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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전 국민일보에는 가나안 교인이라는 신조어를 타이틀화 하였다. 이는 [목회사회학연구소]가 25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 ‘소속 없는 신앙인 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 하면서
사용된 어휘다. 그리고 대략 파악된 그 숫자는 100만명을 웃돈다는 것이다!
몇일전 예향에서 모 회원으로부터 쪽지를 받게되었다. 지금 소속 교회에서 일어나는 목회자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갈등이
더 이상 소속의 의미 부여를 할 수 없게 만들었거니와 스스로 내적인 동기부여가 안되어 단체 속에서 메말라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문제가 키워져 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예배당을 나가고 있는 사람일찌라도 비슷한 심정을 겪는 사람이 상당수 라고 여겨지며 그런 예비군에 속한
잠재 숫자가 결코 적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본인도 그런 회의감에 빠져들어 나 스스로가 먼저 가나안 백성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현상적으로 앞으로도 예배당에서 이탈 가능성이 큰 사람이 부지기수 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교회개혁 차원에서 볼 것 같으면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의 세가지이다.
1. 이탈층이 주로 30~40대이며 이는 미래교회의 중추적 구성원인 동시에 실질적 기반층이다.
2. 주요 이탈층은 맹신형 신도들이 아닌 문제의식을 인식하고서 그것을 풀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3. 이탈 과정에서 일어나는 핵심 문제는 설득력을 가진 대안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1. 위기는 곧 기회다.
예향에서도 이런 가나안교인이 다른 어느 커뮤니티보다 많다고 느낀다. 신앙은 있으되 소속 없는 신앙인........그러나 이는
목회자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는 문제일지라도 거시적 하나님나라 차원에서 본다면 오히려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이며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그것이다.
관계에 지쳐버린 신앙인들, 끝없는 헌금 요구에 지쳐버린 신앙인들, 본질적 신앙의 깊은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현재의 예배당 시스템은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이런 가나안 신자 현상은 가속화 될 것이다.
가나안! 참으로 의미 심장한 말이다. 광야교회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와 매우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그렇다! 교회는 가나안(하나님나라)으로 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동안 신자들은 (의미적)가나안 정복을 거부하면서 예배당 안에서만 맴돌았다. 모든 삶의 의미를 신앙에 기초한 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예배당 안에서만 요란했던 것이다. 그 속에서만 찬양하고
예배(비록 하나님께서 요구하지 않은 쓸모없는 것이지만)하며 서로를 보듬었다. 사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영적 의미
에서 피비린내 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악령이 지배하는 세상을 하나님나라의 통치 방법으로
바꿔가야 하는 전투를 벌이는 것이 본연의 임무였는데 그것을 외면하며 예배당 안에서만 맴 돈 것이다. 이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려는 광야교회의 유대민족과 전혀 다름없다. 지금 시점은 가나안으로 입성하기 위한 내부적 갈등이 극대화
되고 요단강을 건넌 후에 치뤄질 전면 전쟁을 앞두고 있다.
참고적으로 이러한 한국 교회내의 갈등요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찬스를 잘 잡은 케이스는 신천지 같은 사례였다. 적지
않은 신천지인들을 만났지만 대부분은 심적으로 상처를 못견뎌하는 여린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소극적이며 욕심이
적은 타입들이었다. 그에 반하는 내부적 갈등이 컸던 것일까?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기존교회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신천지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현상적으로 분석할 때 제 2나 제 3의 신천지와 같은 이탈 현상은
계속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가나안(안 나가) 신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새로운 수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 세계적 개신교 상황
지금 세계적 개신교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우선 3만 7천여 종파로 갈래갈래 찢긴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그 숫자 만큼
많아야 될 소속 인구는 3억명을 밑돈다. 이는 정확히 50여년 만에 세계 2차 대전 후의 카토릭 인구와 역전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 당시 카토릭 인구는 3억명 언저리 였고 개신교가 약 11억명을 웃돌았다. 지금은 정확히 반대다.
