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광장. 우주. 인터넷.
1.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죽음이 사실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겠지요. 확실히 아는 이야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이 프레디 머큐리처럼 화성에 가 있거나 앨비스 프레슬리처럼 로스엔젤레스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답니다. 자기가 J. F. 케네디와 함께 베트남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잭슨의 모습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이니까. 무작정 믿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평화를 꿈 꿨던 그 사람 성격에는 어울리는 일로 보이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저는 마이클 잭슨이 어디서 무얼하든 '이터널 문워크'에 투고할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스톡홀름에서의 자신의 추모 플래시몹 동영상에 덧글을 달면서 즐겁게 살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답니다.
팝의 황제가 잠시 지구를 떠나있기로 결정하자, 전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그의 신민들은 비어있는 왕좌가 가져다주는 쓸쓸함을 메꿀 방법에 대해 고민했지요. 그래서 마이클 잭슨의 기나긴 휴가를 기념하며 그의 팬들은 하나의 축제를 기획했답니다. 여기서는 그 기획 중 '이터널 문워크'와 스톡홀름 광장에서의 추모 플래시몹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이벤트 속에서 마이클 잭슨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아니 한 챕터 혹은 한 권, 한 시리즈가 어떻게 다시 인터넷 공간 안에서 반복되고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 전혀 다른 의미로 배치가 되는 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정리할까 합니다. 기획에 대한 분석보다는 인터넷 공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현대인들의 경험 구조를 바꿔나갔는가에 대해서 더 집중할 생각인데, 그 이유는 팝의 황제에 대한 추억은 그 추억의 대상만큼이나 방법론 역시 원고 하나가 나올 만큼 경이로운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달 위의 세계와 달 아래 세계의 물리적 현상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여겼다 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보면 옛 철학자의 추론능력이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떠난 지금, 텔레비전이나 공연장에서 문워크와 같은 아우라 넘치는 무언가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저 상품과 상품의 연쇄만이 있을 뿐이니까요. 우리가 문워크를 보았던 곳에는 더 이상 문워크가 없습니다.
사실 황제를 대표하는 춤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워크는 황제가 처음으로 해낸 것도 아니고 그 이름 역시 원래는 문워크가 아니라 백슬라이드입니다. 다만 언론의 오보로 문워크라고 소개 되었던 것이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그 명칭이 완전히 굳혀진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단순한 오인이 아니라 마이클 잭슨이라는 하나의 상품은 상품 그 너머에 있다는, 지구 위나 대도시 또는 상품시장이라는 물리적 현상계 너머에 있다는 징후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진행된 두 가지 기획, '이터널 문워크'와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추모 플래시몹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황제가 떠난 지금 문워크가 존재하는 곳은 TV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달 위의 세상이니까요. 이 두 기획은 모두 어떤 기업 논리나 정부의 지원 없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국적이나 인종, 계급 구분 없이 남녀노소 마이클 잭슨을 그리워하는 이, 또 마이클 잭슨을 그리워하는 이와 함께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으며 황제가 왕좌를 비운지 백일도 더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참여와 재생산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3.
'이터널 문워크 http://www.eternalmoonwalk.com'는 벨기에의 브리쉘 스튜디오에서 만든 웹사이트로, 그 명칭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그 사이트에 접속하면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춤을 추는 동영상들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황제가 우리 곁을 떠나도 문워크는 이어진다, 랄까요? 마이클 잭슨의 휴가가 시작된 지 5일 뒤에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폭발적 인기와 함께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동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답니다. 1만개 가량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고, 각 동영상마다 최소 2~3m 거리를 문워크의 춤으로 횡단하니 마이클 잭슨의 사후 이 지구상의 어떤 이들이 다 합쳐 최소 20~30km 가량의 거리를 문워크로 걸은 셈입니다. 최소한으로 말이지요.
위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그 순간 Billie Jean의 전주부분이 반복됨과 함께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장면이 나오고, 그 이후로는 수만 개, 마이클 잭슨의 팬들이 찍은 문워크 동영상이 무작위로 이어져 나옵니다. 동영상의 하단 부분에는 동영상 제작자의 이름과 국적이 어디인지가 표시되고, 접속자는 자신이 원한다면 배경에 흐르는 Billie Jean의 전주를 끄거나 마이클 잭슨의 기합소리를 들을 수 있지요. 그리고 윗부분에는 동영상 시간에 맞춰 지금 문워크가 몇 미터 진행되고 있나 표시됩니다.
