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 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했더냐’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1등을 했는가배’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이 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떠 올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1학년 때 1등은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물을 수가 없다.
행동으로 훈육하신 아버님의 깊은
뜻에 경의와 찬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