50여년만에 10억에 가까운 개신교 인구가 죽거나 이탈한 것이다.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이 시대를 설득할
사상적 기반이나 함량 즉 콘텐트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 종교는 이슬람과 카토릭이 대등한 숫자를
자랑하며 양분 되고 있다. 한국은 특징적으로 개신교인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을 외면하겠지만 숫자가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도 1991년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감소세에 있으며 상대적으로 카토릭이 늘어났다.
지금 세계 선교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미국은 더 심각하다. 대형교회 일부를 제외하고는 급속하게 유럽교회화 되고 있
으며 사회학자들은 '더 이상 개신교가 미국 내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종말 시점'을 2040년 경으로 보고 있다.
개신교의 이탈 현상은 선진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미국을 휩쓸었으며 이제 한국도 본격적인 발화가 시작되고 있다.
한가지 주의 할 것은 미국의 경우 예배당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나안(안 나가) 신자 현상과 일치하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인의 40% 이상이
심리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결속력을 발휘할 수단이 없고 미국
특유의 내쇼날리즘이 그것을 대신한다. 미국의 내쇼날리즘은 교묘하게 기독교적 세계관과 정치적 마인드가 결합하여
종교성을 띤 힘을 발휘하고 있다. 죠지 부시가 이것을 적절히 이용하여 폭력적인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것이 그 사례다.
3. 스스로 가나안 교인이 된 과거
우선 개인적으로 본인은 여러차례 예향에서 밝힌바 있지만 이미 예배당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 횟수가 약 10년이 가까
워 온다. 예배당을 떠난 갈등의 동기는 시스템적으로 더 이상 복음 세계를 구현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목도하였기 때문
이다. 예배당을 떠날 결심을 한 것은 비교적 큰 중형교회(성도 1천명 이상)에서 3년 소속되면서 1차 있었다. 이 교회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목사였으며 인기도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새 예배당에 입주하면서 많은 대출
을 안게 되었고 이 때 무려 40여명의 장로피택과 그 숫자에 준하는 집사 임명이 있었다. 이른바 노골적인 헌금강요였다.
본인은 아직 '목사'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은 면피될 수 있었지만 풀리지 않는 무엇이 커져 갔다.
이후에는 대학원 동기목사가 소박하게 목회하고 있는 노원구의 조그만 개척교회에 소속되었다. 성도 수 약 40~50여 명의
고만 고만한 나름대로 끈끈한 애정을 과시하는 교회였지만 늘 재정적 고충에 시달리는 교회였다. 그러나 그 곳 목회자의
꿈은 누구나 짐작하듯 '자체 건물'이었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 복음적 의미부여가 목회자의 의도에 따라 '돈'으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는 한계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보았으며 설사 불특정 다수가 은혜롭게 소위 '성전 건축 헌금'을 해서 목적 달성을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적 세계관과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것에 치를 떨어야 했다. 목회자의 의도는 곧 안정된 부동산이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안정된 교회란 곧 안정된 밥줄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인의 번영이며 자신 가족의 안녕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소위 '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고서 그들과 같은 세계에서 관찰해 왔기 때문에 틀리지 않은 지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심각하게 아내와 상의하여 예배당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성경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충분
하게 검토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교회당 시스템 내부에서 갈등한지 7년만에 가나안 교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선 예배당에 나가질 않으니 시간이 지천으로 남아돌았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주일....및 각종 행사에 소속되지 않으니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았다. 나는 이 시간동안 사유와 성경 분석에 상당 부분 할애 하였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삶
의 주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독교인과 아닌 사람들 속에 섞여서 대등한 입장으로 관계하며 관찰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예배당을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하며 스스로 상상했던 우려 상황들을 일어나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타락하지도 않
았고 남을 속이거나 잘못된 길로 가려 한 적도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근신하며 채찍질 하였다.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나를 과거부터 알고 있던 예배당 외부의 사람들과 관계 변화는 표면적으로 일어난 것이 없었다. 취하게 먹지는 않았지만
편하게 앉아서 막걸리 몇사발 쯤은 마시면서 삶의 텁텁한 이야기들을 부담없이 나누는 일도 왕왕 있게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굳이 예배당을 애써서 나가지 않기를 당부했다. 내가 아는 하나님 아버지는 예배당에 나가지 않거나
주일을 지키지 않거나,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거나 감점을 주시는 분은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구원의 속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미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십일조나, 주일
성수나, (의식)예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은 종교적 신전(예배당)을 유지할 목적으로
대중을 호도하는 것이지 본질적 복음의 요구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예배당 내부에서 갈등하는 적지 않은 숫자가 이
세가지 ①주일성수 ②십일조와 헌금 ③(의식)예배참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소위 신학적이나 교리적으로는 이
요소들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그러면 뭣 때문에 교회를 다녀?