세계 각지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가한 만큼 그 동영상의 내용도 가지각색입니다. 귀여운 어린 아기가 쫑쫑 걸어가는 경우도 있고 앵무새나 닭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을 정도지요. 회사나 학교에서 동료나 친구들이 같이 찍기도 하고 게임이나 영화의 장면을 편집하고, 어떤 형식이든 문워크라고 우길 수 있을 동영상이면 모두 다 OK인 것이죠.
그 중 많이 반복되면서도 다양하게 변주되는 소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폴로 11호 달 착륙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이 의외로 자주 눈에 띈다는 것이죠. 말 그대로 '문워크'라는 점, 마이클 잭슨과 함께 미국이라는 국가가 과학이나 문화 분야에서 첨단의 첨단을 달리던 시기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 매치는 분명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 달 착륙 편집 영상은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영상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가상의 무엇임에도, 영상 속의 공간은 하나의 거리를 지니지 않음에도 그 영상의 상영 시간에 맞춰 '이터널 문워크' 동영상 상단 부분의 거리 측정이 계속 된다는 것 말이지요. 별 것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방식의 거리 측정은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계산 아닌가요? 인터넷에서 공간의 크기는, 그 공간을 횡단하는 데-소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것이야말로 '이터널 문워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명제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는 4차원입니다.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공간 3차원에 시간 1차원이 더해지거든요. 공간은 다차원적인 것에 비해 시간이 1차원인 이유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뜬금없이 골치 아픈 물리학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별 것 아닙니다. '이터널 문워크'에서, 인터넷에서의 우리의 인식은 모든 공간차원과는 무관하게 시간의 흐름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지 수많은 이들의 문워크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상영되는 시간만으로 그 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균질한 공간에서 촬영된 것이 아닙니다. 닭이 뒷걸음질 치는 5초와 회사원 6명이 줄지어서 걷는 5초의 실제적 거리가 동일할 리는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은 시간의 흐름, 비가역적인 시간 1차원 뿐이기에 '이터널 문워크'의 거리 계산법은 결코 틀린 것이라 할 수 없겠지요.
하긴 굳이 편집된 동영상이 아니더라도 멕시코 시티-뉴욕-레고나라-콜롬비아-보고타-시카고-베이징-상파울로-런던-홍콩-수원-이집트 등으로 이어지는 이 무차별적인 연쇄에 일반적인 물리공간의 계산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터무니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이 지적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무차별적인 연쇄, 이것이야말로 핵심이지요. 이런 1차원적인 인식과 무차별적인 연쇄는 '이터널 문워크'가 얼마나 참여자를 동등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증거물이니까요.
물론 어떤 대단한 기술력을 가진 사람이 '이터널 문워크'에 등장한 인물들이 몇 미터를 걸었나 완벽하게 계산해서 거리를 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하나하나 셈에 더해가는 순간마다 그 의미가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터널 문워크'에는 누군가 동영상을 올리고 있고, 다른 접속자의 컴퓨터에서는 전혀 다른 순서로 동영상들이 이어지고 있을 테니까요.
'이터널 문워크'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물리적 차이는 무의미합니다. 남-녀, 노-소, 빈-부, 이런 차이는 참여의 가불가와 상관없는 기준입니다. 공간 차원의 상실은 모든 구별을 무화시키고 참가자 모두를 동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저 동영상 촬영만 했다면 미국인이든 레고나라 주민이든 동일한 사이트의 동일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요. '이터널 문워크'에서의 그 평가기준은 오로지 참여를 했느냐 아니냐 혹은 더 나아가 얼마나 오랜 시간 참여했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했느냐 뿐입니다. 확실히 달세계의-문워크를 추는 공간의 물리법칙은 지구 위와 전혀 다른 것 같네요.
4.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이클 잭슨의 휴가를 기념하는 플래시몹에 대한 설명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워낙 세계적인 이슈이다 보니 세계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퍼포먼스가 있었답니다. 특히 장례식 날 런던에서는 커다란 스크린을 놓고 장례식을 생중계했고 베를린이나 파리는 검은 옷과 중절모, 흰 장갑을 갖춘 군중이 있었다고 하고요.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홍콩에서는 촛불을 들고 30초간 묵념하는 행사가, 일본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핸드 프린팅을 남긴 적이 있는 타워 레코드 앞에서 장례식 생중계가 있었지요.
