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명언
중요한 것은
행위의 결실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다.
그대는 옳은 일을 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그 결실을 얻는 것은
당신의 능력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옳은 일을 중단해선 안 된다.
당신의 행동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얻어질지
당신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과도 없을 것 이다.
- 간디 -
가장 현실적인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종교인보다도 더 종교적인 세속인이었다. 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경찰에 체포된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 아닌가. 그가 도대체 어떤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1922년 3월 10일 밤 10시 30분, 경찰차 한 대가 마하트마 간디가 머무르고 있는,
사바르마티의 아슈람(수행자들의 거처)에 도착했다. 한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간디가 있는 방갈로로 걸어왔다. “선생님을 구속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동행해주십시오. ”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러 왔는데도, 간디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간디는 아슈람 식구들을 모아놓고 신에게 찬송과 기도를 올렸다.
간디는 폭력을 쓰지 않는 투쟁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었다. 감옥에 가는 것이야 추호도 두렵지 않았다. 그가 꿈꾸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과 함께 ‘진실’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의 완전한 비전은 비폭력의 완전한 실현 이후에야 나타난다. ” 그는 당당하게 경찰차를 향해 걸어갔고, 사바르마티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가 가지고 간 것은 담요 두 장과 여분의 허리감개 한 장, 그리고 힌두 경전 <바가바드 기타>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간디의 생애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889년까지의 인도에서의 어린 시절, 1891년 귀국할 때까지의 영국 유학 시절, 1893년부터 1914년(45세) 영구 귀국할 때까지의 남아프리카 시절, 그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도에서 비폭력 독립운동을 펼치던 시절 등이 그것이다.
이 네 시기 중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진실을 탐구한 단계라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진실을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관철하기 위해 싸운 단계였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 부제를, ‘나의 진실탐구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고 했다. 이 제목을 함석헌 선생은,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로 번역했다.
이는 간디가 일찌감치 정답을 정해놓고 살아간 것이 아니라, 진실 또는 진리를 탐구하면서 살았음을 말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간디의 전 생애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역사였다. 자기 계발이라고 하니, 마치 성공하기 위한 처세술을 말하는 것 같지만, 간디에게 그것은 진리를 찾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구자라트의 교훈시는, 삶의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물 한 잔을 훌륭한 식사로 갚고/정다운 인사를 열렬한 절로 갚고/ 동전 한 닢을 황금으로 갚고/목숨을 건져주면 목숨을 아끼지 마라./ 모든 말과 행동을 그렇게 존중하고/아무리 작은 봉사도 열 배로 갚으라./
책으로는 서사시 <라마야나>와 <바가바드 기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와 존 러스킨의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등이 중요한 스승이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책에서 “악은 악으로 갚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고, 비폭력을 새삼 확인했고,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행위의 결과를 보지 말고, 오직 의무를 생각하라”는 것을 보고 실천의 원칙을 배웠다. 그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이었거나, 뛰어난 인간이어서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을 통해 훌륭한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일이 많았지만, 신(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다.
고국에 돌아와 인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15년 남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간디는 영구 귀국했다. 이제는 오랜 외국생활을 통해 배우고 확립한 진실과 그 실천원리를 고국에서 실현할 때가 되었다. 22년 만에 귀국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국의 현실을 살펴본 후 남아프리카에서 함께 온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아메다바드의 코츠라브(나중에 사바르마티로 옮김)에 아슈람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간디는 자상한 아버지였고, 그의 아내 카스트루바이는 그들의 어머니였다. 간디는 아슈람을 통해 자신이 진리로 생각하는 무소유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그는 불쌍한 불가촉천민을 아슈람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아슈람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해야 했고, 계급에 상관없이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간디는 또 비하르 주 참파란에서 농민해방운동을 펼치고, 아메다바드의 방직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는 등 비폭력저항운동을 구체화했다. 또한 자신이 법률 공부를 했던 영국을 믿고,
당시 간디가 원했던 것은 인도의 자치정부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승전국인 영국은 약속을 어기고, 오히려 인도인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재판 없이도 투옥할 수 있는 롤래트 법안(Rowlatt Acts)을 통과시켰다. 간디는 영국에 대한 비협조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했다. 간디는 분명히 인도 독립의 최고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영웅과는 다르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으며, 획기적인 이론이나 발명품을 개발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지위를 누린 것도 아니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보통 사람’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진리를 찾고자 했고, 종교인이 아닌데도 종교인보다도 철저하게 계율을 지켰으며, 가장 실천하기 힘든 비폭력?반문명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간디의 실천행위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간디가 실천해 보인 무욕의 사상과 무소유의 공동체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지면서, 새로이 조명 받고 있다.
첫댓글 마하트마 간디 【 Mahatma Gandhi | Mohandas Karamchand Gandhi) 】
【 1869.10.2~1948.1.30 】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이자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으로 유명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대해 반영·비협력 운동 등의 비폭력 저항을 전개하였다.
1922.3.10 비폭력 독립운동 전개하다 경찰에 체포되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인가?” 라는 설문조사를 한다면,
간디가 1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인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만은 아니다.
그는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특별한 방법으로 투쟁한 투사이자,
무소유를 실천한 정치지도자였으며,
가장 현실적인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종교인보다도 더 종교적인 세속인이었다.