4. 제안 : 가나안 교인이여 모이자(궐기하자)!
글의 서두에서 가나안(안 나가) 교인이 무려 100만을 웃도는 숫자라고 했다. 이는 적지 않은 숫자이며 당장 예향에서만
해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과감히 그분들을 향해 복음적 대안을 마련할 창구
구실을 하자는 제안을 해본다.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은 종교운동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의 측면에서의 제안이다. 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그
들의 신념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세계를 구현하려 한다는 것은 복음적으로 항상 환영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가장
우려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누굴까? 그것은 우선 목회자 그룹일 것이며 두번째는 현대의 낡아버린 개신교 시스템을 맹신
하고 있는 전통과 유전에 길들여진 주변 신앙인들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하나님나라 운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살인과
함구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전통 유대교인과 그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종교적 권리를 포기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도 간단히 십자가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적 음녀의 정체다!
※ 한 편 하나님나라 운동을 시도하기만 한다면 이는 계시록적 전투에 해당하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나라란 나라라고 선언된 백성들(베드로전서 2장 9절)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커뮤니티다.
또한 그들의 삶의 주변에서 섬겨야될 연약한 자를 찾아내고 돌보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증거의 능력은 보혜사 성령으로 보증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선언이기 때문에 전 인류사를 관통하는 유효
메시지다. 이것보다 더 큰 복음은 없다. 예수 증거가 곧 하나님나라 이며 하나님나라는 곧 예수 증거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세계적 연대와 통일성이 가능하다. 가장 쉬운 예로 FIFA나 WTF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FIFA는 그냥 축구
월드컵으로 표면화되는 축구라는 운동 하나로 모여든 취미 커뮤니티다. 그러나 월드컵 하나가 가진 막대한 영향력은 온
지구를 휘감는다. 산 속 구석 티벳의 고원 지대까지 사람들이 열광하며 TV 앞에 모여 카메라에 비춰지는 공 하나에 울고
웃으며 세계가 축제의 장이 되고 있다.
WTF는 세계태권도연맹 커뮤니티인데 이는 태권도를 수련하는 소속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세계적 커뮤니티 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코리안 태권도는 거의 안알려 진 곳이 없다. 그 영향력과 파급효과는 세계적이다. 축구공 하나와 품새 하나가
세계를 휘돌고 남는다. 이것이 콘텐트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도 아니며 경제활동도 아닌 취미활동으로서의 상징적
세계 정복이다. 세계는 종교대립이 극화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계를 단일화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가능성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천년왕국을 예언하고 있
지 않은가?