곧이어 있었던 황제의 51번째 탄신일을 기념하는 이벤트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졌답니다. Thriller와 관련된 플래시몹이 영국과 러시아, 또 멕시코에서 진행되었지요. 멕시코는 멕시코시티 혁명기념탑 앞에는 1만 3천여 명이 모여 귀신 분장을 한 채 Thriller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열기였을 거예요. 그리고 또 Beat It과 관련된 퍼포먼스도 있었습니다. 미국 각지에서나 또 한국의 종로와 대학로에서 Beat It의 군무를 추는 것이 그 내용이었지요.
이 플래시몹 붐의 중심에는 스웨덴의 댄스팀 '바운스(Bounce)'의 기획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플래시몹인데요, 장례식이 있던 7월 8일 세겔스 토르그 광장과 스톡홀름 중앙역, 스춰플렌 광장에서 세 번에 걸쳐 행해졌지요. 내용은 앞서 소개한 한국에서의 플래시몹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광장에 어느 순간 Beat It이 흐르기 시작하고 한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뒤를 따라 두 명, 네 명, 여덟 명 춤을 추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곧 광장은 군무의 무리로 가득 메워지는 것이지요. 이 멋진 광경은 순식간에 유튜브를 비롯한 수많은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에 퍼지고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며 마이클 잭슨 관련 플래시몹에 큰 영향을 주었답니다. 벌써 24개의 도시에서 비슷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고 하니, 그 파급력을 알만 하지요?
이 플래시몹은 그야말로 광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저 지나쳐가기만 하던 공간이 어떻게 시민들의 손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고 참여의 장이 되느냐, 세계적으로 광장의 이름이 점점 말소되고 있는 이 와중에 이번에 있었던 수많은 퍼포먼스들은 분명 깊은 의의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인다는 것은 그저 과거의 과도기에나 존재할 수 있는 거라는 현대의 회의를 마지막으로 부수어 내며 왕좌를 비웠다는 것. 이 화려한 일탈은 역설적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진정한 의미의 '월드 스타'가 마침내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 이후 앞으로 광장이 광장으로서 존재할 역사적 순간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지역적이라면 모를까 전 세계적으로 말이지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는 이제 상품 이상의 무엇이 없으니까요. 마이클 잭슨은 마지막의 그 무엇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월드스타의 휴가는 하나의 역사를 마침과 동시에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유치하게 말하자면 이별은 만남의 시작. 우리는 오래된 광장을 잃었지만, 또 전혀 새로운 광장을 얻은 것이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예전부터 갖고 있던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인터넷 공간이라는 또 하나의 광장을 말이지요. 스톡홀름의 몇몇 광장에서 스웨덴의 댄스팀 '바운스(Bounce)'가 벌인 플래시몹이 어떻게 그토록 큰 반향을 가져왔을까요? 만약 이전처럼 지역적인 공간에 한정되어 진행되었다면 이만한 파급은 결코 가능할 수 없었을 겁니다. 네. 우리가 얻은 것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광장입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스톡홀름 중앙역에 가볼 일은 단 한 번도 없겠지요.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 상공을 지나칠 날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제가 '바운스(Bounce)'의 플래시몹을 볼 수 없었을 테고요. 물론 서울 명동에서 비슷한 퍼포먼스가 있었기는 했지요. 그러나 저는 명동에 잘 가는 편이 아닙니다. 또 서울 외 다른 지역에서 사시는 분들 중에는 제가 스웨덴 상공을 지나칠 일이 없듯이 명동을 찾을 필요가 없는 분들도 계실 거구요. 하지만 공간적으로 결코 마주칠 일이 없는 저나 그분들이나 언제나 같은 공간을 공유합니다. 네이버나 다음이나 구글이나, 수많은 포털 사이트를 우리는 서로 같이 가로지르잖아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아 부끄럽지만 우리가 공적 영역, 공공장소로 인지하는 곳이 더 이상 실재하는 광장이 아니라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라는 것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신문 기사에서 시민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네티즌을 말한다는 것은 꽤 흔한 예시 중 하나겠지요. 앞으로 정치적, 사회적인 의미에서 광장으로서 존재하는 공간은 시청 앞 대로만큼이나 포털사이트의 공개 게시판일 거예요.