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경찰에 체포된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 아닌가.
그가 도대체 어떤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1922년 3월 10일 밤 10시 30분, 경찰차 한 대가 마하트마 간디가 머무르고 있는,
사바르마티의 아슈람(수행자들의 거처)에 도착했다.
한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간디가 있는 방갈로로 걸어왔다.
“선생님을 구속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동행해주십시오.
”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러 왔는데도, 간디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간디는 아슈람 식구들을 모아놓고 신에게 찬송과 기도를 올렸다.
간디는 폭력을 쓰지 않는 투쟁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었다.
감옥에 가는 것이야 추호도 두렵지 않았다.
그가 꿈꾸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과 함께 ‘진실’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의 완전한 비전은 비폭력의 완전한 실현 이후에야 나타난다.
” 그는 당당하게 경찰차를 향해 걸어갔고,
사바르마티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가 가지고 간 것은 담요 두 장과 여분의 허리감개 한 장,
그리고 힌두 경전 <바가바드 기타>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영국 유학을 통해 변호사가 되었으나,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간디의 생애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889년까지의 인도에서의 어린 시절,
1891년 귀국할 때까지의 영국 유학 시절,
1893년부터 1914년(45세) 영구 귀국할 때까지의 남아프리카 시절,
그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도에서 비폭력 독립운동을 펼치던 시절 등이 그것이다.
이 네 시기 중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진실을 탐구한 단계라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진실을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관철하기 위해 싸운 단계였다.
간디는 자신의 자서전 부제를,
‘나의 진실탐구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고 했다.
이 제목을 함석헌 선생은,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로 번역했다.
이는 간디가 일찌감치 정답을 정해놓고 살아간 것이 아니라,
진실 또는 진리를 탐구하면서 살았음을 말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간디의 전 생애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역사였다.
자기 계발이라고 하니,
마치 성공하기 위한 처세술을 말하는 것 같지만,
간디에게 그것은 진리를 찾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구자라트의 교훈시는,
삶의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물 한 잔을 훌륭한 식사로 갚고/정다운 인사를 열렬한 절로 갚고/
동전 한 닢을 황금으로 갚고/목숨을 건져주면 목숨을 아끼지 마라./
모든 말과 행동을 그렇게 존중하고/아무리 작은 봉사도 열 배로 갚으라./
그러나 참된 성자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알아/악을 선으로 즐겁게 갚는다.”
책으로는 서사시 <라마야나>와 <바가바드 기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와
존 러스킨의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등이 중요한 스승이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책에서
“악은 악으로 갚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고,
비폭력을 새삼 확인했고,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행위의 결과를 보지 말고,
오직 의무를 생각하라”는 것을 보고 실천의 원칙을 배웠다.
그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인간이었거나,
뛰어난 인간이어서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을 통해 훌륭한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일이 많았지만,
신(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다.
고국에 돌아와 인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15년 남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간디는 영구 귀국했다.
이제는 오랜 외국생활을 통해 배우고 확립한 진실과 그 실천원리를 고국에서 실현할 때가 되었다.
22년 만에 귀국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국의 현실을 살펴본 후
남아프리카에서 함께 온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아메다바드의 코츠라브(나중에 사바르마티로 옮김)에 아슈람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간디는 자상한 아버지였고,
그의 아내 카스트루바이는 그들의 어머니였다.
간디는 아슈람을 통해 자신이 진리로 생각하는 무소유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다.
그는 불쌍한 불가촉천민을 아슈람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아슈람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해야 했고, 계급에 상관없이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간디는 또 비하르 주 참파란에서 농민해방운동을 펼치고,
아메다바드의 방직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는 등 비폭력저항운동을 구체화했다.
또한 자신이 법률 공부를 했던 영국을 믿고,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영국에 협조했다.
당시 간디가 원했던 것은 인도의 자치정부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승전국인 영국은 약속을 어기고,
오히려 인도인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재판 없이도 투옥할 수 있는 롤래트 법안(Rowlatt Acts)을 통과시켰다.
간디는 영국에 대한 비협조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했다.
간디는 분명히 인도 독립의 최고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영웅과는 다르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으며,
획기적인 이론이나 발명품을 개발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지위를 누린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보통 사람’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진리를 찾고자 했고,
종교인이 아닌데도 종교인보다도 철저하게 계율을 지켰으며,
가장 실천하기 힘든 비폭력?반문명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간디의 실천행위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간디가 실천해 보인 무욕의 사상과 무소유의 공동체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지면서,
새로이 조명 받고 있다.
‘보통 사람’이 이룩한 경지가 영웅으로 태어난 이의 경지보다,
훌륭하다면 그가 바로 진정 위대한 이가 아니겠는가.
간디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신이다. 신을 발견하는 길은 비폭력이다.
분노와 두려움과 거짓을 버려야 한다. 당신 자신을 버려야 한다.
정신이 정화되면,
당신은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힘이다.”
(네이버백과 사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위의 결실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인 것이기에!~,
옳은 일을 해야만 하는 法임!~"을
굳게 믿습니다.
가을 날씨답게 기온이 많이 떨어지고 일교차가 큽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기 조심 하시구요
청파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