하나님나라는 종교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개혁적 대안이다. 이것은 지역과 지방과 세계를
망라하고 가능성이 열려있는 세계 단일 교회 커뮤니티가 가능한 방법론이다. 착취하지 않으며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커뮤니티는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또한 진정한 한류가 될 가능성 또한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은 성령께서 관여하시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우리는 영적 안테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요구 사항이 매우 증폭된 시기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움직임을 또 하나의 종파 운동이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 속에서 케어낼 수 있는
진정한 통합 운동이다. 왜냐하면 이미 흩어져 힘을 잃어가는 가나안(안 나가) 신자들을 결속 시킬 수 있는 힘이요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예배당에 소속된 전통과 유전을 체질화 한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개혁에 목말라하고 본질적
복음의 시도를 꿈꾸는 사람들의 안식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 때문이다. 시스템에서 착취적 기득권을 제거하고
자발적이며 은사적인 범 국가적, 범 세계적 네트웤을 꿈꾸는 것이 성경에 반하는 종교적 범죄일까?
일제 치하에서 광복을 꿈꾸는 33인이 안개낀 장충단 공원에 모여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듯 전국,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
져 가나안(안 나가) 신자들이 된 사람중에 용기있는 자들이 모여 하나님나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장 9절]
※ 다양한 복음적 의견들이 댓글로서 교환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by 하나님나라 Builder iDeaRush.
첫댓글 아직도 열심히 활동 하시네요. 오래만에 댓글 써봅니다. 가나안교인 이란말 여기서도 들어보네요,. 먜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차라리 가나안이 현재 한국에서는 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어 초대교회처럼 꼭 모이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소통과 네트웤이 가능합니다.
신학이나 이론도 시대에 맞게 재편성 되어야 한다고 보며, 이것이 성령으로 소통하는 성도간 교통은 충분히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지적이네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 앞서의 문제는 , 운영의 문제보다 우선하여 본질적인 말씀의 접근의 문제라 생각되네요.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신학교,
일반학교 교육도 최상의 내용으로 교과서를 집필,선정하여 이를 충분히 연구하여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공부하는데.....
신학교는 성경이 없이 교리만 있다니...
그러니 성경구절 몇절 읽고 세상예화로 소위 설교를 하는것 아닌가 해서,
교회경영이나 운영만있지 본질인 말씀이 없는 신학교
현재 가나안 교인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학을 전공한이도 있으며 또는 은혜로이 성경적인 연구를 거듭하는 이도 있어서
서로 중지를 모으고 발전적 대안에 대하여 협의체를 구성하면 충분히 내일을 열 수 있는 답은 열리리라고 봅니다.
또한 그러한 것을 연구하는 은사로, 어떤이는 가르치는 것을 은사로, 어떤이는 열심히 몸으로 행하는 것을 은사로 엮으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제가 봐도 이 상태로 가다가는 기독교가 ...
일단 문제가 각 교단마다 교리가 다르고,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도 큽니다
지적하신 바대로 교회의 부패나 헌금강요 문제, 성전건축
이런 점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구요
더 이상은 안된다, 대안을 내놔라, 어떻게 할것이냐를 놓고 많이들 고민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생각하기를 오픈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자신을 내어 놓을때에 충분히 가능한 돌파구가 있다
여겨집니다.
다만 그것이 수평적 구조 속에서 네트워킹이 되어야 하며 참여하는 모두에게 의미 부여가 될 수 있는 구조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8:14]
종교와 신앙은 차이가 크다고 느낍니다.
우리의 구원이 종교에 있지 아니하고 신앙에 있기에
무엇이 본질인지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종교가 신앙심을 이용해서 누군가의 이득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을 원하지 않고 잘 길들여진 종교인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명분으로 지키지도 않는 안식일규정을 들먹이며 하루종일 교회에 붙잡아 놓아 종교행사를 유지시키고
하나님께 물질을 드려야 한다하면서 온갖 명목의 헌금들을 양산하고 빚내거나 작정해서 할부헌금을 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콘크리트 차가운 벽속에 모셔놓고 목회자들은 종교놀이를 하며 자기 뱃속을챙기지요 ㅠㅜ
저는 일단 일욜 오전은 푹 잠을 잡니다. 매우 달콤하죠. 스멀스멀 일어나서 머리를 깎으러 가거나 집안 청소들을 합니다.