한국은 이미 이러한 경험을 겪은 바 있지요. 촛불집회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서 말이에요. 그 정치적 의의나 결과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촛불집회는 분명 우리 시대 대도시 삶의 경험 구조를 완벽히 뒤바꾸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실제적인 거리가 언제라도 인터넷과 연결될 수 있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하나의 역사적 실례를 얻은 덕분입니다.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광장과 그를 모니터에서 지켜보는 밀실은 다른 공간이면서 다른 공간이 아닙니다. 광장에 서서 물대포에 맞느라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담요와 생수, 김밥 등의 전달이 밀실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모금과 기부로 이루어진 모습들을 보면 더 이상 공간의 구분이라는 것이 실제적 의의를 갖느냐에 대한 하나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지요. 옆집 사는 이웃이나 회사와 같은 공동체 속에서보다 인터넷에서의 블로그 이웃이나 동호회 클럽에서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된 지금, 모니터 속의 화면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실제의 일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버스를 타고 시위를 지나치며 교통체증의 불편함에 짜증을 냄과 동시에 모니터 속에서 바라본 시위 현장의 생생함에 전율하는 것이 과연 이상한 일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바운스(Bounce)'가 기획한 플래시몹은 그 광장에 우연히 있던 이들보다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접한 이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으며, 그 파급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유튜브만 아니라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사이트 곳곳에 펌질이 되었으며 펌질된 동영상들 역시 개인 홈페이지, 친목 카페나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고 게시가 되었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바운스(Bounce)'의 플래시몹이 존재하는 곳을 어디라고 가정하는 것이 옳을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터넷에서 무한히 펌질될 수 있는 컨텐츠들은 원본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친구의 싸이 미니홈피에서 동영상을 볼 때, 유튜브 메인페이지에 인기 동영상으로 올라온 것으로 볼 때, 포털 뉴스 게시판에서 볼 때 그 모두가 같은 원본임과 동시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또 동영상을 올라온 즉시 보는 것과 하루 이틀, 또는 일주일이 지나고 보는 것 역시 그 감상은 전혀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한창 덧글을 달며 감정을 공유하는 것과 그 수일 후 실시간으로 올라왔던 때의 잔향을 맡는 것은 결코 동일한 사건으로 자리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가장 개인적인 공간-싸이월드 미니홈피, 블로그, 인터넷 클럽, 카페-에서 사적인 이야기뿐만이 아닌 바운스의 동영상이나 촛불집회 영상 같은 가장 공적인 컨텐츠 역시 함께 나눕니다. 그렇다면 바운스의 플래시몹은 광장에서 행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밀실에서 행해지는 것일까요? 인터넷 공간과 현실 공간의 구별은 무너지고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광장의 위치는 우리가 광장이고자 바라는 마음먹는 그 순간 그 장소입니다. 그 마음먹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요.
5.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은 인터넷으로도 중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트래픽 조사업체에 따르면 분당 최대 1억900만 명이 시청했다고 하는데, 인류 인구 중 1/60이 단 하나의 영상을 바라보았다는 이야기니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지요. 단 두 명이서 한 순간을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무려 1억900만 명이라니요. 당분간 이 어마무지한 기록이 깨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마이클 잭슨의 추모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흐른 노래는 Man in the Mirror입니다. 굶주리는 아이들. 동전 한 개의 여유도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거울 속에 있는 그 사람-자기 자신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 거창한 인류애는 이제 우리 시대에 실종된 그 무엇입니다.
물론 텔레비전과 신문, 정치인들과 기업가들도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전 세계에 평화를. 전쟁과 가난, 폭력과 기아에 반대를. 매체를 장식하는 수많은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일말의 진실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보다 더 노래를 잘 부르는 법, 보다 더 춤을 잘 추는 법, 보다 더 그럴 듯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 이 모두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와는 비교도 못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마이클 잭슨보다 더 뛰어난 목소리와 춤 솜씨를 가진다해도 그는 황제의 양말을 빨 자격도 없습니다. 그 시대의 정열은 이 시대의 기업논리 아래에서는 복제 불가능한, 고귀한 것이니까요.
