665년(현종6년) 감사 이만영이 신축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현종8년) 원주목사 이후산이 완성시켰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강원감영 포정루는 선화당의 정문으로 1667년 선화당이 건립될 때 같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6.25전쟁 때 일부가 파손되어 새로이 보수한 것이다. 2층으로 된 누각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양식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되어 있다.
전형적인 문루의 형태로 규모가 단촐하여 아담한 느낌을 준다. 문루 중앙에는 현판이 달려 있는데, 갑오개혁후 원주진위대가 이곳 감영자리에 주둔하면서 선위루로 명칭을 바꾸었고, 6.25전쟁 이후에는 강원감영문루라는 현판이 걸렸다가 고증에 따라 1991년 본래 명칭인 포정루로 고쳐 달았다.
2002년 3월 9일 국가문화재(사적 제439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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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가장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 - 상원사(上院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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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치악산 줄기인 남대봉(1181m) 기슭에 위치한 상원사는 원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삼복더위에도 세 번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그해는 더운 해라고 할 만큼 시원한 곳이어서 얼마나 높은곳에 위치해 있는가를 가늠케 한다. (참고 : 우리나라에서 제일높은 사찰은 법계사 암자는 봉정암)
신라 문무왕때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6.25전쟁 때 모두 불타버린 것을 1968년에 중건하였다. 1988년 대웅전을 다시 짓고, 범종각과 일주문을 신축하였다.
이 사찰과 관련하여 은혜 갚은 꿩의 전설이 전해온다. 경상도 의성에 사는 한 선비가 한양 과거길에 이곳 적악산 기슭을 지나고 있을 때 꿩이 큰 구렁이에게 잡혀 막 죽음을 당하려는 찰나, 선비가 쏜 화살에 구렁이는 죽고 꿩은 살아서 날아갔다.
그런데, 그날밤 깊은 산중 소복한 한 여인네가 맞아준 절간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바로 죽은 구렁이의 암컷으로, 구렁이로 변하여 선비를 물어 죽이려 할 때 절의 종루에서 세 번의 종이 울리자 암컷구렁이는 선비를 놓아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날이 새어 선비가 그 종루 밑을 살펴보니 세 마리의 꿩이 머리가 터진채 죽어 있었다.
전날 살려준 꿩이 선비의 은혜를 갚고자 종을 치고 죽었다는 보은의 전설이 지금도 전해오며 이 전설로 인해 적악산이란 산이름이 꿩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변경되었으며 상원사 절담에 이 전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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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 국보 제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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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9호로 지정된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지광국사가 법천사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 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山)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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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국사현묘탑 - 국보 제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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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01호로 지정된 이 부도는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 ~ 1067)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 시대에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어 현재는 경복궁 안에 세워두었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의 부도가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부도는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 준다. 법천사지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의 내용으로 보아 지광국사가 입적한 시기인 고려 선종2년(1085)경에 이 탑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은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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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
좋은자료 잘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정보를? 원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는군요 .
정보 감사합니다..자식들하고 시간 날때마다 한군대씩 다니면서 원주를 다시한번 저도알고 자식한테도 일러주겠습니다..
와~~ 정말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복사 해놔야 겥네요 감사 안녕>>><>><>>>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신림사람인데 혁성이발관이 그러케 오래된지 새삼 알았네요 그리고 허남진씨도 친척이고
너무 좋은정보네요,,감사합니다,,
딴거 다 모르고 도미약국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삼~~~~깡다구양 카페활동하는구만~~~~ㅎㅎㅎ
대단한 정보입니다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