아주 여유롭죠.
님이 지적하시는 대로 두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성도 한 500명쯤 되는 정도의 교회는 헌금의 약 절반 가까이가 목회자 교역비로 모두 나갑니다.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사
기타 등등의 인건비죠. 이건 재정 집사한테 들은 것이고요. 아마 형편은 비슷할겁니다.
성도 약 200명 안쪽은 담임목사 생활비나 가족을 위해 전체 헌금 60~70% 정도가 들어갑니다. 이것은 매우 불편한 진실이죠.
까놓고 말해서 복음적이지 못하지요.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튼 뭔가 좋은 일이 일어 날거라는 기대가 부푸는군요...
저도 꼭 끼워 주세요~~
님두 가나안 교인이신가요? ㅎ
얼마전 이 문제로 오프라인에서 예향에서 활동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성도들이 실제 삶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형편을 돕는 네트워킹이 현재 예배당 시스템에서 차단되어 있다는데 서로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안에 대해서도 열띤 토의가 이루어졌었지요.
이제 교회의 문제에 대한 진단은 나올만큼 나왔다고 봅니다. 처방이 나와야 하지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함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아 ~~예 저는 아직 가나안은 아니고 이리저리 좋은교회 찾아 유리방황하고 있는 나그네 입니다..ㅎㅎ
좋은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전국에 가나안교인이 백만명정도까지라면 문제가 심각하고 안타깝습니다 저도 처음듣는 용어라서 당황스럽네요
왜? 그분들은 가나안교인이 됐는지 사유가 있을 겁니다만 우리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에 실망한 분들이라 사료되는군요
교계에선 그분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않나 생각합니다
대형교회의 세습, 초대형교회로 건축확장, 헌금강요등 기성교회회의 부정, 비리등 부패가 원인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예배당 시스템에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사회적 시도가 불가능한데
있다고 봅니다.
헌금이나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마치 원초적 신앙의 지향점인 것 처럼 호도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이 훨씬 큽니다.
진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크나 작으나 많은 목사들이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막상 정색을 하면서 개혁운동 합시다 그러면 다 꽁무니를 뺍니다 개혁이란 곧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 중심의 개혁은 비 성서적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시각에서 다음 시대를 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예배당 시스템에서의 어떤 시도를 할려고 하고
자신의 그 헤게모니의 중심에서 역할을 할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직적 사고방식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처지가 되어 우리를 섬기셨고 스스로 형제라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수평적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개혁의 주요골자는
① 착취하지 않는 시스템
② 성경에서 요구하는 본질적 신자의 모습
③ 실제 삶에서 서로를 돌보고 격려하며 섬기는 구조체
④ 그러면서 온 나라와 지구 전체가 하나로 네트웤 할 수 있는 발전적 제안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저는 남양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일단 서울 경기권만 합해도 가나안 교인이 최소 70~80만명은 된다고 봅니다.
예수님의 시도도
루터의 시도도
웨슬레의 시도도
그렇게 몇 사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산속 외진 곳에서 몇사람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이 세계속의 일본의 위치를 좌우했습니다.
역사는 항상 기다리고 있으며, 준비된 사람에게 바톤이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지혜로운 다섯처녀 처럼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은 같으나 무엇을 준비했느냐가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것입니다.
2년전에 정년보다 일찍 은퇴하신 목사님이 주위 사람들이 하도 어느교회 다니냐고 물어봐서 목사가 안다닌다고 할수없기에 가나안 교회다닌다고 해서 배꼽잡은적이 있습니다. ^^
님께서 어느정도 생각하신 복안이 있으신것 같은데 한번 풀어놔보시지요.