벤야민은 「보들레르에 관한 몇 가지 모티브」에서 대도시는 이야기와 같은 경험이 뉴스나 신문에 의해 경험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정보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의 상실, 체험의 지배는 흔히 벤야민을 인용할 때처럼 기술복제나 도시화에 의한 것으로 말해서만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복제되는 지금, 우리가 아우라를 느끼는 것, 그것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파악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있다고 믿는 것은 이제는 그것이 자본의 법칙에 의해 좌우되냐 아니냐라는 기준이 아닐까하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왜 이 시대에 마이클 잭슨이 존재할 수 없나에 대하여, 더 이상의 '월드스타'가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하여 그 답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나요? 우리가 수많은 TV프로그램에서 스튜디오를 벗어나 리얼버라이어티를 보여주기를 원하느냐도 그 비슷한 이유겠지요. 더 이상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이미 결정된 이야기들을 다시 반복하지 말라. 우리에게 진짜를 보여 달라. 정보가 아닌 이야기를 하라. 우리에게 마이클 잭슨을 돌려 달라.
위 본문에서는 '이터널 문워크'나 마이클 잭슨 추도 플래시몹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터넷이 대도시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경험구조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으며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각각의 주체가 진정한 주체로 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터널 문워크'에서 뒷걸음질 치는 아기와 스톡홀름 광장에서 열정적으로 추는 그 남자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할 서사가 존재할 거라 우리는 상상하고 미니홈피와 블로그에서 마이클 잭슨의 기나긴 휴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단순한 정보제공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자리 잡지 않던가요? 그래서 저는 Man in the Monitor로부터 시작하고 Man in the Monitor에게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려 합니다. 황제는 그곳에 있으니까요.
첫댓글 "누군가 마이클잭슨보다 더 뛰어난 목소리와 춤솜씨를 가진다해도 그는 황제의 양말을 빨 자격도 없습니다. 그 시대의 정열은 이 시대의 기업논리아래서 복제불가능한 고귀한 것이니까요" ㅜㅜ 짝짝짝.!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이글을 본 순간 눈이 번쩍뜨여서 퍼왔어요^^
아아...쭉 읽어내려가는 동안...밑에서부터 소름이 쫙 올라오는군요....ㅠㅠ 귀폭님의 필력이 생각나는 글......스크랩 해갈게요~한번 읽고서 넘기기엔 참 아깝습니다 ^.
저도 읽어내려가는동안 소름 돋았어요.ㅠㅜ 너무 좋은글이네요. 스크랩이라는걸 처음해보는데 제대로 한건지 모르겠습니다;;ㅜ 프린트해서 두고두고 읽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글 참 잘 쓰셨네요. 광장과 밀실(최인훈의 "광장"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자본주의에선 재생산될 수 없는 우리 마이클의 존재까지... 이 분 말씀대로 이제 인터넷이란 광장은 '물리적 광장'과 별반 다를 바 없어졌지요. 그것을 마이클의 영결식, 플래시몹, 이터널문워크로 설명하시다니, 역시 이런 논리마저 빗댈 상대는 마이클 뿐인 듯ㅎㅎㅎ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ㅎㅎ; 인터넷은 이제 현실 공간의 광장과 별반 다를 바 없어졌죠. 그걸 전세계에 적용시켰을때 빗대 설명할 만한 인물,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인물은 마이클 뿐이죠! 아, 역시 마이클..ㅜㅜ
저두 스크랩해갈께여~~^^ㅋ
스크랩해가요ㅠㅠ
ㅎ ㄷㄷㄷㄷ 이런글을 쓰게 만드심도.. 역시 마이클님이기에 가능한거죠?? 한번쯤 생각하고 지나쳤던부분들을 ~ 이렇게 글로 정리하여 써주시니~ 와우~ 쏙쏙 박히는데여~ ^^ 저두 두고 두고 외우게 스크랩합니다^^ 감사~
음...
좋은글 감사히 잘봤어요 :)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이 깊게 내제된 멋진 글이네요ㅠㅠ 이글 읽는데 왜 왈칵 눈물이 나는지ㅜㅜ 전세계인의 유일무일한 의미의 진정한 월드스타, 마이클이 너무 보고 싶어요ㅜㅜ
와... 소름이 끼칠정도네요. 마이클의 위대함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위아더월드~~~
와 글쓰신분 완전 존경스럽습니다...ㅠㅠㅠ 첫문단부터 힘이 막 생겨요!ㅠㅠ 그리고 지구에 있으나 우주에 있으나 마이클은 항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네요. 정말 진정한 의미의 '월드스타'!^^
ㅜㅡ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단언하면서도 설명은 하지 못했던
'마이클 잭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절대 나올수 없을 것'이란
의미를 참으로 명쾌하게 풀어서 말씀해 주시는군요.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