네, 전부터 생각해 두던 것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각도와, 성경적인 각도에서 검토하고 다듬어야 할 것인데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부족하고 협의체나 준비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좀 갖고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생각은 예향 운영진께 부탁해서 '가나안 게시판'을 만들어 여기 가나안 회원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공감하는 말씀 감사를 드립니다..
오랜 세월동안 무지한 기독인으로서..목회자들의 교리(교훈)가 성경적인 것으로만 알고 믿고 의심없이 신앙생활을 해오다가..복음의 본질이 왜곡되고 인간의 유전과 전통교리가 가득한 한국교회(당)의 현실을 발견하고..역부족하지만 성경의 교리를 따르기 위하여..만인 제사장시대에 ..어느곳에서 든지 예배(신앙)자로서 존재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예배당 생활을 청산하고 저도 가나안 교인이 된 사람입니다..특히 목회자들이 성경으로 온전히 돌아가..기본적인 교회와 예배의 본질이 회복되지 않는 한 가나안 교인들은 지속적으로 발생될수 있다고 봅니다
가나안 입성을 환영합니다!
시간버려, 돈버려, 성질버려가면서 종교의 노예로 살다가 뒤늦게 깨닫고 보니 본전 생각 때문에 그냥 머무르는 사람이 많지요.
예수님의 사역을 잘 보면 영적인 세계로 오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 가운데로 걸어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꾸 영적 영적, 영성 영성 하니까 거기에 현혹되어 스피리츄얼만 떠올리는것이 신앙인줄 저도 착각했었습니다.
이대로 이탈하는 현상을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대안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제 가슴에 불씨가 있는데 화석화된 뉴럽 교회와 바알교리로 빠른 속도로 쇠락해가는 한국 교회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 삶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단순할 수도 있는 신조가 나타나는 교회가 없을까요 ?
예전 핸드폰 가게중 '싼 핸드폰 찾다가 열받아서 직접 차린 가게 '라는 이름을 봤을 때 좋은 교회 찾다가 열받아서 직접 세운 (세우는 분은 주님이지만 ) 교회를 떠올린 것도 그런 열망이 있어서겠지요.
요즘 용어로는 평신도지만 살아있는 교회를 세울 수 있다면 거기에 자신을 던지고 싶습니다. 많은 조언 주세요.
저는 요즘 신학교에 가야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있는 영국교회의 쇠퇴 모습을 보고 혼한스럽기도 하고요. 홍정수목사님이 올린 신학생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라브리공동체같은 모임이 한국교회에 처방이 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고요.
저의 생각은 바른 교리와 올바른 신앙 회복 정도에 머물러있는데 iDeaRush님의 구체적이고 방대한 계획을 접하니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여기에 대해서도 기도해보겠습니다.
미국의 저명하다는 신학교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한국인 학생들이라는건 공공연한 비밀이죠.
가장 공부 잘한다는 서울대 의대에서 동창들 중에 그래도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하셨던분이 미국 유학을 가셨다가 2년만에
돌아왔더군요. 도무지 영어 강의를 알아 들을 수 없었다는것,
신학을 하는건 안하는 것 보다는 좋겠지만, 득도 있고 실도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단순하지만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뜻대로 안되는 것과 같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신학은 몽학선생이나 크게 다름 없다고 봅니다.
댓글 몇개는 지울께요 ^^
한국의 가나안교인들이 많아 진다는것은 모진 산고속에서 나온 영적희망입니다. 여기 영국에서도 뜨겁게 기도하며 네트워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항상 연락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역시 하나님나라 안에서는 누구나 하나가 가능하군요.
멀리 영국에서 손을 들어주셨네요. 감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 덩어리를 하나로 묶으실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나라에서 제사장으로 선언된 각자가 자발적이고도 유기적인 분위기에서 발원할 것입니다.
큰 희망 품고 기다릴께요 속히 그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제 속에 있던 답답한 마음을 꼭찝어서 이야기하시고 답을 재시해주시네요 늘 평안하세요
호응에 감사드립니다.
얼마 후 2차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